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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1920년대 후반, 잡지 [新民]의 표상체계와 여론 창출 전략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08-327-A00448
선정년도 2008 년
연구기간 3 년 (2008년 11월 01일 ~ 2011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이경돈
연구수행기관 성균관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식민지 사회를 연구ㆍ분석하는 새로운 방법론과 분석시각을 도입하여, 1920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게 제시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최근 새로이 제기되고 있는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1920년대 초반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진한 1920년대 후반의 식민지 한국문화 연구에 일조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최근 미디어와 문화 연구 분야를 중심으로 대두하고 있는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목하고자 한다. 대중은 한편으로 식민지시기의 역사적 주체로서 여론과 관련하여 주목받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주체로서 적극적 재해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문학과 언론, 문화사를 잇는 학제간 연구를 모색하였다. 이에 연구 대상 시기는 상대적으로 연구 축적이 취약한 1920년대 후반으로 하되, 다음 세 가지 측면에 착목하여 연구를 진행시키기로 하였다.
    첫째, 미디어 및 문화연구의 방법론의 효과를 적극 반영하여 입체적 시야를 확보한다.
    둘째, 자료 이용의 편중을 극복하기 위하여, 선행 연구가 주요 자료로 이용해온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자료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지만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료를 개발하여 활용하기로 한다.
    셋째, 지배정책과 피지배 한국사회를 상호연관 아래 분석한다.
    이런 세 가지 측면을 방법론적 전제로 삼아, 본 연구에서는 잡지 『신민』을 중점적인 분석대상으로 삼기로 하였다.
    『신민』을 대상으로 한 본 연구의 주요한 연구관심과 분석의 결과 달성하고자 하는 연구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20년대 이래 토지조사사업 등의 식민정책이 추진되고 1920년대 초반을 계기로 민족운동이 활성화됨에 따라, 개별화된 사람들의 집적인 ‘대중’을 거론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이 조성되었다.
    둘째, 대중이 새로운 사회적 집단 또는 현상으로 등장함에 따라,어떤 모습으로 ‘사회’를 편제할 것인가라는 미래에 대한 인식이 사회에 대한 전망에는 깔려 있다. 여론의 조성 혹은 형성에 대한 갈등이 내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대중 또는 대중적 현상과 이를 획득하거나 통제하려는 의도 사이에 반영된 표상체계를 주요한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20년대 후반 사회의 모습을 새로이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다.
  • 기대효과
  • < 학문적 기여 >
    ▶ 식민정책과 한국문화의 변화를 상호연관 하에 살펴보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1920년대 연구 나아가 식민지 연구의 다원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 지금까지 관변잡지 또는 친일잡지로 치부되어 일방적으로 무시되어 왔던 잡지를 연구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새로운 자료를 개발하고 폭넓은 연구 영역을 개척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일제 강점기의 역사주체를 ‘민족’과 ‘인민’에 한정시키지 않고, ‘대중’이라는 새로운 역사주체의 인식과정과 그 의미하는 바를 고찰함으써, 당대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게 될 것이다.

    < 사회적 기여 >
    그간 현대 한국의 시민사회는 그 역할의 과소함과 과대함 때문에 양극단의 평가를 받아왔다. 1980년대 이전에는 시민사회의 부재가 그리고 2000년대 이후에는 시민사회의 과잉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의 기원과 그 성립의 배경 및 성격을 이해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대중문화와 민족주의의 역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상반된 평가가 지배해왔다. 본 연구가 현대 한국의 시민사회와 대중문화의 역사적 기원을 밝힘으로써, 현대 한국의 시민사회와 대중문화의 바람직한 역할 모색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 연구요약
  • 연구 1> 『신민』의 미디어 성격과 ‘대중’ 창출 기획
    1920년대 후반은 역사, 문화적 주체를 두고 여러 세력이 경쟁하던 시기였다. 각 세력은 당시 조선에서의 역사 주체, 문화 주체를 자신의 이념과 전략에 따라 조성하고자 했다. 『조선지광』이 염원했던 조선의 역사, 문화적 주체는 혁명의 주인공으로서의 ‘인민’이었고, 『동광』의 주체가 준비론에 입각한 ‘민족’이었던데 대해, 『신민』의 전략은 ‘대중’이라는 근대적 주체의 창출이었다. 『신민』이 창출하고자 한 근대 주체인 ‘대중’은 시장의 소비자이자, 온순한 농민이며, 근대적 윤리와 질서를 수용하는 시민이었고 결과적으로는 황국에 협력하는 파편화된 개인 즉 신민(臣民)이었다. 총독부의 『신민』을 통한 ‘대중’ 창출 기획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에 맞닿아 있다.

