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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연행로 중 遼陽 - 鞍山 - 廣寧 구간에 대한 인문지리학적 탐색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09-327-A00488
선정년도 2009 년
연구기간 1 년 (2009년 11월 01일 ~ 2010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이승수
연구수행기관 한양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燕行은 근대 이전 한․중 외교문화의 소산으로, 동아시아 세 나라가 모두 쇄국정책을 실시했던 14세기 이후 19세기말까지 오로지 한국만이 동아시아 사이를 이어주었던 특수한 외교와 무역과 여행의 제도이다. 燕行路는 정치적 영토와는 별개의, 우리의 역사 공간이자 문화 영역이다. 기록상 역사적으로 공식적인 외교사행으로서 연행은 원나라가 북경(大都)을 수도로 정하는 1272년을 전후한 시기이다. 몽골은 광대한 정복지를 통치하기 위해 해당 나라에 교통로 설치를 요구했다. 이 시기 북경과 개경 사이 역로가 발달하였으며, 이후 이 길을 통하여 한국과 중국 사이 문명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연행로는 이후 여말선초의 元明교체기, 조선전기(明), 17세기 전반 명청교체기, 17세기 후반 이후 조선후기 등 국제관계의 변동에 따라 변천을 거듭한다. 東八站 - 鞍山 - 牛家庄 - 廣寧 - 山海關을 거쳐 북경을 오가는 연행로는 고려말에 처음 개통되어, 조선 시대에는 명나라가 북경으로 천도하던 1621년에서 後金이 요동 일대를 장악한 1621년 이전, 그리고 청나라의 入關年인 1644년에서 1679년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 이용되었다. 이중에서 遼陽 - 鞍山 - 廣寧 구간은 이 시기에만 이용된 연행로이다. 대략 4박5일의 노정으로, 지리적으로는 요동반도의 북단이자 발해만에 인접한 공간으로 대부분 요동평야에 속한다. 이 노정이 연행로로 이용된 시기에 연행록에는 사신들의 정서와 감회와 함께, 이 지역의 지리와 풍속을 담은 시문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다. 하지만 연행로의 이 구간에 대한 현지 조사는 물론이고, 이 구간의 문헌기록에 집중한 연구보고서는 아직 제출된 바 없다. 본 연구는 1421년에서 1621년 사이의 연행기록에서 ‘東八站-鞍山-牛家庄-北寧’ 구간의 기록을 정리 분석하고, 사행로로 활용된 옛길과 주변의 지리형세를 현지답사하여, 해당 구간의 인문지리학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는 미시적으로는 연행로 일부 구간을 인문지리학적으로 정밀하게 복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 파급 효과와 잠재 효과는 연행로 전체 구간의 인문지리학적 복원, 한중 문명교류사의 연구, 지역학으로서의 요동학의 수립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파급 및 잠재 효과까지 포함하여, 이 연구가 수행되었을 때 그 효과와 활용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학문적 기여도 - 첫째, 遼陽-鞍山-廣寧 구간의 연행로를 복원할 수 있다. 둘째, 이 구간을 배경으로 하는 연행 문학의 해독과 해석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연행록 속 시문은 역사 맥락과 지리 형세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선 이해 없이는 해석은 물론 해독도 어려운 작품들이 많다. 셋째, 연행로 전체에 대한 종합적 연구의 일부가 됨은 물론 그를 위한 하나의 방법론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연행로에 대한 인문지리학적 연구는 연행 연구를 촉진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연행로 연구는 한중 문화 교류, 나아가 한반도 문명의 형성과 이동을 해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넷째, 한국학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향후 北京이나 東京, 아니면 遼東이나 對馬島처럼 우리 역사와 긴밀한 관련이 있었던 공간은 물론, 근대 이후 한국인들의 활동 무대가 된 해외 공간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푸는 데 있어 하나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다섯째, 연행록 연구를 주도하는 방법론을 선점할 수 있다. 최근 동아시아학계의 연행록에 대한 관심은 부쩍 높아지고 있지만 연행록은 그 朝貢使行의 산물이라는 중세적 성격 때문에, 그들의 관점에서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본 연구는 동아시아 차원에서 연행록 연구를 어떻게 주도할 것이며, 나아가 어떠한 전망을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 될 것이다.
