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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곧 빛이다: 존 던의 『성시』, 불교의 공(空)사상으로 읽기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08-327-A00627
선정년도 2008 년
연구기간 1 년 (2008년 11월 01일 ~ 2009년 10월 31일)
연구책임자 이상엽
연구수행기관 홍익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영국 17세기 시인 존 던(John Donne 1572-1631)의 『성시』(Holy Sonnets)를 다룬 국내외의 논문들을 살펴보면, 『성시』에 나타난 죄와 구원이라고 하는 서양의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만 다루어져 있다. 대부분 논문의 초점은 죽음을 통한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화자의 내적 성장과정을 밝히는 글들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이 작품이 어조(tone)로 볼 때 던이 명백한 신의 구원에 이르렀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오히려 던의 구원을 표현했다기보다는 최후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죄로 인하여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알 수 없는 던의 두려움을 나타낸 것이다. 또한 신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고 은총을 받은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고 하는데 이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러한 점에서 던의 『성시』에 대한 읽기방식을 달리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왜냐하면『성시』의 화자들은 신에게 강한 논박을 하기도 하고 분노를 터트리기도 하고 위협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후회와 회개를 하면서까지 신의 응답을 구하려고 하지만 모두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던 시의 특징으로서 연애시든 종교시든 그의 시에 나타난 화자는 늘 여인, 친구, 죽음, 신, 아니면 자기 자신과 긴급한 열띤 논쟁(heated argument)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화자의 구원과 신의 침묵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가? 침묵하는 신과 간청하는 화자 사이의 논박을 독자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렇듯 신의 침묵에 관하여 화자의 입장과 독자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본 논문의 주제이며, 이것을 밝히는 것이 본 과제의 목적이다. 이러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기존의 시각과는 달리 하나의 방편(方便 upaya)으로서 대승불교의 공(空 sunyata)사상을 통해 해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에 앞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부정의 길’(via negativa)을 먼저 이해하고 이것과 연결하여 이와 유사한 불교의 공사상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다.
  • 기대효과
  • 20세기 시인 엘리엇(Eliot)의 모더니즘의 시학은 프랑스 상징주의의 조응과 형이상학파 시의 기상을 결합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이 상징주의의 조응과 형이상학파 시의 기상(conceit)은 불교의 공사상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프랑스 상징주의와 불교의 사상을 비교해 보면 유사점이 많은데, 서로를 반영하는 그물망에 박힌 다면체의 보석들처럼 현상 세계의 다양한 사물들은 상호의존 관계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는사사무애(事事無碍)나 이사무애(理事無碍)는 상징주의의 ‘수평적 조응’과 ‘수직적 조응’에 해당하는 것이다. 사사무애와 이사무애는 도한 상호의존관계를 이루는데, 곧 “반대의 균형 혹은 화해”라고 할 수 있다. “반대의 균형 혹은 화해”라는 것은 콜리지의 상상력과도 통한다. 이와 같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무애사상은 상징주의뿐만 아니라 엘리엇 시학의 또 다른 토대가 되었던 17세기 형이상학파의 기상과도 성격이 유사하다. 형이상학파 시들의 특성으로서 “이질적인 관념들의 결합”인 기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만물 유추”(universal analogy)의 관점에서 볼 때도 무애의 사상과 매우 유사한 것이다.