    연구 2> 『신민』의 대중 획득 전략과 ‘여론’의 등장
    1920년대 대중적 현상이 등장하면서 이를 통제하려는 조선총독부의 정책도 심각하게 진전되었다. 예컨대 1923년경부터 유포된 조선에 자치를 부여할 것이라는 소문은 한국의 민족운동 진영을 심각하게 분열시킨 바 있다. 또한 김윤식 사회장 사건을 둘러싸고도 이미 민족운동 사이에 여론 형성을 둘러싼 갈등이 전개된 바 있다. 개별화가 진전되고 대중적 현상이 전개되면서, 민족운동 진영이든 조선총독부 측이든 여론 형성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여론 형성을 위한 메커니즘도 체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 3> 『신민』의 표상체계와 식민지의 대중 및 여론
    조선총독부가 『신민』을 통해 식민지의 대중을 획득하고 여론을 창출하고자 했을 때, 잡지의 지면을 통해 시도될 수 있는 유력한 방법 중 하나는 표상의 장악이었다. 표상(representation)은 인식의 조작 행위와 그를 표현한 것(즉 재현된 것)을 동시에 나타내는 개념이다.『신민』이 발간된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까지의 시기는 급격하게 ‘대중’이 형성되고, 이에 총독부의 지배이데올로기와 민족해방투쟁의 이데올로기, 나아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여론’의 장에서 치열한 각출을 벌이던 시기이다. 『신민』은 특정한 표상체계로 구성되거나 편집됨으로써 대중의 인식을 형성했다.
  • 한글키워드
  • 개벽,주체,신민,근대성,식민주의,표상,여론,대중,별건곤,동광,조선지광
  • 영문키워드
  • representation,kaebyeok,modernity,colonialism,chosunjikwang,byeolgeongon,public opinion,subject,sinmin,mass,dongkwang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925년 5월 창간되어 1933년까지 발행되었던 식민지 조선의 관제 매체 󰡔신민󰡕은, 1920년대 이후 유일하게 신문지법에 의해 발행되었던 잡지였다. 여론의 시대를 준비한 조선총독부의 󰡔신민󰡕 기획은, 제국과 조선총독부의 체취를 은폐하면서 식민지 여론 지형의 취약한 고리를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른바 ‘지방 공민’을 겨냥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활’이라는 당대의 요청을 ‘생계’로 전유하여 사시(社是)로 삼음으로써 사회적 논점을 정치에서 경제로, 국가에서 개인으로, 이념에서 생활로 회향시켰다. 이로써 식민지의 삶이 역전되고 저층으로부터의 ‘풍경 전회’가 창출되었다.
    󰡔신민󰡕의 편집체제도 󰡔신민󰡕의 기획 취지와 연동했다. 적대적 맞수였던 󰡔개벽󰡕의 편집체제를 적극 차용하면서도 조선총독부의 네트워크와 ‘지방 공민’의 관료적 성격에 맞게 변형시켰다. 또 여론의 형성에 발맞추어 설문과 순례의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도입시켰다. 여론 속에서 제국의 논리를 관철시켜야만 했던 󰡔신민󰡕이 시대적 압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사회주의는 비판의 대상으로서만 소개되었다. 󰡔신민󰡕이 필요로 했던 것은 체제 내적 여론에 한정되기 때문이며, 설문/순례의 텍스트가 가진 균열적 파괴력이 논설의 우위성을 넘지 못하도록 조절했던 것도 이와 관련된다. 그렇게 ‘계몽여론’이라는 배합적 텍스트는 식민지민의 요구와 제국의 의지 사이에 착압되어 출현했다.
    󰡔신민󰡕은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식민지에서의 여론을 주도하고자 했던 친제국적 근대주의의 산물이었다. 󰡔신민󰡕은 제국의 논리를 식민지에 뿌리고자 했고, 동시에 식민지의 여론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통제하는 미디어 󰡔신민󰡕은 총독부의 준기관지로서의 제국주의적 ‘계몽’ 책무와 식민지민들의 ‘여론’을 거스르기 어려운 미디어로서의 위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려야 했던 텍스트가 되었다.

    주제어
    여론, 신민, 관제매체, 계몽시대, 여론시대, 텍스트체제, 계몽여론, 교화여론, 공민, 생활, 논설, 설문, 순례
  • 영문
  • Sinmin was a government-manufactured media which was first published on May, 1925 and continued to be published until 1993.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realized that the period of public opinion was starting. To response to this, it made the Sinmin. The main readers of Sinmin was officials. And it dealt with the problems concerning public welfare. It turned social issue about the politics into about the economy. And it also changed ideology into livelihood, government into person.