    2. 사회적 기여도 - 첫째, 연행로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 성과는 다큐멘터리, 답사기 또는 여행기 등으로 2차 생산될 필요가 있다. 이는 결국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지수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한중 교류의 확대 및 우호의 증진에 기여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오랜 세월 우호협력과 갈등대결을 거듭해왔는데, 몇몇 시대적인 한계 안에 있기는 해도 연행로는 두 나라 사이의 우호와 협력을 상징하는 길이다. 이 길을 조명하고 복원하는 것은 과거의 재정리에 그치지 않고, 두 나라 사이 평화 협력의 역사적 상징이 될 것이고, 바람직한 관계 설정의 지남이 될 것이다. 본 연구 결과는 우리 입장에서 한중 우호 협력 관계를 위한 교훈과 지침을 얻는 것은 물론, 중국 쪽에도 그러한 방안을 제공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의 고대사, 또는 역사 속의 북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제고시킬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고 있는 구간은 대부분 고대 朝鮮, 고구려, 발해의 고토와 중첩되며, 연행기록에도 그러한 사실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종종 보인다. 본 연구는 영토, 경계 등의 배타적 접근방법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선과 문화적 접근을 통해 자연스럽게 북방과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교육과의 연계 활용 방안 - 첫째, 역사지리 교육과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다. 본 연구의 대상 지역은 연행로이자, 그 이전과 이후 한중 두 나라의 소통과 충돌이 빈번하게 되풀이되었던,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와 유관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둘째, 문학 교육과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다. 燕行은 외교 사행이면서, 여행이기도 했다. 수많은 지식인들은 연행을 통해 이국의 풍물과 산천은 물론, 문헌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역사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었다. 여행은 문학이 탄생하는 유력한 지점이니만큼, 연행은 수많은 문학작품을 낳았다. 본 연구 결과는 한국문학사, 한문학, 여행문학 등의 영역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셋째, 비교 민속학 교육과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다. 연행록은 그 모두가 중국의 풍물 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행록이 담고 있는 풍물의 범주에는 의복, 건축, 언어, 종교, 민속, 도시, 서지 등이 두루 포함되어 있다. 해당 자료들을 분류 정리한 연구 결과는 한중 간 비교 민속학의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본 연구의 성과의 교육적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사진 · 지도 · 동영상 · 음향 등을 활용한 2차 생산으로 이어져야 한다. 본 연구는 그러한 2차 생산을 고민하고 준비할 계획이다.
  • 연구요약
  • 본 연구는 문헌학과 지리학의 방법을 효율적으로 조합한 인문지리학의 방법을 채택한다. 지리공간의 역사문화적 의의를 탐색하는 일은 국내외를 따질 것 없이 동등하게 중요하다. 본 연구가 대상으로 삼은 연행노정은 300년 이상 세계를 체험하고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였던 길일 뿐만 아니라, 그 인접 공간은 한국 고대사의 현장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지속적이고 복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본 연구의 첫 번째 단계는 연행록 중에서 해당 구간을 배경으로 하거나 대상으로 삼은 시문들을 수집하여 자료의 범주를 확정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연구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많은 시문들이 연구 범주로 들어올 것이다. 두 번째는 수집된 자료들을 주제별로 분류하는 일이다. 현재 설정할 수 있는 분류 항목은 아래 여섯 가지이다. 1) 사행노정의 재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 2) 사신들의 정서와 도중 생활을 묘사한 자료. 3) 연행로 주변의 산천지리 형세를 통찰한 자료. 4) 그 시기 국제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 5) 연도 풍속을 묘사한 자료. 6) 발해와 고구려 등 고대사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
    문헌기록을 수집, 범주설정, 분류한 뒤에는 해당 구간을 답사할 것이다. 이 구간은 한중 사행로로 이용된 지는 300여 년이나 경과하여 그 기억이 희미하다. 또 근대 이후, 최근 교통로의 비약적인 발달은 예전의 연행로를 사용되지 않는 묵은 길로 밀어냈으며, 그중의 많은 구간은 인멸된 것으로 보인다. 자연재해와 문명의 발달 등으로 사라진 옛길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도 우리 연행록에는 이 지역에 대한 적지 않은 기록이 남아있고, 또 최근 중국 학계에서도 元明 시기 역참과 역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이를 토대로 현지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활용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마지막 단계에서 수행할 작업은 이 지리공간을 한국학의 관점에서 인문지리학적으로 재구하는 것이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연행 노정은 역사공간으로도 문학공간으로서도 점점 잊혀져서 기록 속에 죽어있는 지리공간이 되었다. 본 연구는 이 연행 노정을 답사하고 그와 관련된 문헌 기록들을 고찰하여, 죽어있는 지리공간을 우리의 역사문화적인 공간으로 복원하는 데 그 의의와 목적을 둔다. 본 연구를 통하여 遼陽, 鞍山,海州衛(海城市), 牛家庄(牛庄鎭), 三叉河(遼河, 太子河, 渾河가 합류하여 발해로 들어가는 하류), 沙嶺, 高平(高升), 盤山, 廣寧(北寧市)그리고 그 사이의 작은 지역은 우리에게 의미를 지닌 우리의 역사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연행록 속의 수많은 시문들은 구체적인 역사 맥락과 지리 배경을 얻으며 그 의미와 가치가 증대될 것이다.
