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그만’의 동남 방언형 ‘고마’는 형태뿐 아니라 용법면에서도 다른 방언의 ‘그만’과 다르다. 중앙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방언들에서 ‘그만’은 행동의 중지, 또는 행동의 중지에 이어 다른 행동을 촉구하는 말할이의 바람이나 의지를 나타내며, 더 나아가 후행 사태에 ...
( 1) ‘그만’의 동남 방언형 ‘고마’는 형태뿐 아니라 용법면에서도 다른 방언의 ‘그만’과 다르다. 중앙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방언들에서 ‘그만’은 행동의 중지, 또는 행동의 중지에 이어 다른 행동을 촉구하는 말할이의 바람이나 의지를 나타내며, 더 나아가 후행 사태에 대한 말할이의 부정적 심리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동남 방언의 ‘고마’는 다른 방언의 용법을 그대로 가지면서 여기에 더하여, 대조 항목에 대한 부정적 평가, 후행 사태의 강조, 담화의 진행을 돕고, 선행 발화를 부연하는 기능 등 다양한 담화 화용적 기능을 수행한다.
담화표지로서의 ‘고마’가 흥미로운 것은 같은 기능의 ‘그저’가 동북 방언이나 중앙아시아 고려말에 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마’와 ‘그저’는 동일한 담화 화용적 기능을 수행하는 담화표지인 셈이다.
지금까지의 방언 연구에서 어휘적 분화는 동일한 기원에서 출발한 낱말이 상이한 음운 변화나 형태 변화에 따라 방언형이 분화되는 경우, 그리고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기원이 다른 낱말들을 사용하는 경우 등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냉이’에 대한 ‘나시’, ‘나생이’의 분화가 전자의 예라면, ‘부추’에 대한 ‘솔’, ‘정구지’ 등의 방언형은 후자의 예이다. 여기에 덧붙여 동일한 방언형이 방언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또는 지시물)를 뜻하는 경우도 지적되곤 했다. 예를 들어 ‘큰아버지’는 대부분의 방언에서 伯父를 가리키지만 동북 방언에서는 祖父를 가리키는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의미의 분화인 셈이다.
그렇다면 ‘고마’와 ‘그저’의 분화는 어떤 유형에 드는 것인가? 동일한 담화 화용적 기능을 담당하는 점에서는 형태의 분화라 할 수 있다. 마치 ‘부추’를 ‘솔’과 ‘정구지’로 부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문제는 ‘고마’와 ‘그저’가 사용되는 지역에서는 이 두 낱말이 모두 사용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고려말에서는 ‘그저’가 담화 화용적 의미를 나타내고, ‘그만’은 어휘적 의미를 나타내지만, 동남 방언에서는 ‘고마’(‘그만’의 방언형)가 담화 화용적 의미를 나타내고 ‘그저’는 어휘적 의미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점에서 ‘솔/정구지’의 분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고려말에서는 ‘그저’가 담화 화용적 의미로 확대되었다면, 동남 방언에서는 ‘그만’이 담화 화용적 기능으로 변화되었으므로, 일종의 의미 분화라 할 만하다. 그러나 앞의 ‘큰아버지’ 예에서 보듯이 방언학에서의 의미 변화는 동일한 형태가 방언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는 경우에 주로 적용되는 개념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저’와 ‘그만’의 의미 분화는 이와는 다르다. 따라서 ‘그저’와 ‘고마’는 형태와 의미 양쪽에서 분화가 일어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동일한 담화 화용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방언에 따라 각각 다른 낱말이 의미 변화(일종의 문법화)를 겪은 것으로서, 목표는 동일하되 출발이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이처럼 형태와 의미가 동시에 분화되는 새로운 방언 분화의 예를 보고했다는 점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2) ‘그냥’의 기본의미를 ‘전제된 사태의 부정’으로 설정하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몇 가지 이차적 의미들을 기술하였다. ‘그냥’이 수행하는 담화 기능은 크게 발화의 단절, 부연, 강조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는데, 부연도 크게 보면 ‘발화의 단절’ 범주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그냥’은 결국 단절과 강조의 두 가지 담화적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강조가 말할이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단절은 담화의 진행을 돕는 기능에 속한다.
이 글의 두 번째 부분은 ‘그냥’과 ‘그저’, ‘그만’을 비교함으로써 세 표현이 담화 차원에서는 같은 기능을 하는 담화표지임을 밝혀 냈다. ‘그냥’, ‘그저’, ‘그만’은 기본의미나 기본의미로부터 확대된 이차적 의미 가운데 부분적인 일치를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휘적 의미가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이 세 부사는 어휘적 의미라는 관점에서는 결코 동의어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담화적 차원을 보면 이 세 부사가 매우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담화적 기능이 같고, 사용되는 지역이 상보적이라면 우리는 ‘그냥’, ‘그저’, ‘그만’을 동일한 담화표지의 지역적 방언형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데 결코 주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은 동부 방언지대의 ‘그저’나 ‘그만’을 ‘그냥’으로 바꿔 쓸 때 매우 자연스러움을 느끼는 서부 방언지대 토박이들의 직관과도 일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