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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고대의 ‘혼인제’와 ‘여성’ -고려와 헤이안조를 중심으로-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0-327-A00415
선정년도 2010 년
연구기간 1 년 (2010년 05월 01일 ~ 2011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김영
연구수행기관 대구한의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1. 근대 ‘젠더’ 연구의 근간이 되는 고대 여성사, 고대 젠더사 연구
    최근 『동아시아의 국민국가 형성과 젠더(東アジアの国民国家形成とジェンダー―女性像をめぐってー)』이 출간되면서 여성의 정체성 문제를 중심으로 근대국민국가 형성 시기에 국가와 사회는 여성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해왔으며 그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의 역할 및 정체성, 즉 젠더성은 어떠한 모습으로 조형되어 왔는가를 살피는 연구가 활발하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이 제기되는 공간적 범위가 일국 차원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라는 좀 더 확대된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동아시아근대여성사연구회’가 주체가 되어 발간했는데 그 모체는 1969년 ‘아시아여성사국제심포지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를 계기로 98년에 ‘동아시아근대여성사․젠더사연구회’가 동아시아 각국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 연구회가 지향하는 여상사 연구․젠더사연구가 근대 이후로 제한되어, 그 이전의 근간이 되는 고대 여성사와 고대 젠더사에 관한 연구부족과 이해부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연구자는 근대 이후 형성된 ‘賢母良妻’담론 및 ‘新女性’담론이 어떠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잉태되었으며 어떠한 사회구조 속에서 변형되어 왔는가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여성사와 고대 젠더사에 관한 연구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폐쇄된 공간으로서의 각국, 개별국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여성상의 형성 과정의 테마를 공유해 보는 것도 - 기존의 일국이 아닌 좀 더 확장된 공간 속에서 비교 연구하는 시도-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2. 한일 고대사회의 성적 불평등 구조 해명- ‘혼인제’와 ‘여성’
    본 연구는 한일 고대사회의 여성상, 젠더성이 어떠한지 해명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각 시대와 사회의 남녀 양성간의 결합과 갈등, 그리고 그것들에 작용하는 성차별의 실상을 드러내고자 시도하였다. 남녀의 결합 형태로서는 혼인, 간통, 매매춘 등을 상정할 수 있고 갈등 형태로는 이혼, 강간 등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혼인은 남자와 여자가 그들의 결합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행위로써 각 시대마다 성립요건이나 절차, 내용 등에 차이가 있다. 혼인은 한 사회의 구조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인에 관한 연구는 가족사나 여성사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사회사 연구의 중요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고대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나 성적 불평등은 사회의 각 부문에 반영되어 있지만 무엇보다 혼인제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고려시대와 일본 헤이안시대의 혼인제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고려사회와 헤이안사회의 구조적 모순성을 분석하고 양국 여성들의 지위와 생활, 그리고 시대가 ‘요구했던’ 여성상과 성차별의 실상, 실제 여성들의 삶과의 괴리 등을 알아보고자 한다.
