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 ‘공화’의 초기 수용과 ‘민주공화국’의 생성
공화라는 단어는 19세기 말 일본에서 republic의 번역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한성순보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민주'는 오래 전부터 한자어로서 ‘백성의 주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 ...
1) ‘민주’, ‘공화’의 초기 수용과 ‘민주공화국’의 생성
공화라는 단어는 19세기 말 일본에서 republic의 번역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한성순보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민주'는 오래 전부터 한자어로서 ‘백성의 주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청말에 ‘democracy’의 번역어로 정착되었고, 한국에서는 만국공법이 전래된 때부터 알려졌다. 그러나 수용 초기 ‘민주’와 ‘공화’는 같은 의미로 혼용되기도 하고, 비군주국이라는 의미에서의 공화제 여러 형태 중 하나로 민주제가 이해되기도 하는 등, 개념의 혼선이 발견된다. 그런가 하면 공화정을 입헌군주정으로 이해하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이런 개념의 혼란은 그 용어의 수용이 다양한 출처로부터 동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민주’ ‘공화’ ‘합중’의 상호관련성 및 차이와 함께, 각각의 용법에 대한 출처의 추적을 통해 개념 혼동의 원인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공화에 대한 의미의 혼란은 1900년대 ‘민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조어의 필요성을 야기했다. 가령 1907년의 「국가의 주동력」이라는 논설에서는 “민주공화국의 개조(開祖)”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임시정부헌법에서 역사적인 ‘민주공화국’ 규정을 두게 된 것은 이런 앞선 시대의 조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임시헌장 제정시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추론할 만한 특별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사정을 감안하면, 그 의미는 군주제를 배격하되, 귀족제 혹은 과두제가 아니라 국민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정체의 지향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2) 민주공화국의 개념 변천
a) 1930년대에 들어 독립운동진영에서 ‘새로운’, ‘완전한’ 혹은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제창하는 민주공화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대두되는데, 정치 경제 교육에 있어 균등을 이룬 국가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민주공화국의 개념이 국가형태의 문제에서 실질적 원리로 변한 것이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용법의 수용으로부터 촉발된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서의 민주공화국 개념의 독자적 발전의 결과인지 하는 것은 앞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밝혀야 할 과제이다.
b) 민주공화국이 제헌헌법 제1조에 규정되고, 그 의미를 국체와 정체의 문제로 해석하면서, 민주공화국의 개념은 다시 균등의 문제와 분리되어 국가형태의 문제로 환원되었다. 국체ㆍ정체 구분법은 일본 헌법학의 영향이다. 국체 정체 구분에 의한 설명이 민주공화국에 어떤 기능상의 변화를 초래하였는지, 일본에서 그런 구분이 갖는 정치적 기능과는 어떻게 달라진 것인지 하는 점은 이 연구가 앞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이다.
한편 이 시기 민주공화국에 대한 더 깊은 의미 변화는 공산주의와의 관계에서였다. 원래 민주공화국 개념에는 해방 후 한동안까지도 공산주의를 배격한다는 의미가 명백히 드러나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좌우합작 노력이 실패하고 단독정부 구상이 굳어짐에 따라, 아울러 좌파 진영이 스스로를 민주공화국과 구분하여 ‘인민공화국’으로 지칭하게 되자, 공산주의에 대한 대항이념으로서 민주공화국의 의미가 갑자기 부각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삼권분립과 대의제는 민주공화국의 양보할 수 없는 핵심적 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c) 민주공화국의 새로운 해석을 법적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은 제3공화국헌법과 유신헌법에서였다. 제3공화국헌법과 유신헌법은 그 전문에서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건설’을 천명하였다. 당시의 집권세력에 의해 민주공화국이 언급되는 맥락을 보면, 멸사봉공의 정신, 대의제 및 정당에 대한 불신, 건전한 민족주의, 즉 자주와 자립의 민족의식과 같은 것들이 의미적 연관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공화국이 이런 의미들과 관련을 갖게 되는 개념사적 연원을 보다 면밀히 추적하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이다.
3) 현대적 모색
최근 ‘민주공화국’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가장 각광받는 단어가 되었다. 최근의 민주공화국 담론은 철저하게 정치철학적 이상과 실질적 원리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최근의 논의를 크게 대별하면, 민주공화국을 곧바로 서구에서 발전해 온 공화주의와 동일시하는 입장과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결합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어느 입장을 취하느냐가 민주공화국의 개념에 결정적 차이를 가져오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어느 시대, 어느 장소, 누구의 이론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주장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최근 다양하게 주장되는 민주공화국의 의미들을 정리ㆍ분류하고, 논의가 일정한 방향으로 수렴되어 가는지 고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