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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경장 이후 성균관경학과와 경의문대(經義問對) 연구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0-332-B00315
선정년도 2010 년
연구기간 1 년 (2010년 05월 01일 ~ 2011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김경용
연구수행기관 한국교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갑오경장 전후로부터 경술국치까지의 시기에 대한 교육사 연구에서, 종래의 연구관행은 전통적 교육의 구태를 벗고 이른바 근대교육 또는 신식교육을 시행하고자 어떤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그 성과가 어땠는지에 집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성균관이나 향교, 양사재, 사숙(私塾) 등 전통적 교육기관에 대한 연구는 매우 빈약하며, 이들 기관에 대해서 별다른 존재 의의를 찾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관행이나 전통적 교육기관에 대한 시각은 최근 몇 몇 연구의 등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당시 새로운 교육기관을 통한 개혁의 움직임만 있었던 게 아니라, 전통교육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변용과 개선의 모색 역시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다는 연구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단기간에 많은 자료를 검색하고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이 갖추어짐에 따라,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료가 새롭게 발굴되거나 부각됨으로써 이런 연구 경향이 큰 힘을 받고 있으며, 나아가 부정확한 이해를 바로 잡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높이고 있다.
    이 연구는 갑오경장 직후에 등장한 경의문대(經義問對)라는 새로운 제도의 시행배경, 시행경위, 시행절차, 관련 인물들의 진로 등을 규명함으로써, 당시 성균관을 정점으로 하는 전통 교육체제가 어떤 시대적 적응을 모색했는지 소개하고 그 의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경의문대는 성균관장이 출제한 문제를 학부대신이 훈령으로 각 도(道)에 하달함으로써 관찰사로 하여금 전국의 유생에게 그에 대한 답안을 작성해 올리도록 하고, 그 중에서 일정한 수를 뽑아 한성에 소집하여 재차 시험치고 최종 합격자에게 직함을 주는 제도였는데, 사업시선(司業試選)으로 명칭이 바뀌고 근대학문이 출제과목에 포함되는 등 제도적 변용을 겪으면서 경술국치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이 제도는 교육사학 연구자들에게 조차도 생소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서, 최근 일기 시작한 전통 교육체제에 대한 새로운 경향의 연구에 소개된 적이 있으나, 그 면모가 제대로 드러났다고 보기 어렵다. 기존의 연구에서, 경의문대 제도는 당시 성균관의 운영과 관련하여 부수적으로 다루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에, 그 실체에 대해 의구심만 더하거나 유명무실 했던 것으로 도외시하기 쉬운 시선을 받는데 머물러 있다.
    갑오경장 이후의 성균관 연구에서, 조선의 태학(太學)이 서구나 일본의 대학에 얼마나 멀거나 가까운 상태에 있었는가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명시적으로 혹은 잠재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고 타당하지도 않다. 그것은 서구적으로 변모해 버린 오늘날의 대학을 갖고 있는 현대인이 자기편견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이런 편견을 가급적 자제하고 당시 성균관에서 무엇을 했었는지, 성균관을 정점으로 하는 전통 교육체제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시의 성균관 운영, 전통 교육체제의 실상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다. 경의문대가 바로 그 중 대표적인 요소이다.
    당시 성균관의 운영과 관련된 제반 요소들을 추적해 나가다 보면, 경의문대라는 제도도 만날 수 있다는 식의 연구방향을 뒤집어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경의문대의 성립경위와 운영의 규칙 및 실제, 이로 인해 파생된 제반 사항 등을 엄밀하게 밝혀 나가다 보면, 당시 성균관을 어떻게 운영했는지, 성균관을 정점으로 했던 조선의 전통교육체제가 어떤 얼개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는지, 어떤 지향성을 띠고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방향이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당시에 인재의 양성과 등용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평가하려는 의욕을 앞세우기 이전에, 과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상을 상세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 기대효과
  • 성균관을 정점으로 했던 전통 교육체제의 지속성이 일제에 의한 강점 직전까지 면면히 이어졌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일제의 조선강점을 정당화 하기 위해 일본 관변 학자들이 “조선에는 학교다운 학교가 없다”는 식으로 왜곡해 놓은 조선교육의 실상을 밝히는 데 기여할 것이다.
    혁신성이 주도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전통 교육체제가 면면히 유지되었던 사실과 그 의미에는 현대 우리 사회와 개개인이 배울 바가 있을 것이다. 현대에 교육정책의 입안과 시행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이전 시기와의 단절을 통하여 성립한 새 시대란 있을 수 없다. 이 연구는, 우리가 극복하고자 하는 과거 속에는 제한점만 남아 있는 게 아니라 가능성도 동시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런 작업은 과거를 명확하게 하거나 왜곡된 과거를 바로잡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오늘을 사는 우리의 미래와 관련된 막중한 과제이다.