    The system of editing moved in line with the purpose of plan. It accepted the editing system of the Gaebyeok which was the hostile rival to Sinmin, and changed it to adapt to the network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local officials. And thus, enlightenment of public opinion, which was combined text was appeared by collecting the requirement of colony people and intention of an empire.
    Sinmin that wanted to lead the public opinion in the incipient colony was the product of imperialism. Sinmin was intended not only to plant the imperialism in the colony but also to participate in the process of forming public opinion. So controlling media Sinmin became a text fluctuating continuously as a quasi-government magazine between the obligation of enlightenment and the role of media which should not disregard the public opinion .

    key-words
    Public opinion, Sinmin, Government-manufactured media, Enlightenment of public opinion, Text-system, Officials, Survey, Pilgrimag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식민지시기 '대중'의 등장과 '여론'의 형성을 둘러싼 문화적 역학관계를 탐색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1925년 5월 창간되어 1932년까지 발행되었던 총독부의 준기관지로서 여론의 통제 정책을 대중적으로 보여주는 󰡔신민󰡕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사회에서의 개별화의 진전과 대중 집단의 등장, 이에 따른 다양한 사회상의 제시 그리고 대중 획득과 통제를 둘러싼 갈등의 전개를 전제로, 1920년대 후반 한국사회의 모습을 조선총독부의 대중통제정책과의 관련 아래 해명하기 위하여 본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연구 소주제를 설정하였다.
    연구 1> 『신민』의 미디어 성격과 ‘대중’ 창출 기획
    연구 2> 『신민』의 대중 획득 전략과 ‘여론’의 등장
    연구 3> 『신민』의 표상체계와 식민지의 대중 및 여론
    본 연구는 위와 같은 특성을 가진 잡지 『신민』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하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연구 방법을 도입하고자 한다. 식민지 사회를 연구ㆍ분석하는 새로운 방법론과 분석시각을 도입하여, 1920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더욱 다양하고 풍부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방법론으로는 미디어 및 문화연구의 방법론의 효과를 적극 반영하여 입체적 시야를 확보하고, 자료 이용의 편중을 극복하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지만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료를 개발하여 활용하며, 지배정책과 피지배 한국사회를 상호연관 주목하는 방향을 갖는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먼저 신민의 누락본과 여론을 둘러싼 키워드를 중심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수집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신민』은 식민지 조선의 최종적 권력인 총독부를 배후에 두고 갈등의 균형자로서 스스로를 위치시킴으로써,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을 조정할 수 있는 이해의 차이로 뒤바꾼다. 그리고 『신민』의 논리는 총독부의 정책을 통해 현실의 힘으로 현현한다. 『신민』의 균형 논리는 식민지 내의 갈등 양상을 봉합하고 실제적 권력으로 이를 입증시켜 제국의 권력을 드러내는 형식을 취한다. 이념적 주체로서의 ‘인민’이나 ‘민족’이 제국의 권력 앞에 무력한 것임을 주지시킴으로써 개인을 고립시키고 파편화시켰다. 식민지 조선인을 이념으로 무장하고 조직적 힘을 갖출 수 있는 ‘인민’이나 ‘민족’이 아닌, ‘대중’이라는 이념적으로 파편화된 역사와 문화의 주체를 조성함으로써 식민지 권력의 위력 앞에 복종시키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창출되기 시작한 식민지 여론의 지배력을 확보하게 된다. 여론시대를 주도하는 『신민』의 표상체계는 크게 4가지의 특성을 보인다. 첫째, 거대 제국 표상의 적극적 활용. 둘째, 농촌과 농민의 표상에 관심. 셋째, 안정과 균형의 표상체계. 넷째, 대중문화에 있어 일본적 표상의 혼합적 배치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정 표상체계를 근거한 평(評)론(論)설(說)의 텍스트들은 1926년, 1932년을 전후로 하여 적지 않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26년의 변화는 『개벽』을 위시한 조선인 유력 매체를 폐간시키고 언로의 폭을 줄이는 것을 한편으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 『신민』을 위시한 총독부 정책 홍보의 수단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1932년의 변화는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주의와 조치를 활용해 평(評)론(論)설(說)의 텍스트 자체를 제거하거나 위상을 약화시키는 방법을 취했던 것이다. 일련의 평(評)론(論)설(說)의 텍스트에 대한 압박은 여론의 편향 및 유도를 가능하게 했으며, 여론체제에서 전시체제로의 이행은 이를 기반으로 가능했다.
  • 색인어
  • 신민, 대중, 계몽여론, 공통감각, 텍스트체제, 논설, 사설, 평설, 이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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