  • 한글키워드
  • 燕行,遼東,조선 전기,燕行錄,遼陽 - 廣寧 구간,燕行路,문명의 형성과 이동,인문지리학
  • 영문키워드
  • The Routes of Diplomatic trips to BeJing,Diplomatic trips to BeJing,Human Geography,Early Joseon Dynasty,Formation And Transfer Of Civilization,The Records of Diplomatic trips to BeJing,'Liáoyáng - Guǎngníng section,Liáodōng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논문은 13세기 후반에서 19세기 말에 이르는 600여 년 연행의 역사에서, 고려말-元代, 조선전기-明代, 그리고 조선후기-淸初 세 시기에 걸쳐 300년가량 이용된 ‘遼陽 - 鞍山 - 海州 - 牛家庄 - 三叉河 - 沙嶺 - 高平 - 盤山 - 廣寧’ 구간을, 인문지리학의 관점에서 검토한 결과이다. 이 구간에서 주요 역참이 있던 곳은 鞍山 ․ 海州 ․ 牛家庄 ․ 沙嶺 ․ 高平 ․ 盤山이었고, 총 거리는 360리(180km 정도)였다. 보통 4박 5일이 소요되는 노정이었지만, 도로 사정 등 때문에 5박6일이나 6박7일이 걸리기도 하였다. 우리 사행은 어떤 길을 오갔고, 沿路의 기후와 풍광은 어떠했으며, 어떤 역사와 풍속이 발견되었으며,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는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자연환경은 들판(遼野)과 바람과 진창이었다. 들판에서는 세계의 물리적 크기를 감지했고, 바람과 진창에서는 행로의 고통을 겪었다. 山川으로 인상 깊었던 것은 駐蹕山과 三叉河였다. 주필산은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을, 三叉河는 오랜 세월 이어온 북방국가와 중원국가 사이의 갈등을 떠올리게 했다. 삼차하 가에 있었던 天妃廟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는 당시 이 지역의 신앙풍속과 함께 이를 대하는 조선 사신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국제 정세와 관련해서는 邊牆과 煙臺 등이 주의 깊게 관찰되었다. 사신들은 종종 조선 출신 사람들을 만나곤 했는데,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에 이르는 잇단 전란 속에서 발생한 流民들이었다. 이 논문은 연행과 관련된 해당 구간의 인문지리를 개괄하는 데 머물렀고, 문학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밝히거나 세부적인 역사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 영문
  • This study examined the section "Liaoyang-Anshan-Guangning" used for about 300 years in three periods, the end of Goryeo period(Yuan dynasty in China), early Joseon period(Ming dynasty in China) and late Joseon period(Qing dynasty in China), in the history of the diplomatic journey to Beijing for about 600 years from late 13th Century to the end of 19thCentury, on the anthropogeographical aspects. The main posting stations in this section were in Anshan, Haizhou(海州), Niujiazhuang(牛家庄) , Sha Ling(沙嶺), Gaoping(高平) and Panshan(盤山), and the total length was around 180km(360-ri). It generally took about 4 nights and 5 days but it took 5 nights and 6 days or 6 nights and 7 days due to various reasons including road conditions. How about the conditions on the route for diplomatic envoy to Beijing What about the climates and sceneries What kinds of histories or customs were observed What did the envoy feel and realize The most impressive scenery was the nature, that is, field, wind and mire. The envoys realized the physical dimension of the world in the fields and experienced the pain during the journey due to wind or mire. The most impressive mountain and river were Zhubishan(駐蹕山) and Shanchahe(三叉河). Zhubishan and Shanchahe reminded the war between Goguryeo and Tang Dynasty, and the conflict between the countries in the northern region and the countries in the central region which were continued for a long time, respectively. The records on Tianfeimiao(天妃廟) along Shanchahe illustrated faith and custom in those regions and the awareness of envoys from Joseon dynasty to those faith and custom. With respect to the international relationship, Byeonjang(邊墻) and Yeondae(煙臺) were intensively investigated. The envoys occasionally met those from Joseon who were the migrants from the continuing wars, from Japanese invasion to Korea in 1592 to Manchu War in 1636. However, the limit of this study was that only a certain section related to the journey to Beijing was examined on the anthropogeoraphical terms, but aesthetical value of literature was not identified nor the historic themes were not discussed in depth.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논문은 고려 ․ 조선 시대의 北京 使行路 중, 연행록을 중심으로 ‘遼陽 - 鞍山 - 海州 - 牛家庄 - 廣寧 구간’의 의의를 인문지리학의 관점에서 탐색한 결과이다. 본고에서 살핀 길의 일부는 잘 사용되지 않는 상태이다. 개중에는 사라져 찾기 힘든 부분도 있다. 이 길은 앞으로 다시 사용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현재의 용도로만 따진다면 이 글의 작업은 남는 것도 없는 일인 셈이다. 하지만 문명의 역사는 길의 역사라는 은유를 인정하고, 역사에는 과거가 없다는 명제를 참이라고 하며, 눈에 잘 띄지 않는 과정과 절차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작게는 개인의 흔적 남아있는 곳이고 거창하게는 문명 교류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연행로의 지리공간을 세부적으로 탐색하는 일은 필요한 작업이다. 기억하지 않는 과거는 소멸되어 부재가 될 것이고, 의미를 부여하며 지적으로 관리하는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 삶의 무대로 거듭날 것이기 때문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학문적 기여도