    3.종래 ‘중국 중심’의 혼인제 연구를 초월한 연구 - 한국 고전문학을 중심으로 한 비교연구는 주로 중국이 비교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리고 비교의 방법 또한 ‘영향’의 授受관계가 전제되는 경우가 주류를 이루어왔다. 결과적으로 중국과의 비교연구에서 한국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입장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고 작품 본질론과 유리되는 결함이 있었으며 전통적 요인에 대한 규명도 소홀했다. 한편 일본문학과의 비교연구는 상대적으로 수가 적으며, 鄕歌와 『萬葉集』의 영향관계, 『금오신화』『열녀전』등이 일본의 서사문학에 미친 영향, 한일 설화의 비교 등에 관한 소수의 연구가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일 비교문학연구에 있어서도 ‘영향’관계에 집착하는 한 일본문학과의 비교연구 또한 극히 제한된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지적하며, 적극적으로 한국과 일본과의 비교문학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면, 『구운몽』과『源氏物語』의 비교연구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연구시도는 최근 한국문학이 고립성에서 탈피하여 세계문학 내에 그 존재를 개방시킴으로써 시야를 새롭게 확립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문학의 특징과 정체성을 밝히는 것에 비교연구의 의의를 찾는다면, 영향관계를 넘어 좀 더 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비교문학 연구에 임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기대효과
  • 1. 일제 강점기 식민사관에 입각한 조선총독부와 今村鞆의 연구 분석
    먼저 혼인에 관한 종래의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혼인제를 근대역사학적인 방법으로 처음 연구한 것은 일제 강점기 시대의 일본인 학자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를 위해 조선의 사회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에 조선의 민속이나 풍속에 대한 자료 조사부터 시작하였다. 이 결과 1910~20년대에는 혼속을 포함한 여러 자료집들이 간행되었으며 차츰 조선 혼인 풍속의 특성에 대한 연구 논문들이 발표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주로 혼인의례나 동성불혼제(同姓不婚制) 등 일본과 다른 조선 혼속의 특징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철저히 식민사관에 입각한 해석을 보이고 있다. 이 외에도 일제 강점기 시대 발표되었던 일본인 연구자의 연구결과(伊藤憲郎「朝鮮における同族不婚の原則」『朝鮮』1928, 秋葉隆「朝鮮の婚姻形態」『哲学論集』1930, 藤田東三『李朝実録朝鮮婚姻考』大同印書店 1941)를 1차 번역과 2차 연구 분석을 통해 재조명할 것이다.
    나아가 연구자는 일제 강점기 식민사관으로 점철(點綴)되어 온 고려시대 혼인제와 여성에 대한 연구를 당시의 문헌과 사료, 작품 등을 통해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접근할 생각이다. 이러한 연구는 종래의 식민사관적 역사관과 문화사 서술에서 탈피하여 좀 더 보편적이고 실증적인 ‘혼인제’와 ‘여성’이라는 테마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으며 동시에 일제 강점기 일인 학자에 의해 시작된 한국의 가족사(家族史)와 혼인사(婚姻史) 연구를 올바른 역사관 위에 재정립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2. 잊혀진 소수자들의 역사 - 역사 속의 여성 ‘재발견’
    이제까지 역사 속의 여성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표상’에 불과했다. 지금까지의 역사에 ‘남성사 - 곧 국가를 위한’ 에 불구하다고 선고하고 여성들을 재발견하는 일은, 단순히 여성학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잊혀진 소수자들의 역사에 빛을 들이는 일이다. 또한 이것은 소수자를 배제하거나 침묵시키고 모든 국민들을 동일화시키려는 ‘상상의 공동체’일 뿐인 국가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종래 혼인제를 통해 역사속의 여성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수행되었으나 한일 고대의 혼인제 비교검토를 통해 양국 혼인제도의 성격과 고유성, 그리고 그를 통해 파생된 여성상, 젠더성의 비교고찰을 시도한 연구는 이루어진 바 없다. 따라서 이러한 일련의 연구는 한일 양국의 비교문화연구 뿐만 아니라 근대 젠더연구에도 가치 있는 결과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3. 국내 여성사 연구의 의미와 한계 - 조선시대에 치우친 연구경향
    해방 후 김두헌은 『한국가족제도사』를 발간했는데 이는 고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혼인은 물론 가족제도 전반을 다룬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서로서 서구의 인류학 이론을 원용하고 비교사적 방법을 사용하는 등 한국 혼인사의 연구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다. 그러나 통시대를 다루었어도 사료 분량상 대부분 조선시대에 치중하고 있어 고려 혼인제에 대한 내용은 매우 소략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간행된 권순형의 저서는 고려시대 혼인제를 다룬 본격적인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들어와 정용숙이 『고려왕실 족내혼 연구』를 펴냈는데 이는 고려 혼인제에 대한 최초의 단행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 역시 특수한 집단의 왕실의 혼인을 다뤘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한국내 일본문학계에서도 허영은의 『일본문학으로 본 여성과 가족』와 사이토아사코의『일본고대문학에 나타난 여성상의 연구』가 간행되어, 일본문학계에 있어 ‘가족’과 ‘여성’이라는 테마에 촉매제적 역할을 감당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여성사 연구는 한국사 전공자에 의해 독점되어 온 분야였으며, 최근 일부 일본문학자들의 논고가 있을 뿐 이었는데, 본 연구자와 같이 개별 지역 연구에 국한하지 않고 ‘동아시아’ 속의 여성, 개별국이 아닌 좀 더 확장된 개념의 문화 속에서의 여성을 살피는 시도가 절실히 요구될 것이다. 이는 앞으로 폐쇄된 공간, 일국(一國)에 머무르는 여성사 연구가 아니라, 좀 더 확대된 개념으로서의 한일 비교 젠더사 연구에도 꼭 필요한 연구이다.
