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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성과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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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박사후국내연수)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0-354-A00120
선정년도 2010 년
연구기간 2 년 (2010년 05월 01일 ~ 2012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오성숙
연구수행기관 한국외국어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 목표는 일본여성과 내셔널리즘과의 관련성을 묻고, 그 구체적인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일본여성에 의한 내셔널리즘의 양상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일본여성과 제국 일본, 일본여성과 식민지 조선에 대한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즉 일본이 대일본제국을 지향, 확대해 가는 과정에서 일본여성들은 식민지 지배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는가, 특히 일본 여성들은 식민지조선에서 제국의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 어떠한 일들을 해나갔는가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내셔널리즘을 향한 국책에 일본여성은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에서 어떠한 역할을 부여받고 어떠한 활약을 펼쳤는가를 조명하고자 한다. 이는 제국이라는 남성적인 이미지에 여성의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일본 여성의 내셔널리즘의 양상을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일본의 내셔널리즘의 전체상을 밝히는 작업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현재 식민지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제국주의 관련 연구는 굉장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남성적인 시선에 머물고 있으며, 여성적인 시선은 조선 여성이라는 분야에 한정되어, 일본 여자 유학생, 위안부, 공창제 등의 연구만이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 연수 과제는 식민지 조선여성이 아닌, 철저히 배제, 누락되어 있는 제국의 일본 여성 연구에 집중하여, 일본여성이 어떻게 제국과 식민지라는 국책에 관련되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일본과 식민지 조선에서 이루어진 내셔널리즘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본 연수 과제는 한일 양국의 여성사 연구, 그리고 식민지, 제국 연구의 전체상을 이해함으로써 일본근대사를 객관적으로 보는 데에 필요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비미했던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연구에도 일조할 것으로 생각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는 식민지 연구, 일본여성사, 제국 연구 등에서 배제, 누락된 채 이어진 ‘일본여성과 내셔널리즘’에 대한 연구이다. 이는 일본여성이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주변(타자)으로서의 평가를 넘어 ‘내셔널리즘 안에서 주체로서의 일본여성이 어떠한 역할 등을 담당했는가’에 주목함으로써, 내셔널리즘이 남성주도적인 틀을 벗어나 여성에 의한 내셔널리즘을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내셔널리즘이라는 남성적인 이미지에 여성의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일본의 내셔널리즘의 전체상을 밝히는 작업으로도 활용되리라 확신한다.
    또한 주변, 타자로서의 일본여성과 식민지 조선여성과의 담론을 통해서, ‘여성이라는 동질성이 지배와 피지배라는 이질성과 만나게 되면서 어떠한 담론을 형성시키는가’, 또한 ‘이를 통해 일본여성상이 상대적으로 어떻게 구축되는가’도 보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제국의 일본여성이 또 하나의 타자(식민지 조선여성)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에도 주목함으로써, 내셔널리즘을 지향하는 일본에 적합한 식민지 조선의 여성상이 형성되는 과정도 목도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본 연수과제는 기초적인 연구에 머무고 있는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연구에도 일조할 것으로 본다. 이와 관련된 식민지 연구, 제국 연구, 일본여성사, 한국여성사에 있어서도 일본여성의 공과(功過)라는 측면을 더함으로써 넓은 시야를 제공하리라 기대한다.
  • 연구요약
  • 1년차 연구 요약

    일본여성과 내셔널리즘
    - 제국 일본에서의 미디어 담론을 중심으로-

    ○연수 내용은 일본여성과 제국 일본과의 관련성을 묻고, 그 내용에 대해 분석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침략주의, 제국주의와 관련된 일본여성을 다룬 미디어(신문, 잡지, 광고, 신문소설, 잡지 소설 등) 담론과 함께 특히 일본여성과 조선 관련 미디어 담론을 분석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담론을 중심으로 일본여성에게 주어진 기대와 역할, 그리고 그들의 활동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더 나아가, ‘내셔널리즘을 지향하는 일본의 이상적 내지는 규범적인 여성을 어떻게 구축해 가는가’에도 주목하여 논하고 싶다.

    1) 일본의 내셔널리즘에 적극적이었던 여성, 오쿠무라 이오코(奥村五百子, 1845∼1907), 쓰루하라 마사코에 주목하여, 제국일본, 식민지 조선에 대한 담론 분석한다.
