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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전통시대 중국 지리서에 나타난 고구려인식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고구려사연구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04-077-A00008
선정년도 2004 년
연구기간 1 년 (2004년 12월 01일 ~ 2005년 12월 01일)
연구책임자 박인호
연구수행기관 국립금오공과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최근 중국의 역사왜곡과 관련하여 중국 조선족 문제와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보도되면서 현대 중국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역사관, 고구려에 대한 인식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국내에서도 현대 중국학자들의 고구려인식과 그 문제점에 대한 많은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 중국인의 고구려 인식에 대한 전문 연구논문은 희소하며 대부분 중국 정사를 검토하면서 대조선관을 거론하고 있을 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 점으로 볼 때 과거 중국인들의 지리서에서 과연 고구려를 어떻게 인식하였는가를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기대효과
  •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중국 동북지방의 역사와 현실을 다루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당연하게도 그 동북지역에 존재해 있었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와 관련하여 연구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동북공정의 내용을 보면 단순히 역사 문제의 연구에 그치지 않고 지역과 현실 문제의 연구까지 다루고 있어 이 작업은 고도의 정치성이 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중국에서의 작업에 대해 최근 학계에서는 고구려의 역사에 대한 많은 연구 성과가 있었다. 또한 우리의 시각에서 고구려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해서는 논문이 나온 바가 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과거에 고구려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정리되지 않았다. 이 연구를 통해 기존의 연구시각과는 달리 중국의 전통 지리서에서 고구려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이 고구려를 엄연히 다른 조선의 국가로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오늘날의 동북공정적 이해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연구를 발전시켜 중국의 대 조선인식을 총제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당시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와 그 위상 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중국 정부의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고구려사=중국사의 논리에 대해 과거 중국에서 한민족의 역사인 고구려에 대해 보았던 내용을 검토함으로써 이 논리를 이끌고 있는 동북공정이 정치적 의도에서 나왔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중국에서 출판된 지리서 가운데 전국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책의 원류로는 山海經과 禹貢을 들 수 있다. 산해경은 전국시대에 만들어진 지리저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공은 상서의 한편으로 역시 전국시기 말엽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서적들은 전국시기의 격렬한 전쟁기에 자기 나라와 다른 나라의 지리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려는 현실적인 의도에서 나왔으며, 전국을 단위로 특정 지역에서의 강역과 구획, 산천과 형승, 물산, 공부, 도로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 뒤 전국을 단위로 하는 지리서는 각 기전체 정사의 한 편목인 ‘地理志’로 나타나기도 하고, 괄지지, 원화군현도지, 태평환우기, 원풍구역지, 대원일통지, 대명일통지, 대청일통지 등과 같이 별도로 편찬된 지리서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한편 이러한 전국지 외에도 각 지역 단위의 역사, 풍토, 인물 등을 정리한 요동지 만주원류고 등의 지방지가 편찬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명청대에는 다른 시기에 비해 역사지리학이 발전하였다. 명청대 나온 지리서로는 고염무의 천하군국이병서나 고조우의 독사방여기요가 저명하다. 청대에는 역사지리에 대한 고증서적으로 진방적의 역대지리연혁표, 단장기의 역대강역표, 양비복의 여지연혁표 등이 편찬되었다.
    이들 중국에서 편찬된 여러 종류의 지리서들은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지리서의 편찬체재에 있어 전범이 되었다. 중국 지리서 내의 우리나라에 대한 기술에서는 비록 세부적인 측면에서 적지 않은 오류가 있었으나, 국내자료가 보여주지 못하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특히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등 중국 정사의 초기 기록들은 상고기 역사에 대한 자체 기록이 미비하였던 우리나라에 있어서 상고사 인식의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였다.
