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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의 프랑스 시와 정체성 -가스통 미롱과 <조용한 혁명>(1957-1965)-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선도연구자지원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4-041-A00525
선정년도 2004 년
연구기간 1 년 (2004년 12월 01일 ~ 2005년 11월 30일)
연구책임자 한대균
연구수행기관 청주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퀘벡(Québec)의 불어권 작가들에 의하여 < 조용한 혁명 >기간 중에 추구되었던 퀘벡 문학의 정체성 찾기는 무엇보다 퀘벡 역사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항해사였던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가 프랑스와 1세( François 1er)의 명령에 따라 대서양을 건너 1534년 퀘벡 지방(Saint-Laurent강 하구의 Gaspé라는 지역)에 도달한 이후, 1608년 프랑스는 이 아메리카 대륙에 < 신프랑스(La Nouvelle-France) >를 건설하였고 루이 14세가 1663년 이곳에 왕실 정부를 설치, 프랑스 일부 지방과 같은 체제를 확립한다. 그러나 18세기 중엽부터 가속화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초기의 승리를 지키지 못하고 1760년 9월 8일 몬트리올(Montréal)을 빼앗긴 프랑스가 항복하였으며, 1763년 2월 10일에 체결된 파리 조약에 의하여 프랑스는 캐나다와 아카디아 지방(Acadie, 현재 퀘벡의 동쪽 끝 대서양 연안지방)을 영국에 양도하게 되었다. 특히, 아카디아 지방에 살던 프랑스계 주민들이 퀘벡시와 몬트리올 뿐 아니라, 미국의 각지로 반강제적으로 이주 당함으로써 그들의 역사적 체험은 식민통치의 그것과 다름아니었다.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퀘벡지방에서의 영국계와 프랑스계의 정치적 문화적 충돌현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 조용한 혁명(La Révolution Tranquille) >기에 취했던 퀘벡 문학의 독립주의적 운동은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이며, 이 시기의 문학은 당연히 저항적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피지배(사실상 식민통치라는 의식이 있다)의 역사체험에서 나온 문학이, 지배하는 문화 혹은 정치세력에 어떻게 대항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데 있다. 특히 본 연구의 대상인 퀘벡의 대시인, 가스통 미롱(Gaston Miron)이 겪은 지적 갈등과 현실적 투쟁은 바로 < 조용한 혁명 >기 속에서 지식층이 이끄는 독립운동의 방식을 대변하고 있는데, 그러한 미롱이 정치적 투쟁과 문학적 항거라는 이중적 내면 구조 속에서 어떻게 퀘벡인의 정체성을 탐구하였는가를 그의 삶과 작품을 통해 분석하려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 기대효과
  • 1957년부터 퀘벡의 경제가 하향곡선을 긋게 됨에 따라, 대부분 피고용자들인 프랑스계 주민들의 삶은 영국계 주민들 보다 더욱 피폐해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노조들은 연합하여 투쟁하고, 카톨릭 교단에서 세속으로 돌아온 교사들로 더욱 강력해진 교사협의체가 이에 동조하면서 퀘벡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 조용한 혁명 >은 시작된다. 노동자들로부터 지식층에 이르기 까지 그들의 공통된 목표는 바로 퀘벡의 정체성 찾기였다. 