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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代 遼陽行省 建置와 통치방식 연구 -내지 행성과의 비교를 통하여-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박사후국내연수)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08-354-A00208
선정년도 2008 년
연구기간 1 년 (2008년 09월 01일 ~ 2009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최윤정
연구수행기관 경북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사회발전 정도가 상대적으로 낙후된 몽골은 한지를 점령․ 지배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의 전통과 역사발전을 왜곡시키거나 혹은 그것과 다른 독특한 전장제도를 만들어냈다. 때문에 원대의 각종 典章制度는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풍부하고 다채로운 특색을 띠게 되었고, 일찍부터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行省도 그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行中書省” 혹 “行尙書省”의 약칭인 行省의 출현으로 원 이후 중앙과 지방권력 구조가 새로운 변화와 발전의 단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요컨대 몽고 원은 새로 정복한 광대한 영역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에 직면에서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의 主從적 결합이라는 새로운 모식을 창출해 내었다. 원대 행성은 중서성의 출장기구로서 조정을 대표해 각 지역을 통치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의 분모를 가지지만, 실제 각각의 행성은 성격과 운영 면에서는 차이점들이 있다. 때문에 중앙의 통제와 관할의 강도와 구체적 내용도 다를 수밖에 없다. 본 연수의 연구주제인 遼陽行省은 원대 建置 된 11개 행성 중의 하나이자 군사,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 疆域이 현재의 동북삼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소련의 하바로프스크, 아무르주의 일부분까지 포함하는 광대한 지역으로, 다양한 민족과 주민들이 거주했다. 여기에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동도제왕 울루스와 異姓 왕의 분봉지도 분포해 있었다. 한 시대의 통치제도와 기구 속에는 중앙권력과 지방권력, 지방권력과 민, 중앙권력과 민의 관계가 중층적․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행성은 원대의 중앙과 지방권력, 행정제도와 대민지배체제의 각 방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주제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우리민족의 역사 발전과정에서도 몽골 지배 시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280년 원의 일본원정을 위해 처음으로 설치된 정동행성은 東征이 종결된 1286년 1월에 폐지되었지만, 원의 중국 내지의 행성들이 지방행정기구로 전환해 가면서 고려에도 내정간섭기구로서 1287년에 정동행성이 다시 설치되었고, 특히 성종대에 들어서는 몇 차례 “入省論”이 대두되면서 그때마다 요양행성과의 합병문제가 제기되었다. 때문에 우리학계에서도 정동행성 연구를 필두로, 원․고려시기 遼瀋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홍복원 일가 및 고려 심왕문제와 관련해서 일찍부터 요양지역과 요양행성과 주목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원대 요양행성에 대한 연구는 고려 후기의 내적인 역사전개를 이해하는 데도 일조하리라 생각된다.

  • 기대효과
  • 만약 연수자의 연구가 적절하게 이루어진다면 다음과 같은 기대 효과 및 활용 방안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원대 정치제도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다. 행성은 대표적인 蒙漢 이원적 제도이다. 중서성의 출장기구인 동시에 지방의 최고관부라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요소의 융합은 중앙집권체제의 유지와 지방권력의 분열을 막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행성의 지방화 과정은 각지의 다른 정치, 경제, 문화적 요소에 구체적으로 적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본 연구는 중요성에 비해 연구가 부족한 원대 요양행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기존의 연구공백을 메우고, 나아가 각지의 원대 중앙과 지방의 권력관계 및 대민지배체제의 일단을 구체적으로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여원관계사 및 고려후기사 연구의 심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행성제도와 투하、분봉제도, 요양행성은 원대사 연구에만 유용한 주제가 아니라 고려 후기역사를 이해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 역사 발전과정에서 몽골 지배시기는 정치적 종속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려 내부의 통치구조, 정치세력, 행정조직 등 모든 방면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몽골의 침략과 지배가 고려사회 각 방면에 미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의 축적을 통해 역사적 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향후 각 관련분야와 인접학문의 협동연구도 더욱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본 연구가 그러한 방향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세째, 오늘날 유용한 역사적 경험을 제공해 준다. 최근 중국의 영토문제와 역사문제로 우리학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동북과 만주지역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었다. 상고시대부터 일찍이 이 지역은 우리역사의 중심무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시기에도 우리의 역사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원-고려 시대에 와서 역사상의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한 관계가 맺어졌다. 원대 요양행성의 경내에는 다양한 민족과 주민들이 함께 생활했던 공간이다. 기존의 우리 학계의 대부분의 연구는 거란, 여진과의 전쟁사나 관계사 및 고토회복 대상지역에만 집중되었다. 당시의 전쟁과 교류, 이주가 갖는 적극적인 의미와 의의를 제대로 파악하고, 나아가 갈등과 반목을 지혜롭게 해결했던 역사적 경험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현재와 미래에 유용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연구방법은 주로 문헌고찰이 될 것이며, 주제의 성격상 많은 자료의 수집과 검토가 요구된다.『元史』,『高麗史』를 비롯한 원과 고려의 각종 관찬사서와 『元典章』,『通制條格』,『至正條格』등 법제자료, 또 원과 고려의 각종 문집, 지방지, 석각사료, 금석사료 등을 활용할 것이다.

