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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미국 유학생의 조선노동문제 인식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08-327-A00076
선정년도 2008 년
연구기간 1 년 (2008년 11월 01일 ~ 2009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이상의
연구수행기관 연세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한국 사회에서 노동문제는 이미 일제하부터 본격화되었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에서 한국인 노동자는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는 상태에서 인적 자원으로서의 미만을 지니고 있었다. 노동자는 없고 노동력만이 존재했던 일제 강점기 노동정책의 특징은, 태평양전쟁기에 이르기까지 노동문제 담당부서가 존재하지 않았고 노동법이 시행된 적이 없었던 데서도 드러난다. 이에 비해 해방 이후에는 노동운동이 급격히 성장하여 정부수립 이후와 전쟁의 와중에서도 지속되었고, 그러한 배경 위에서 마침내 헌법과 노동법의 제정에 의해 노동자의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기에 이르렀다. 정부수립 이후의 노동문제는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노동문제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었지만, 이전 시기에 비해 주권국가 안에서의 노동문제라는 커다란 차별성을 지녔다. 또한 이 시기의 노동문제는 노동법과 노동정책의 기본 체계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발생한 것으로서, 이후 한국 사회 노동문제의 원류가 되었다는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정부수립 후에 제정된 勞動組合法과 勞動委員會法, 勞動爭議調整法, 勤勞基準法의 소위 노동4법은 한국사회의 경제발전과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선진국의 법률을 참고하여 제정된 탓에 한국의 사회현실과는 동떨어지는 내용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곧 법적으로는 노동자들의 권리 옹호와 민주적 노동운동을 할 수 있는 기초를 완성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억압적이고 수직적인 노동정책이 실행되는 모순이 존재하고 있었다. 본 연구의 목표는 해방 후 노동정책에서 보이는 이러한 법적인 선진성과 현실정책의 후진성의 괴리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해방 후 남한사회에서 전개된 노동정책은 크게 두 부류의 세력에 의해 실행되었다. 하나는 일제 강점기부터 관리의 지위에 있거나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전시통제경제기에 지녔던 노동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해방 후 국가수립 과정에서 노동정책을 운영하고자 하였던 세력이다. 또 하나는 일제하에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미국식 자본주의에 입각하여 노동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미군정기에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하여 노동정책 추진을 담당하였던 세력이다. 이 두 세력은 주로 민족주의 계열의 지식인으로서, 대개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현실을 타개하고 새로운 진로를 찾고자 하는 희망을 가지고 유학을 선택하였다. 유학 이후 이들이 보여준 노동관은 궁극적으로는 같은 체제를 지향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인식에 있어서는 자신의 경험과 학습과정의 차이에서 유래하는 차별성을 드러내었다. 이들 중에서도 미국 유학생 출신 지식인들은 당시 민족주의 계열의 유력한 그룹이자 재생산기반의 하나인 기독교 사회세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었고, 여러 전문분야의 지도적 위치를 점하면서 각종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미국유학을 통해 근대 자본주의 경제사상을 체득하는 한편 대공황을 맞은 미국 사회가 그 대책을 마련하고 위기를 넘어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이들은 해방 후 남한의 자본주의 국가건설 과정에 대거 참여하여 우익 지도부의 일각을 형성하였다. 미군정 통치기구와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적극 참여하여 자신의 인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근거한 국가건설의 기초를 다져 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 유학생 출신 지식인들의 지식 수용과정과 사회․경제인식에 대한 검토는 한국 근현대 지성사의 구도와 민족주의 계열이 지닌 국가건설론의 추이를 계통적으로 추적하는 데 중요한 연구주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들의 노동관에 대한 검토는 일제하 한국 민족주의의 사상과 해방 후 남한의 국가건설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연구사적 의미를 지닌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일제강점기 미국유학을 통하여 근대 자본주의 경제학을 체득하고 귀국하여 민족․자본주의 진영에서 활동하면서 해방 후 남한 자본주의 사회의 주역이 되었던 지식인들의 사회․경제사상을 노동관을 중심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일제하 한국인의 민족․자본주의 사회․경제사상의 일단을 살펴보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그들 대부분이 해방후 우익 이데올로그로서 남한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와 이념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방후 분단체제 형성의 사상사적 배경을 밝히는 작업이기도 하다. 곧 남북 분단의 내적 원인을 고찰하고 향후 통일국가의 경제이념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도 일제하 미국 유학생들의 노동문제 인식을 통해 그들의 사회․경제사상을 고찰하는 작업은 그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 기대효과
