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개념은 그 빈번한 사용에도 불구하고 학적 개념으로 자리 잡지 못해왔다. 근대 이후 만인에게 친근한 용어로, 그것도 긍정적(positive) 의미의 용어로 즐겨 사용되어 왔지만 제대로 된 개념적/이론적 좌표를 확보하지 못해왔다. 윤리학이나 정치철학에서도 유사한 다 ...
연대 개념은 그 빈번한 사용에도 불구하고 학적 개념으로 자리 잡지 못해왔다. 근대 이후 만인에게 친근한 용어로, 그것도 긍정적(positive) 의미의 용어로 즐겨 사용되어 왔지만 제대로 된 개념적/이론적 좌표를 확보하지 못해왔다. 윤리학이나 정치철학에서도 유사한 다른 개념이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았을 뿐, 연대는 엄밀한 학적 대상이 못 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는 개념의 다의성/애매성 때문이다. 연대는 경우에 따라 ‘사회적 결속/안정’(social cohesion/stability), ‘사회적 협동’(social cooperation), ‘인간 상호 간의 애착’(mutual attachment), ‘공동체 정신’(community spirit), ‘자선’(charity), ‘형제애’(brotherly love), ‘인류애’(love of mankind)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또 사실적(factual) 개념으로도 사용되고 당위적(normative)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 부정의(injustice)에 맞서는 투쟁의 과정에 필요한 덕목(‘연대 투쟁’)으로 사용되며 동시에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사회적 이상(social ideal)으로도 사용되었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연대’가 서로 다르고 심지어는 상반된 사상/운동의 키워드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연대는 기독교 운동에서 많이 쓰이고 있으며, 노조운동, 사회주의 운동, 휴머니스트 운동은 물론, 파시스트 운동에서도 즐겨 사용되는 말이다. 이들 각각은 ‘연대’라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회관계에 대한 이해, 사회적 협동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다르다. 연대의 대상(동료 신앙인과의 연대, 빈자나 고통 받는 자와의 연대, 동료 노동자와의 연대, 민족과 국가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 등)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연대는 그에 내포된 일정 내용을 보다 명확히 표현하는 다른 철학적 개념(자유, 평등, 정의 등)에 밀려 애매모호한 상태로, 또 단순한 일상의 유행어 또는 투쟁의 표어로만 사용되어 온 것이다.
본 연구는 이처럼 다양한 연대론의 배경에 일정한 문제의식(공동체 사상, 반反개인주의 등)이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고 그 문제의식이 오늘날 윤리적/정치철학적으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대’가 이론적으로 해명되지 않은 채 철학의 주변 개념으로 겉돌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고, 다양한 ‘연대’ 개념 속에 담긴 사상을 보다 학적으로 체계화하여 설득력 있는 개념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동안 연대에 대한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대의 사회정치적 중요성 때문에 분과학문의 분야별 연구는 간헐적으로 있어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본격적인 문제의식(개념의 사회정치적 중요성에 비추어 학적 체계화가 안 되었다는 문제의식) 하에 ‘연대’ 개념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몇 안 되는 철학적 연구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우선 분과학문의 연구 성과를 보면 대표적인 것이 사회운동/노동운동/혁명운동의 역사 관련 저술들이다. 이는 대부분이 연대 운동의 기원과 전개에 관한 글들, 각국의 사례에 대한 연구다. 아울러 법학, 신학, 사회학 분야에서의 연구, 그리고 응용학문분야(사회정책, 의료정책, 교육정책, 심리학 등)에서의 연구가 있다. 이들 연구들은 대부분 연대 개념(운동)의 역사에 대한 고찰이거나, 아니면 해당 분과의 이해방식을 전제한 후, 그 응용만을 다루는 연구들이다. 연대 개념이 갖는 의미에 대한 철학적(형이상학적, 도덕철학/정치철학적) 정당화/비판 등에 집중된 연구들은 아니다. 이는 국내의 연구 동향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로 근현대 주요 사상가와 철학자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다루어진 연구들이 있다. 퇴니스의 <공동사회와 이익사회>가 연대(공동사회의 원리)를 다루고 있으며, 뒤르켐, 막스 쉘러, 엥겔스, 루카치, 크로포트킨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하버마스가 담화윤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연대에 관해 언급한 것, 롤스가 ‘차등의 원리’를 이야기하면서 연대에 관해 언급한 부분,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에서 공동체주의자들이 ‘공동선’ 개념을 논하면서 언급한 내용 등이 있다. 이들의 연구는 본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서 취급될 것이다. 비록 연대 개념 자체를 주제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지만, 이 개념에 함축된 다양한 철학적 의미 파악에 매우 중요한 전거들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가 출발점으로 삼고자 하는 자료는 K. Byaertz(ed.) Solidarity(1999)다. 이 자료는 전체적인 안목에서 연대 개념의 위상(연대 개념의 혼돈 상황, 연대 개념의 역사와 철학적 의미/한계, 남은 학적 과제 등)을 파악하기에 적절한 자료로 판단된다. 본 연구는 연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거쳐 그 한국적 적용까지 시도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