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역 농악에서 자진모리형 가락의 존재양상
호남 우도농악 권역에 속하는 지역의 판굿 양식에서 자진모리형 가락인 삼채가락은 거의 모든 절차굿에서 사용된다. 절차굿의 ‘절차’가 하나의 독립된 과장으로써의 의미를 부여 받고 있고, 독립된 과장마다 중심적인 음악 ...
1. 지역 농악에서 자진모리형 가락의 존재양상
호남 우도농악 권역에 속하는 지역의 판굿 양식에서 자진모리형 가락인 삼채가락은 거의 모든 절차굿에서 사용된다. 절차굿의 ‘절차’가 하나의 독립된 과장으로써의 의미를 부여 받고 있고, 독립된 과장마다 중심적인 음악 주제 또는 춤 ․ 놀이 ․ 극과 같은 다른 예술 요소들에 의한 행위 주제가 제시-전개-정리 되어지는 구조 속에서 삼채가락은 모든 과장에 고루 사용된다. 삼채가락은 주로 별도의 음악 주제를 가진 가락구조에서 주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돌입하는 단계, 즉 ‘종지부’의 시작 가락으로 위치하고 있다.
우도농악의 절차를 맺는 방식은 대체로 짧은매도지/홑맺이와 긴매도지/겹맺이 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두 맺이 가락은 모두 삼채와 유사한 리듬구조를 가진 3소박 4박자가 한 악구를 이루는 가락들이다. 따라서 굿의 정리를 위한 맺이가락으로 가는 경과구의 첫 머리에 삼채가락을 삽입하면 흐름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다. 이에 비해 같은 삼채가락이지만 타 예술요소들이 중심이 되는 과장에서 연주하는 삼채가락은 음악주제가 강한 과장에서의 주제가락과 같이 중심위치(첫부분)에 있다.
또, 판굿의 각 부분 단락들은 저마다 중심적인 음악 주제 또는 무용 ․ 놀이 ․ 연극과 같은 다른 예술적 요소들에 의한 행위 주제가 ‘제시-전개-정리’되는 3부 형태를 띠는데, 각 단락마다 ‘삼채가락’ 또는 삼채가락 계통(벙어리삼채가락, 풍년굿가락, 빠른삼채가락, 연풍대가락, 매도지가락 등)에 드는 가락을 빠트리지 않고 구성하여, 통일적으로 반복되는 부분을 형성시키고 있다.
임실 필봉농악 판굿의 공연 흐름을 전체적으로 보다 보면 비교적 어려운 음악, 춤요소로 된 부분에서는 공연자 위주로 굿판이 진행되고, 공연자들이 비교적 인지하기 쉽고 긴장감이 들지 않는 동일한 가락을 장시간 반복, 순환해서 연주하고 특별한 진법을 수행하지 않을 때는 공연자와 청관중이 한 데 어우러지는 굿판이 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다. 즉, 참여자 전체가 ‘공감’과 ‘동화’의 차원으로 나갈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드는 계기와 방법이 예술요소들의 활용과 구성을 통해 해결되고 있다.
임실 필봉농악에서 ‘공감’과 ‘동화’의 매개가 되는 것은 악가무희사의 다양한 예술요소 중에서도 음악요소의 효능이 두드러진다. 바로 자진모리형 리듬인 ‘삼채가락’, ‘반풍류가락’, '갠지갱가락'이 두드러지게 역할을 하며, 이 가락에 한 몸처럼 '휘모리가락' 이 뒤따르며 긴 시간 반복-축적해서 연주한다. 다른 높은 수준의 음악성을 갖춘 가락들, 고도의 기량을 요하는 예술요소들이 있음에도 전체 공연에서 보면 이것들의 활용은 국소적이며, 상대적으로 자진모리형 가락은 빈번하게 출현하고, 길게 반복 연주되면서 축적된다. 이때 드러나는 판의 가시적 현상이 중요한데, 판의 경계 바깥쪽에 있던 청관중이 중심부로 들어와 주로 춤을 통해 공연에 가담한다. 양옥경, 앞의 논문, 139-140쪽.