  • ① 남북분단의 내적 원인 고찰과 통일국가의 경제이념 모색 일제하 민족운동의 목적은 주권을 회복하여 새로운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었다. 당시 유학생들은 대개 장차 새로운 사회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유학길에 나섰고, 유학을 통해 습득한 근대지식을 발판으로 주권회복 이후 건설할 새로운 국가를 구상하였다. 그들 대부분이 해방후 우익 이데올로그로서 남한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와 이념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해방후 분단체제 형성의 사상사적 배경을 밝히는 작업이기도 하다. 남한의 자본주의 국가 건설의 일익을 담당하고 그 주역이 되었던 인물들의 사회․경제사상을 해명하는 작업은, 남북 분단의 내적 원인을 고찰하고 향후 통일국가의 경제이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② 한국 근현대 노동문제 연구를 통한 여타 분야 연구의 활성화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의 노동문제에 관련된 연구는 1990년을 전후하여 일정한 진척을 보였으나 현재는 소강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원인의 하나는 노동정책 이데올로기가 규명되지 않은 것에 있다. 노동정책의 실상과 이데올로기, 그 성격이 규명되지 않는 한 노동관련 연구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노동정책의 내용과 방향, 정책 입안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입장에 대한 고찰 역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정책 실행 주체들의 노동관과 그 형성과정의 고찰을 통해 노동문제의 위치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현재 답보 상태에 있는 노동운동 연구를 비롯하여 한국 근현대의 사회 경제정책의 성격, 사상정책의 수립 과정 등 여타 분야의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③ 노동문제 연구를 통한 한국사회 근대화의 구조와 성격 규명 한 사회의 근대화의 지표는 노사관계의 정립 정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를 통해서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정부수립기 정책의 본질을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책의 차원에서 분석할 경우 이를 바탕으로 각 시기의 사회구성의 성격도 전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동법이 시행되지 않았고 노동문제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었던 일제강점기와 일제의 지배에서 해방이 되고 노동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었지만 노동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미군정청이 지니고 있었던 미군정기, 마침내 노동법이 제정되었지만 노동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법률이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던 정부수립기 각 시기의 차별성과 여전히 각 시기를 관통하는 노동문제의 공통적인 한계도 본 연구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노동의 주체였던 노동자들은 자본과 공권력에 일상적으로 저항을 모색하였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近代性’의 경험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해방 이후 국가건설 구상의 한 축으로 대두하였던 노동자․농민 중심의 국가건설 방략이 지지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이해도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한국사회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과정에서 그러한 운동이 좌절되고 새로이 자본주의 국제질서에 편입되면서 구조화된 남한 사회의 자본주의 문화의 특성이나 노사관계의 특질에 대한 규명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곧 본 연구에서 노동문제 인식을 통해 근대화 과정의 맥락을 고찰한다면, 이를 통해 우리사회 근대화의 구조와 성격을 규명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④ 현실 노동문제의 원인 고찰과 그 해결방안 모색 작금의 한국사회의 노동문제와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극복의 전망은 노동문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분석을 통해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하의 파시즘적 노동정책으로 인해 국가와 자본가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형태로 구축된 노사관계는 해방 이후 남한 자본주의 전개과정에서 파행적인 경제구조를 이루는 출발점이 되었으며, 분단을 전후해 형성되거나 재생산된 노동문제의 본질은 현재까지 그 잔재를 남겨두고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자본 임노동 관계를 넘어서서 상하관계로 규정되는 면이 강하고, 작업장 내에 군사적인 문화가 잔존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따라서 해방 후 국가건설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미국 유학생들의 노동문제 인식에 대한 연구는 현재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삶과 의식을 고찰하고 작금의 노동문제를 직시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 연구요약