    또한 중국에서 편찬된 전국을 단위로 한 지리서 가운데 조선이나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항목과 중국 동북지방의 역사와 문물만을 정리한 지방지도 우리나라에서의 역사지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여기서는 이들 중국 지리서들을 조사하여 고구려과 고구려 역사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검토하고자 한다. 각 중국 지리서들을 중심으로, 이들 책에 수록된 r고구려와 관련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리서 외에 문헌통고 ·속문헌통고와 같은 유서류에서도 동이조항을 두어 우리나라와 관련된 사항들을 정리하고 있으므로 같이 분석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1. 명청대 중국지리서에 나타난 대조선 역사지리인식, 경북사학 21, 1998.
    2. 조선후기 역사지리학 연구, 이회문화사, 1996.
    3. 조선시기 역사가와 역사지리인식, 이회문화사, 2003.
    2. 中國正史의 外國列傳 -朝鮮傳을 中心으로-, 大東文化硏究 2, 成均館大, 1966; 東亞交涉史의 硏究, 서울대출판부, 1970.
    3. 古代 中國人의 韓國觀, 震檀學報 46·47, 1979; 韓國과 中國, 知識産業社, 1979.
    4. 史記와 兩漢書의 對外觀에 대하여, 忠南史學 2, 1987.
  • 한글키워드
  • 괄지지,원풍구역지,대원일통지,태평환우기,원화군현도지,대명일통지,요동지,고구려인식,고구려,속문헌통고,문헌통고,여지연혁표,역대강역표,역대지리연혁표,천하군국리병서,독사방여기요,만주원류고,대청일통지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에서는 주로 한국의 과거 사서에서 고구려의 모습을 찾으려는 연구방법에서 벗어나 과거 중국인들이 고구려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살펴보았다. 상고기 중국은 고구려를 이적으로 인식하여 별개의 구역으로 보았다. 또한 고구려가 존립하였던 동시기에는 수당에 대립하는 다른 국가로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송대에는 고구려를 수당에 대립되는 별도의 국가체로 서술하여 이를 구별하려는 인식이 뚜렷하다. 송대 중국인들은 고구려와 고려, 신라와 고려를 혼동하는 면이 나타나고 있다. 고구려에 대해서는 부여의 후예로서 삼국을 구성하는 별개의 집단으로 보아 중국과는 구별되는 번이로 보고 있다. 원대의 고구려 인식에는 적지 않게 착종된 면을 보이고 있으며 고구려와 고려의 연결관계에 대해서도 모호한 점이 많으며, 이러한 문제점은 원대 지리서나 지도에도 마찬가지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원대에 편찬된 『요사』나 『금사』에서는 조선과 삼한을 요동지역에 끌어올림으로써 요동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의 모습을 축소하여 놓았다. 다만 원대 지리서에서는 고구려의 출자를 부여 별종이라고 적고 있는 점 등은 연원과 출자에 대해서는 구 지리서에서 보인 인식을 유지하고 있다. 명대 지리서에서는 진 영가 이후 고구려가 요동 지역을 차지한 내용을 주로 언급하고 있으며, 기자의 교화와 관련하여 중화문화를 받아들였음을 강조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청대에는 조선이 고구려, 예맥, 신라, 백제, 옥저 등 나라를 합하여 이루어졌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나라 말 이전의 고구려의 존재에 대해서는 적으려고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리서에서는 고려를 주로 다루면서 그 이전의 역사로 고구려를 언급하고 있으나 내용상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각종 동북3성 지역에 대한 지리서에서는 그 지역의 연혁과 관련하여 고구려와 관련된 내용을 대부분 빼고 있다. 이는 청대 만주족 발상지인 심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차지하였던 고구려를 의도적으로 제외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 영문
  • Perception of Koguryeo revealed in the past chinese geographical book

    This article aim to examine that the how the chinese of the past cognized to the Goguryeo escaping from researching to all of the Goguryeo in the Korean history records.
    It is identified that the earliest chines cognized the Goguryeo as an enemy in separate area geographically. They must be cognized the separated dynasty which Su and Dang dynasty had been antagonized at that contemporary. It showed apparently that Song dynasty also distinguished the Goguryeo as the independent dynasty antagonized Su and Dang dynasty and they described the Goguryeo in history record.
