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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근대 일본의 한국사연구와 식민주의사학의 침투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전문연구인력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2-075-A00016
선정년도 2002 년
연구기간 3 년 (2002년 09월 01일 ~ 2005년 09월 01일)
연구책임자 최혜주
연구수행기관 숙명여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해방 이후 한국사학계는 역사적 과제의 하나인 식민주의사학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사 연구를 심화시켜 나갔다. 그러나 아직도 초기 식민주의사학 성립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연구되어있지 않다.
    또한 식민주의사학을 침투시키기 위해 일정하게 기여하고 발전시킨 인물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도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본 연구는 식민통치의 기본적인 성격을 이해하고 식민주의사학의 실체에 접근해가기 위해서 일제의 어용학자 및 언론인에 대한 개인연구의 축적을 통해 전체상을 조망하는 작업을 목표로 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결과는 한국사가 타율적이고 사대적이며 정체적이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왜곡된 식민주의사학의 오류를 시정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식민주의사관의 본질과 내용에 대한 규명은 식민주의사관에 대항한 민족주의 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최근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을 둘러싸고 일어난 교과서 문제의 역사적 뿌리는 바로 근대 일본이 침략을 위한 이론적 도구로 만들어낸 식민주의사관에 기인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역사교과서 문제해결에 크게 활용할 수 있으며, 계속될 가능성이 많은 망언과 교과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식민주의사학자들의 사료를 발굴하여 연구를 수행해 가면 일본인들의 왜곡된 한국사인식을 시정하는 데 기여할 수 있고, 교육현장에서도 충분히 활용가능하다.
  • 연구요약
  • 본 연구에서는 식민주의사관이 이미 한말부터 침투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착목하여 그 과정을 살펴본다. 첫째, 초기 식민주의사학 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 하야시(林泰輔)의 <조선사>,<조선근세사>, <조선통사>와 어용언론인 기쿠치(菊池謙讓)의 <조선왕국> 등을 분석하여 그들의 조선인식을 검토한다.
    둘째, 일제에 의해 강제병합된 뒤에 간행된 잡지(역사지리)와 조선연구회 기념잡지(조선, 신조선)를 검토하여 식민주의사학이 정착되어 가는 모습을 살펴본다. 여기에 게재된 글들을 분석해 보면 식민주의사관이 조선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알 수 있고, 식민통치의 실상에도 접근해 갈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셋째, 어용언론인 아오야기(靑柳綱太郞)의 한국사관련 저술 <이조오백년사>, <조선사천년사>, <이조사대전>, <조선문화사>등을 살펴본다. 여기에서 식민주의사학의 침투가 얼마나 큰 폐해를 남겼는지 그 왜곡된 한국사상을 실증적으로 고찰하여, 그가 한국사를 저술하게 된 의도와 배경을 살펴보고 왜곡내용을 검토한다.
    본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았으나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에 대해 분석하여 식민주의사학의 계보를 정리해 나간다.
    이런 분석을 통해 일제의 강제병합을 예찬하며 식민지적 수탈을 일선동조론의 미명하에 정당화한 식민주의사학의 침투모습이 분명해질 것이다.
  • 한글키워드
  • 정체성론,일선동조론,조선연구회,식민주의사관,식민주의사학,식민통치,타율성론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최근 일본교과서나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발생한 역사왜곡문제에 대한 실증적 비판을 위해서 식민사학의 성립과 전개과정에 대해 검토하였다. 초기 식민사학의 성립과정(1차년도), 식민사학을 침투시키는데 기여한 대표적 연구단체(2차년도)와 중요 인물의 활동(3차년도)에 대해서 이다.
    1차년도 과제는 <메이지 시대의 한일관계 인식과 일선동조론>이다. 본 연구는 식민사학이 이미 메이지 시대부터 침투되었다는 점에 착목하였다. 식민사학의 형성은 1889년 동경제국대학에 국사과가 만들어져 역사연구 체제가 정비되고, 일선동조론의 입장에서『국사안』이 관찬사서로 간행되면서 비롯되었다. 일본의 한국사 연구는 침략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첫째 일본은 신화시대부터 조선보다 우위를 차지했고, 두 나라는 ‘同祖同種’ 관계에 있다. 둘째 삼국시대 남방일대는 일본에 복속되었고 신라는 일본의 식민국가이다. 셋째 조선은 ‘지나’의 속국으로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韓國史像은 한말에 그대로 수용되어 교과서 등에 영향을 미쳤다. 초기 식민사학은 신채호에 의해 비판되었으나, 1910년 이후에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일본인들의 조선인식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2차년도 과제는 <일제강점기 조선연구회의 활동과 조선인식>이다. 일제는 병합 전후 동화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조선사회에 대한 실태파악에 주력했다. 그리고 민간단체들이 조선에 대한 조사 및 연구를 계속하는 것을 지원하였다. 조선연구회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것을 기념하여 조선의 역사와 민족성을 연구하기 위해 창립한 민간단체 이다. 이 연구회를 주도해 간 것은 학계, 언론계, 총독부의 실무자급 일본인 들이었다.
