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죽음은 현세와 이세, 육체와 영혼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플라톤 식의 사유에 의하면, 죽음은 육체와 영혼 간의 분리로서 순수 인식, 진리의 빛에 접근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지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이 아니고, ...
흔히 죽음은 현세와 이세, 육체와 영혼의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플라톤 식의 사유에 의하면, 죽음은 육체와 영혼 간의 분리로서 순수 인식, 진리의 빛에 접근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지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이 아니고, 우리가 죽은 다음의 일이네.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있는 동안은 순수한 인식을 가질 수 없다면, 두 가지 일 가운데 하나가 가능할 것이기에 말일세. 즉 인식에 전혀 도달할 수 없거나, 아니면 죽은 후에야 도달할 수 있거나 어느 하나일세.”(플라톤, <<파이돈>>) 죽음은 동시에 육체와도 긴밀하다. 즉 죽음은 육체의 종말이기도 하다. 플라톤 이후에도 수많은 철학자, 심리학자, 작가들이 언제나 죽음을 중요한 주제로 삼아 왔지만, 사실 엄격히 말하면 그 누구도 죽음 자체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경험을 전제하는 것인데, 살아 있는 자란 아직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누군가 죽음을 경험했다면, 그는 존재하지 않는, 언어화의 능력을 더 이상 갖고 있지 못한 자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자가 죽음 자체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가운데 볼테르는 동물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죽는 것을 “알고 있는”(wissen)을 유일한 생물체라고 말한 바 있다(Voltaire, 1985: 144). 결국 자신이 죽는다는 것에 대한 앎이 있을 뿐, 죽음 자체가 무엇인지는 인간의 지적 한계 내에 있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1923년에 발표된 김억의 시를 통해 읽어낼 수 준다. “죽음이란 잠일가, / 꿈도 없는 새캄한 잠일가? / 그럿치 안으면 꿈일가. / 색캄한 잠 속에 생기는 밝은 꿈일가 / 우리들은 그것을 몰은다. 알 수가 업다. / 그러기에 죽음이란다 / 그것이 죽음이란다.”(김억, <<해파리의 노래>>) 결국 인간이 죽음에 관해 이야기할 경우, 그것은 죽음 자체보다는 그것에 관한 자신의 지식에 불과하다. 그 지식은 시청각 기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점차 부패되어 뼈만 남는 육체의 물질성 같은 현상, 삶의 한계와 불안의 상황, 피안에 대한 동경 등에 관한 것이다. 이처럼 죽음 자체의 본질적인 규명은 불가능하고 그 대신 단지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 죽음에 대한 앎/지식은 주로 타자의 죽음에 대한 간접적인 관찰의 결과이거나 혹은 죽음에 대한 자신의 불안감의 표상과 상상의 결과인 것이다. 상상적인 것 혹은 간접적인 것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앎은 결코 죽음 자체와 동일시될 수 없음을 하이데거는 이미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죽음은 상실로 드러나지만 그 죽음은 남아 있는 이들이 경험하는 손실 이상이다. 죽은 자가 ‘고통 받는’ 존재의 상실 자체는 그 손실의 고통 속에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정말 순수하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고작해야 ‘거기에 함께’ 있을 뿐이다”(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흔히 존재의 상실로서 타자의 죽음과 함께 한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죽음 혹은 상실 자체가 아니며 단지 외적으로만 그 죽음과 함께 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죽어가는 이를 지켜보는 우리는 그 죽음 자체 혹은 죽는 자의 고통 자체를 경험하지 못한다.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 속에서 하이데거는 그 누구도 “나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도 그 누구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는 죽음의 존재론적 논리를 펼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죽음을 “본래적인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독일에서 세기말로 일컬어지는 19세기말 및 20세기 초기의 독일 작품과, 한국 문학에서는 근대화 시기라 불리는 20세기 초기의 문학작품이 각기 중점적으로 비교 분석될 예정이며, 아울러 독일과 한국의 60년대 후반부터 최근 문학작품에서 죽음이 어떻게 허구적으로 이미지화되는지도 살펴볼 예정이다. 20세기가 중요한 이유는 죽음이 대량 생산되는 현대 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 때문이며, 이 시기에 나름대로의 이미지화 방식을 통해 각각의 문학작품은 사회적으로 강요된 죽음에 대항하는 동시에 고유한 죽음을 찾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양 문학작품에 허구적으로 이미지화된 죽음을 범주화시키기 위해, 몸 자체의 생물학적 소멸, 허무와 추한 육신의 죽음, 아름다운 죽음, 에로틱한 죽음, 비개성적 존재의 죽음, 사회적 교환가치로서의 죽음, 추상적, 상징적 죽음, 자발적인 죽음, 잠행적 죽음, 충동적 죽음, 관습적 죽음, 강요된 죽음 등 다양한 범주를 설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