    2) 일본의 내셔널리즘 적극적이었던 여성 저널리즘(『婦女新聞』『婦人新報』)과 당시의 주요 저널리즘(『読売新聞』『万朝報』『時事新報』, 종합잡지 『太陽』)의 비교를 통해, 일본이 특히 일본여성에게 걸었던 기대와 역할을 논한다.   
    3) 여성 저널리즘의 식민지 조선을 언급한 담론을 분석,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본여성의 기대와 역할 그리고 그 활동을 조명한다. 특히, 조선 여성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여성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담론은 가정이라는 사적인 울타리로부터 내셔널리즘이라는 공적인 영역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새로운 역할을 여성에게 강조하며, 타자로서의 조선 여성을 바라보는 시야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도 주목하고 싶다.

    ○연수과제의 분석 범위는 일본의 팽창주의, 침략주의가 시작되고 저널리즘이 이에 가담하는 시기 또는 창간 때(1886년경)부터 한일합방을 강행하는 1910년까지로 한다. 또한 이 시기의 도한(渡韓) 일본여성을 중심으로 식민지 조선에서의 기대와 역할, 활동을 분석한다. 특히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시기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연수 방법은 미디어 담론 분석과 신문소설, 잡지 소설, 여성단체의 활동을 분석한다.
    (왜냐하면 미디어는 문화형성력을 갖는 매체로서 시대의 담론을 형성, 유통, 변용시키는 유기적인 공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일합방의 시기를 집중적으로 분석)


    2년차 연구 요약

    일본여성과 내셔널리즘
    -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에서의 미디어 담론을 중심으로-

    ○연수 내용은 일본여성과 제국일본, 일본여성과 식민지 조선과의 관련성을 묻고, 그 내용을 분석한다. 일본의 이민정책으로 식민지 조선에 온 일본여성을 중심으로 조선과 일본의 미디어(신문, 잡지, 광고, 신문소설 등) 담론을 분석한다. 분석한 담론을 바탕으로 제국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여성에게 건 기대와 역할, 그리고 그들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밝혀본다. 그들이 조선여성의 교육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일본이 일본여성을 통해 식민지 조선여성을 제국형성에 필요한 여성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보여지며, 이러한 점에도 주목하여 논하고 싶다.

    1) 여성 저널리즘(『婦女新聞』『婦人新報』)과 당시의 주요 저널리즘(『読売新聞』『万朝報』『時事新報』, 종합잡지 『太陽』)의 비교를 통해,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여성에 대한 기대와 역할을 논한다. 특히, 1년차의 연수 과제를 이어 발전시킨다. 일본기독교부인교풍회와 그 기관지『婦人新報』가 여성해방운동에 끼친 영향의 적극적인 평가와 달리, 외면당해온 이들에 의해 주도된 내셔널리즘의 내용을 밝혀보고자 한다.
    2) 후치자와 노에, 쓰다 세쓰코를 비롯한 관련있는 일본여성들(오카베 데이코, 스에 아이코 등등)을 중심으로 식민지조선의 교육에 대한 평가를 포함, 조선에 있는 일본여성, 조선여성에게 끼친 영향의 공과(功過)를 분석한다.
    3) 식민지 조선여성의 이상적 여성상의 형성과정을 고찰한다.
    (즉, 1)2)의 분석을 통해 침략주의, 팽창주의를 지향하는 일본에 적합한 식민지 조선의 여성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도 초점을 맞추어 고찰한다.)

    ○분석 범위는 일본의 내셔널리즘에 의해 식민지화 된 조선에 온 시점, 즉 1910년 이후부터 일본여성을 중심으로 식민지 조선에서의 기대와 역할, 활동을 분석한다.