    조선연구회가 총독부의 지원을 받으며 간행한 100여종의 책들은 조선왕조가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여 일제의 침략사실을 은폐하였다. 즉, 관리의 가렴주구에 고통을 받아온 백성, 외세 침략에 시달려온 역사, 당쟁을 일삼아 온 정부,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열등감 때문에 독립할 수 없는 사대주의가 조선을 망하게 했다고 보았다. 이 연구회는 조선과 일본은 물론 대만과 만주에 있는 회원들에게 일본의 식민주의를 확산시켰다. 그리하여 동화문제를 중시하고 경제적, 문화적, 사상적, 교육적, 심리적 측면에서 조선인의 심리와 민족성, 역사를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차년도 과제는 <일제강점기 아오야기의 조선사 서술과 내선일가론>이다. 아오야기는 한말 통신원으로 와서 통감부의 재무관, 궁내부 주사를 지냈다. 퇴관 후에는 민간인으로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식민사학의 침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의 조선에 관한 여러 저술들이다. 그가 조선역사를 저술한 목적은 첫째 양 민족의 정신적 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두 나라가 형제국 임을 증명하고, 둘째 조선인의 민족성이 저급함을 밝히며, 셋째 조선의 역사는 사대주의 역사임을 드러내어, 조선의 역사를 비하시키고 일본에 병합되는 것이 필연임을 증명하는데 있었다.
    그의 조선사 서술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내선일가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두 나라는 혈통이 같다. 그렇기 때문에 병합은 자연스럽게 옛날의 두 나라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둘째, 두 나라는 이미 사람의 왕래와 주자학의 왕래를 통해 동화를 이루었다. 셋째, 두 나라가 한 집안이라는 ‘사실’을 역사교과서에 수록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빨리 동화를 달성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그의 조선사 저서들은 일제의 침략을 은폐하고 병합을 합리화하면서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의도적인 서술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는 일선동조론을 확인하고 혈통성을 강조하여 ‘내선융화’를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저술은 식민사학의 형성과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30년대 역사교과서 개정을 촉구하는 그의 주장은 지금까지 계속되는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의 원류로서 주목해야 한다.

  • 영문
  • The research project in the first year is on the <Recognition of Korea-Japan Relationship in Meiji Era and Theory of Japan-Joseon Alignment>. This study has deliberated the process with the particular attention given that the colony history studies already had perpetuated from the time of Meiji. The formation of the colony history studies started when the history study began from the National History Department of Tokyo Imperial University in 1889 while the publication, 『View on National History』 was published.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by Japan have been facilitated as the tools to rationalize the invasion by way of distorting the history of Korea-Japan relationship in favor of Japan. The distorted image of Korean history impacted on the textbooks at the end of Joseon and other aspects. After 1910, it was the basis to justify the colonial ruling of Japan, and it influenced to the formation of recognition of Japan on Joseon.
    The research project in the second year is on the <Activities of Joseon Research Association under the Colonial Ruling of Japanese Imperialists and Recognition of Joseon>. The Japanese imperialists supported the organizations that studied on Joseon in order to establish the assimilation policy before and after the annexation. The Joseon Research Association was established to study the history and nationality of Joseon following the policy of the government general. The leaders of this Research Association were the working level Japanese in academic circle, press and the government general. The publications around 100 types that the Joseon Research Association published concealed the fact of intrusion of Japanese imperialists by proving that the Joseon Dynasty was destined to fall. This Research Association worked on expanding the colonialism of Japan to its members in not only in Joseon and Japan, but also in Taiwan and Manchuria.