이러한 공연현상을 개인심리학을 주창한 아들러의 관점에서 해석해 본다면 ‘권력욕구’ 보다 ‘협력욕구’가 승한 성격을 가졌다고 해석할 것이다. 아들러는 ‘성격’을 ‘권력욕구’와 ‘협력욕구’ 간의 힘대결이 표출된 것으로 정의한다. 이와 같은 성격 개념을 공동체와 그들의 인생방식 총체에 적용해 분석해보면 보다 흥미로운 관점의 굿판 해석이 가능해진다. 같은 판굿양식이어도 굿판마다 담지한 성격은 다르다. 지금까지는 표피적인 내용들만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에 그 새로운 의미 발견으로 확장되는 연구결과를 보기 힘들었다. 아들러는 ‘협동하는 일에 대해 훈련받고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공통의 과제와 공통의 놀이를 통해 자신의 인생방식을 발견해 내도록 교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문성, 「알프레드 아들러의 생애와 사상」, 221쪽.
임실 필봉농악 판굿의 양식과 연행방식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전체 참여자가 함께 신명을 공유하려는 지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여자 전체가 어렵지 않게 동의하고,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면서 만들어지고 양식화 된 것이라 하겠고, 그러한 이 지역 농악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예술적 기제가 바로 삼채라고 볼 수 있다.
경상북도 김천시에 전승되고 있는 김천금릉빗내농악에서 자진모리형 가락으로는 정적궁이와 자진덧배기 가락이 있으며, 이 가락들은 상대적 속도를 조절하여 다양한 연주를 꾀하고 있다. 또 다른 가락들에 비해 그 출현 빈도수가 압도적이다. 이로 볼 때에 경상북도 지역의 대표적 전승농악인 빗내농악에서도 자진모리형 가락이 전체 공연구조와 흐름 속에서 중요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고 하겠다.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마을 전승농악인 퇴촌농악의 각 굿양식 절차, 가락 구성에서 판굿을 집중해서 보면 자진모리형 리듬인 덧배기가락이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창원 퇴촌농악의 판굿은 질굿, 살풀이굿, 선잽이굿, 사방오토굿, 멍석말이굿, 미지기굿, 강강술래굿, 호호굿, 농사풀이굿, 개인놀이굿, 이상 10종의 각 절차굿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십 종의 굿 거리에서 자진모리형 덧배기가락은 살풀이굿만 제외하고 총 아홉 굿 거리에 모두 구성되어 있어 그 중요성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경상북도 대구 비산농악의 절차, 가락 구성을 보면 각각의 절차굿이 성격과 주제면에서 대비적인 데 비해 절차의 음악 구성, 즉 가락 구성 면모는 매우 흡사하다. 또 정적궁이, 다드래기와 같이 뚜렷한 명칭이 존재하는 가락과 함께 별도의 명명은 없지만 장단구조 면에서 자진모리 장단과 삼채가락에 흡사한 가락들을 대부분의 절차굿에 구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 볼 때에, 대구 비산농악에서도 자진모리형 리듬은 음악 구성요소에서 독보적 위상을 점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2. 자진모리형 가락의 다양성
농악에서 자진모리형 리듬은 지역 보편적으로 다양한 변주를 통해 존재를 확장하고 있다. 특히 삼채가락에서 자진모리형 가락의 다양한 리듬 변이형을 만나 볼 수 있는데, 리듬을 발전시켜나가는 방식으로 동기에 해당하는 리듬을 여러 변형 방식을 통해 생성, 활용하고 있다. 리듬체계를 중심으로 해서 유형을 구분지어 볼 때, ‘단일 악구형’ ‘암수 결합형’ ․ ‘세 악구 이상 결합형’ ․ ‘통절 악구형’ ․ ‘부분리듬 확대형’ 등이 있고, 속도나 연주기법의 변화로 생성된 ‘속도 변이형’ ․ ‘연주기법 변이형’ 가락들이 있으며, 생성방식의 ‘복합형’ 가락들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을 통해 변화를 주어 새로운 변형/파생가락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보다 다양한 미적 표현 욕구 때문으로 보인다.
예컨대, 농악에서 삼채 가락 기본형은 두 악구 모두 3소박 4박의 균등박, 균등악구형 리듬이다. 즉, 3소박씩 균등하게 결합하여, 한 악구가 3소박 4박자의 리듬구조를 가진 삼채 기본 가락을 박 층위의 소박 결합에 변화를 주어 2박자계통과 3박자계통이 복합된 복합박자형 리듬으로 변형시켜 새로운 리듬형을 만들기도 한다. 또 삼채 기본형 가락과 리듬구조 면에서 3소박 4박자로 동일하지만, 전반적으로 박 층위의 소박 결합 패턴에 변화를 주거나, 두 겹 장단주기의 음양대비형에서 네 겹 장단주기의 음양대비형으로 장단 층위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리듬형을 만들기도 한다.