특히, 시문학에서의 이러한 운동은 탈 식민문화의 확산운동이며, 영어와 대립된 사회언어구조를 지닌 퀘벡에서는 생존의 투쟁과 다름 아니었다. “한 언어의 상태가 모든 사회적 문제들을 투영하고 있다”라고 미롱이 1965년 한 잡지의 기고문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 퀘벡의 소외된 언어인 불어로 시를 쓰고 불어로 항거한다는 것은 가장 애국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연구 필요성은 현재도 독립의 열기가 식지 않은 퀘벡지방의 역사성을 파악하는데 절대적이며 동시에 우리가 겪은 일제 식민시대에 조국의 언어로만 글쓰기를 고집할 것인가 일본어로 글을 써야 할 것인가의 사이에서 고뇌의 역사를 살다간 작가들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는데 부수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불어 혹은 불어로 쓰여진 문학의 정체성 찾기 운동은, 이것을 어떤 면에서는 적극 뒷받침해 주어야 할 프랑스가 퀘벡은 그들의 속국이고 퀘벡 문학은 그들 문학의 아류라는 인식으로 인하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다. 예컨대 퀘벡에서 거의 모든 프랑스계 사람들이 인정하고 프랑스계 작가들이 존중했던 가스통 미롱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프랑스에서 출간된 것은 두 번에 불과하다. 미롱 시의 영역본은 네 가지, 이탈리아어 판본이 세 가지 정도 존재할 뿐이며, 따라서 퀘벡을 떠나면 그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우리 국내의 프랑스 문학 연구는 오로지 프랑스 본국에서 형성된 문학에 치중되어 있기에, 퀘벡 문학 특히 시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서구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그들이 주요 역사를 이끌어왔고, 그 민족의 삶과 문학이 역사발전의 동력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프랑스 문학사 역시 그들 본토 중심으로 서술되어 왔으며 퀘벡의 문학 이야기는 변방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였다. 또한 아메리카의 문학도 영국인 중심의 서술이며 따라서 같은 대륙에 있는 퀘벡은 완전히 소외된 채, 외부에 조명받기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시각은 다양해져야 한다. 특히, 한국내의 프랑스 문학 전공자들 사이에 퀘벡은 단순한 불어권의 한 지역에 불과하고 더구나 그에 대한 연구는 지역학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학문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더구나, 20세기 전반부에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한반도의 근세사는 퀘벡의 역사와 여러 가지 점에서 유사성이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우리를 다른 각도에서 반추하게 만들고 우리의 역사와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데 일정한 학문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계 퀘벡사람들의 강제 이주부터 시작된 그들의 비극성을 배경으로 한 퀘벡 문학의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전혀 시도된 바 없기에 그 독창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만주에 대대로 살며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조선인들, 연해주에서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 이런 특수한 한국인들의 삶과 문학이 지니고 있는 역사성 및 일제 식민문학의 특수성을 조명하는데 본 연구는 일정 부분 기여하게 될 것이다.
  • 연구요약
  • [연구 내용] 시인 가스통 미롱은 출판을 거부하였던 시인이다. 자신의 시편들이 여러 잡지에 단편적으로 실리는 것은 용인하였으나, 시집의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은 바로 ‘canadian' (미롱은 퀘벡의 정체성에 상반되는 영국계 통치 영역 혹은 그 구조를 캐나다적이란말로 수식하면서 canadien 이란 불어 대신 항상 영어의 형용사를 고집하였다. 즉, 그것을 불어의 québécois에 대립되며 또한 대치되는 어휘로 사용하였으며, 결국은 불어에서 canadien이란 말은 없다는 것이다) 사회체제를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시집명이 없기 때문에 미롱 자신은 < 조용한 혁명 >기에 생산해낸 그의 시들을 세 단계의 ‘시적 과정(cycle poétique)’ 으로 구분하여 각기 명칭을 부여하였다. 