    (1910년 ∼ 1945년, 특히 제1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연수 분석대상은 미디어 담론 분석과 신문소설, 잡지소설, 여성단체, 학교 활동을 분석한다. (왜냐하면 미디어는 문화형성력을 갖는 매체로서 시대의 담론을 형성, 유통, 변용시키는 유기적인 공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한글키워드
  • 조선 여성,식민지,제국 일본,여성 교육,미디어 담론 ,일본 여성,내셔널리즘
  • 영문키워드
  • the Korean women,colonization,nationalism,Japanese women, female education,Imperial Japan,the media discourse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일본 여성과 내셔널리즘으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본 여성과 제국 일본, 일본 여성과 식민지 조선에 대한 고찰이다. 근대라는 새로운 세상은 여성에게 지휘향상, 전쟁협력, 식민지주의, 제국주의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내셔널리즘’이라는 영역 안에 여성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미미할 뿐 아니라 더욱이 식민지 조선에 온 일본여성들에 대한 연구는 미개척 분야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안에, 본 연구는 먼저, 일제 강점기 당시 광주공원 광장에 이오코의 동상이 있었던 오쿠무라 이오코를 조명하였다. 여장부, 여걸로서 등장한 이오코는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이 주어지지 않은 세상, 즉 남성들만의 세상에서 가정을 벗어나 사회적, 국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남성을 능가해야 했던 시대적인 요구에서 자발적으로 탄생한 내셔널리즘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대륙 개발’, ‘식민지 건설’이라는 일본의 목표 아래,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조선 땅을 밟았던 인물이기도 하였다. 한편 애국이라는 이름하에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이 주어진 이후의 이오코는 여성으로서 애국부인회를 창설하고, 당시 전시 총동원체제라는 의식이 성립되기 전, 애국부인회는 ‘전쟁터는 남성’, ‘후방의 전사자와 유가족은 여성’이라는 공식을 형성시켰다. 또한 전전(戰前)까지 쏟아졌던 그의 재생산물(전기, 평전, 명부전, 연극, 영화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이오코는 조국 일본을 위한 ‘여장부’ ‘여걸’에서 ‘애국의 어머니’ ‘조국의 어머니’로서, 더 나아가 대동아공영권 내의 ‘동아시아의 어머니’로서 승승장구하며 일본 내셔널리즘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로서 조명할 수 있었다.
    이오코에 이어, 일본에서 당대 유명한 남녀 여성교육가의 대대적인 환영회를 열어준 후치자와 노에는 남자를 능가하는 여장부였다. 그녀는 조선에서 ‘명신여학교(현재 숙명학원, 숙명여대)’의 학감으로 한국여성의 근대적인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한일부인회’를 주도했는데, 이는 조선의 상류 계급인 부인, 양반 자녀를 위한 ‘일본화 교육’이었다. 이러한 일본제국의 장래를 위한 내선일체의 정책 아래, 그녀는 동포가 된 조선을 지도할 의무를 체현한 인물이었다.
    한편 제국주의의 고양기라 할 수 있는 1900년대부터 다음과 같은 담론이 빈번하게 유통되고 있었다. 『부녀신문』에는 ‘해국의 여성’ ‘식민과 여성’ ‘여성의 해사(海事)사상’ 등 여성의 해외이주를 권장하는 담론들이 식민지와 관련지어 자주 논해지고, 더 나아가 여자를 동반하지 않는 식민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전개되었다. 이는 가정 단위(家)의 이주를 통한 영구적인 식민활동을 장려함으로써 가족 단위의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담론들은 쓰다 세쓰코와 같은 여성 식민자를 양산하였다. 그녀는 조선에 있는 일본여성 교육에 이바지하였다. 조선에 있는 무력하고 무용지물인 내지의 딸들(조선의 일본여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들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쓰다 세츠코가 개설한 것이 청화여숙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재조 일본인을 중심으로 매월 발행되었던 녹기연맹의 기관지 『녹기』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쓰다 세츠코와 청화여숙은 내지의 딸들을 통한 영구적으로 조선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조선인의 지도자에 걸맞는 의무를 그녀들에게 부과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본 연구는 내셔널리즘의 자기장이 일본 여성과 미디어 『부녀신문』에 어떠한 담론을 형성시켰는가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양처현모와 불혼론이라는 대립되는 매커니즘을 통합하고 기존의 여성상으로부터 이탈한 마이너리티 여성까지 끌어드리는 것이 일본 여성을 둘러싼 『부녀신문』의 내셔널리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배제와 통합, 균질화과 계층화라는 대립되는 논리는 내셔널리즘 안에서 운동성을 발휘하는 한편, 『부녀신문』의 내셔널리즘은 근대 일본 국가를 초월하는 내셔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볼 때, 일본 여성을 둘러싼 내셔널리즘은 개인과 저널리즘에 의해 국가의 의도를 초월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 영문
  • This study contemplates on Japanese women and nationalism; to be more specific, it focuses on Japanese women and the former Empire of Japan and Japanese women and the colony Joseon. A new world called modern era attracted women in the domain of ‘nationalism’ by showing them various images such as advancement of command, war cooperation, colonialism, and imperialism. However, the study on this matter is insignificant, and moreover, the study on Japanese women who came to the colony Joseon has been an unexplored area.
