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삶이란 그가 놓인 사회와 역사 속에서 상당 부분 규정되는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물며 그가 기개와 양심을 지닌 언론인이라면, 그 시대가 언론의 자유를 용인하지 않는 때라면. 고학력 엘리트 젊은이들이 자유 언론을 외치다가 하루아침에 해직을 당했고, ...
한 개인의 삶이란 그가 놓인 사회와 역사 속에서 상당 부분 규정되는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물며 그가 기개와 양심을 지닌 언론인이라면, 그 시대가 언론의 자유를 용인하지 않는 때라면. 고학력 엘리트 젊은이들이 자유 언론을 외치다가 하루아침에 해직을 당했고, 그토록 열망했던 복직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을 해직으로 내몰았던 외부의 힘, 즉 정치 권력의 개입은 해직 이후 삶의 분기와 변화 등에 지속적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시대가 그들에게 지워준 소명 혹은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는 무엇보다 그들의 그런 운명에 빚을 지고 있는 후세대의 헌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연구의 배경이 되는 기본적 관심은, 한국 사회에서 반복되듯 관찰되는 권력과 언론의 갈등과 긴장, 유착 속에서 해직 언론인 그 자체가 갖는 언론사적 중요성에 놓여져 있다. 한국 현대 언론사의 질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해직 언론인은 정치권과 시민사회,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간의 복잡다기한 관계적 양상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90년대 후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해직 언론인의 거취는 이전과 달리 공적 가시권 안에 들어온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변화는 해직 언론인이 겪는 경험적 변화가 단지 그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정치와 언론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사안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 제작 거부로 시작된 사태는 해직으로 이어졌고 이후 지속적인 정치 권력의 감시와 방해는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명예 회복과 복직을 위한 노력은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맞물려 점차 민주화 운동과 대열을 같이 하게 되었으며,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그들은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민주투사가 되었다. 출판사를 통한 사회과학 서적의 발행은 한국 사회의 지성을 벼려냈으며, 재야 세력과 연대한 언론운동을 통해 한국 언론이 가야할 길을 지속적으로 제시했다. 또한 한겨레를 통해 새로운 의제와 시각으로 기존의 보수 언론들과 담론전쟁을 벌이고, 그들이 주창한 민중, 민족, 민주언론은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흔드는 동시에 유연하게 업그레이드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김대중 정권의 창출에 크게 기여하면서 제도권에서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형성에 개입하게 된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핍박받던 재야언론인은 이제 각종 언론 관련 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원으로, 그리고 방송사 사장으로 언론 관련 요직에 올랐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명예회복과 보상 문제를 한으로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35년 전 해직 당시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우리는 이들이 택한 길을 한국 사회의 언론과 역사 발전에 비추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아투위, 조선투위, 그리고 80년 해직 언론인의 발자취는 시민사회에서 운동세력의 조직화, 《말》지와 한겨레의 창간 등에서 두드러진다. 당시 최고 엘리트라 할 수 있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고학력 30대 젊은 기자 백 오십 명이 직장을 잃고 복귀할 기회를 갖지 못함으로써 상당수가 자연스레 시민사회의 운동 주체로 유입되는데, 이는 자유언론을 통해 민주화를 막으려 했던 정치 권력이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민주화를 촉진시킨 역사의 운동성을 잘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그들을 해직함으로써 언론의 통제는 가능했으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이라는 자유언론의 정신은 굴절되지 않고 출판이나 정치, 시민사회 등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역할을 했다. 해직 언론인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보다 강력한 야당과 재야를 갖게 되었으며, 이들은 시민사회로 영역을 확장, 진화하며 한국 사회의 이념적 분화를 이끌었다. 여기에 한겨레의 발간으로 정치, 시민사회, 언론이 구조적인 통합을 이루면서 점차 보수와 대별되는 진보의 축을 형성하게 되었고, 정권 교체에도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