우리는 시인 스스로 명명한 이 과정을 따라 그의 삶과 작품을 분석하고자 한다. 1) 사랑을 향한 전진 (La marche à l'amour) ‘식민지화된’ 혹은 ‘식민지 피지배자’를 일컫는 ‘colonisé’라는 단어가 그의 의식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56년이었다. 그의 이러한 현실 인식은 결국 < 조용한 혁명 >과 거의 동시에 시작되고 있으며, 결국 이 시기를 전후하여 미롱은 민주사회당(PSD)에 가입하여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곧바로 1959년 미롱은 퀘벡에서의 자신의 삶을 “어설픈 연기(cabotinage)"로 규정한 후, 일체의 정치, 문학 활동을 중단하고 프랑스로 떠난다. 퀘벡의 자주성을 추구하면서, 1956-1957년 사이에 쓰여진 『사랑을 향한 전진』의 시편들은 그 자체가 사랑이고 향수이다. 이 시의 아름다움을 형상하고 있는, 아카디아 지방에서 영국민에 의해 쫓겨난 이주민들의 언어는 바로 그들의 연인이고, 그 언어가 숨쉬는 공간은 그들만의 따뜻한 보금자리이다. 16세기 뒤 벨레(Du Bellay)가 로마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쓰디쓴 회한과 애잔한 향수로 자아낸 『회한(Les Regrets)』 을 연상시키는 이 시편들은 고독의 근대적 반향이고 감성과 사상의 진솔한 표현과 다름 아니다. 예컨대, “사월의 소낙비보다 더 많이 흘러내린 / 눈물보다 어여쁜 소녀여 / 내 욕망의 원양 항해선이 지나던 / 물총새 물결의 아름다운 눈망울 / 추억이여, 오 가슴 속 빈자리의 비둘기여”(「눈물보다 어여쁜(Plus belle que les larmes)」 에서 미롱은 사랑하는 여인으로 형상호엔옭逼ㅀ?시인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 하며, 불어의 언어적 리듬을 잃지 않은 채, 식민화된 지식인의 초상을 슬퍼한다. “뒤 벨레의 한탄을 듣고 난 그의 내면 속에 들어가 스스로를 위로한다”(「나의 이상적 서재(Ma bibliothèque idéale)」, texte lu à la Radio-Canada, le 16 septembre, 1961)라고 미롱은 이러한 내면적 정체성 찾기의 고독한 작업을 털어놓고 있다. 뒤 벨레가 불어를 옹호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듯이, 젊은 미롱은 시를 통해 불어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려 했으며 (후에 그는 자신의 이러한 행위를 일종의 “complaisance"라고 불렀다), 그 미적 감동으로 프랑스계 사람들을 통합하려 했었다. 그것이 가장 확고하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행위라고 믿었다. 그러나 미롱은 곧 절망한다. 두 편의 「이별의 시(Poème de séparation)」를 거쳐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종말, 혹은 시에서의 어떤 죽음(Une fin comme une autre, ou une mort en poésie」이란 시에 이르러 그는 “내 얼마나 숨 가쁘게 싸우고 있는지 네가 안다면 / (...) 어느 날 난 더 이상 할 수 없으리라 / 그날은 불필요한 용기의 한 사내의 죽음 / 四肢 속에 수정 같은 차디찬 추위를 담고 온 죽음이리라 / 내 사랑이여, 그것은 바로 나, 온통 덮인 눈보다 더 멀리 떨어져, / 두 눈을 부릅뜨고, 서리로 덮인 채, 허기 속에 매몰되어 버린 나란 말인가”라고 외친다. ‘사랑을 향한 전진’은 중단되었고, 아름다운 시어를 수단으로 하는 정체성에 대한 탐구는 종말에 이른 것이다. 2) 바테슈(La Batèche) 미롱는 1961년 2월에 프랑스로부터 돌아온다. 그가 귀국하기 전 1960년 6월 22일에 실시된 퀘벡 총선거에서 자유당( Parti libéral)이 승리를 거두고, 장 르자쥬(Jean Lesage)가 정권을 잡게 된다. 변호사 출신의 이 젊은 정치가에 의하여 < 조용한 혁명 >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설픈 연기”라고 삶을 규정하고 프랑스로 떠났던 미롱이 돌아왔을 때 그는 반부르주와적 사회주의 사상에 더욱 젖어들었고, 따라서 프랑스계 주민들은 프로레타리아라는 개념 속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지배계층인 영국계를 향하여 독설의 시를 뱉는다. 그러나 그 독설과 조롱은 곧바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문학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들에게 하는 자유로운 부름이라는 사르트르(Sartre)적 인식하에 그가 겪었던 방황은 그를 오