    서양과 동양은 사상에서 이질적이라고 보는 전통적인 편견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를 불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흔히 서양하면 실체론적 사고를 하고 사물을 이분법으로 분석하는 반면에 동양은 관계의 사고로서 합리적 논증보다는 직관의 통찰을 중시한다고 한다. 서양은 이데아를 상정하고 여기에 이르기 위하여 구성적 사유를 한다면 동양은 도(道)든 진여실체든 이에 이를 수 없다며 해체적 사유를 한다는 것이다. 서양이 동일성을 추구한다면 동양은 그것은 실은 차이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과 서양은 상통하는 점이 많이 있다. 특히 이분법적 사유에서 벗어나려는 태도에서 유사점을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 과제/논문은 던의 형이상학파 시를 불교의 공사상으로 이해함으로써 동양과 서양 사상의 유사점을 토대로 17세기 영시의 분야에서도 동서양이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데 그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끝으로 각 대학교나 대학원 영문과의 영미시 수업에서 현대영미시와 같이 17세기 형이상학파 시를 설명할 때도 동양의 불교사상으로 시 설명을 할 수 있는 강의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 연구요약
  • 던의 『성시』에서 화자들은 신으로부터 불가피하게 소외되었지만 그것이 절망의 원인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의 어두운 밤과 같이 비록 신은 비-존재로 경험되고 있지만 신은 또한 화자의 삶을 재조정하는 하나의 원동력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대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이 하나이고 똑같다.” 올라가는 길, 즉 ‘긍정의 길’에 나타난 신의 모습은 자비의 얼굴로 나타나는 반면에 내려가는 길인 ‘부정의 길’에 나타난 신의 모습은 냉정한 모습니다. 그러나 둘 다 사랑의 사다리의 계단이다. 화자들이 내적인 성장을 달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또한 비록 신으로부터의 소외로 인한 두려움이 결코 치유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것은 깨달음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독자의 견지에서 볼 때는 신은 화자로부터 간청의 말을 듣고 있으며 불러내어지고(invoked)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신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화자들은 신에 대한 의문으로 몰두해 있다고 하는 점에서도 신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가슴을 때리소서」에서 화자는 자신의 이성이 “포로가 되어 미약하고 진실되지 못한 것으로 입증된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그는 신이 행동하기를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화자는 이것을 신이 “강탈”(ravish)해 주지 않으면 그는 결코 순결해질 수 없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곧 인간 이성의 부족함/불완전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화자가 신에게로 돌아서는 것도 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은 왜 자신에게는 베풀지 않고 냉혹한 분노에 싸여 자신을 위협까지 하는가 하고 반항하던 화자의 어조가 바뀌고 있다. 그 동안 화자의 불안과 괴로움은 분별하려는 자기중심적인 주관인 ‘나’(I)가 있었기 때문인데, 만약 ‘나’가 없다면(無我 anatta) 모든 것은 옳다, 그르다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화자의 어조는 한층 부드러워지고 그의 분노도 가라앉는다. 신의 성령이 분노에 찼던 화자의 정신을 압도한다.
    무분별이라는 깨달은 지혜의 눈으로는 현상이 실재요 실재가 현상이며, 현상 속에 실재가 있고 실재 속에 현상이 있는 것이다. 어둠(현상)속에 빛(열반)이 있고, 빛 속에 어둠이 있는 것이다. 어둠과 빛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 한글키워드
  • 무분별지,『성시』,부정의 길,용수보살,깨달음,불교의 공사상,신의 침묵,존 던,어둠,빛
  • 영문키워드
  • Holy Sonnets,Sunyata,Buddhism,Nagarjuna,John Donne,via negativa,Silence of God,Light,Darkness,Change of Recognition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던의 『신성한 소네트』에서 화자들은 신으로부터 불가피하게 소외되었지만 그것이 절망의 원인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의 어두운 밤과 같이 비록 신은 비-존재로 경험되고 있지만 신은 또한 화자의 삶을 재조정하는 하나의 원동력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대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길이 하나이고 똑같다." 올라가는 길, 즉 ‘긍정의 길’에 나타난 신의 모습은 자비의 얼굴로 나타나는 반면에 내려가는 길인 ‘부정의 길’에 나타난 신의 모습은 냉정한 모습니다. 그러나 둘 다 사랑의 사다리의 계단이다. 화자들이 내적인 성장을 달성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또한 비록 신으로부터의 소외로 인한 두려움이 결코 치유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이것은 깨달음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독자의 견지에서 볼 때는 신은 화자로부터 간청의 말을 듣고 있으며 불러내어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신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화자들은 신에 대한 의문으로 몰두해 있다고 하는 점에서도 신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내 가슴을 때리소서」에서 화자는 자신의 이성이 "포로가 되어 미약하고 진실되지 못한 것으로 입증된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그는 신이 행동하기를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화자는 이것을 신이 "강탈"(ravish)해 주지 않으면 그는 결코 순결해질 수 없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곧 인간 이성의 부족함/불완전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화자가 신에게로 돌아서는 것도 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신은 왜 자신에게는 베풀지 않고 냉혹한 분노에 싸여 자신을 위협까지 하는가 하고 반항하던 화자의 어조가 바뀌고 있다. 그 동안 화자의 불안과 괴로움은 분별하려는 자기중심적인 주관인 ‘나’(I)가 있었기 때문인데, 만약 ‘나’가 없다면(無我 anatta) 모든 것은 옳다, 그르다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화자의 어조는 한층 부드러워지고 그의 분노도 가라앉는다. 깨달은 사람은 번뇌와 보리가 원래 하나라고 보는데, 이와 같이 제2의 불타라 일컬어지는 용수보살이 말하는 것처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로서 고통스러운 어둠을 통해 분별적인 인간의 의식이 정화되면 새로운 의미의 신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모든 차별과 막힘과 얽매임이 없어지게 된다. 여기에는 주객이 있을 수 없고 현상과 본체가 따로 없으므로 진속일여(眞俗一如),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삼라만상은 진여일심(眞如一心)의 작용이기에 객관적 대상이 아니라 나와 하나가 되는 동일체의 경지로 접어든다. 이때의 자아는 자연과 일체가 되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무심과 무애(無碍)의 경지로 승화하여 신/열반/실재의 세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신의 응답이 거울처럼 기도자에게 비추어지는 순간이 온다. 신의 성령이 분노에 찼던 화자의 정신을 압도한다. 왜냐하면 무분별이라는 깨달은 지혜의 눈으로는 현상이 실재요 실재가 현상이며, 현상 속에 실재가 있고 실재 속에 현상이 있는 것이다. 어둠(현상)속에 빛(열반)이 있고, 빛 속에 어둠이 있는 것이다. 어둠과 빛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어둠 속에 빛이 있고, 빛 속에 어둠이 있는 것이다. 어둠과 빛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화자에게는 신의 부재는 절망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깨달음의 방편으로서 수용해야 할 그 무엇이 되는 것이다. 그는 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구원이야말로 어둠이라고 하는 암담하고 절망적인 고통의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영문