  • 연구요약
  • 1. 연구개요
    그 동안 학계는 식민사관의 비판과 새로운 사상의 수립이라는 과제의 연속선상에서 내재적 발전론을 이론적으로 더욱 가다듬고 실증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시켰다. 그러면서 정치․경제․신분․외교사 등의 문제들이 언급되었지만 개인이나 가정문제를 다루는 ‘혼인제’와 ‘여성’에 관한 연구는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고대 여성들의 생활과 한일 고대 사회 구조하의 젠더의 변천과정을 고찰하여 진정한 여성성과 여성의 정체성 파악, 성의식과 성차별의 문제, 특히 양국의 여성사 연구에서 양성간의 결합 형태나 갈등 형태 등을 총체적으로 다룬 시도는 없었다. 다만 혼인과 이혼에 관한 연구가 근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고대의 문학작품과 역사 사료에 나타난 가정의 형태와 여성의 생활을 고찰하여 역사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변천했으며 각 시대마다 각 사회마다 어떠한 여성상이 추구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주로 다루려고 하는 시대는 10세기부터 12세기로 高麗에 해당하는 이 시기를 일본사에서는 섭관정치(攝關政治)의 시대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린 천황을 대신해 정치를 행하는 섭정(攝政)과 성인천황이라 하더라도 천황의 정치를 보좌하는 관백(關白)에 의한 정치시스템이다. 섭정(攝政)․관백(關白)에는 주로 천황의 어머니나 아버지, 형제가 즉위하여 정권을 휘둘렀다. 그렇다면 어째서 천황의 어머니 쪽 아버지나 형제가 천황을 대신해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것 일까. 그것은 당시의 혼인제도인 무코도리콘(婿取婚-과거의 데릴사위제)에 의해 어머니 쪽에서 자녀양육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조선왕조 또한 주자학적인 유교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모든 문물제도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생활 전반까지 중국과 일치시키려는 이념이 강요되며 혼인제 또한 중국의 친영례(親迎禮)와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확립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와 같이 혼인제는 국가의 체계를 형성하는 근본이며 당시 사회구조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구체적인 연구과제
    (1) 고려와 헤이안조의 ‘혼인제’와 ‘여성’ - 고려시대 일반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서긍(徐兢)이 쓴『宣和奉使高麗圖經』이 있는데, 여기에는 신분에 따른 결혼제도와 여성들의 가정생활, 복식 등의 생활사뿐만 아니라 이혼이나 재혼에 대한 당시의 실상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자료를 통해 당시 외부인이 바라본 고려 내부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려사』 열전에는 2명의 처를 거느리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게 존재하는데, 나유, 구영검, 강윤충, 임정기 등의 사례가 그러하다. 간단히 요약하면, 고려사회에는 <妻><妾>의 명칭은 존재했지만 거의 신분이나 사회적 차별이 없는 거의 지위가 동등한 여러 명의 ‘妻들’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고려사회가 一夫多妻制 사회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헤이안시대는 정식으로 사위를 맞아들여 아내의 집에 공공연히 찾아오게 되면서 그 기간이 일정기간 지속되면 사회적으로 공인된 부부관계가 되었는데, 이처럼 공인된 아내는 2-3명 정도는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서 헤이안시대 초기에는 수명의 아내들 사이에 위, 아래가 없던 것이 점차 아내들 중에서도 서열이 서서히 정해지게 되었을 것이다.
