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에서 국가권력의 성장과 교통로의 발달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삼국시대의 교통로에 대한 연구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교통로 연구에 필요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같은 자료의 부족 ...
한국고대사에서 국가권력의 성장과 교통로의 발달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삼국시대의 교통로에 대한 연구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교통로 연구에 필요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같은 자료의 부족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것은 고고학 자료를 이용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山城은 교통로 및 지방지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축조되었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교통로도 비정할 수 있고 나아가 지방 지배 체제에 대하여서도 살펴볼 수 있다. 최근 필자는 이러한 방법론을 적용하여 신라와 고구려의 교통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본 연구에서는 한성시대 백제의 교통로와 산성을 통한 지방 지배 체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한성 백제의 중심지인 현재의 서울지역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X'자형 육상교통축의 결절지이다. 한반도에서 유역 면적이 제일 넓은 한강이 동서 방향을 연결되어 육로와 내륙수로가 합류되기도 한다. 또한 한강은 서해와 연결되어 서해 연안수로를 통한 대외 교섭의 창구 역할도 하였다. 따라서 백제가 이 교통로들을 장악하고 활용하였던 것이 국가적 성장의 요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한성시대 백제 교통로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성과는 미진하다. 본 연구는 한성을 중심으로 한 백제의 대외진출로를 구체적으로 비정하여 한성 백제의 성립과 발전 문제에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기대효과
최근 풍납토성의 발굴을 계기로 다시 백제의 국가 형성 문제가 다시 주목되고 있다. 더구나 이천 설봉산성, 포천 반월산성과 고모리산성, 안성 죽주산성, 파주 칠중성과 육계토성 등 백제가 축조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들에 대한 조사 결과도 속속 발표되었다. 그 결 ...
최근 풍납토성의 발굴을 계기로 다시 백제의 국가 형성 문제가 다시 주목되고 있다. 더구나 이천 설봉산성, 포천 반월산성과 고모리산성, 안성 죽주산성, 파주 칠중성과 육계토성 등 백제가 축조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들에 대한 조사 결과도 속속 발표되었다. 그 결과 자료의 빈곤으로 연구에 어려움이 많았던 한성백제사 연구는 다시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한성 백제의 국가 형성 문제에 있어서 중앙 권력의 성장뿐만 아니라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 즉 중앙권력이 지방사회를 어떻게 장악하고 지배하였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고고학 자료를 통하여 중앙과 지방의 정치·문화적 통합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하게 하고 유지시켜주는 교통로에 대한 기초연구가 필요하다. 이점에서 본 연구는 백제 국가 형성기 고고학 자료의 해석에 유용한 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고대국가의 형성에 있어서 교통로의 영향을 규명함으로써 고대국가의 정치·군사·경제·문화 등의 제 양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연구요약
본 연구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크게 내용을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첫째, 백제 국가 성립기까지 한강유역에서 교통로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한성백제의 교통로가 그 이전의 교통로와 어떤 관련을 가지고 발달하게 되었는지 비교 고찰하기 위 ...
본 연구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크게 내용을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첫째, 백제 국가 성립기까지 한강유역에서 교통로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한성백제의 교통로가 그 이전의 교통로와 어떤 관련을 가지고 발달하게 되었는지 비교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한강 유역의 지리적인 조건과 자연적인 교통로의 발전에 대하여 검토한다. 둘째, 백제 초기 전쟁기록과 고고학 자료를 분석하여 한성백제의 대외진출로를 규명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앞의 내용과 비교하여 한성 백제의 교통로의 개척과 장악이 군사적 목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백제의 대외진출과 관련된 중요 전투지역에 대한 지명 비정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최근 경기도 일대에서 출토되고 있는 백제계 산성의 분포, 성격, 축조시기 등을 분석하여 보겠다. 산성의 축조는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행정적 목적과도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산성의 축조에는 원거리에서 많은 노동력이 징발되어 축성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산성을 검토함으로써 한성 백제의 지방 지배의 양상에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이 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한성시대 백제의 국가적 발전과 교통로와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를 신라와 비교하여 삼국시대의 국가발전에서 교통로가 끼친 영향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상의 내용에 대하여 1차 년도에는 첫째와 둘째 항, 2차 년도에는 셋째 항, 3차 연도에는 넷째 항에 대하여 순차적으로 연구를 진행시키려한다.