  • 한글키워드
  • 강제이주,퀘벡 작가 연합,에밀 넬리강,안 에베르,가브리엘 루아,바테슈,뒤 벨레,자유당,장 르자쥬,프로레타리아,사르트르,꿰맨 인간,생-루이,생-드니 가르노,조용한 혁명,프랑스,퀘벡,프랑스와 1세,자크 카르티에,루이 14세,신프랑스,아카디아,사랑,식민문학,일제,중앙아시아,스탈린,연해주,조선인,만주,불어,정체성,가스통 미롱,퀘벡문학,파리조약,마리-클레르 블레,레장 뒤샤름,폴-마리 라프엥트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북아메리카의 프랑스계 주민의 역사적 비극은 아카디아 지방 주민의 강제 이주를 말하는 < 커다란 방해 >로 그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 사건은 캐나다 동부 지역을 일컫는 아카디아를 18세기 중반 영국이 점령하면서 그 곳의 프랑스계 주민들을 미국의 각지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을 말한다. 이런 민족적 탄압은 곧바로 퀘벡에 대한 7년 전쟁의 승리에 이은 영국 지배로 이어져 왔다. 19세기 내내 민족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은 문학적으로 19세기 말, 몬트리올 문학 에콜이 탄생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이 에콜을 구성하는 신흥 문학 세력들은 에밀 넬리강이 시도했던 문학의 순수성과 근대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퀘벡의 문단은 20세기에 들어와 문학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보편주의와 문학의 민족적 역할을 중시하는 지역주의로 나뉘게 된다. 이러한 논쟁은 1930년대 급속한 도시화가 수반하는 전통의 붕괴로 인하여 차츰 소멸되고, 몬트리올을 중심으로 한 문학의 현대성이 그 영향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19세기말 루이 프레쉐트와 에밀 넬리강 부터 몬트리올이 시의 중심테마로 나타났지만, 진정한 도시 문학은 1952년 가스통 미롱이 출판사 엑사곤를 출범시키고 퀘벡의 정체성을 시어라는 도구를 통하여 추구하면서 구체화된다. 가스통 미롱은 『두 가지의 피』라는 시집을 내면서, 프랑스 계 주민의 정체성 혼란을 노래한다. 특히 이 시집의 < 폭풍의 저녁 >이란 시는 "깨진 거울 사이의 네 붉은 피"로 본질이 쪼개지고 흩어진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959년 뒤플레시스가 사망하고, 1960년 르 자주의 자유당 정권 부터 < 조용한 혁명 >은 시작된다. 혁명의 주요 이데올로기는 탈종교화이며 근대화였다. 각 부분에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 프랑스계 캐나다인에서 퀘벡인이라는 호칭의 획득, 개인의 도덕 관념의 변화, 평등과 독립에서 나오는 페미니즘 운동, 새로운 가족 관계 형성, 언어에 대한 자부심 등이 그것이다. 이런 획기적인 변화가 1960년 10년 동안 이루어져 왔고, 퀘벡의 시문학은 이제 전통, 카톨릭 등의 보수적 기호들로 부터 완전히 탈피한다. 이 혁명이 완성되는 것은 가스통 미롱은 1970년 꿰멘 인간을 출판과 때를 같이 한다. 이 시집 한 권은 결국 퀘벡 시문학이 나아가야 할 바를 조명하는 것이며, 현재 퀘벡 시문단은 그 후속성 속에서 시적 서정과 퀘벡의 정체성 확립을 지속하고 있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피에르 느뵈, 질 시르 등의 중견시인은 물론 브르이에트 같은 젊은 세대의 시인들은 이제 과거에 집착하거나 그 역사에 슬퍼하지 않고, 퀘벡의 독립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시는 역사와 분리되어 개인과 사회의 내면적 변화를 그리는 보편적 언어가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민족 언어가 일제 시대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하는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추와 아울러, 조선족이나 고려인의 민족적 정체성 확립에 시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후속적 담론을 생각하게 된다.