    With such awareness of issues, this study focused on Ioko Okumura whose bronze statue was at the Gwangju Park Square at the time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Ioko who appeared as an amazon and heroine was a representative figure of nationalism, voluntarily created by the needs of the times when women had to surpass men in order to be able to fulfill the social and national missions, breaking away from the world where women’s social roles were not given, in other words, breaking away from her family in the world of men. Also, she set foot on the land of Joseon with the name of “patriotism” under Japan’s goal, “continent development” and “colonization.” On the other hand, Ioko after receiving woman’s social role under the name of patriotism established Patriotic Women’s Association as a woman, and the association formed a formula, “Battlegrounds are men, the war dead and bereaved families at the rear are women,” before the consciousness of wartime mobilization system was established at that time. Also, as the results of concentrating on the reproduced products (biography, critical biography, Myeongbujeon, play, and movie) on her that came out before the war, this study was able to focus on her as someone who stood in the middle of Japanese nationalism as she successfully grew as the “amazon” and “heroine” for her country, Japan, and as “Mother of patriotism” and “Mother of her homeland,” and furthermore as “Mother of East Asia” within the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Following Ioko, Noe Huchizawa was a heroine who surpassed men, and Japan held a large-scale reception for the famous woman educator of men and women at that time. As a school superintendent for Myeong Sin Women’s School (currently, Sookmyung Hagwon and Sookmyung Women’s University), she took charge in modern education of Korean women and led “Korean and Japanese Women’s Society,” and it was “Japanese education” for the children of Korean men and women in the upper class of Joseon. She was the figure who embodied the duty of guiding Joseon that became her compatriot under the policy of Naesunilche (meaning that Japan and Joseon are one body) for the future of the Empire of Japan.
    On the other hand, the discourses like the following circulated frequently, starting from the 1900’s, which was the time of boost for imperialism. On the Women Newspaper, the discourses that encouraged women’s emigration such as “The Women of Island Country," “Colonization and Women," and “Maritime Ideology of Women," were discussed often, related to the colony, and furthermore, even opinions that said that colonization without women could not succeed at all developed. It was demanding loyalty in the unit of family by encouraging permanent colonial activities through migration in the unit of family. Such discourses mass-produced female colonists such as Setsuko Tsuda. She contributed to the education of Japanese women in Joseon. With the voices concern regarding the daughters of the inland (Japanese women in Joseon) who were powerless and useless, the need of education for them came to the fore. And the one that Setsuko established due to such need was Cheonghwa Yeosuk. Setsuko Tsuda and Cheonghwa Yeosuk were imposing the duty to the women that were suitable for the leaders of the Joseon people in order to strengthen the colonial rule on Joseon permanently through the daughters of the inland.