    첫째, 遼陽-鞍山-廣寧 구간의 연행로를 복원할 수 있다. 둘째, 이 구간을 배경으로 하는 연행 문학의 해독과 해석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연행록 속 시문은 역사 맥락과 지리 형세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선 이해 없이는 해석은 물론 해독도 어려운 작품들이 많다. 셋째, 연행로 전체에 대한 종합적 연구의 일부가 됨은 물론 그를 위한 하나의 방법론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연행로에 대한 인문지리학적 연구는 연행 연구를 촉진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연행로 연구는 한중 문화 교류, 나아가 한반도 문명의 형성과 이동을 해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넷째, 한국학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향후 北京이나 東京, 아니면 遼東이나 對馬島처럼 우리 역사와 긴밀한 관련이 있었던 공간은 물론, 근대 이후 한국인들의 활동 무대가 된 해외 공간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푸는 데 있어 하나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다섯째, 연행록 연구를 주도하는 방법론을 선점할 수 있다. 최근 동아시아학계의 연행록에 대한 관심은 부쩍 높아지고 있지만 연행록은 그 朝貢使行의 산물이라는 중세적 성격 때문에, 그들의 관점에서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본 연구는 동아시아 차원에서 연행록 연구를 어떻게 주도할 것이며, 나아가 어떠한 전망을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 될 것이다.

    2. 사회적 기여도

    첫째, 연행로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 성과는 다큐멘터리, 답사기 또는 여행기 등으로 2차 생산될 필요가 있다. 이는 결국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회적인 이해지수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한중 교류의 확대 및 우호의 증진에 기여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오랜 세월 우호협력과 갈등대결을 거듭해왔는데, 몇몇 시대적인 한계 안에 있기는 해도 연행로는 두 나라 사이의 우호와 협력을 상징하는 길이다. 이 길을 조명하고 복원하는 것은 과거의 재정리에 그치지 않고, 두 나라 사이 평화 협력의 역사적 상징이 될 것이고, 바람직한 관계 설정의 지남이 될 것이다. 본 연구 결과는 우리 입장에서 한중 우호 협력 관계를 위한 교훈과 지침을 얻는 것은 물론, 중국 쪽에도 그러한 방안을 제공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의 고대사, 또는 역사 속의 북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제고시킬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고 있는 구간은 대부분 고대 朝鮮, 고구려, 발해의 고토와 중첩되며, 연행기록에도 그러한 사실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종종 보인다. 본 연구는 영토, 경계 등의 배타적 접근방법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선과 문화적 접근을 통해 자연스럽게 북방과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교육과의 연계 활용 방안

    첫째, 역사지리 교육과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다. 본 연구의 대상 지역은 연행로이자, 그 이전과 이후 한중 두 나라의 소통과 충돌이 빈번하게 되풀이되었던,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와 유관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둘째, 문학 교육과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다. 燕行은 외교 사행이면서, 여행이기도 했다. 수많은 지식인들은 연행을 통해 이국의 풍물과 산천은 물론, 문헌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역사의 현장을 체험할 수 있었다. 여행은 문학이 탄생하는 유력한 지점이니만큼, 연행은 수많은 문학작품을 낳았다. 본 연구 결과는 한국문학사, 한문학, 여행문학 등의 영역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셋째, 비교 민속학 교육과 연계하여 활용할 수 있다. 연행록은 그 모두가 중국의 풍물 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행록이 담고 있는 풍물의 범주에는 의복, 건축, 언어, 종교, 민속, 도시, 서지 등이 두루 포함되어 있다. 해당 자료들을 분류 정리한 연구 결과는 한중 간 비교 민속학의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본 연구의 성과의 교육적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사진 · 지도 · 동영상 · 음향 등을 활용한 2차 생산으로 이어져야 한다. 본 연구는 그러한 2차 생산을 고민하고 준비할 계획이다.
  • 색인어
  • Route of Diplomatic Envoy to Beijing(燕行路), Anshan(鞍山), Haizhou(海州), Niujiazhuang(牛家庄), Shanchahe(三叉河), Panshan(盤山), Yodongbyeonjang(遼東邊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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