  • 일제하 한국인이 유학할 당시 미국의 대학은 개인중심주의와 실용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학풍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유학생들은 자본주의 세계관과 사회관을 공유하면서도 한국의 경제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는 경제자립의 방향을 달리하는 두가지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이 시기 미국 경제학계 내에서는 신고전파 자유주의 경제학과 제도주의학파의 사회개혁적 경제학이 각축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해 모든 기업활동의 보호와 장려를 주장하는 김도연, 이긍종, 김우평 등의 경제적 자유주의, 그리고 반독점의 견지에서 중소자본과 소농의 보호 육성을 중시하는 이대위, 한승인, 이훈구, 조병옥 등의 경제적 민주주의가 입장을 달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낙후된 한국경제의 생산력을 제고하는 것이 자립경제 건설의 기초라는 데는 이들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 방안으로 특히 공업육성에 주안점을 두고 과학기술 교육을 통한 기술력의 확보, 자본의 집중을 통한 대자본의 육성, 과학적 경영을 통한 생산능률의 증대 등을 제시하였다.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의 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을 필요악으로 바라보는 경제적 자유주의 계열과 노자협조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경제적 민주주의 계열의 입장이 대비되었다. 이와 더불어 대공황 이후 뉴딜정책의 경험은 시장경제의 자율성 보장과 정부의 적극적 개입 가운데 어느 것이 경제발전에 더 유용한지를 판단하도록 요구하는 새로운 문제로 제기되었다. 일제하 미국 유학생들의 상당수는 안창호의 흥사단․동우회 계열과 이승만의 동지회․흥업구락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특히 콜롬비아대학을 비롯한 미국 동부지역의 여러 대학에서 경제학 혹은 교육학 등을 수학한 이들이 이후 한국 사회․경제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본 연구에서 주로 검토할 인물은 김도연(1926년 콜롬비아대학 문학사, 1931년 아메리칸대학 경제학박사, 초대 재무부장관), 김현철(1930년 런티버러대학 학사, 1932년 콜롬비아대학 석사, 1933년 아메리칸대학 박사, 재무부장관), 최순주(뉴욕대 상학박사, 조선은행 총재, 재무부장관) 등 생산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자립을 지지하는 입장과 한승인(1929년 미주리주립대학 문학사, 1931년 콜롬비아대학 상학사), 이대위(예일대학, 콜롬비아대학 교육학 석사, 미군정기 노동부장), 이훈구(1927년 캔사스주립대학 학사․석사, 1929년 위스콘신대학 농학박사, 미군정기 농무부장), 조병옥(1923년 콜롬비아대학 문학사, 1925년 박사과정 수료, 내무부장관) 등 분배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자립을 주장했던 이들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을 크게 경제적 자유주의 그룹과 경제적 민주주의 그룹으로 구분하여 그들의 노동관을 고찰하고 아울러 그 인식이 이후 한국사회의 노동문제를 해결 혹은 재생산해 나가는 과정을 탐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목차를 구성한다. 1. 서언 2. 대공황 전후 미국사회의 노동문제 인식 3. 경제적 자유주의 그룹의 노동관 4. 경제적 민주주의 그룹의 노동관 5. 결어 2장에서는 우선 대공황 전후 미국 사회의 노동문제와 그에 대한 미국학계의 인식, 미국사회의 정책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유학생들의 노동문제 인식의 배경을 고찰한다. 유학생들이 당시 목도한 미국사회의 경제현실과 노동현실, 그리고 그에 대한 국가의 정책시행 과정은 이들이 이후 정책 실행자의 위치에 놓였을 때 자신의 경험으로 되새길 수 있는 중요한 모델이 되었다. 유학생들의 노동관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크게 두 개의 시각으로 나뉘는데, 3장에서는 그 중 생산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자립론을 주장했던 경제적 자유주의 그룹의 노동관에 대해 살펴본다. 이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자유로운 발전을 옹호하고 시장기구를 주로 탐구하는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필요악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에서는 김도연, 최순주, 김현철 등의 인식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에 비해 4장에서는 분배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자립론을 주장했던 경제적 민주주의 그룹의 노동관에 대해 살펴본다. 이들은 정부나 제도의 사회정책적 시장통제를 통해 독점문제와 분배문제, 노사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미국 제도주의 경제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빈부문제의 대안으로 노자협조를 제시하였다. 미군정기 노동부장을 역임했던 이대위와 한승인, 이훈구, 조병옥 등이 주 서술 대상이 될 것이다.