    요양행성의 정식명칭은 “遼陽等處行中書省”이지만 시기와 체제의 변화에 따라 “東京行中書省” 혹은 “北京行中書省”, “遼陽行尙書省” “北京行尙書省”등으로 불리었다.《元史》권59〈지리지〉의 기사에 따르면 요양행성은 지원24년(1287)에 설치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 그 건치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연구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요양행성의 건치과정이다. 크게 대몽고국 시기와 세조 후빌라이 이후의 두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1) 대몽고국 시기 일찍이 동북지역에 무카리와 테무게 오치긴, 벨구테 등의 관할 하에 있었다. 1230년 태종때 10路征收稅課所가 설치되면서 東京征收稅課使가 파견되고, 1232년에는 北京都轉運使도 파견되면서 한 차례 변화를 겪고, 그 후 總管府, 萬戶府 등이 설치되었다. (2) 후빌라이 즉위 후 宣撫司(후 宣慰司) 체제가 출현하여 중통원년(1260)에 北京等路宣撫司가 설치되었고, 중통2년 開元女眞水達達等處宣撫司, 北京宣撫司로 나뉘어 관할하다가 중통3년(1263) 北京宣慰司와 開元東京懿州等處宣慰司로 개칭된다. 至元元年(1264)八月에 “陝西四川、西夏中興、北京三處行中書省條格”이 반포되었다. 이후 수차례의 치폐를 거듭하며 선위사와 행성의 교체가 반복하다가 지원24년(1287)년 十月 나얀의 반란을 제압한 후 비로서 요양행성의 통할관리체제가 확립된다. 이 때문에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 빈번한 치폐과정을 중앙과 동도제왕의 타협의 과정 내지는 중앙집권화와 제왕세력의 반항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지역의 특성상 행성의 설치와 그 이후 관리체제상에서 동도 제왕들과의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나, 요양행성의 선위사체제와의 치폐는 당시 원조정의 전체 판도와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면 같은 시기 이처럼 빈번하게 치폐를 반복했던 건 비단 북경행성(동경행성) 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의 남송정벌과 강남지배의 확립과정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동북지역에서 행성의 설치 목적은 막강한 제왕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기존의 행정체제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임은 분명한 점이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요양행성의 건치과정을 후빌라이의 중앙집권화 과정과 남송병합을 시야에 두고 살펴보도록 하겠다.

    두 번째, 행성 관리기구와 운영체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요양행성은 광대한 영토와 민족구성이 매우 복잡하다. 원사 지리지에 그 관할경내 “為路七路、府一,屬州十二,屬縣十.徒存其名而無城邑者,不在此數”라는 데서도 이 기재가 상당히 불완전함을 알 수 있다. 요양행성은 크게 서남부, 중부, 동부로 획분할 수 있는데, 寧平路、大寧路、寧昌路、全寧路、應昌路、泰寧路、瀋陽路、水達達路、開元路 등이다. 본 장에서는 官員의 임용과 변천 및 만호부, 천호부, 총관부 등 관련 기구의 분석이 중점 내용이 될 것이다. 아울러 瀋陽等路高麗軍民總管府, 安撫高麗總管府와 같은 실체가 불분명해 논란이 되는 관서와 성종 이후 제기되는 정동행성과의 입성론의 배경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겠다.