삼채가락의 원형은 3소박 4박자이지만, 같은 장단주기 안에 3박자와 2박자가 둘 결합된 ‘섞인장단’으로의 변형을 주고, 속도에도 변화를 주어 새로운 리듬형을 만들기도 한다. 그 예가 ‘자진삼채가락’이다. ‘자진삼채가락’은 한 악구가 총 12소박으로 구성되는 두장단이 암수로 결합한 가락이라는 점에서, 삼채가락과 같다. 하지만 제1박과 제2박은 3소박씩 균등하게 결합하여 3․3의 박자구조인 반면, 뒤의 6소박은 2소박씩 결합하는 2․2․2의 짧은박 집합의 균등박자형 구조로 이뤄져 있다.
속도 변주를 써서 파생가락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농악에서 쓰는 가락의 속도 지시어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예컨대, 삼채가락이라고 했을 때 공연자의 인식 속에서 어느 정도 범위화 된 속도는 있지만, 절대적인 숫자의 속도는 없다. 하지만 공연자들은 ‘느진’과 ‘자진’이라는 두 유형으로 구분하여 쓴다. 그러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자진삼채가락과 이채가락이 같은 속도 범위에서 연주되기도 한다. 삼채가락은 자진삼채가락과 느진삼채가락이란 명칭을 써서 암묵적으로 관습화 된 속도가 지시된다.
일부 리듬부에서 주법에 변화를 새 가락을 생성하는 방법도 발견된다. 이 사례에 해당하는 ‘벙어리삼채가락’은 ‘삼채본가락’의 일부 리듬에 주법 변화를 주어 만들어진 가락이다. 이 ‘벙어리삼채가락’은 쇠를 연주할 때 치는 면의 안쪽을 손가락으로 막거나 떼어서 강세를 의도대로 조절하는데, 가락의 일부 타점을 ‘쉬는 박’으로 바꾸거나, 개방음으로 내지 않고, 쇠의 안쪽을 한쪽 손가락으로 막고 쳐서 소리의 잔향을 막으면, 일종의 묵음(黙音, mute) 상태가 되어 뚝뚝 끊기는 효과를 내게 된다. 이것을 ‘벙어리’나 ‘벙어리박’이라고 표현하는데 연주자의 즉흥적인 선택으로 자주 활용되지만, 고착화 된 한 사례가 ‘벙어리삼채가락’이다.
한편 임실 필봉농악에서 자진모리형 가락은 ‘춤을 위한 가락’으로 가장 많이 활용된다. 뿐만 아니라 단체 놀이를 하며 집단적 신명을 일구고, 관객을 판 안으로 직접 끌어들여 공연자로 일시적 변환을 꾀하기 위한 놀이에서도 이 가락을 활용한다. 즉 자진모리형 가락은 음악적 면모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요소와의 결합으로 공연집단의 예술적 지향을 완성하는 데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3. 자진모리형 가락의 용례를 통해 본 지역농악의 비교문화적 특징
앞에서 전개한 분석과 논의의 결과를 통해 얻은 지역 농악의 비교문화적 특징을 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진모리형 가락의 용례를 통해 살펴본 농악은 다양하면서도 창조적인 음악적 시도가 전개되고 있는 갈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주요 방법도 박자체계와 악구의 축소 또는 확대를 통해 부분 또는 전체의 리듬형을 변화시킨다거나, 긴장성을 형성하기 위해 속도를 변환시킨다거나, 연주 기법을 변화시켜 같은 리듬구조지만 다른 질감을 가진 가락을 만든다거나, 이 방법들을 모두 활용하는 방식 등으로 다양하다. 여기서 분석한 가락 예시들은 여러 방법으로 생성된 가락들 중에 선택, 고착화 된 것들이다. 이 외에도 공연 중에 개인의 즉흥적인 선택과 연주에 의해 새로운 변형/파생가락들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것이 농악의 음악적 특징 중의 나라고 볼 수 있다.