  • 한글키워드
  • 일제강점기,미국 유학,유학생,해방 후,노자협조론,실용주의,개인주의,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반공주의,신한민보,경제적 자유주의,자본주의 경제학,자본주의 진영,민족주의 계열,사회사상,경제사상,노동문제,노동관,우라키,노동 이데올로기,노동정책,노동자,노동자의 삶,경제적 민주주의
  • 영문키워드
  • Liberalism,Discussion of Cooperation between Labor and Capital,Capitalists,Nationalists,Social Thought,Economic Thought,View on Labor Problem,Studying in the U.S.,Korean Students in the U.S.,Post-1945 years,Japanese Colonial Period,Laborer,Anti-Communism,Liberal Democracy,Sinhan minbo,Individualism,Pragmatism,Capitalistic Economics,Economic Liberalism,Economic Democracy,Life of Laborer,Uraki,Labor Policy,Ideology on Labor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에서는 일제하의 미국 유학생들을 크게 경제적 자유주의 그룹과 경제적 민주주의 그룹으로 구분하여 그들의 노동관을 고찰하고 아울러 그 인식이 이후 한국사회의 노동문제를 해결 혹은 재생산해 나가는 과정을 탐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목차를 구성하였다.

    1. 서언
    2. 대공황 전후 미국사회의 노동문제 인식
    3. 경제적 자유주의 그룹의 노동관
    4. 경제적 민주주의 그룹의 노동관
    5. 결어

    2장에서는 우선 대공황 전후 미국 사회의 노동문제와 그에 대한 미국학계의 인식, 미국사회의 정책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유학생들의 노동문제 인식의 배경을 고찰하였다. 유학생들이 당시 목도한 미국사회의 경제현실과 노동현실, 그리고 그에 대한 국가의 정책시행 과정은 이들이 이후 정책 실행자의 위치에 놓였을 때 자신의 경험으로 되새길 수 있는 중요한 모델이 되었다.
    유학생들의 노동관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크게 두 개의 시각으로 나뉘는데, 3장에서는 그 중 생산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자립론을 주장했던 경제적 자유주의 그룹의 노동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자유로운 발전을 옹호하고 시장기구를 주로 탐구하는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필요악으로 바라보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에서는 김도연, 최순주, 김현철 등의 인식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이에 비해 4장에서는 분배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자립론을 주장했던 경제적 민주주의 그룹의 노동관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들은 정부나 제도의 사회정책적 시장통제를 통해 독점문제와 분배문제, 노사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미국 제도주의 경제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빈부문제의 대안으로 노자협조를 제시하였다. 미군정기 노동부장을 역임했던 이대위와 한승인, 이훈구, 조병옥 등을 서술 대상으로 하였다.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로 고찰하는 대상자들은 노동문제와 직접 관련된 학문이 아닌 경제학 혹은 상학을 전공한 인물로서 그들에게 노동문제는 부차적인 관심사였고, 또한 미국 자본주의의 틀에 근거하여 노동문제를 바라보았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 또한 미국 유학생들의 특징이었음에 유의하였다.
