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과학의 서구의존성이란 결국 한국 사회의 서구의존성이 학문 차원에서 투영된 현상이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를 기본 축으로 전개된 한국의 근대화는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로 서구 사회를 설정했으며, 이에 따라 정책이나 학문 역시 어떻게 하면 여기 ...
한국 사회과학의 서구의존성이란 결국 한국 사회의 서구의존성이 학문 차원에서 투영된 현상이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를 기본 축으로 전개된 한국의 근대화는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로 서구 사회를 설정했으며, 이에 따라 정책이나 학문 역시 어떻게 하면 여기에 도달할 것인가라는 방법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사회과학 개별 분과의 서구의존성을 심화시킨 요인이었다. 곧 한국 사회의 서구의존성이 한국 사회과학의 서구의존성을 낳았으며, 그것이 개별 분과학문의 서구의존성을 초래하고 분과 학문을 서구의존적인 상태로 결박하고 있다. 따라서 개별 분과학문의 서구의존성 현황과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의 장점과 한계를 살펴보는 작업을 일반론적인 사회과학의 자생적 성장이라는 문제의식 하에서 살펴보는 연구는, 선언적 주장의 차원을 넘어서 개별 분과학문의 고유한 서구의존성의 문제를 성찰하면서도 동시에 한국 사회과학의 서구의존성, 한국 사회의 서구의존성을 재성찰하는 새로운 중범위적인 실천적 연구 영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사회과학 ‘전반’에 대한 포괄적 검토를 지양하고 한국 정치학의 서구의존성, 보다 좁게는 한국 정치사상의 서구의존성을 밝히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정립하고자 한다. 곧 이 연구는 한국 사회의 서구 의존성 → 한국 사회과학의 서구의존성 → 개별 학문(정치사상)의 서구 의존성이라는 인과관계의 화살을 되돌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제일 마지막 단계인 정치사상 분야의 서구의존성과 자생적 성장 가능성을 농밀하게 접근하여, 이를 바탕으로 서구 추종적인 발전의 길을 걸어온 한국이 앞으로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위치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미래의 발전 방향을 정립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서구 중심주의 일반적 폐해, 즉 ‘문제의식의 서구화’, ‘서구 이론에 따른 동화주의석 해석’, ‘한국 현실의 주변화’가 정치사상 분야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안적인 전략으로 제기된 ‘문제의식의 한국화’, ‘동화적 해석의 수정’, ‘한국현실의 중심화’가 자생적인 한국정치사상이 수행해야 할 ‘전통사상의 현대화’, ‘서구정치사상의 한국화’, ‘한국 현대정치의 사상화’라는 세 과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지난 10년간의 주요 저작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우선 제1과제인 ‘전통사상의 현대화’는 “한국사회과학의 자생적 성장: 전통 정치사상의 현재화를 중심으로”라는 주제하에 서구 이론과의 호환성을 유지하면서 그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토론하고 경쟁하는 동시에 전통 사상을 오늘에 되살려내 우리 현실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를 살펴보았다. 이 연구는 최근의 한국정치사상 연구의 현황을 개괄하는 동시에 전통 사상의 현재화를 위해서는 여전히 문제의식의 현재화와 함께 ‘전통’으로서의 정치사상적 유산의 현재적 재전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논했다.
제2과제인 ‘서구정치사상의 한국화’는 “서양정치사상의 한국화를 위한 예비적 시론―국내 학자들의 최근 연구경향 검토”라는 주제하에 서양정치사상을 전공한 중견학자 14명(총 80편)을 선정하여 그 안에서 나타나는 서구중심주의로 편향된 시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동시에 우리의 맥락으로 서구 정치사상을 끌어들여 우리의 문제의식과 시각에 따라 재구성함으로써 서구 사상을 ‘한국화’하려는 시도들을 살펴보았다. 이 연구는 ‘문제의식의 한국화’, ‘동화적 해석의 수정’, ‘한국현실의 중심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의도적인 역편향의 추구’, 중심과 주변에서 사상의 혁신과 전개의 양상이 상이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추진해야 하는 ‘서구정치사상의 한국화’라는 대안적인 학문 전략의 이론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이었다.
제3과제인 ‘현대 한국정치의 사상화’는 “사상의 흐름으로 본 한국 현대정치: 亡國, 改造, 强國의 수사학”라는 주제하에 근대 이후 우리 사회가 겪은 정치사회적 변화를 사상화할 수 있는 단초를 놓는 작업을 시도했다. 한국 현대 정치사의 궤적을 추적하고 그것을 사상화하는 작업은 지금까지 한국정치의 기본 틀을 주조해왔던 문제를 추출하고, 대립되는 여러 사상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ㆍ규정ㆍ대응해왔는지 살피는 작업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연구는 그 단초를 망국, 생존, 강국이라는 수사학에서 찾고, 이런 수사가 한국정치의 행태와 이념의 기본 틀을 어떻게 만들어갔는지를 추적하면서 한국의 정치이념들이 국가와 민족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진보진영에서는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이념으로 여기는 보수주의가 한국사회에서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를 파악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