    (2) 이혼과 재혼에 대한 고찰 - 이혼의 성립요건과 유형, 절차 등을 통해 양국 이혼의 특성과 밝히고 재혼관과 남녀 재혼의 실태, 과부 및 재혼녀의 구체적 삶을 통해 이혼과 재혼이 여성 삶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 밝혀 보고자 한다.
    (3) 성과 성차별 문제 - 우선 혼인 외 관계로서 간통죄의 개념과 처벌 상의 특징 등을 통해 양국의 성적 자유의 실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예를 들면 고려의 수절의식과 열녀의 존재를 통해 고려의 상의식과 상차별에 대해 고찰하고 일본의 수절의식은 언제 성립하게 되고 열녀의 존재여부를 살펴보며 양국의 성의식의 차이를 밝히고자 한다.
    (4) 여성의 가정생활과 종교생활- 우선 양국의 여성정책과 유교 및 불교의 여성관을 통해 양국 여성의 존재조건부터 살펴보겠다. 또한 가족의 규모와 구성, 가족 내 여성의 법적 및 실제적 지위, 그리고 가족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도 알아보려고 한다. 이로써 한일 양국 여성의 존재형태와 생활상을 밝히고, 그 역사적 성격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
  • 한글키워드
  • 여성,혼인제,젠더,헤이안조,고려
  • 영문키워드
  • Marriage institution,Woman,Gender,Koryo,Heian period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고대 한국은 중국과의 문물교류를 통해 고유의 전통문화를 완성해 왔다. 고려시대는 통일신라의 문화를 계승하면서 제도적인 면에서 중국적인 문화요소를 흡수, 수용한 시대였다. 하지만 고려사회에서 결혼제도와 이와 관련된 가족제도만은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독특한 문화현상을 낳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헤이안시대의 사료에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당시 중국의 율령을 모방하여 요로령(養老令) 등을 제정했지만 실제 혼인법에서는 이러한 법 규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한 예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중국의 주자가례를 사회의 규범으로 도입하여 결혼제도 역시 주자가례의 혼례에 준하여 의혼, 납채, 납폐, 친영 등의 예를 원칙으로 하였는데 이중 가장 유교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 친영제(親迎制)이다. 친영이란 결혼식과 동시에 신부를 남편의 집에서 맞아들이는 것으로 조선시대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이념이며 제도였다.
    그러나 고려사회는 중국과 달리 결혼식을 여성의 집에서 행할 뿐만 아니라, 결혼 초기에 남편이 아내의 집에서 머물다가 시가로 들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은 중국의 친영제와는 전혀 상반되는 결혼형태였다. 그런데 이러한 혼인제도가 일본 고대에 보편적으로 행해지던 무코토리콘(婿取り婚)이라는 형태와 유사하다는 것은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결혼제도와 가족제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문화사적인 깊은 영향관계를 유추케 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혼인의례는 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친영의 6례가 있었는데, 이중 납징의 예물은 보통 <빙례(聘礼)><빙재(聘財)>라고 빙례의 수수(授受)는 실질적인 결혼성립 유무와 직결되었다. 하지만 고대 헤이안시대나 고려시대 모두 빙례의 예가 없다는 것도 고대 한일 사회의 공통적 특징이다.