    본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주로 문헌자료를 이용하였다. 가장 중요한 자료는 본고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인사들의 회고록(金度演, 󰡔나의 人生白書 : 常山回顧錄󰡕 ; 張利郁, 󰡔나의 回顧錄󰡕 ; 趙炳玉, 󰡔나의 回顧錄󰡕 등) 혹은 개인적인 저술과 北美朝鮮學生總會에서 발간한 󰡔우라키󰡕, 大韓人國民會에서 발행한 󰡔新韓民報󰡕 그리고 󰡔동광󰡕, 󰡔별건곤󰡕, 󰡔三千里󰡕 등의 잡지에 실린 기사, 정책 시행과 관련되는 공식문건 등이다. 이와 함께 가능하면 이들의 사상이 응축되어 있는 학위논문을 직접 구해 심도 있게 분석하는 한편, 그들이 젊은 시절 미국 지역에서 활동했던 궤적을 추적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대공황기 전후의 미국이라는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서 어떠한 지적 흐름 위에서 이들의 노동관이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그 노동관은 한국이라는 공간에서 또 해방 후라는 시간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발현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 영문
  • Study on How Korean Students in the U.S. understood the Korean Labor Proble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일제하 한국인이 유학할 당시 미국의 대학은 개인중심주의와 실용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학풍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유학생들은 자본주의 세계관과 사회관을 공유하면서도, 한국의 경제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경제자립의 방향을 달리하는 두가지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이 시기 미국 경제학계 내에서는 신고전파 자유주의 경제학과 제도주의학파의 사회개혁적 경제학이 각축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해 모든 기업활동의 보호와 장려를 주장하는 김도연, 이긍종, 김우평 등의 경제적 자유주의, 그리고 반독점의 견지에서 중소자본과 소농의 보호 육성을 중시하는 이대위, 한승인, 이훈구, 조병옥 등의 경제적 민주주의가 입장을 달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낙후된 한국경제의 생산력을 제고하는 것이 자립경제 건설의 기초라는 데는 이들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 방안으로 특히 공업육성에 주안점을 두고 과학기술 교육을 통한 기술력의 확보, 자본의 집중을 통한 대자본의 육성, 과학적 경영을 통한 생산능률의 증대 등을 제시하였다.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의 부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을 필요악으로 바라보는 경제적 자유주의 계열과 노자협조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경제적 민주주의 계열의 입장이 대비되었다. 이와 더불어 대공황 이후 뉴딜정책의 경험은 시장경제의 자율성 보장과 정부의 적극적 개입 가운데 어느 것이 경제발전에 더 유용한지를 판단하도록 요구하는 새로운 문제로 제기되었다.
    미국 유학생들의 인식에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회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었다. 이들은 실용주의적 과학정신과 자본주의의 사유재산 옹호론, 기독교의 종교 도덕과 자유주의를 논거로 하여 사회주의 사조에 대해 단호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와 더불어 개인의 사상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허용된다는 자유주의에 기초한 반공논리도 등장하였다.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은 1920년대 이후 유학생 사회 안에서 하나의 사상적 공감대를 형성하였는데, 해방 후 남한 자본주의국가 건설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그룹이 미국 유학생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해방 후 분단체제 형성과 관련해 그들의 이같은 자유주의에 기초한 반공논리가 갖는 의미는 적지 않은 것이었다.
    이들의 상당수는 안창호의 흥사단․동우회 계열과 이승만의 동지회․흥업구락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특히 콜롬비아대학을 비롯한 미국 동부지역의 여러 대학에서 경제학 혹은 교육학 등을 수학한 이들이 이후 한국 사회․경제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본 연구에서 주로 검토할 인물은 김도연(1926년 콜롬비아대학 문학사, 1931년 아메리칸대학 경제학박사, 초대 재무부장관), 김현철(1930년 런티버러대학 학사, 1932년 콜롬비아대학 석사, 1933년 아메리칸대학 박사, 재무부장관), 최순주(뉴욕대 상학박사, 조선은행 총재, 재무부장관) 등 생산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자립을 지지하는 입장과 한승인(1929년 미주리주립대학 문학사, 1931년 콜롬비아대학 상학사), 이대위(예일대학, 콜롬비아대학 교육학 석사, 미군정기 노동부장), 이훈구(1927년 캔사스주립대학 학사․석사, 1929년 위스콘신대학 농학박사, 미군정기 농무부장), 조병옥(1923년 콜롬비아대학 문학사, 1925년 박사과정 수료, 내무부장관) 등 분배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자립을 주장했던 이들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을 크게 경제적 자유주의 그룹과 경제적 민주주의 그룹으로 구분하여 그들의 노동관을 고찰하고 아울러 그 인식이 이후 한국사회의 노동문제를 해결 혹은 재생산해 나가는 과정을 탐색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을 크게 경제적 자유주의 그룹과 경제적 민주주의 그룹으로 구분하여 그들의 노동관을 고찰하고 아울러 그 인식이 이후 한국사회의 노동문제를 해결 혹은 재생산해 나가는 과정을 탐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목차를 구성하였다. 1. 서언 2. 대공황 전후 미국사회의 노동문제 인식 3. 경제적 자유주의 그룹의 노동관 4. 경제적 민주주의 그룹의 노동관 5. 결어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의 학문적, 사회적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1. 