둘째, 3소박의 4박자의 리듬구조를 가진 자진모리형 가락이 절대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은 지역을 넘어서 전국 보편적 특징인 것 같다. 또 박이 2개로 나뉘는 리듬의 경우는 역동성 있는 신체동작이 따르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소박이 3개씩 결집하는 리듬은 선이 부드러운 춤사위와 같은 신체동작이 함께 할 때가 많다.
셋째, 자진모리형 가락을 짝드름, 즉 상쇠와 부쇠가 리듬을 부분적으로 나누어 교대로 연주하는 방식은 호남 좌도농악 권역에 속하는 임실 필봉농악이 유일한 사례다.(휘모리가락의 경우 필봉의 전통적 관습이 사물놀이에 수용되어 현재는 전국적으로 휘모리 가락계통을 연주할 때 지역 구분과 상관없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와같은 교대식 연주법은 민요 가창 방식에서 ‘교대창’의 생성과 번성은 집단 내부의 소통이 보다 원활한 사회에서 발견된다.
넷째, 영남과 호남의 변별점은 호남에서의 경우 자진모리형 가락은 주로 판굿 공연양식에서 주된 활용을 보인다면(고창의 경우 제외), 영남에서는 제사굿의 제사 음악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다섯째, 호남 좌우도 권역은 가락 ․ 굿 등의 명칭을 비롯하여 음악 용어면에서 상호 공통점이 많으며, 가락의 리듬변형 및 가락 생성방식 면에서도 공통점이 많다. 하지만, 자진모리형 가락이란 미시적인 단위에서 변이를 추구하는 경향과 그 방법이 차이가 있다. 호남우도 농악은 박, 박자단위의 리듬 등의 미시적 단위에서 변이를 꾀하는 반면 좌도농악의 경우는 리듬집의 규모와 구조, 연주 방식면에서 변이를 꾀하고 있는 양상이다.
여섯째, 자진모리형 가락의 용례로 봤을 때 좌우로 나누는 호남의 농악문화권은 실제로는 보다 넓은 범주로 묶여 지역적 보편성을 찾을 수 있는 많은 공통점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농악이 문화적 공연에서 점점 분리되기 시작한 시점에 두 지역 공연집단이 자의적, 타의적으로 선택한 공연 환경과 활동이 두 지역간의 보편성에 조금씩 변이를 일으키게 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유사한 토양에서 성립된 예술양식은 흡사한 토종 유전자를 보유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나 공연자의 지향과 활동이 달라지면서 한쪽은 연예성과 전문성을 강조한 방향으로, 다른 한쪽은 여전히 공동체 내부의 결속을 중심으로 한 기능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라 해석된다. 공연 주체의 공연 목적과 지향에 따라 달라지는 공연 성격과 실질적인 텍스트 상의 변화 및 대비점들은 좌우도 농악의 경우 공연구조와 텍스트 양면에서 발견된다. 그 실증적 양상이 자진모리형 가락의 용례를 통해서 논술된다. 더 구체적으로 논술해 보자면, 호남우도농악 판굿은 공연 전체에서 규칙적인 마무리 기법은 자진모리형 삼채가락을 특정 위치에 고정하여 반복 출현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활용으로 전체 음악의 통일성은 물론 구조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적 통일성을 구축하고 있다. 즉, 우도농악은 ‘견고한 공연관습’을 전 공연자가 일탈없이 매 단락의 마무리에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브라이로이유의 견해에 비추어 보면, 근현대 우도농악은 이전사회보다 발전되고, 조직화가 증대된 사회에 맞추어 스스로 농악 본연의 문화적 의미를 재현하는데서 벗어나 더욱 다양하고 전문적인 작품을 완성하고자 한 지향의 결과물로 여길 수 있다.