    한편, 지금까지 일본학계에서는 이러한 일본 고유의 결혼의례 및 결혼의식에 관한 제(諸) 특징은 별 다른 이론의 여지없이 남방계(동남아)적인 문화요소로 지적되어 온 경향이 짙었다. 하지만 본 연구를 통해 일본 고유의 독특한 결혼제도라 여겨져 왔던 고대 결혼의식 및 결혼 풍습이 오히려 고려와의 영향관계 하에서 전파, 변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당시 한일 교류사적 측면에서도 일본의 결혼제도가 고려사회의 결혼제도와 문화사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 영문
  • Relics of ancient Korea through exchanges with China's unique cultural heritage has been finalized. Koryo Dynasty succeeded the Unified Silla and the institutional culture of the Chinese cultural elements in terms of absorption, was the era embraced. But considering the institution of marriage in society and family structure associated with the sphere of influence of China in the Bay lay out a unique cultural phenomenon, and I want to pay attention to the fact. This historical fact was revealed vividly in the diet of the Heian period, the time to mimic China's yulryeong yororyeong (养老 令), etc., but the actual honinbeop enacted laws and regulations, these were not implemented properly.
    Specifically, look at that example, the first Chinese player to garye norms of society by introducing the institution of marriage as well as residents of a wedding ceremony in accordance with garye uihon, napchae, nappye, as chinyoung example, double the Confucian principles were to represent the nature chinyoungje (亲 ​​迎 制) is What chinyoung wedding and the bride at the same time as her husband's house Joseon acknowledging properly patriarchal family system and the system's most fundamental philosophy was that.
    However, unlike China, considering society wedding women do at home, as well as her husband's house early in the marriage's here go through the process of entering the market. This is nothing to do with China's chinyoung third form of marriage was to the contrary. But this marriage system is commonly done in ancient Japan Mukogawa Sat Presidency silicon (婿取り 婚) is similar to the form of even more interesting is the fact. These facts surrounding the institution of marriage and family system one day a profound impact on cultural history of bilateral relations is yuchuke.
    In addition, China's marriage rituals napchae, civilization, napgil, napjing, listening device, the six ryega was chinyoung, offering double napjingui usually <bingrye (聘礼)> <bingjae (聘 财)> bingryeui as sorghum (授受) directly connected to the real presence was established marriage. Both during the Heian period of ancient daimyo, but considering there is no example of bingryeui common characteristics of the society is also an ancient one day.
    However, until now a unique marriage of Japanese academia, these Japanese rituals and wedding ceremonies on the third (诸) characterized by a different theory of the categorical nambanggye (Southeast Asia), and cultural factors tend jiteotda been pointed out: With this study, however, Japan's own unique wedding I've considered the ancient Dora wedding ceremonies and marriage customs affect the relationship between this rather under consideration propagation, transformation can imagine that might have been. Of course, one day at the time of exchanges in terms of historic institution of marriage in Japan considering the institution of marriage in society and the cultural history of the deep connection that there will not be denie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고대 한국은 중국과의 문물교류를 통해 고유의 전통문화를 완성해 왔다. 고려시대는 통일신라의 문화를 계승하면서 제도적인 면에서 중국적인 문화요소를 흡수, 수용한 시대였다. 하지만 고려사회에서 결혼제도와 이와 관련된 가족제도만은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독특한 문화현상을 낳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헤이안시대의 사료에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당시 중국의 율령을 모방하여 요로령(養老令) 등을 제정했지만 실제 혼인법에서는 이러한 법 규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한 예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중국의 주자가례를 사회의 규범으로 도입하여 결혼제도 역시 주자가례의 혼례에 준하여 의혼, 납채, 납폐, 친영 등의 예를 원칙으로 하였는데 이중 가장 유교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 친영제(親迎制)이다. 친영이란 결혼식과 동시에 신부를 남편의 집에서 맞아들이는 것으로 조선시대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이념이며 제도였다.