    On the one hand, this study analyzed what kind of discourses the magnetic field of nationalism formed on Japanese women and the media, “Women Newspaper.” As the result, it can be said that integrating the conflicting mechanism called no marriage with good wife and wise mother and attracting even the minority women who left the existing image of women were the nationalism of Women Newspaper that surrounded Japanese women. Like thus, the logic that opposed exclusion and integration, homogenization and stratification demonstrated mobility in nationalism, and meanwhile, the nationalism of “Women Newspaper” was the one that transcended modern Japan. Therefore, I concluded that the nationalism that surrounded Japanese women had the function of transcending the intention of the country owing much to individuals and journalism.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일본 여성과 내셔널리즘으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본 여성과 제국 일본, 일본 여성과 식민지 조선에 대한 고찰이다. 근대라는 새로운 세상은 여성에게 지휘향상, 전쟁협력, 식민지주의, 제국주의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내셔널리즘’이라는 영역 안에 여성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미미할 뿐 아니라 더욱이 식민지 조선에 온 일본여성들에 대한 연구는 미개척 분야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안에, 본 연구는 먼저, 일제 강점기 당시 광주공원 광장에 이오코의 동상이 있었던 오쿠무라 이오코를 조명하였다. 여장부, 여걸로서 등장한 이오코는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이 주어지지 않은 세상, 즉 남성들만의 세상에서 가정을 벗어나 사회적, 국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남성을 능가해야 했던 시대적인 요구에서 자발적으로 탄생한 내셔널리즘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대륙 개발’, ‘식민지 건설’이라는 일본의 목표 아래,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조선 땅을 밟았던 인물이기도 하였다. 한편 애국이라는 이름하에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이 주어진 이후의 이오코는 여성으로서 애국부인회를 창설하고, 당시 전시 총동원체제라는 의식이 성립되기 전, 애국부인회는 ‘전쟁터는 남성’, ‘후방의 전사자와 유가족은 여성’이라는 공식을 형성시켰다. 또한 전전(戰前)까지 쏟아졌던 그의 재생산물(전기, 평전, 명부전, 연극, 영화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이오코는 조국 일본을 위한 ‘여장부’ ‘여걸’에서 ‘애국의 어머니’ ‘조국의 어머니’로서, 더 나아가 대동아공영권 내의 ‘동아시아의 어머니’로서 승승장구하며 일본 내셔널리즘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로서 조명할 수 있었다.
    이오코에 이어, 일본에서 당대 유명한 남녀 여성교육가의 대대적인 환영회를 열어준 후치자와 노에는 남자를 능가하는 여장부였다. 그녀는 조선에서 ‘명신여학교(현재 숙명학원, 숙명여대)’의 학감으로 한국여성의 근대적인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한일부인회’를 주도했는데, 이는 조선의 상류 계급인 부인, 양반 자녀를 위한 ‘일본화 교육’이었다. 이러한 일본제국의 장래를 위한 내선일체의 정책 아래, 그녀는 동포가 된 조선을 지도할 의무를 체현한 인물이었다.
    한편 제국주의의 고양기라 할 수 있는 1900년대부터 다음과 같은 담론이 빈번하게 유통되고 있었다. 『부녀신문』에는 ‘해국의 여성’ ‘식민과 여성’ ‘여성의 해사(海事)사상’ 등 여성의 해외이주를 권장하는 담론들이 식민지와 관련지어 자주 논해지고, 더 나아가 여자를 동반하지 않는 식민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전개되었다. 이는 가정 단위(家)의 이주를 통한 영구적인 식민활동을 장려함으로써 가족 단위의 충성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담론들은 쓰다 세쓰코와 같은 여성 식민자를 양산하였다. 그녀는 조선에 있는 일본여성 교육에 이바지하였다. 조선에 있는 무력하고 무용지물인 내지의 딸들(조선의 일본여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들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쓰다 세츠코가 개설한 것이 청화여숙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재조 일본인을 중심으로 매월 발행되었던 녹기연맹의 기관지 『녹기』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쓰다 세츠코와 청화여숙은 내지의 딸들을 통한 영구적으로 조선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조선인의 지도자에 걸맞는 의무를 그녀들에게 부과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본 연구는 내셔널리즘의 자기장이 일본 여성과 미디어 『부녀신문』에 어떠한 담론을 형성시켰는가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양처현모와 불혼론이라는 대립되는 매커니즘을 통합하고 기존의 여성상으로부터 이탈한 마이너리티 여성까지 끌어드리는 것이 일본 여성을 둘러싼 『부녀신문』의 내셔널리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배제와 통합, 균질화과 계층화라는 대립되는 논리는 내셔널리즘 안에서 운동성을 발휘하는 한편, 『부녀신문』의 내셔널리즘은 근대 일본 국가를 초월하는 내셔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볼 때, 일본 여성을 둘러싼 내셔널리즘은 개인과 저널리즘에 의해 국가의 의도를 초월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본 연구는 일본 여성과 내셔널리즘으로,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본 여성과 제국 일본, 일본 여성과 식민지 조선에 대한 고찰이다. 근대라는 새로운 세상은 ‘내셔널리즘’이라는 영역 안에 여성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미미할 뿐 아니라 더욱이 식민지 조선에 온 일본여성들에 대한 연구는 미개척 분야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안에, 본 연구는 먼저, 일제 강점기 당시 광주공원 광장에 이오코의 동상이 있었던 오쿠무라 이오코를 조명하였다. 여장부, 여걸로서 등장한 이오코는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이 주어지지 않은 세상, 즉 남성들만의 세상에서 가정을 벗어나 사회적, 국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남성을 능가해야 했던 시대적인 요구에서 자발적으로 탄생한 내셔널리즘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대륙 개발’, ‘식민지 건설’이라는 일본의 목표 아래,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조선 땅을 밟았던 인물이기도 하였다. 한편 애국이라는 이름하에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이 주어진 이후의 이오코는 여성으로서 애국부인회를 창설하기도 하였다.