    이 연구는 갑오경장 전후의 신교육제도 구상과 시행에 있어서 성균관・향교・양사재・官學院・私塾 등 전통교육기관의 역할과 위상이 과연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특히 성균관 개혁 및 과거제도 變通과 관련하여, 개화기 이후 인재양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인재 선발 및 등용의 문제까지 여러 가지 의문점을 해소하는 데에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① 경의문대의 시행배경 : 1869년 「태학별단」이 작성된 이후 경의문대가 시행되기까지 어떤 내력이 있었는지 파악한다.
    ② 경의문대의 시행경위 : 1896년 경의문대가 시작된 이후 1907년 「성균관사업시선규정(成均館司業試選規程)」이 제정되어 사서(四書)·삼경(三經)에 대한 문제뿐만이 아니라, 시무책(時務策)으로 내외역사(內外歷史)·내외지지(內外地誌)·경제학·법률학·정치학에서도 문제를 출제하는 것으로 바꾸고, 1908년 산수학(算數學)이 추가되기에 이르기까지 제도의 시행경위를 밝힌다.
    ③ 경의문대의 시행절차 : 학부대신에 의한 경의문대 훈령의 발포에서부터 각 지방으로의 하달 및 각 지방으로부터의 보고, 경의문대 책자의 수합 및 상송(上送), 1차 합격자 선정 및 통보, 한성에서의 2차 시험 및 최종 합격자 선정, 합격자에 대한 관직(성균관 博士 또는 司業) 서임 등 경의문대가 치러지는 일련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④ 성균관 박사(博士)·사업(司業) 출신자들의 진로 : 경의문대나 그 변용인 성균관사업시선에 합격하여 성균관 박사나 사업에 서임된 인물들이 이후로 어떤 사회적 진출을 이루고 있는지 추적 조사한다.
    ⑤ 경의문대의 시행과 관련된 전통 교육체제의 주요 학정(學政) : 경의문대 시행의 근거가 되었던 「태학규제」(1893년)나 「흥학장정」(1896년) 등의 구체적인 시행 사례들을 밝힘으로써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성균관을 정점으로 하는 전통 교육체제의 실상을 규명한다.
  • 한글키워드
  • 갑오경장,성균관사업,흥학장정,성균관사업시선,성균관박사,경의문대,성균관경학과,전통교육체제,향학조례,태학규제
  • 영문키워드
  • GapOh Reformation,Regulation on local schools,Grand School,doctor of Grand School,Rules on Grand School,traditional school system,canon examination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이 연구는 "경의문대"라는 제도로부터 출발하여, 경장기 조선에 인재의 양성과 선발이라는 과제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일을 보다 자세히 알아보자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었고, 그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 또는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성급히 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제안을 함으로써 출발하였다. 일단, 당시 있었던 일이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을 조사하여 가급적 상세히 제시하려고 하였다.
    경의문대는 조정에서 국왕·학부대신·성균관장 등이 협의하여 전국에 훈령을 내림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는 이전의 관성에 따라 이런 저런 모색을 하던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시내용의 변화 등 시의에 따른 변용을 도모하였다. 각 지역의 여항에까지 중앙에서 표준화된 문제로 고시하였으며, 중앙의 성균관에 입학한 인원과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생들, 이 양 편에 대해 모두 선발과정을 열어 놓음으로써 조직적 養士와 자발적 修學을 통한 擇仕를 추구하였다.
    성균관경학과와 경의문대는 공히 갑오경장 이후(1895·1896년) 시작하여 일제강점 이전까지 지속되었다는 점, 성균관경학과의 교육과정과 경의문대 고시과목 양자의 변화가 서로 조응관계에 있었다는 점, 경의문대에 대한 규정이 성균관경학과 관련 법규에 속해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 둘이 밀접한 관련성 아래 운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시행배경을 추적해 보면, 그 발단이 이미 고종조 초기에 마련되었으며(1869년 「태학별단」), 이후 일련의 조치들을(「향학조례」, 京學院·營學·官學院·面學, 「태학규제」, 「흥학장정」 등) 감안할 때, 주요 취지는 경학과 시무에 두루 밝은 인재를 전국 각지에서 차차(리→면→군→도→京) 천거후 시취 방식으로 뽑아 들이려는 데 있었다. 즉, 갑오경장 전후 등장한 새로운 교육기관을 통해서만 시무에 밝은 일물을 양성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성균관을 대표로 하는 전통교육기관을 통해서도 경학·시무 양자를 겸비한 인물의 양성·발탁을 추구하였으며, 이런 움직임은 이미 개항 이전부터 시발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지역단위별 천거-시취-등용 방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조선조 사회가 學政에 관한 나름대로의 체계적 얼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소한 1700년도까지 연원이 소급되는 「면학-군학-영학」의 얼개를 갖추는 등 장기간에 걸쳐 조성된 꼼꼼한 교육체제의 구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전통교육체제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교육을 시행하는 데에도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 영문
  • The objects of this study :
    1. What was Gyung Ui Moon Dae(經義問對)
    2. And what was it's relation between Cannon Class of Grand School(成均館經學科)
    3. What was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se two system
    4. What was the condition of those days to execute these two system
    In the process of this study, I have found some important points to describe [The History of Education in Chosen Dynasty(朝鮮敎育史)] properly with more wide and advanced view point than ever.