남북분단의 내적 원인 고찰과 통일국가의 경제이념 모색 : 일제하 민족운동의 목적은 주권을 회복하여 새로운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었다. 당시 유학생들은 대개 장차 새로운 사회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유학길에 나섰고, 유학을 통해 습득한 근대지식을 발판으로 주권회복 이후 건설할 새로운 국가를 구상하였다. 그들 대부분이 해방후 우익 이데올로그로서 남한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와 이념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해방후 분단체제 형성의 사상사적 배경을 밝히는 작업이기도 하다. 남한의 자본주의 국가 건설의 일익을 담당하고 그 주역이 되었던 인물들의 사회․경제사상을 해명한 본 작업은, 남북 분단의 내적 원인을 고찰하고 향후 통일국가의 경제이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2. 한국 근현대 노동문제 연구를 통한 여타 분야 연구의 활성화 :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의 노동문제에 관련된 연구는 1990년을 전후하여 일정한 진척을 보였으나 현재는 소강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원인의 하나는 노동정책 이데올로기가 규명되지 않은 것에 있다. 노동정책의 실상과 이데올로기, 그 성격이 규명되지 않는 한 노동관련 연구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노동정책의 내용과 방향, 정책 입안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들의 요구와 입장에 대한 고찰 역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정책 실행 주체들의 노동관과 그 형성과정의 고찰을 통해 노동문제의 위치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자 한 본 작업은, 현재 답보 상태에 있는 노동운동 연구를 비롯하여 한국 근현대의 사회 경제정책의 성격, 사상정책의 수립 과정 등 여타 분야의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3. 노동문제 연구를 통한 한국사회 근대화의 구조와 성격 규명 : 한 사회의 근대화의 지표는 노사관계의 정립 정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를 통해서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정부수립기 정책의 본질을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책의 차원에서 분석할 경우 이를 바탕으로 각 시기의 사회구성의 성격도 전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동법이 시행되지 않았고 노동문제를 전담하는 부서가 없었던 일제강점기와, 일제의 지배에서 해방이 되고 노동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었지만 노동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미군정청이 지니고 있었던 미군정기, 그리고 마침내 노동법이 제정되었지만 노동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법률이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던 정부수립기 각 시기의 차별성과 여전히 각 시기를 관통하는 노동문제의 공통적인 한계도 본 연구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노동의 주체였던 노동자들은 자본과 공권력에 일상적으로 저항을 모색하였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近代性’의 경험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해방 이후 국가건설 구상의 한 축으로 대두하였던 노동자․농민 중심의 국가건설 방략이 지지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한 이해도 가능할 것이다. 나아가 한국사회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과정에서 그러한 운동이 좌절되고 새로이 자본주의 국제질서에 편입되면서 구조화된 남한 사회의 자본주의 문화의 특성이나 노사관계의 특질에 대한 규명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곧 노동문제 인식을 통해 근대화 과정의 맥락을 고찰하고자 한 본 연구를 통해 우리사회 근대화의 구조와 성격을 규명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4. 현실 노동문제의 원인 고찰과 그 해결방안 모색 : 작금의 한국사회의 노동문제와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극복의 전망은 노동문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분석을 통해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하의 파시즘적 노동정책으로 인해 국가와 자본가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형태로 구축된 노사관계는 해방 이후 남한 자본주의 전개과정에서 파행적인 경제구조를 이루는 출발점이 되었으며, 분단을 전후해 형성되거나 재생산된 노동문제의 본질은 현재까지 그 잔재를 남겨두고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자본 임노동 관계를 넘어서서 상하관계로 규정되는 면이 강하고, 작업장 내에 군사적인 문화가 잔존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따라서 해방 후 국가건설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미국 유학생들의 노동문제 인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삶과 의식을 고찰하고 작금의 노동문제를 직시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기대하면서, 본 연구의 결과는 조만간 한국근대사 분야의 대표적인 학술지에 발표함으로써 학계 차원에서 공유하고자 한다.
  • 색인어
  • 일제강점기, 해방 후, 유학생, 미국 유학, 노동관, 노동문제, 경제사상, 사회사상, 민족주의 계열, 자본주의 진영, 자본주의 경제학, 경제적 자유주의, 경제적 민주주의, 노자협조론, 실용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 자유민주주의, 반공주의, 노동자, 노동자의 삶, 노동정책, 노동 이데올로기, 우라키, 신한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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