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는 차이를 인정하는 철학에 도달하고자 한다. 물론 그가 체계를 부정하는 철학자라는 점에서 ‘도달점’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들뢰즈가 바라보는 곳이 ‘차이의 철학’이라고 할 때, 목적의 달성이라는 전통적인 의미로 해석하지만 않는다면, ...
들뢰즈는 차이를 인정하는 철학에 도달하고자 한다. 물론 그가 체계를 부정하는 철학자라는 점에서 ‘도달점’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들뢰즈가 바라보는 곳이 ‘차이의 철학’이라고 할 때, 목적의 달성이라는 전통적인 의미로 해석하지만 않는다면, 이러한 ‘도달점’이나 ‘도착’이란 표현을 쓸 수도 있다고 본다. 들뢰즈는 전통 철학이 전제하고 있는 동일성의 철학 대신에 차이의 철학을 정립하고자 한다. 동일성은 철학에서의 표상주의, 예술에서의 재현주의를 의미한다.
들뢰즈는 동일성의 철학을 비판하는 것처럼, 예술에서 재현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회화사를 다시 쓴다. 그는 이집트적 구도를 서양 회화의 출발점으로 간주한다. 이집트적 구도는 저부도적 배치를 의미한다. 평평한 판에 조각처럼 굴곡을 가지는 부조는 눈으로 하여금 촉각처럼 움직이도록 허용한다. 이집트적인 구도가 눈으로 만지는 공간(espace haptique)이라면, 이것을 대체한 것은 촉각적-광학적 공간(espace tactile-optique)이다. 이집트적 공간은 시각과 촉각을 대립시키지 않고 오히려 눈 자체가 이러한 광학적 기능 이외의 기능 즉, 촉각적 기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눈 자체가 광학적인 것이 아니라 촉지적인(haptique)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반면, “그리스 예술은 면들을 구분하였고, 원근법을 발명했으며, 빛과 그림자, 들어간 곳과 돌출한 부분을 가지고 놀았다.”(감각의 논리 163쪽) 들뢰즈는 이를 ‘고전적 재현’이라고 표현하고, 그리스 예술의 뚜렷한 특징으로 ‘광학적 공간의 정복’을 지적한다. 여기서 광학적이란 시각적인 것과 구별되지 않으며, 그림자와 빛의 명암 표현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 예술이 꼭 광학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 예술은 근접한 시각과 단절하는 동시에, 단순히 시각적이지만은 않고, 촉각적인 가치들을 시각에 종속시키면서 촉각적인 것들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적인 것은 촉각적-광학적 공간이다. 이집트 예술이 촉각적인 눈으로 만지며 감상하는 공간이라면, 그리스적 예술은 촉각적(tactile) 기능이 광학적 공간에 종속된 공간이다.
천의 고원에서 들뢰즈는 근거리 파악과 촉지적(haptique) 공간을 상호 연관시키고 있다. 그리고 근거리 파악과 촉지적 공간은 유목적 예술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고안되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극단적인 클로즈업 화면을 생각해보자. 지나치게 카메라를 대상에 가까이 하면, 보여지는 대상의 풍경 같은 윤곽은 사라지고 거칠한 질감만을 느낄 뿐이다. 만약 클로즈업의 대상이 얼굴의 일부라면, 얼굴의 한 부분인 코라면, 한 프레임 안에 표현된 대상이 얼굴의 일부라는 것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다만 화면에 표현된 미세한 털과 구멍의 질감에 빠져들 뿐이다.(이진경, 노마디즘1, 658-706쪽 참고) 눈 자체가 광학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촉지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근거리에서 파악된 촉지적인 공간은 “수평선도, 배경도, 원근법도, 한계도, 윤곽이나 형태도, 중심도 없다.”(천의 고원 p. 941) 근거리 파악과 구별되는 원거리 파악, 광학적 공간과 구별되는 촉지적 공간에 의해 홈이 패이지 않은, 바다나 사막과 같은 매끄러운 유목적 공간이 파악된다.
그리스적인 촉각적-광학적 재현 공간의 해체는 회화사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순수한 광학적 공간의 표출에 의한 것으로서, ‘빛 중심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격렬한 ‘손적 공간의 강요’에로의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된 두 방향은 비잔틴 예술과 고딕 예술 속에서 잘 구현된다. 이 두 길은 현대 추상 회화의 흐름 속에서 다시 반복된다. 추상을 향한 한 극단은, 추상을 통해 고전적 형상화를 거부하는, 몬드리안 혹은 칸딘스키의 것이다. 또 하나의 길은 혼돈을 극대화하는 추상 표현주의 혹은 비형태적인 예술의 길이다. 추상형식을 그림으로써가 아니라, 선들과 색들의 카오스적 구조와 흐름에서 모든 형식들을 해체함으로써, 재현을 넘어서 가는, 폴록과 같은 추상 표현주의의 길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쟌틴과 고딕 예술에 대한 들뢰즈의 언급이 수정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예술사를 근거로 한 좀 더 신중한 고찰이 요구된다. 특히 주름에서 언급되는 들뢰즈의 바로크 논의에 관해서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들뢰즈의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의하면, 예술은 단지 동일 시대의 철학 반영물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철학과 예술은 서로 구별되는 경향들이며 힘들이다. 철학이 개념을 창조한다면, 예술은 새로운 경험들을 창조한다. 따라서 예술은 철학의 새로운 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