  • The speakers in some sonnets of John Donne’s "The Holy Sonnets" recognize that they are very sinful, so they desperately ask God for grace because they don’t fear death itself but fear a death which will separate them from God forever. They have a strong desire for God’s intervention, but, like the mistresses in Donne’s love poems, Donne’s God is silent. As a result, the sense of estrangement leads them to despair. The experience of God’s silence/absence is an experience frequently dealt with in Christian literature. The believer can experience God through the painful awareness of his absence. However, although God is thought to be not absent in a time of spiritual darkness, he exists as a helper in order that the enlightened person may understand the limits of human mind and language. In this point, this paper tries to explain the relationship between darkness and enlightenment in terms of śūnyata (空思想) of Buddhism.
    In Madhyamika there is the denial of all categories and doctrines because all dogmatic systems are regarded as Dṛṣṭi (thought and judgment), while Prajñā (wisdom) is regarded as the essential entity to get rid of all concepts and differences. The heart of Buddhist teaching is the doctrine of śūnya— interdependence of things. Such rejection of substance in all things provides the foundation for the dialectic of Nāgārjuna. This (緣起, pratītya-samutpāda) means, in other words, that since there is no thing whatever originating independently, there is no thing that exists which is not empty. "Emptiness" too is empty of any inherent being. Nāgārjuna declares that there is not the least difference between the Absolute and the world. The Universe, viewed as a whole, is the Absolute; it, viewed as a process, is the phenomenal. He says that the absolute is the only real; it is identical with phenomena. The two aspects are closely connected, and, may, indeed, be regarded as different aspects of a single entity.
    The enlightened and wise person who is freed of ignorance (無明, avidyā) may see the world as Nirvāņa, while the distracted mind with ignorance may see the world as a world of differences and degrees, Saṃsāra. In this respect, light can be said to be darkness, while darkness can be said to be light. When we as the readers see, as in dramatic irony, "The Holy Sonnets" in the context of śūnyatā of Buddhism, we can understand that the absence of God need not be read as evidence that God does not exist, or that he is unconcerned, even though owing to his heated arguments and self-assertions (分別) the speaker doesn’t recognize that darkness or spiritual agony can be actually the mysterious link that will unite him to God’s grace. His deep longing for God is possible only through God’s own hidden presence. The silence of God in Donne’s works may be seen as a sign that God is actually at work reordering the life of the speaker as in "dark night" experience. The readers can see evidence in the speaker’s words and attitudes of the presence of God as a silent presence beyond human words and human reasoning.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The speakers in some sonnets of John Donne’s “The Holy Sonnets” recognize that they are very sinful, so they desperately ask God for grace because they don’t fear death itself but fear a death which will separate them from God forever. They have a strong desire for God’s intervention, but, like the mistresses in Donne’s love poems, Donne’s God is silent. As a result, the sense of estrangement leads them to despair. The experience of God’s silence/absence is an experience frequently dealt with in Christian literature. The believer can experience God through the painful awareness of his absence. However, although God is thought to be not absent in a time of spiritual darkness, he exists as a helper in order that the enlightened person may understand the limits of human mind and language. In this point, this paper tries to explain the relationship between darkness and enlightenment in terms of śūnyata (空思想) of Buddhism.
