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헌법 제1조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민주공화국’의 기원 및 형성, 그리고 역사적 변화과정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보다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해보았 ...
본 연구는 헌법 제1조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민주공화국’의 기원 및 형성, 그리고 역사적 변화과정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보다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해보았다. 현재 우리 한국사회는 첫째, 국내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 속에서 확산된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 빈부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등에 의해 전사회적으로 분열 과잉현상에 당면하고 있고, 국외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진행과정 속에서 중국의 부상, 미․일동맹의 강화, 그리고 북핵문제 등 한반도 주변 정세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국제적인 여건 변화와 함께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의 심화현상은 궁극적으로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내지 귀속성의 약화현상, 즉 정체성의 혼란과 위기를 불러왔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연구목적을 달성하고자 노력했다.
첫째,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서의 민주공화국과 그 이념인 ‘민주공화주의’를 19세기 말 이래로 전개된 우리의 역사 속에서 내재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본 연구는 정치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양대 이념이 단순히 서구로부터 수입․적용된 것이 아니라, 조선말기의 국내외적인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민족 내부에 축적된 ‘내적 동력’에 의해 형성되어 왔음을 살펴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구한말의 <동학>, <독립협회>, 그리고 <만민공동회> 등의 정치사회운동 속에서 분출된 국가적, 민족적 정체성 모색의 자발적 과정에 주목했다. 아울러 식민지 치하에서의 독립운동의 전개과정 속에서 점차 그 구체적인 모습을 형성, 발전시켜나갔던 민주공화제로 향한 정체성 확립의 노력들을 당시의 문헌들, 즉 강령, 헌장, 결의문, 규칙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규명해냄으로써, 그 속에 담겨있던 민주공화주의의 맹아가 어떻게 대한민국 건국헌법에 반영 및 수용되었는지 그 내적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둘째,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부터 4․19, 5․16, 6․29 등을 거치면서 성장해온 한국정치를 민주공화주의의 왜곡과 그 싹의 지속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대부분의 기존 연구가 민주공화주의의 이념을 왜곡했던 독재․권위주의 체제와, 그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이념을 실현코자 했던 민주화세력 사이의 적나라한 이분법적 권력대립 구도 속에서만 수행되었다. 반면에 본 연구는 장기간 지속되었던 독재 및 권위주의 체제가 헌법상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의 정치적 의미를 어떻게 왜곡시켰으며, 아울러 그에 대항하는 세력은 민주공화정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셋째, 이를 통해 본 연구는 현재 우리 한국사회의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통합의 모델로서 공화주의, 즉 ‘공화민주주의’의 정치적 의미를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현재 우리 한국사회가 당면한 정체성의 혼란과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았다. 현재 우리 학계 일각에서 강조되어온 ‘민주주의의 심화’나 ‘민주주의의 민주화’ 등을 통한 국민통합 방안들은 그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평등성’이 그 관건이지만, 민주적 방식만으로는 현대의 다원주의적 사회 영역, 즉 사회의 다양한 자율성의 영역들을 효과적으로 통합시키는 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추어 본 연구에서는 사회 각 영역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공적인 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국민통합을 가능케 하는 모델로서 공화주의적 해결 방식에 주목했다. 공화주의내지 공화민주주의 사상은 이미 구한말부터 현대 한국사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었지만, 그동안 민주주의 이념의 실현과 민주화라는 정치적 요청에 치중되었던 탓에, 사회통합과 공동체의 정체성 확보를 위한 핵심 관건이라는 정치적 의미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