  • 영문
  • La Déportation occupe une place très importante dans l'histoire acadienne. De 1755 à 1763, la plus grande partie du peuple acadien a été déportée dans les colonies américaines, en Angleterre et en France. Les Acadiens, exilés ou fugitifs, ont traversé une longue période d'errance à la recherchee d'une nouvelle terre d'accueil. Les Acadiens survivants de cette période l'ont qualifiée de "grand dérangement". Ensuite commence la Conquête anglaise sur la Nouvelle-France, suivie de la Guerre de Sept ans. Tout au long du 19e siècle les Canadiens français souffrent des troubles mentales sur leur identités. En 1895 l'École littéraire de Montréal est fondée par quelques jeunes écrivains. La nouvelle génération de cette école cherche la modernité de la littérature pure. A partir de la 20e siècle les milieux littéraires du Québec se divisent en deux tendances différentes : universalisme et régionalisme. Aux alentours de 1930, la polémique fait toujours rage, et de livre en livre les critiques se répondent : Louis Dantin et Camille Roy, entre autres. On peut classer les critiques et les écrivains en deux camps distincts, celui des terroiristes et celui des exotistes. Le tournant ne pouvait être pris qu'à Montréal, car la littérature esr affaire de ville, d'urbanité ; et la ville, désormais, c'est Montréal qui, avec son demi-million d'habitants, devient la métropole de ce qu'on a appelé le vaste empire économique canadien. En 1952 Gaston Miron fonde l'Hexagone à Montréal. Les paroles de la poésie deviennent les outils qui permettraient de forger les identités québécoises. Dans le poéme intitulé〈 Soir tourmente 〉 de Deux Sangs, Miron parle de "ton sang rouge parmi les miroirs brisés", ce qui incarne le visage de l'homme dont l'identité est à rapailler. A partir de 1960 la Révolution tranquille commence avec le gouvernement du Lage du Parti Libéral. Voici les principaux éléments idéologiques de la Révolution : On est capable, De Canadien français à Québécois, Profanation et laïcité, Une morale personnaliste, Égalité et indépendance, La nouvelle famille, Pluralisme et tolérance, La ville comme ‘terre humaine’, La langue de chez nous, etc. Cette révolution s'achéve avec la parution de L'homme rapaillé. Ce recueil est une phare qui guide le Vaisseau d'Or sur le Chemin du Croix, c'est-à-dire celle éclairant la route de la poésie québécoise vers l'avenir libéré du joug de l'histoire, sans oublier pour autant son devoir national. Là, la poésie devient la langue universelle qui parle à la fois des intimités de l'individu et de la collectivité.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퀘벡의 프랑스 시가 그 정체성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문예지의 역할이 크다. 20세기에 들어와 몬트리올 문학 에콜을 중심으로 퀘벡 문학의 근대성을 추구하는 신흥 자유주의는 문학이 협소한 의미의 민족주의로 접근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학적 보편성의 상실 혹은 근대성의 후퇴 등을 염려한 예술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1891년과 1892년 사이에 『캐나다-리뷰(Canada-Revue)』의 자유로운 논조가 나타나고, 『르 몽드 일뤼스트레(Le Monde illustré)』에 프랑스의 베를렌느 혹은 데카당(décadent)들의 영향을 받은 시편들이 보이지만, 자유주의 또는 근대성을 기반으로 한 순수 문학은 1895년 11월 7일 창립된 몬트리올 문학 에콜 부터 시작된다. 