    그러나 고려사회는 중국과 달리 결혼식을 여성의 집에서 행할 뿐만 아니라, 결혼 초기에 남편이 아내의 집에서 머물다가 시가로 들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은 중국의 친영제와는 전혀 상반되는 결혼형태였다. 그런데 이러한 혼인제도가 일본 고대에 보편적으로 행해지던 무코토리콘(婿取り婚)이라는 형태와 유사하다는 것은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결혼제도와 가족제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문화사적인 깊은 영향관계를 유추케 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혼인의례는 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친영의 6례가 있었는데, 이중 납징의 예물은 보통 <빙례(聘礼)><빙재(聘財)>라고 빙례의 수수(授受)는 실질적인 결혼성립 유무와 직결되었다. 하지만 고대 헤이안시대나 고려시대 모두 빙례의 예가 없다는 것도 고대 한일 사회의 공통적 특징이다.
    이러한 결혼의식의 기원은 고대 한일 양국 모두 우타가키(歌垣)와 동맹(東盟)과 같은 민간 축제에서 엿볼수 있다. 춤과 노래를 즐기며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했으며 고대인들은 자유롭게 남녀가 만나 성적으로도 개방되어 자유로운 성관계가 이루어졌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자유로운 결혼의식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츠마야>와 <서옥>이라는 여성측 거처에 남성이 자유롭게 왕래, 기거하는 가변적이며 불확실한 결혼의식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츠마야>와 고구려의 <서옥>이라는 장소는 모두 여가(女家)의 안채와 분리된 별채 개념의 집인데, 가옥의 문 앞에 서서 남성이 구혼의 노래를 불러 여성에게 구혼의 의사를 전달하고 안에 있는 여성이 이를 수락하면 문을 열어주면서 결혼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고대부터 헤이안시대까지 남성이 여성의 거처에 왕래하는 결혼풍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가요이(かよい), 도코로아라와시(ところあらはし), 스무(すむ) 등의 단계를 거쳐 남녀관계가 진전, 발전하는 양상을 띤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나라에서도 고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 측 거처에 왕래하거나 머무는 양식을 나타내는데, 남성과 여성과의 동거기간은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십 년까지 아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때 생활비나 의복 등은 여성 측에서 제공되었다. 그리고 헤이안시대에는 도코로아라와시(露顕)를 계기로 그동안 비밀관계로 유지되던 남녀관계가 공식적으로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받았는데, 3일째 신랑과 신부가 함께 먹는 <미카노모치(三日の餅)>는 도코로아라와시 의식 중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혼인의례 중에서도 신랑이 여자의 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3일 째 신랑과 신부가 받는 음식상인 <삼일대반>을 연상시킨다.
    지금까지 일본학계에서는 이러한 일본 고유의 결혼의례 및 결혼의식에 관한 제(諸) 특징은 별 다른 이론의 여지없이 남방계(동남아)적인 문화요소로 지적되어 온 경향이 짙었다. 하지만 본 연구를 통해 일본 고유의 독특한 결혼제도라 여겨져 왔던 고대 결혼의식 및 결혼 풍습이 오히려 고려와의 영향관계 하에서 전파, 변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당시 한일 교류사적 측면에서도 일본의 결혼제도가 고려사회의 결혼제도와 문화사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학문적 기여>
    □후속연구 및 단행본 발간
    본 연구는 각 분기별로 3개의 테마를 가지고 수행해 왔다. 그 목적은 고대 한일 역사에 나타난 여성상과 여성지위의 역사적 변천상을 밝히는 데에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연구자는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과 종래의 개별 연구를 종합하여 단행본을 출간할 것이다. 본 연구는 일본 고대 역사와 문학, 여성과 정치, 사회를 아우를 수 있는 총체적 연구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국내 학계가 일본 지역 연구를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는 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 문학연구와 주변학문 간의 유기적 결합