    By the way, it appeared to be that the chinese in Song dynasty confused the Goguryeo and the Goryeo, and the Silla and the Goryeo. They recognized the Goguryeo as the descendent of Buyeo but distinguished the Goguryeo as the separate dynasty which consisted of three dynasty from the chinese dynasty. It apperared to be that The chinese recognition of Won Dynasty confused with the Goguryeo and they misunderstood ambiguously the succession from the Goguryeo to the Goryeo dynasty. It was reflected to their historical geographical records and maps made in Won dynasty. In the << Yosa>> and << Geumsa>> written in Won dynasty, they intended to scale down the reign area of the Goguryeo in the Yo-dong area by expanding the reign area of Chosun and Samhan into the Yo-dong area. But in the geographical record written in Won dynasty, it was kept by the recognition of the Goguryeo from older geographical record by preserving facts that the Goguryeo had originated from Buyeo dynasty.
    In the geographical record made in Myeong dynasty, the chines appeared to recognize that the Goguryeo occupied to Jo-dong area since JinYeongga.
    In historical records made in Cheong dynasty, the chinese recognized that the Chosun dynasty was established as a united dynasty of the Goguryeo, Ye-maek, Silla, Baekje and Okjeo dynasties. The other hand, it appeared to be that they intended to not to describe the existence and reign of the Goguryeo dynasty before the later Han dynasty of ancient chines.
    In geographical records of Dong-Buk three seong , the content, the origin and developments connected with the Goguryeo were left out mostly. this means that they intended to exclude the existence and reign of the Goguryeo occupied to Simyang area where Manju people of Cheong dynasty originated and raised fro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에서는 주로 한국의 과거 사서에서 고구려의 모습을 찾으려는 연구방법에서 벗어나 과거 중국인들이 고구려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살펴보았다. 상고기 중국은 고구려를 이적으로 인식하여 별개의 구역으로 보았다. 또한 고구려가 존립하였던 동시기에는 수당에 대립하는 다른 국가로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송대에는 고구려를 수당에 대립되는 별도의 국가체로 서술하여 이를 구별하려는 인식이 뚜렷하다. 송대 중국인들은 고구려와 고려, 신라와 고려를 혼동하는 면이 나타나고 있다. 고구려에 대해서는 부여의 후예로서 삼국을 구성하는 별개의 집단으로 보아 중국과는 구별되는 번이로 보고 있다. 원대의 고구려 인식에는 적지 않게 착종된 면을 보이고 있으며 고구려와 고려의 연결관계에 대해서도 모호한 점이 많으며, 이러한 문제점은 원대 지리서나 지도에도 마찬가지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원대에 편찬된 『요사』나 『금사』에서는 조선과 삼한을 요동지역에 끌어올림으로써 요동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의 모습을 축소하여 놓았다. 다만 원대 지리서에서는 고구려의 출자를 부여 별종이라고 적고 있는 점 등은 연원과 출자에 대해서는 구 지리서에서 보인 인식을 유지하고 있다. 명대 지리서에서는 진 영가 이후 고구려가 요동 지역을 차지한 내용을 주로 언급하고 있으며, 기자의 교화와 관련하여 중화문화를 받아들였음을 강조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청대에는 조선이 고구려, 예맥, 신라, 백제, 옥저 등 나라를 합하여 이루어졌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나라 말 이전의 고구려의 존재에 대해서는 적으려고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리서에서는 고려를 주로 다루면서 그 이전의 역사로 고구려를 언급하고 있으나 내용상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각종 동북3성 지역에 대한 지리서에서는 그 지역의 연혁과 관련하여 고구려와 관련된 내용을 대부분 빼고 있다. 이는 청대 만주족 발상지인 심양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차지하였던 고구려를 의도적으로 제외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중국측에 역대 지리서에 나타난 고구려에 대한 인식을 통해 현재 중국에서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역사적 연원을 확인할 수 있다.
  • 색인어
  • 지리서, 역사지도, 고구려, 고려, 역사지리인식, 화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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