    세 번째, 행성의 구체적 대민지배실태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특히 중앙과 행성의 재부관계, 부세 등의 구체적 수취와 구휼 등의 안건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지배관리실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대략 이와 같은 내용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앞서 제기한 소기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한글키워드
  • 高麗,遼陽行省,征東行省,行省,후빌라이,東道諸王,元代,投下
  • 영문키워드
  • Jŏngdong Haengsŏng ,Qubilai,LiaoYang xingsheng,Koryŏ,Eastern uluses,touxia,Yuan Dynasty,xingsheng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고에서는 선학의 관련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연구가 부족한 요양행성을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제국의 건설은 정복전쟁의 결과이므로 정복 전쟁에 대한 검토는 선결과제이다. 이에 먼저 몽골의 금 정벌 과정에서 요서와 요동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지역의 정벌 과정을 살펴본 후, 대몽고국시기와 쿠빌라이 집권 이후 지배질서의 완비 과정에서 이들 지역에 대한 관리기구의 형성 및 요양행성의 건치과정, 아울러 행성 치소의 변천 문제를 살펴보았다. 칭기스칸 금 정벌군은 諸子 右翼軍은 산서 방면으로, 카사르를 필두로 하는 左翼軍은 하북 연안과 요서방면을, 무칼리 좌익군은 북경 공략을 목표로 요서, 요동정벌에 참여하였다. 칭기스칸은 금 정벌전쟁을 일으킨 이래 여러 차례 군대를 요동에 보냈지만 이 지역에 대해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經略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제베의 동경공략, 留哥의 투항, 만노의 투항과 자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형세 속에서 전략적 중점은 요서에 있었고, 요동지역은 반금 할거세력을 승인하고 지지하는 형태로 배후지를 확보하는 상태에서 유지되었다. 사실상 태종 우구데이 즉위 이전 중원을 포함한 몽골의 점령지역에는 유효한 통치기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태종 우구데이 2년(1230)에 거란인 耶律楚材의 건의로 설치된 十路徵收課稅所가 설치되었다. 이중 북경로은 대행정구로 보존되어 이후 10로획경의 10도중 북경도로 발전하게 된다. 쿠빌라이 즉위 이후 선무사(선위사)와 행성은 빈번하게 교체 설치되었다. 그러나 남송의 평정이후 행성은 최고지방 관부로 발전하였고, 1284년 나얀의 난을 평정한 이후 정식으로 요양행성이 건치되었다. 나얀의 난은 그 이후의 중앙권력과 동도제왕, 요양행성의 권력관계의 변화와 재편을 가져온 중요한 계기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특히 원 일대를 통해 요양행성의 중심지역은 北京(북경)과 懿州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행성이 순수한 지방관부가 아닌 중앙 조정의 파출기구, 즉 중앙조정의 外廷으로서의 성격이 더 본질적인데 기인한 것이다.
  • 영문
  • It is a study focused specifically on the origine and evolution of Liao Yang Province, that one of the maximum local province(xing-sheng 行省) in the Mongol government of China in the thirteenth and fourteenth centuries. xing-sheng was one of a number of administrative innovationgs that the Mongols introduced into China. By February, 1211, preparationgs for the campaign were nearly complete and Chings Khan, who was encamped by the river Kerulen, sent his son-in-law, the Khongrad Tokuchar, with 2,000 men to mount guard on the western border. The army formed the Central and Left-wing armies and the Rigty-wing. Leading the former with CHingis himself were Mukhali, general-in-chief of the Left-wing army, Jebe, Subudei, Juchi Khassar and Tului. In command of the other were the princes Juchi, Ugedei. Beside these famous captains there were three others who particularly distinguished themselves in the war: a brothers Yeh-lü Akhai and Yeh-lü Tukha. Since both were well acquainted with the country north of the Great Wall. Early on, while the Mongols were still making their great conquests, Only the armed han ren shi hou(漢人世候) were unsalaried appointees with hereditary rights to the office who were charged by the khan or some other Mongol leader with one or more of a range of local tasks in conquered areas. So the military and civilian duties were undifferentiated during the years of the conquest of North Chiana, as is reflected in titles such as 'myriarch(wan-hu 萬戶)', 'du xing sheng(都行省)' etc.