    In Madhyamika there is the denial of all categories and doctrines because all dogmatic systems are regarded as Dṛṣṭi (thought and judgment), while Prajñā (wisdom) is regarded as the essential entity to get rid of all concepts and differences. The heart of Buddhist teaching is the doctrine of śūnya— interdependence of things. Such rejection of substance in all things provides the foundation for the dialectic of Nāgārjuna. This (緣起, pratītya-samutpāda) means, in other words, that since there is no thing whatever originating independently, there is no thing that exists which is not empty. “Emptiness” too is empty of any inherent being. Nāgārjuna declares that there is not the least difference between the Absolute and the world. The Universe, viewed as a whole, is the Absolute; it, viewed as a process, is the phenomenal. He says that the absolute is the only real; it is identical with phenomena. The two aspects are closely connected, and, may, indeed, be regarded as different aspects of a single entity.
    The enlightened and wise person who is freed of ignorance (無明, avidyā) may see the world as Nirvāņa, while the distracted mind with ignorance may see the world as a world of differences and degrees, Saṃsāra. In this respect, light can be said to be darkness, while darkness can be said to be light. When we as the readers see, as in dramatic irony, “The Holy Sonnets” in the context of śūnyatā of Buddhism, we can understand that the absence of God need not be read as evidence that God does not exist, or that he is unconcerned, even though owing to his heated arguments and self-assertions (分別) the speaker doesn’t recognize that darkness or spiritual agony can be actually the mysterious link that will unite him to God’s grace. His deep longing for God is possible only through God’s own hidden presence. The silence of God in Donne’s works may be seen as a sign that God is actually at work reordering the life of the speaker as in “dark night” experience. The readers can see evidence in the speaker’s words and attitudes of the presence of God as a silent presence beyond human words and human reasoning.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17세기 시인 존 던(john Donne)의 작품 「신성한 소네트를 어떻게 읽어 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그 대답으로서 동양사상인 불교의 공사상에서 찾아보았다. 이 시의 화자는 진지하게 속죄하면서도 어떤 정신적 구원을 얻기 위하여 신을 찾고 있지만 신으로부터 분명한 응답을 받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한 개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어떤 예상했던 만족스러운 결말이 결여되어 있다고 하여 구원을 향한 진취적인 내적 성장이 없다고 단정하고 오로지 절망의 이미지로만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신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신의 침묵이 오히려 화자로 하여금 한층 더 높은 새로운 신의 존재를 알게끔 몰고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비록 시작은 정신적 고통 속에 있지만 화자의 모습은 결국은 옆에서 지켜주는 신의 존재를 느끼고 위안과 정신적 건강을 찾아가는, 그래서 신에 대한 굳은 믿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이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매로띠(Arthur F. Marotti)는 던이 그의 종교시에서 절망과 희망, 정신적 자존심과 겸손, 그리고 죄와 회개와 같은 주제들을 표현하고 있다(251)고 말하고 있는데, 본 논문도 매로띠의 견해를 따르면서 신의 침묵으로 인한 화자의 절망적 고통/어둠이 오히려 신의 구원/빛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방편(方便 upāya)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러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기존의 시각과는 달리 역시 하나의 방편으로서 동서비교의 차원에서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을 통해 그 해답의 단초를 찾아보려고 했다. 왜냐하면 불교에서 이러한 어둠은 깨달은 자가 얻을 수 있는 구원이요, 불교적으로 말하면 보리(菩提 bodhi)이고 열반(涅槃 nirvāņa)에 이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과 동양은 사상에서 이질적이라고 보는 전통적인 편견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를 불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흔히 서양하면 실체론적 사고를 하고 사물을 이분법으로 분석하는 반면에 동양은 관계의 사고로서 합리적 논증보다는 직관의 통찰을 중시한다고 한다. 서양은 이데아를 상정하고 여기에 이르기 위하여 구성적 사유를 한다면 동양은 도(道)든 진여실체든 이에 이를 수 없다며 해체적 사유를 한다는 것이다. 서양이 동일성을 추구한다면 동양은 그것은 실은 차이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과 서양은 상통하는 점이 많이 있다. 특히 이분법적 사유에서 벗어나려는 태도에서 유사점을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던의 작품을 불교의 공사상으로 이해함으로써 동양과 서양 사상의 유사점을 토대로 17세기 영시의 분야에서도 동서양이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데 그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끝으로 각 대학교나 대학원 영문과의 영미시 수업에서 현대영미시와 같이 17세기 형이상학파 시를 설명할 때도 동양의 불교사상으로 시 설명을 할 수 있는 강의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 색인어
  • John Donne, "The Holy Sonnets," light, darkness, silence of God, via negativa, Nāgārjuna, śūnya, pratītya-samutpā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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