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우가 엘리자베드 당대에 셰익스피어보다 더 인기를 누렸으며, 그 작품의 위대성이 셰익스피어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주장은 아직도 유효한가? 많은 평자들이 말로우가 르네쌍스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작가이며, 셰익스피어는 말로우의 영향을 받아서 더욱 ...
말로우가 엘리자베드 당대에 셰익스피어보다 더 인기를 누렸으며, 그 작품의 위대성이 셰익스피어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주장은 아직도 유효한가? 많은 평자들이 말로우가 르네쌍스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작가이며, 셰익스피어는 말로우의 영향을 받아서 더욱 훌륭한 작품들을 썼다고 평가해 왔다. 하지만 막상 두 극작가에 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말로우는 셰익스피어보다 훨씬 열등한 작가로 평가받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작품의 수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많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연구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주요 작품들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르네쌍스 연구는 현대 후기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아 신역사주의, 문화유물론 등의 새로운 비평에 입각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초점은 단연 셰익스피어이다. 국외에서는 점차 그 연구의 폭이 셰익스피어 외에 르네쌍스의 다른 작가들에게로 확장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셰익스피어를 제외한 다른 르네쌍스 작가들의 작품 연구는 너무도 미미하다. 말로우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단편적으로만 한 두편 이루어질 뿐 체계적인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아직 말로우의 대표작들에 대한 번역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현대의 사상 흐름을 비추어볼 수 있는 중요한 거울 역할을 하는 르네쌍스 연구에서 르네쌍스의 정신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로우 연구는 필수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대 후기 구조주의의 지평 위에서 나타나는 사고의 화두가 욕망이라고 말한다면, 말로우의 작가 정신 역시 욕망, 아니 위반과 일탈의 욕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욕망의 논의들은 한마디로 기존의 전통적 사고에 대한 회의주의와 상대주의로 특징지워진다고 할 수 있다. 데리다, 푸코, 라캉 등으로 대변되는 후기 구조주의의 사상을 통해서 인간과 사회, 그리고 역사를 바라보는 현대의 시각은 기존의 이성 중심의 서구 문명 전통을 와해시키고 있으며, 인간 주체나 개별적인 자아에 대해, 또 그러한 자아가 믿고 있는 신념에 대해 깊은 회의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현대 후기구조주의 사상은 지금까지 우리가 신봉해 왔던 절대적 가치들이 결국 타자의 욕망이고, 우리의 자유로운 욕망을 억압해 온 것이었음을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기존의 로고스 중심의 가치를 거부하는 현대적 사상의 흐름은 16, 7세기 서구 르네쌍스 시대의 흐름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띄고 있으며, 당대의 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현대의 욕망이 지금까지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왔던 인간의 이성이나 신념으로부터의 위반과 탈주를 추구한다면, 르네쌍스의 욕망은 절대적 권위와 지배의 상징인 기독교와 전통 질서로부터의 위반과 탈주를 추구한다. 말로우는 바로 이러한 르네쌍스적 위반과 탈주의 중심에 서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말로우의 주인공들에게서 나타나는 기독교와 전통에 대한 회의주의와 상대주의를 심도있게 고찰하여, 그것이 어떻게 위반의 욕망에 기초하고 있고 또한 그러한 위반의 정치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밝히는 것이다. 말로우의 작품들은 흔히 Tamburlaine The Great Part I, II, The Jew of Malta, Doctor Faustus를 중심으로 권력, 부, 지식이라는 르네쌍스의 무한한 욕망을 추구하다가 결국 인간적 한계 때문에 추락하는 이카루스와 같은 비극적 인간 유형을 묘사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는 르네쌍스 욕망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르네쌍스는 기독교와 휴머니즘, 신과 인간, 전통과 전복의 욕망이 서로 대립하며, 조화와 공존을 모색했던 시대이다. 말로우의 작품들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복합적인 당대의 담론들을 반영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본질적으로 기독교와 전통에 대한 위반의 정치학을 주인공들을 통해 내면화시키고 있다. 말로우의 주인공들은 전통적 욕망을 개인적 욕망으로 대체시킨 인물들이다. Tamburlaine은 기독교 전통의 "영웅"에 대한 담론을, The Jew of Malta는 "유태인"에 대한 당대의 담론을, 그리고 Doctor Faustus는 "마법"에 대한 당대의 주류 담론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교묘하게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우의 글쓰기는 셰익스피어보다 덜 정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힘과 욕망의 크기는 훨씬 강력하다. 그리고 결국 위반의 욕망이 성취되었을 때도 그것이 환상으로 끝나버리는 말로우의 작품들은 현대의 욕망 이론과도 분명히 맞닿아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