    또한 전전(戰前)까지 쏟아졌던 그의 재생산물(전기, 평전, 명부전, 연극, 영화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 이오코는 조국 일본을 위한 ‘여장부’ ‘여걸’에서 ‘애국의 어머니’ ‘조국의 어머니’로서, 더 나아가 대동아공영권 내의 ‘동아시아의 어머니’로서 승승장구하며 일본 내셔널리즘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인물로서 조명할 수 있었다.
    이오코에 이어, 일본에서 당대 유명한 남녀 여성교육가의 대대적인 환영회를 열어준 후치자와 노에는 남자를 능가하는 여장부였다. 그녀는 조선에서 ‘명신여학교(현재 숙명학원, 숙명여대)’의 학감으로 한국여성의 근대적인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한일부인회’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제국의 장래를 위한 내선일체의 정책 아래, 그녀는 동포가 된 조선을 지도할 의무를 체현한 인물이었다.
    한편 제국주의의 고양기라 할 수 있는 1900년대부터 다음과 같은 담론이 빈번하게 유통되고 있었다. 『부녀신문』에는 ‘해국의 여성’ ‘식민과 여성’ ‘여성의 해사(海事)사상’ 등 여성의 해외이주를 권장하는 담론들이 식민지와 관련지어 자주 논해지고, 가정 단위(家)의 이주를 통한 영구적인 식민활동을 장려함으로써 가족 단위의 충성을 요구하였다. 담론들은 쓰다 세쓰코와 같은 여성 식민자를 양산하였다. 그녀는 조선에 있는 무력하고 무용지물인 내지의 딸들(조선의 일본여성)의 교육을 위해 식민지 조선의 『녹기』잡지와 청화여숙을 열어 일본여성 교육에 이바지하였다. 쓰다 세츠코와 청화여숙은 내지의 딸들을 통한 영구적으로 조선 식민지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조선인의 지도자에 걸맞는 의무를 그녀들에게 부과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본 연구는 내셔널리즘의 자기장이 일본 여성과 미디어 『부녀신문』에 어떠한 담론을 형성시켰는가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양처현모와 불혼론이라는 대립되는 매커니즘을 통합하고 기존의 여성상으로부터 이탈한 마이너리티 여성까지 끌어드리는 것이 일본 여성을 둘러싼 『부녀신문』의 내셔널리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배제와 통합, 균질화과 계층화라는 대립되는 논리는 내셔널리즘 안에서 운동성을 발휘하는 한편, 『부녀신문』의 내셔널리즘은 근대 일본 국가를 초월하는 내셔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볼 때, 일본 여성을 둘러싼 내셔널리즘은 개인과 저널리즘에 의해 국가의 의도를 초월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본 연구는 식민지 연구, 일본여성사, 제국 연구 등에서 배제, 누락된 채 이어진 ‘일본여성과 내셔널리즘’에 대한 연구이다. 이는 일본여성이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주변(타자)으로서의 평가를 넘어 ‘내셔널리즘 안에서 주체로서의 일본여성이 어떠한 역할 등을 담당했는가’에 주목함으로써, 내셔널리즘이라는 남성적인 이미지에 여성의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일본의 내셔널리즘의 전체상을 밝히는 작업으로도 활용되리라 본다.
    본 연수과제는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연구를 비롯하여, 식민지 연구, 제국 연구, 일본여성사, 한국여성사에도 활용되리라 기대한다.
  • 색인어
  • 일본여성, 내셔널리즘, 오쿠무라 이오코, 애국부인회, 우치자와 노에, 쓰다 세츠코, 청화여숙, 제국 일본, 식민지 조선, 부녀신문, 미디어 담론, 여성교육, 내지의 딸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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