    For making and selecting available men suitable to that turbulent period of change. There have been several public efforts not only with the new type of school system after the days of open ports, but also with the traditional school system before the days of open ports. These public efforts have been made on the foundation of so long maintained traditional school system, and continued to the end of The Korean Empire, i.e., coercive annexation by the japanese imperial power.
    Chosen Government repeatedly tried to adapt to those days' historical needs by making and selecting available men through the adjustment of educational system and adding new contents in school curriculum. But all of these efforts frustrated by japanese imperial power. It was unforgettable tragedy for The History of Education in this beautiful lan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이 연구는 “경의문대”라는 제도로부터 출발하여, 경장기 조선에 인재의 양성과 선발이라는 과제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일을 보다 자세히 알아보자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었고, 그 일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는지 또는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성급히 내리지 말아야 한다는 제안을 함으로써 출발하였다. 일단, 당시 있었던 일이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을 조사하여 가급적 상세히 제시하려고 하였다.
    경의문대는 조정에서 국왕·학부대신·성균관장 등이 협의하여 전국에 훈령을 내림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는 이전의 관성에 따라 이런 저런 모색을 하던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시내용의 변화 등 시의에 따른 변용을 도모하였다. 각 지역의 여항에까지 중앙에서 표준화된 문제로 고시하였으며, 중앙의 성균관에 입학한 인원과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생들, 이 양 편에 대해 모두 선발과정을 열어 놓음으로써 조직적 養士와 자발적 修學을 통한 擇仕를 추구하였다.
    성균관경학과와 경의문대는 공히 갑오경장 이후(1895·1896년) 시작하여 일제강점 이전까지 지속되었다는 점, 성균관경학과의 교육과정과 경의문대 고시과목 양자의 변화가 서로 조응관계에 있었다는 점, 경의문대에 대한 규정이 성균관경학과 관련 법규에 속해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 둘이 밀접한 관련성 아래 운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시행배경을 추적해 보면, 그 발단이 이미 고종조 초기에 마련되었으며(1869년 「태학별단」), 이후 일련의 조치들을(「향학조례」, 京學院·營學·官學院·面學, 「태학규제」, 「흥학장정」 등) 감안할 때, 주요 취지는 경학과 시무에 두루 밝은 인재를 전국 각지에서 차차(리→면→군→도→京) 천거후 시취 방식으로 뽑아 들이려는 데 있었다. 즉, 갑오경장 전후 등장한 새로운 교육기관을 통해서만 시무에 밝은 일물을 양성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성균관을 대표로 하는 전통교육기관을 통해서도 경학·시무 양자를 겸비한 인물의 양성·발탁을 추구하였으며, 이런 움직임은 이미 개항 이전부터 시발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지역단위별 천거-시취-등용 방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조선조 사회가 學政에 관한 나름대로의 체계적 얼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소한 1700년도까지 연원이 소급되는 「면학-군학-영학」의 얼개를 갖추는 등 장기간에 걸쳐 조성된 꼼꼼한 교육체제의 구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전통교육체제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교육을 시행하는 데에도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경의문대와 성균관경학과가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조선조 사회가 學政에 관한 나름대로의 체계적 얼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최소한 1700년도까지 연원이 소급되는 「면학-군학-영학」의 얼개를 갖추는 등 장기간에 걸쳐 조성된 꼼꼼한 교육체제의 구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전통교육체제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교육을 시행하는 데에도 기본적인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이 연구성과물은 학부 및 대학원 수업에 적극 활용할 수 있고, 향후 정련된 [조선교육사] 집필에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이다.
  • 색인어
  • 경의문대, 성균관경학과, 태학별단, 향학조례, 태학규제, 흥학장정, 外庠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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