    종래 역사와 문학 연구에 대해 가해지는 비판 중 하나는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강조한 나머지 동아시아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연구이론 개발에 소홀하였고 그 결과 연구이론의 보편화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연구이론과 방법에 있어 ‘여성’과 ‘젠더’라는 공통된 테마를 중심으로 그동안 소외되었던 역사와 사회상 속에서의 여성에 대한 고찰이다. 본 연구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균현 잡힌 시각에서 다룸으로써 이러한 연구의 결과가 새로운 일본 연구방법론의 이론적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일본 고대사회에 관한 명확한 이해뿐만 아니라 그동안 개별국의 여성, 폐쇄된 공간 속에서의 여성을 생각하는 사고에서 벗어나 ‘동아시아’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여성상(젠더)의 형성 과정의 테마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기여>
    □ 일본 이해 프로그램을 통한 후속세대 및 지역시민의 교양 교육 수행
    한국의 대학에서는 연구과 교육을 접목하여 일본문화와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시행하는 경우는 희소하다. 특히 연구와 이론에 기초한 한일 역사비교와 문화비교에 관한 교육 커리큘럼 또한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본 연구자는 일본 역사와 여성, 한국 역사와 여성에 대한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학부교육을 위한 다양한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한편, 평생교육원에서도 관련 강좌를 개설함으로써 학부의 전공교육과 지역시민의 교양교육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 인력양성 핵심 주체는 소속대학의 국제문화연구소
    본 연구자가 소속된 국제문화연구소는 국제적인 수준의 지역학 연구와 교육의 허브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학교차원의 적극적 지원 하에 설립되었다. 국제문화연구소는 교내 여러 분야 전공교수간의 학제간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각 문화별 분과실( 1)<영어문화 연구실>2) <중국어문화 연구실>3) <일본어문화 연구실>4) <한국어문화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자는 <일본어문화 연구실> 중심으로 총체적으로 일본의 언어, 문화, 역사, 사회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며 1년에 2회 국제문화포럼을 통하여 각 분과별 교수들 간의 학술적 교류를 원활히 하는 한편, 각 외국어학부와의 연계를 통해 국제지역에 대한 전문성과 실무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육성하고자 한다.
    □ 외국어학부 중심의 학부 인력양성
    본 연구자가 소속되어 있는 외국어학부는 국제적인 감각, 언어능력, 실무능력 등의 함양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외국어학부에는 언어와 문화, 지역연구(중국 및 일본) 두 개 전공이 개설되어 있다. 외국어학부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지역별 연구회(언어문화연구회, 일본연구회, 중국연구회)를 운영하며 지도교수의 지도하에 주례모임, 주제 및 사례발표, 영상자료 시청, 주제별 소모임, 소식지 발행, 워크숍 개최, 초청강연, 해외현장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자의 연구결과는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교육과 과외 학술활동의 촉진에 기여할 것이다.
    <교육과의 연계 활용 방안>
    □ 연구 성과를 취합한 단행본을 전문교재로 활용
    본 연구자의 단행본은 한일 비교문화 분야의 전문 교재로 활용할 수 있다. 일본역사와 문학, 문화, 정치, 사회를 아우를 수 있는 종합서로 본 연구 성과는 한국학과 일본학 분야에서의 여성학, 역사학, 문학 등 다양한 학과에서 전문교재로 활용될 것이다.
    □ 학부 및 대학원생의 연구 참여 유도로 일본지역전문가 양성
    본 연구의 연구수행과정과 수업에 한국어학부와 외국어학부(일본, 중국)의 학생과 타학부의 대학원생을 참여시킴으로써 이들에 대한 교육효과를 제고한다. 이들은 수업과 세미나에 적극 참여하여 정규 교과과정을 통해서는 배우기 어려운 일본에 대한 자발적인 연구와 이해를 동반할 것이다. 이를 통해 체계적인 일본 지역전문가로 양성될 것이다.
  • 색인어
  • 고려시대, 헤이안시대, 결혼의식, 혼인제, 여성, 젠더, 여성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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