    Before Ögödei's reign, there in conquered areas did not present a valid rule. Early in 1230s, shi lu zheng shou ke shui suo (10路徵收課稅所)was established, proposed by Yeh-lü chucai. One of these ten lu, peking-lu(北京路) was the administrative of northeast areas. Later it developed into larger organizations, liaoyang xingsheng(遼陽行省). From the time of Qubilai, the Mongols' conquests in China were, at least from the chinese point of view, "normalized" into the Yuan dynasty, and the Province were transformed in the process. By 1279, Qubilai and the Mongols had crushed the remnants of the Sung dynasty. It brought the remarkable improvement of local governance organizations. In 1284, after suppression of Nayan's rebellion, In Manchuria had formally established the Lioa Yang Province. About the seat of this province, this works proved that located in yi chou(懿州) since 1287. It revealing the nature of the provic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고에서는 선학의 관련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연구가 부족한 요양행성을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제국의 건설은 정복전쟁의 결과이므로 정복 전쟁에 대한 검토는 선결과제이다. 이에 먼저 몽골의 금 정벌 과정에서 요서와 요동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지역의 정벌 과정을 살펴본 후, 대몽고국시기와 쿠빌라이 집권 이후 지배질서의 완비 과정에서 이들 지역에 대한 관리기구의 형성 및 요양행성의 건치과정, 아울러 행성 치소의 변천 문제를 살펴보았다. 칭기스칸 금 정벌군은 諸子 右翼軍은 산서 방면으로, 카사르를 필두로 하는 左翼軍은 하북 연안과 요서방면을, 무칼리 좌익군은 북경 공략을 목표로 요서, 요동정벌에 참여하였다. 칭기스칸은 금 정벌전쟁을 일으킨 이래 여러 차례 군대를 요동에 보냈지만 이 지역에 대해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經略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제베의 동경공략, 留哥의 투항, 만노의 투항과 자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형세 속에서 전략적 중점은 요서에 있었고, 요동지역은 반금 할거세력을 승인하고 지지하는 형태로 배후지를 확보하는 상태에서 유지되었다. 사실상 태종 우구데이 즉위 이전 중원을 포함한 몽골의 점령지역에는 유효한 통치기구가 존재하지 않았다. 태종 우구데이 2년(1230)에 거란인 耶律楚材의 건의로 설치된 十路徵收課稅所가 설치되었다. 이중 북경로은 대행정구로 보존되어 이후 10로획경의 10도중 북경도로 발전하게 된다. 쿠빌라이 즉위 이후 선무사(선위사)와 행성은 빈번하게 교체 설치되었다. 그러나 남송의 평정이후 행성은 최고지방 관부로 발전하였고, 1284년 나얀의 난을 평정한 이후 정식으로 요양행성이 건치되었다. 나얀의 난은 그 이후의 중앙권력과 동도제왕, 요양행성의 권력관계의 변화와 재편을 가져온 중요한 계기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특히 원 일대를 통해 요양행성의 중심지역은 北京(북경)과 懿州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행성이 순수한 지방관부가 아닌 중앙 조정의 파출기구, 즉 중앙조정의 外廷으로서의 성격이 더 본질적인데 기인한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그간 국내에서 부진했던 원대 요양행성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로 이왕의 관련 연구성과의 기초 위에서 원대 요양행성에 대한 연구를 심화하였다. 본 연구는 중요성에 비해 연구가 부족한 원대 요양행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기존의 연구공백을 메웠고, 1년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수행된 과제라 향후 좀더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그런 연구를 위해 필요한 기초 작업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런 기초 위에서 향후 원대 중앙과 지방의 권력관계 및 대민지배체제의 일단을 구체적으로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이런 연구성과를 기초로 여원관계사 및 고려후기사 연구의 심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향후 각 관련분야와 인접학문의 협동연구도 더욱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본 연구가 그러한 방향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세째, 오늘날 유용한 역사적 경험을 제공해 준다. 최근 중국의 영토문제와 역사문제로 우리학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동북과 만주지역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었다. 상고시대부터 일찍이 이 지역은 우리역사의 중심무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시기에도 우리의 역사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원-고려 시대에 와서 역사상의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한 관계가 맺어졌다. 원대 요양행성의 경내에는 다양한 민족과 주민들이 함께 생활했던 공간이다. 기존의 우리 학계의 대부분의 연구는 거란, 여진과의 전쟁사나 관계사 및 고토회복 대상지역에만 집중되었다. 당시의 전쟁과 교류, 이주가 갖는 적극적인 의미와 의의를 제대로 파악하고, 나아가 갈등과 반목을 지혜롭게 해결했던 역사적 경험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현재와 미래에 유용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 색인어
  • 몽골, 元代, 行省, 遼陽行省, 칭기스칸, 左翼, 무칼리, 쿠빌라이, 北京(路), 宣撫司, 東道諸王, 那顔, 懿州, 治所, Mongol, Yüan Dynasty, xingsheng, LiaoYang xingsheng, Qingis khan, Left-wing, Muqali, Qubilai, peking-lu, Eastern uluses, xuanwusi, nayan, yichou, zhis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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