19C 후반에서 20C 초, 한ㆍ중 양국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거대한 미증유의 흐름에 대응하고 변혁을 모색한다. 아울러 근대 국가의 수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염두에 둘 때, 한ㆍ중 양국 간의 관계는 선린(善隣)과 적대(敵對)가 교차되면서 시종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볼 ...
19C 후반에서 20C 초, 한ㆍ중 양국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거대한 미증유의 흐름에 대응하고 변혁을 모색한다. 아울러 근대 국가의 수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염두에 둘 때, 한ㆍ중 양국 간의 관계는 선린(善隣)과 적대(敵對)가 교차되면서 시종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양국 관계의 요인을 단지 지리적인 인접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너머의 근대 한ㆍ중 문화 교류의 심층적 구조와 문학적 형상화 과정을 파악하는 것이 그 요체일 것이다.
본 연구는 동일한 근대 전환기에 놓였던 한ㆍ중 간의 이동(異同) 속에서 지식인이자 외교관의 신분으로 각각 조선과 인연을 맺은 황준헌(黃遵憲, 1848-1905)ㆍ주가록(周家祿, 1846-1909)ㆍ장건(張謇, 1853-1926) 이들 3인의 중한관계 저작(著作)인 「朝鮮策略」ㆍ「奧簃朝鮮三種」ㆍ「朝鮮善後六策」과 그들의 시문(詩文)에 주목하였다. 이는 이들 중한관계 저작과 시문이 임오군란(壬午軍亂, 1882)을 기점으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지형이 만들어져 가던 바로 그 중심에 서 있었던 생생한 기록임을 고려한 것이다. 특히, 황준헌ㆍ주가록ㆍ장건 3인과 직간접적인 영향을 맺고 있는 임오군란은 중국의 대(對) 조선 정책의 전환점으로, 이는 전통적 조공관계에서 적극적인 정치 외교적 간섭과 경제적 수탈을 도모하는 등 조선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가져왔다. 따라서 「朝鮮策略」ㆍ「奧簃朝鮮三種」ㆍ「朝鮮善後六策」과 시문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지형 구축을 두고 전개된 당시 중국의 대(對) 조선 전략과 타자로서의 조선에 대한 인식을 노정하고 있으며, 나아가 동아시아론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먼저, 황준헌은 서세동점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동아시아 3국 나름의 대응책을 모색한다. 그 당시 동아시아 담론의 중심 주제는 조선이었고, 이는 조선이 갖는 지정학적 요인 때문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황준헌은 「朝鮮策略」을 통해 중국, 일본 및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견해를 제시하는 한편, 조선의 문제와 명운을 제재로 하여 「朝鮮歎」ㆍ「續懷人詩」ㆍ「悲平壤」ㆍ「馬關紀事」(第5首) 등의 시문을 남긴다. 특히, 이 가운데 「朝鮮歎」은 황준헌이 「朝鮮策略」에서 주장한 바를 재차 시로써 표출한 것으로, 여기에서 그는 조선에 대한 열강들의 야심과 그들에 의해 분할될 조선의 운명을 지적하고, 러시아와 일본을 경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주가록은 임오군란 당시, 진압의 책임을 맡았던 오장경(吳長慶)의 막료 신분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이때 그는 조선에 대한 다양한 정보 제공과 보다 정확한 정황을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견문록을 짓는데, 이것이 바로 「奧簃朝鮮三種」이다. 이 책은 임오군란을 전후한 당시 조선의 객관적 실정과 정보, 중국인의 조선 인식, 조선 문인들과의 교유, 오장경 막료들 내부의 갈등 관계 등을 기록하고 있다. 「奧簃朝鮮三種」 가운데 하나인 「朝鮮樂府」에는 「長湖村」ㆍ「昌德宮」ㆍ「大院君」ㆍ「南檀山」ㆍ「罪己敎」ㆍ「陳情表」ㆍ「仁川口」ㆍ「三軍府」ㆍ「賣國碑」ㆍ「守舊黨」 등 조선의 시국 전반을 노래한 10수의 시가 실려 있다.
장건 역시 임오군란 당시 오장경의 막료로 조선을 처음 찾은 이후 김창희ㆍ김윤식(金允植)을 비롯한 조선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근대 한ㆍ중 문화교류에 적잖은 족적을 남겼다. 특히 김창희와 관계가 돈독했던 그는 임오군란이라는 변란의 와중에서 중국과 조선의 시국에 대해 정치적 대화를 주고받는다. 장건은 조선에 체류하는 동안 임오군란의 발생 원인, 외교와 개화에 있어서 조선의 문제점 등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였다. 나아가 조선이 내실을 다져서 안정된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대안책으로 여섯 가지 조항을 제시하였는데, 이들의 정책적 대화록이 바로 「朝鮮善後六策」이다. 또한, 장건은 임오군란 이후에도 조선의 문인들과 지속적으로 교유하면서 다양한 시문을 지었는데, 「陳援護朝鮮事宜」ㆍ「論朝鮮檄」ㆍ「書朝鮮近事」ㆍ「軍行水原道中」ㆍ「招隱三首贈金石菱」ㆍ「朝鮮金滄江刊申紫霞詩集序」ㆍ「朝鮮金滄江雲山韶濩堂集序」ㆍ「書朝鮮趙玉垂參判冕鎬異苔同岑詩卷後」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상술한 내용을 전제로 하여 황준헌의 「朝鮮策略」ㆍ주가록의 「奧簃朝鮮三種」ㆍ장건의 「朝鮮善後六策」과 그들의 시문을 (1) 중국의 대(對) 조선 전략과 정책 변화 규명, (2) 근대 동아시아론 형성 과정 탐색, (3) 중국의 조선 인식과 근대사 형성의 동질 의식 탐색으로 세분하여 동아시아 배경 하의 對 조선 서사 기록과 시문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근대 동아시아론의 형성과 문학적 형상화 과정을 동아시아론이라는 거시적인 틀에서 조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