이 학파가 1900년 5월에 발간한 잡지 『람제 성의 저녁들(Soirées du château de Ramezay)』은 넬리강의 시 17편을 실음으로써, 넬리강의 상징주의와 퀘벡 문학의 근대성을 학파의 이데올로기로 선택하게 된다. 넬리강이 처음 시를 발표한 잡지는 주간지 『토요일(Le Samedi)』이다. 이 잡지의 1896년 6월 13일자에 Émile Kovar라는 필명으로 실린 「환상적 꿈(Rêve fantastique)」이 넬리강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르 몽드 일뤼스트레』에서도 1897년 5편의 시를 발표하기도 했었다. 또한 1898년 루이 당텡(Louis Dantin)이 주간으로 있는 잡지에 여러 편의 작품을 싣고 람제 성에서 열린 몬트리올 문학 에콜의 첫 번째 공개 모임에서 「와토의 꿈(Rêve de Watteau)」, 「천사들의 리사이틀(Le récital des Anges)」 등을 낭송했다. 넬리강이 1899년에 마지막 작품 「황금 배(Vaisseau d'or)」를 내고 작품 활동을 마친 것을 볼 때, 1900년의『람제 성의 저녁들』은 넬리강의 대표작들을 정리한 것이다. 넬리강이 정신적 질환으로 시를 떠남으로써, 정치와 민족주의의 틀을 벗어나 순수문학을 향하던 ‘황금배’는 좌초한 것이고, 20세기는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논쟁으로 시작된다. 넬리강에 대한 평론이 루이 당텡에 의하여 신문『레 데바(Les Débats)』지에 나온 시점은 1902년이다. 『레 데바』지 1902년 8월 17일자 부터 9월 28일자에 걸쳐 7회에 나뉘어 연재된 당텡의 「에밀 넬리강과 그의 작품(Émile Nelligan et son Oeuvre)」은 "시인은 죽었다" 라고 시작된다. 이것은 순수시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며, 여기서 문학의 내면성과 그 메시지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내면파 작가이며 보편주의자들과 문학의 역사적 책무를 퀘벡에 국한시키는 지역주의들과의 대립 관계가 형성된다. 이미 1897년 부터 몬트리올 문학 에콜이 1820년대 프랑스 낭만주의 운동의 중심이었던 세나클(cénacle)로 바뀐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에콜은 넬리강 이후 보편주의자들과 1909년에『향토(Terroir)』를 창간하는 지역주의들로 나뉘게 된다. 그리고 1917년에 나오는 『프랑스 행동(L'Action française)』이 참여 문학을 대표하는 신문이다. 이런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문학의 민족주의적 역할과 문학의 순수성을 접하면서 시인의 새로운 길을 연 시집은 1937년에 나온 생-드니 가르노의『 공간 속 시선과 유희』였다. 이 시기는 퀘벡의 도시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카톨릭에 기대는 전통이 몰락하는 시점이었다. 결국 몬트리올이라는 거대한 도시로 시인들은 모여들고 여기서 가스통 미롱이 창간한 출판사 엑사곤(L'Hexagone)는 조용한 혁명(révolution tranquille)의 문학적 산실이 되는 것이다. '조용한 혁명' 이란 표현은 토론토에서 발행되는 신문 The Globe and Mail 의 한 기사에서 1962년 "얼마전 부터 퀘벡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칭하기 위하면서 처음으로 'quiet revolution'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나타났다. 이 혁명의 본질은 탈종교화이며 가스통 미롱을 중심으로 한 시인들의 진정한 근대문학의 성립에 있다. 미롱은 1970년에 나온 『꿰맨 인간(L'homme rapaillé) 』을 통하여 퀘벡 시의 민족적 정체성을 시적 서정성에 담아 퀘벡인들에게 노래함으로써 조용한 혁명을 문학적으로 완성한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우리는 퀘벡인들이 문화 및 언어의 옹호를 통하여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해 왔는가 하는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북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영어의 바다에서 하나의 조그만 섬으로 남아, 그래도 그들만의 전통과 관습, 종교를 유지하면서, 무려 700만이 불어를 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다. 이런 정체성 유지에 있어서 문학과 문예지 혹은 신문 같은 간행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새삼 인식하게 되고, 우리의 주 과제인 시문학에 대한 분석은 결국 낭송되고 쉽게 읽힐 수 있는 시가 민족성을 드러내는 가장 유리한 문학적 도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우리는 사할린 동포나 조선족 혹은 고려인들의 정체성 유지라는 과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결책을 제시하게 된다. 말하자면,본국인 한국에서 취해야 할 정책. 또 우리가 학문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후속적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활용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퀘벡의 프랑스 시, 문예지, 몬트리올 문학 에콜, 민족주의, 근대성, 자유주의, 넬리강, 루이 당텡, 생-드니 가르노, 가스통 미롱, 엑사곤느, 조용한 혁명, 탈종교화, 시적 서정성, 퀘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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