한글키워드
교통로,산성,한성백제,국가 형성 문제,국가적성장,지방지배체제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백제사가 주목 받지 못한 것은 삼국 중 사료가 가장 적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백제사의 절반에 해당되는 한성시대는 아직도 연구가 미진한 부분이 많다. 이 연구는 한성시대 백제의 역사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문헌자료 뿐만 아니라 고고학자료를 활 ...
백제사가 주목 받지 못한 것은 삼국 중 사료가 가장 적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백제사의 절반에 해당되는 한성시대는 아직도 연구가 미진한 부분이 많다. 이 연구는 한성시대 백제의 역사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문헌자료 뿐만 아니라 고고학자료를 활용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백제가 남한강수로를 어떻게 장악하고 활용하였는지 규명하고자 하였다. 교통로는 국가가 발전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한성시대 백제의 교통로 중 가장 먼저 발달하고 광범위하게 활용된 것은 남한강수로였다. 3세기 말 경 백제는 남한강유역을 모두 정복하여 수로의 운영권을 차지하였다. 이후 한강수로는 백제의 경제와 문화 발전에 있어서 혈맥과 같은 구실을 하였다. . 한성시대 백제의 육로는 북방교통로의 개척과 운영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육로는 자연적인 여건에 의하여 교통로가 개설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을 활용하는 것은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다 백제의 북방교통로는 크게 방원령로, 자비령로 등으로 나누어 진다. 여기에서는 방원령로 및 자비령로의 구체적인 노선을 비정하였다. 군사적인 측면 뿐 아니라 경제와 문화적인 측면에서 가장 주목되었던 교통로였다. 교통로와 더불어 백제의 국가 발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유적이 산성이다. 백제의 산성에 대한 연구는 주로 웅진 및 사비 시대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경기도 지역에서 다수의 백제 산성이 발굴됨으로써 그 중심이 한강유역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한성시대 산성의 발당과정을 단계별로 검토하였다. 최근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한성시대 석축산성의 존재하였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연구는 그 가능성에 대하여 여러가지 측면에서 근거를 제시하였다. 산성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백제의 지방 통치 발전과 산성이 어떻게 관련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산성은 군사적 목적에 의하여 축조되었지만 고대에는 재방통치의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성을 필자는 거점산성이라 부른다. 4세기 후반부터 확산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산성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과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촌락의 토착세력을 지배하기 위한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영문
A shortage of historical records makes difficult to study Bakje(百濟) history.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how the Bakje history in Hanseong Bakje period. This article has four main subjects. Most of subjects is related with traffic route. f ...
A shortage of historical records makes difficult to study Bakje(百濟) history.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how the Bakje history in Hanseong Bakje period. This article has four main subjects. Most of subjects is related with traffic route. first, this article study about Bakje's ability to control of south Han river. At that time, south Han river was a kind of superhighway. The gross of Bakje had a close relation with control on South Han rive. Second, this article also study about land routes of Bakje. Those land routs were related with opening up of northen part of Bakje. Bakje had two important land routes, one was Bangwonryong route the other was Jabiryong route. This article makes clear these two important land routes. Third, this article studies routes as well as mountain fortress. It is a important subject to study Bakje history. Because of existence of Bakje's stone fortress is being disputed. This article show evidences of existence of Bakje's stone fortress. Fourth, this article study about ruling system of Bakje. Especially, This study try to find how to work the Bakje's ruling system. This article shows that Bakje's ruling system was related with mountain fortress.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이 연구는 한성시대 백제의 교통와 산성을 통하여 한성시대 백제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발전하고 고대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백제가 처음 자리잡았던 한강 유역 일대는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되는 요충지였다. 그러나 한강유역의 지정학적 중요 ...