필봉농악이 집단적 신명을 지향하고 있는 굿인 것은 자진모리형 가락인 삼채가락의 활용 면에서 확연히 입증된다 하겠다. 임실 필봉농악은 각 음악단락을 구성하는 가락들에서 주제부에 해당하는 가락의 연주보다 매 단락의 끝에 규칙적으로 조합되는 갠지갱가락과 휘모리가락을 훨씬 장시간 연주하고, 공연자의 자율의지에 따라 맘껏 변형리듬형을 연주하며 반복-축적하는 연주방식을 관습으로 가지고 있다. ‘동일한 가락’을 다양한 마디와 춤을 위해 되풀이 한다는 것은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동일한 가락이 반복, 순환되는 시간동안 공연자는 안정된 리듬구조에서 일정기간 창조적 행위로 다양한 리듬변형을 시도하며 더욱 신명을 부추기고, 신체동작 역시도 안정된 리듬 구조 안에서 다양하게 창조해내면서 청각과 시각 양면의 촉진을 가져온다. 인지하기 쉬운 동일한 가락을 반복해서 연주하면 공연자는 물론 청관중도 공연지식과 정서를 같은 선상에서 공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청관중들로 하여금 공연에 대한 거리감을 해소시키는 작용을 하며, 결국 판 안으로 들어와 ‘유사-공연행위’를 하며 적극적으로 공연을 함께 만들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곱째. 자진모리형 가락의 연주 방식이 전국적으로 보편화 경향을 띠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연주집단의 사고와 감정세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그릇으로써의 음악, 한 사회적 집단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음악이 그 범주에 있어서 모호해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 배경에는 현대 사회의 예술 외적 환경이 밀접하게 관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현재는 동시간 무한 소통이 다양한 매체에 의해 가능해진 시대이다. 물질-기술 환경이 가져온 예술적 변화라고 할 것이다. 일곱째. 자진모리형 가락의 연주 방식이 전국적으로 보편화 경향을 띠고 있다. 결국 예술도 전달 매체에 의해 영향을 미치고 확산하는 사회적 유기체이기 때문에 갈수록 지역성은 옅어지고, 전국 보편성은 강화되어 가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듯하다.
4. 자진모리형 가락의 사회문화적 기능과 의미
예술은 사회구조 위에서 인간과 인간의, 인간과 도구와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농악은 개방적 공간에서의 문화적 공연이 쇠락하고, 작고 한정된 공간(포장무대, 실내극장 등)으로 주 활동공간이 이동하면서 공연자와 청관중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소’들이 사라진 공연구조로 탈바꿈하면서 개방성과 수용성은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 반면에 시청각 예술기제는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걸립굿이나 대회굿, 무대굿의 경우 아무리 동일한 공연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마을 내에서 공연자와 청관중이 딱히 분리되지 않는 문화적 공연과는 ‘개방성’과 ‘수용성’ 면에서 중대한 차이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예를 통해 상업적 가치를 추구해야만 하는 제한적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연구조는 경계가 확연히 나뉜 위치의 청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고도화 된 짜임새를 지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본래는 크고 작은 규모의 다양한 공연을 통해 ‘비춰보기’를 통한 집단적 반성․화해의 사회극으로 기능했던 농악 공연은 사회 ․ 문화적 변화와 함께 새로운 구도에 진입한 지 오래다. 농악 공연의 사회적 기능도 변화하게 되었고, 이제 집단적 신명창출을 추구하는 농악 공연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면 상업적 관계에 의해 문화예술을 공급하고 소비하는 사회구조에서는 굿 본연의 목적이자, 지향이 살아있는 공연은 더이상 불가능한 것인가?
‘신명’을 미학의 총체적이면서 최종적인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농악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신명’을 외향화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놀이’이다. 놀이는 놀이 그 자체[text]와 놀이를 주관하는 공연자와 관람객의 위치에 서있는 사람에 의해 구성된다. 공연자는 ‘놀이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인물로의 존재 변환을 경험하는 주관자이자, 그 자신이 경험자이며, 놀이를 관람하는 청관중 역시 놀이 속에 투영되는 문화적 관습과 담화들에 공감하며 놀이에 동참하게 됨으로써 결국 공연자와 청관중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재의 농악은 대동성이 약화된 놀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신명이 일의 고통, 육체적 고통을 총 망라하는 삶의 고통들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고, 농악이 악기와 춤을 매개로 하여 신명을 외적(外的)으로 청각화, 시각화 시킨 것임을 볼 때 농악은 “이상적 노동의 세계가 신명의 세계”라는 측면을 고도화 시킨 삶의 요구에서 나온 예술양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구현해 낼 수 있는 예술 형태가 ‘예술적 놀이’이며, 이러한 놀이를 완성해 주는 상징적 가락이 바로 농악에서 활용하는 자진모리형 가락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