    The research project in the third year is on the <Joseon History Writings of Aoyagi under the Colonial Ruling of Japanese Imperialism and Theory of Internal Joseon Family>. Aoyagi was the official at the ruling government at the last phase of Joseon, and after retirement from the official position, he cooperated to the colonial ruling as a private person and took important role in infiltration of the colony history. The purpose for him to write on the Joseon history was to prove the brotherly relationship and low nationality of the Joseon people in order to accomplish the mental integration of Korea and Japan. And, the history of Joseon is to show its flunkeyism history that it would downgrade the history of Joseon while integration to Japan was the indispensable event. He confirmed the Japan-Joseon alignment, and emphasized the legitimacy to assert the ‘Internal Joseon Harmony’. His writings on Joseon history influenced significantly for the formation and undertaking of the colonial history. In particular, his argument to urge the revision of the history textbook in 1930s has to be taken as the origin of the distortion of the history textbook of Japa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1차년도 연구과제는 <메이지 시대의 한일관계 인식과 일선동조론>이다. 본 연구는 식민사학이 이미 메이지 시대부터 침투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착목하여 그 과정을 검토하였다. 식민사학의 형성과정을 보면 1889년 동경제국대학에 국사과가 만들어져 역사연구 체제가 정비되고, 일선동조론의 입장에서『국사안』이 관찬사서로 간행되면서 비롯되었다. 이 시기 일본의 한국사 연구는 침략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나가 일본에게 유리한 쪽으로 역사 사실을 왜곡하였다. 그 주요내용은 일본과 조선은 형제 관계이며, 삼국시대 남방일대는 일본에 복속되었고, 사대적인 조선은 독립이 불가능한 나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메이지 시대의 왜곡된 韓國史像은 한말의 우리 역사학계에 그대로 수용되어 교과서 등에 영향을 미쳤다. 초기 식민사학은 신채호에 의해 비판되었으나, 1910년 이후에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일본인들의 조선인식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2차년도 연구과제는 <일제강점기 조선연구회의 활동과 조선인식>이다. 일제는 강제병합 전후 동화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 작업의 하나로, 민간단체를 통해서 조선에 대한 조사 및 연구지원을 하였다. 조선연구회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민간단체로 조선의 역사와 민족성을 연구하기 위해 창립되었고, 연구회를 주도해 간 것은 학계, 언론계, 총독부의 실무자급 일본인 들이었다.
    조선연구회가 총독부의 지원을 받으며 간행한 100여종의 책들은 조선왕조가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여 일제의 침략사실을 은폐하였다. 이 연구회는 조선과 일본은 물론 대만과 만주에 있는 회원들에게 일본의 식민주의를 확산시켰다. 그리하여 동화문제를 중시하고 경제적, 문화적, 사상적, 교육적, 심리적 측면에서 조선인의 심리와 민족성, 역사를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차년도 연구과제는 <일제강점기 아오야기의 조선사 서술과 내선일가론>이다. 아오야기는 한말 通信員으로 와서 통감부의 재무관, 궁내부 주사를 지냈다. 퇴관 후에는 민간인으로 식민통치에 협력하고 식민사학의 침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본 연구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의 조선사에 관한 여러 저술들이다. 그가 조선역사를 저술한 목적은 첫째 양 민족의 정신적 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두 나라가 형제국 임을 증명하고, 둘째 조선인의 민족성이 저급함을 밝히며, 셋째 조선의 역사는 사대주의 역사임을 드러내, 조선의 역사를 비하시켜 일본에 병합되는 것이 필연임을 증명하는데 있었다.
    그의 조선사 저서들은 일제의 침략을 은폐하고 병합을 합리화하면서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의도적인 서술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는 일선동조론을 확인하고 혈통성을 강조하여 ‘내선융화’를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저술은 식민사학의 형성과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30년대 역사교과서 개정을 촉구하는 그의 주장은 지금까지 계속되는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의 원류로서 주목해야 한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결과는 근대 일본이 침략을 위한 방편으로 한국역사를 연구해 왔음을 구명하였다. 이것은 일본의 침략주의를 이해하는데 하나의 시점을 제공하여 더 이상 식민사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역사학계에 기여할 수 있다. 본 연구결과는 최근 한일간에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해결에 활용하여 왜곡된 역사인식을 시정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본 연구결과는 첫째,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에 걸쳐 활동한 재한 일본인 연구와 식민통치 연구에 활용한다. 둘째, 식민사학자들의 계보를 총서 및 자료집으로 만들어 이것을 역사교육에 활용한다. 셋째, 식민사학과 재한일본인 활동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평이한 개설서를 출판하는데 활용한다.
  • 색인어
  • 식민사학, 일선동조론, 동경제국대학, 국사안, 조선연구회, 동화정책, 아오야기, 사대주의, 내선융합, 내선일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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