이 연구는 한성시대 백제의 교통와 산성을 통하여 한성시대 백제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발전하고 고대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백제가 처음 자리잡았던 한강 유역 일대는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되는 요충지였다. 그러나 한강유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백제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그리 높지 않았다. 한강 유역은 대동강 유역은 물론이고 남해안 및 서해안 유역이나 금강유역에도 미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백제의 등장으로 한강 유역은 이후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충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백제는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육로와 수로를 정비하고 대외 진출을 단행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그 과정을 살피고 구체적인 교통로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백제의 교통로를 연구하기 위해서 주목되는 자료가 바로 산성이다. 산성은 군사적 목적에 축조되는데 적의 침입로가 되는 교통로를 따라서 축조되는 것이다. 따라서 백제 산성을 더듬어 올라가면 백제의 교통로를 복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것이 백제의 산성인가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경기도 일대에서 백제 산성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석축산성이다. 석축산성이 6세기 말에야 등장하였다는 것이 그동안의 학설이었다. 따라서 한강 유역의 석축산성은 신라의 것으로 보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이를 부정하였다. 산성에서 백제토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고 백제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석축산성을 축조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을 밝혔다. 흙이 많은 곳에서는 토성을 돌이 많은 곳에서는 석성을 축조하였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성과 지방 통치문제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산성은 군사적 목적에 의하여 축조되었지만 4세기 후반을 중심으로 행정적인 기능이 결합되면서 일정한 지역을 다스리는 거점산성이 등장하였다. 거점산성능 주변의 촌락을 다스렸다. 거점 산성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과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촌락에는 토착세력이 장악하고 촌락민을 지배하였는데 이들은 지방관 및 백제 중앙세력과 연계되어 있었다. 따라서 산성은 중앙세력이 촌락지배를 위한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백제는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운 고대국가였지만 일반적으로 삼국 중 가장 약하고 특징이 없는 국가로 오해되기도 한다. 백제 역사는 웅진시대 이후로 집중되어 연구되면서 상대적으로 한성시대에 대해서는 조명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중국사서나 고고 ...
백제는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운 고대국가였지만 일반적으로 삼국 중 가장 약하고 특징이 없는 국가로 오해되기도 한다. 백제 역사는 웅진시대 이후로 집중되어 연구되면서 상대적으로 한성시대에 대해서는 조명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중국사서나 고고학 자료를 보면 백제는 한성시대부터 상당히 강력한 국가를 이루고 있었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및 중국 세력과도 맞서서 싸웠고 대외 진출도 활발하였던 국가였다. 하지만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되어 연구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하여 백제시대 교통로의 발전과정을 살펴보고 구체적인 노선과 운영문제에도 접근하였다. 이를 통하여 백제는 4세기 이전부터 상당한 규모의 통합된 세력집단이었음으로 밝혔다. 이는 백제의 대외 발전이 4세기 후반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임을 입증하였다. 아울러 백제 산성의 연구를 통해서 백제의 국가적 성장 모습을 검토하였다. 산성은 대규모 노동력이 집중되는 국가적 사업이기 때문에 권력 집단의 등장을 살필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이다. 산성 축조 방법의 변화는 기술 및 경제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산성을 축조하기 위하여 인력을 동원하고 이를 조직화하는데서 지방제도가 출현하고 발전하였음을 밝혔다. 최근 풍납토성을 비롯하여 경기도 및 충청도 지역에서 백제와 관련된 고고학자료들이 계속 발굴되고 학문적 업적이 축적되면서 백제 초기의 국가형태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새롭게 모색되었다. 이제는 한성 백제의 국가 형성 문제에 있어서 중앙 권력의 성장뿐만 아니라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 즉 중앙권력이 지방사회를 어떻게 장악하고 지배하였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고고학 자료를 통하여 중앙과 지방의 정치․문화적 통합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하게 하고 유지시켜주는 교통로에 대한 기초연구가 꼭 필요하다. 이 점에서 이 연구는 큰 의미를 가진다. 나아가 백제의 국가적 발전에 있어서 교통로의 영향을 규명함으로써 한성백제시대 정치․군사․경제․문화 등의 제 양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백제 산성 축조와 기술적 발전에 대한 연구도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있다. 백제산성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된 것은 약 10년 정도 지났지만 아직 개개의 산성에 대한 조사 자료의 정리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였다.하더라도 기존의 자료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연구는 지금까지 백제 산성에 대한 10년간의 연구를 정리하였다는데 의미가 있다. 앞으로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시금석으로써 활용될 수 있다. 한성시대 지방제도의 정비 과정에 대해서는 문헌에 의존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어왔다. 최근 경기도 일대에서 에서 고분, 산성, 주거지 등이 출토됨으로서 고고학자료를 통해서도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이 연구는 백제시대 산성과 촌락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이 문제에 접근하였다. 앞으로 고고학 자료를 활용한 후속 연구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