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문제에 대한 법적 처리는 과거사라는 말이 지닌 그 어의의 폭만큼이나 광범위한 논의에 걸쳐 있다. 이러한 폭넓은 규범적인 문제들은, 그것이 특정되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기 어렵다. 즉 과거 역사적 범죄의 처리문제는 정치적인 맥락에서 뿐만 아 ...
역사적 문제에 대한 법적 처리는 과거사라는 말이 지닌 그 어의의 폭만큼이나 광범위한 논의에 걸쳐 있다. 이러한 폭넓은 규범적인 문제들은, 그것이 특정되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기 어렵다. 즉 과거 역사적 범죄의 처리문제는 정치적인 맥락에서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근본 문제도 야기했는데, 예를 들어 칼 야스퍼스나 한나 아렌트 등의 저명한 철학가들도 이 문제 해결의 토대에 정신사적으로 기여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철학적인 맥락, 순수 역사적인 맥락, 당파적인 맥락의 논의는 연구의 내용에 담을 수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법률가의 몫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인 요청들을 법적으로 해석하고 걸러내며 실천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데에 국한되고, 또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과거사의 법적 처리 문제가 논의될 수 있는 다른 역사적 · 사회적 맥락을 배제할 때에만이 이 연구는 성공가능한 연구가 될 것이다. 오히려 실무 상의 처리방식 등, 그 결과가 바로 이용가능할 정도로 구체화될수록 연구의 가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특히 우리나라 상황에 적합한 방안을 강구하고자 한다. 유사한 문제가 제기되었던 독일이나 프랑스, 폴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등에는 각기 그 나라 특유의 논의 맥락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한국 고유의 역사, 우리의 고유한 법감정이 이들과 다른 내용으로 존재한다. 우리의 연구는 바로 우리의 배경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기존의 유사한 연구들이 독일의 예를 소개하면서 한국 사정에 바로 적용하려 했던 것으로부터 이제는 과감하게 거리를 두고자 한다. 우리 상황에 맞는 바로 그 법적 해결이 지금 필요한 때임을 직시한다면, 외국의 역사적인 예를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분석하는 방식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물론 다른 나라의 사례, 문헌연구는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우리의 고유한 해결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외국의 참고자료 연구는 방대할수록 그 의의가 크다. 그러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은 반드시 한국 사정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우리에 맞는 방식으로 결론지워져야 한다. 소수 단편적인 논문 이외에, 이러한 한국 상황의 특유성을 반영한 체계적인 연구는 많지 않다.
이 연구의 전반부는 과거사로 개념지워질 수 있는 문제사안 전반에 대한 법적 해결의 정당성과 그 한계 논의에 할애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쌓여온 법철학, 법이론적인 논의들이 분석되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법철학적인 논의의 분석틀이 그동안 다소 제한되어 있었다. 구체적 자연법의 원리에 비추어 법적 안정성의 이념이 후퇴되는, 이른바 라드브루흐의 공식을 적용하는 방식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독일의 통설과 판례이다. 본 연구는 이와 같이 진행되는 정의와 실정법주의의 대립과 그 우위관계를 정하는 방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한다. 각 이념이 주는 고유한 의미를 통찰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해결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죄형법정주의의 의미도 실정법주의라는 그 본연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한다. 이와 같은 죄형법정주의의 복원은, 개별입법 또는 소급입법의 정당성이 없음을 논증하는 데에 이용될 것이다.
시효의 본질을 정하는 데에는 연구자의 학위논문이 적극 이용될 것이다. 시효의 본질과 죄형법정주의의 범주는 본 연구와 큰 관련이 없다는 사실도, 새로운 결론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제한 하에 정형화된 사후적 처벌의 가능성이 무력한 법의 후퇴 내지 정의의 포기에 이르지 않게끔 하려 한다. 즉 정형화된 형법의 임무를 보완하는 역사적 문제해결의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도록 한다.
이와 같이 이끌어낸 분명한 결론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대적으로 구별되는 대상들에 대한 해결 방안들을 비판적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독재정권 범죄 등 과거에 일어난 중대한 범죄를 처벌한 선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바르게 진행된 점과 비판받아야 할 점을 차례로 평가한다. 이 문제는 입법, 사법과정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처벌 과정 중의 사면 등을 포괄한다.
둘째, 현재 문제시되고 있는 과거사 처리를 위한 특별법 입법 논의를 규범적으로 평가한다. 그 필요가 인정된다면, 그 구체적인 범위와 처벌의 방식을 제시한다.
셋째, 장차 문제될 통일 이후의 법적 처리문제를 예견하고, 이에 대한 올바른 해결방식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통일 후 독일의 법적 해결 논쟁을 토대로 이를 구체으로 비교, 분석하고 우리에게 맞는 처리방식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