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해리엇 마티노의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담론 -'제국 문제(Empire Question)'를 중심으로-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_시간강사(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1-35C-A00107
선정년도 2011 년
연구기간 1 년 (2011년 09월 01일 ~ 2012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배인성
연구수행기관 전북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었던 해리엇 마티노(Harriet Martineau, 1802-1876)의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담론을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해리엇 마티노가 어떻게 빅토리아기 제국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상황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것이 함축하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이는 여성의 눈으로 조망하는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담론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녀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 제국주의의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많은 역사가들로 하여금 다양한 제국주의 담론을 생산하는 동인을 제공하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성별을 둘러싼 엄격한 규범들이 생겨난 시대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즉 여성들은 집안일을 관장하며 남편과 아버지, 자녀들을 보필하도록 요구받았으며 남성들은 강인하고 활동적이며 가족을 부양하고 공적 영역에서 일하도록 기대되었다. 이렇듯 여성을 사적 영역인 가정과 동일시하고 남성을 공적 영역에 위치시키는 ‘별개 영역(Separate Sphere)'의 이데올로기는 19세기를 특징짓는 성 차별과 젠더 구분의 근거를 제공한다. 이 시대를 살았던 많은 여성들이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고 공헌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무엇보다 영국 제국주의의 정당성을 이끌어내고 미화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강한 남성성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는 사회 중심부에 위치했던 남성 지식인들이 생산해 낸 제국의 담론에 귀를 기울였으며 이에 대한 결과물, 다시 말해 그들이 창출해낸 제국에 대한 이미지, 견해 등을 사회 발전의 정당한 기제로서 활용해 나갔다. 그러므로 빅토리아 시대는 강한 남성성의 이미지를 요구했고, 반면에 약한 여성성을 정당화해나갔던 것이다. 빅토리아 시기의 가정 이데올로기는 ‘집안의 천사’를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렇듯 당대를 지배하는 가정 이데올로기는 남성성과 여성성, 강함과 약함,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지배와 피지배, 그리고 일터와 가정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정황에서 해리엇 마티노의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담론은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해리엇 마티노가 조망하고 있는 빅토리아기 제국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마티노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세계 각국을 여행하였다. 1834년부터 36년까지 미국 여행을 시작으로 1846년부터 47년까지 중동을 여행했으며, 1852년에는 아일랜드를 여행하기도 했다. 그녀는 여행을 통해 목격하고 경함한 바를 작품으로 담아내었다. 그러므로 그녀가 저술한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은 여성의 눈을 통해 바라본 다른 나라에 대한 경험과 관찰 그리고 이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해리엇 마티노에 대한 연구는 매우 미진한 상태일 뿐 아니라, 해리엇 마티노의 제국에 대한 담론을 역사적 측면으로 고찰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본 연구의 필요성, 독창성, 그리고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본 연구자는 마티노의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담론을 크게 ‘제국 문제(Empire Question)'라는 틀 속에서 분석하려고 한다. 이는 마티노가 평생 관심을 가졌던 여성과 노예에 대한 ‘문제’에서 더 나아가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본 연구자가 제시하는 ‘제국 문제’는 빅토리아기 제국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좀 더 세분화된 제국의 문제로 분석될 것이다. 즉 ‘아일랜드 문제’와 ‘인도 문제‘에 주목하면서 마티노의 제국에 대한 담론을 검토할 것이다.
    본 연구의 결과는 남성 중심의 빅토리아기 제국주의에 대한 담론에서 부재했던 이야기들을 추가함으로써 좀 더 완성된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내는 데 상당히 공헌할 것으로 기대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1)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새로운 담론 형성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는 강한 남성상이었다. 이는 남성과 여성, 지배와 피지배, 약함과 강함 이라는 이중적인 구조를 사회 인식의 토대로 제공한다. 그러므로 당대인들은 물론 후세 역사가들도 빅토리아기 제국의 이념과 부합하지 않는 주장 혹은 이를 제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았고, 그 결과 이들은 역사의 주변부에 위치하거나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해리엇 마티노의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담론은 주변부의 역사적 재현을 위한 중요한 전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2) 해리엇 마티노 연구를 통한 학제 간 연구 도모
    19세기 영국을 특징짓는 공․사 영역의 '별개 영역 이데올로기'의 테두리 안에서 볼 때, 해리엇 마티노가 접근한 분야는 남성들의 분야로서 인식되었던 정치적․경제적․제도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녀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경제학․역사학․문학․철학 등 학제 간 연구를 도모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제한적 혹은 좁은 의미의 페미니스트로서 그녀를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성 문제'를 넘어서서 영국의 제국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 개혁적 시선에 동참하고 이를 영국의 대중들에게 독려하고자 했던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지성으로서 그녀를 평가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

    3) 해리엇 마티노에 대한 종합적 논의의 확대
    본 연구자는 이 연구를 통해 해리엇 마티노의 페미니즘 연구의 외연을 확대하고 그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이는 결국 거시적 안목의 페미니즘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에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사용하였던 ‘여성 문제(Woman Question)’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넓은 의미로서 정치․경제․사회․역사․철학․문학․의학 등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려는 것이다. 요컨대 해리엇 마티노의 활동과 사상을 재현함으로써 19세기 영국의 근대 페미니즘, 더 나아가 영국의 역사에서 그녀를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4) 학생들에게 새로운 인물을 소개하고 연구 지평의 확대를 도모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해리엇 마티노라는 인물은 낯선 인물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지식인, 사회 개혁가,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해리엇 마티노를 소개하고 그녀의 활동, 특히 그녀의 제국주의 담론을 고찰함으로써 교육과 연계시키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해리엇 마티노의 연구 지평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5) 해리엇 마티노의 제국 담론에 관한 논문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본 연구자는 「해리엇 마티노의 빅토리아기 제국 담론」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제출하고자 한다. 끝으로 본 연구를 통해 근대 영국의 페미니즘의 패러다임에 혁신적인 변화를 도모하고, 여성사를 연구하는 다른 연구자들을 독려하고 이와 관련된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
  • 연구요약
  • 해리엇 마티노라는 여성을 통해 전달되는 영국 제국주의와 식민지 정책에 대한 담론은 그 동안 영국 역사에서 주로 '남성성'의 이미지로 투영되었던 영 제국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여성의 제국 이미지를 체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빅토리아기 영 제국의 식민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나름의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분석될 연구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해리엇 마티노는 영국의 산업화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 문제는 해리엇 마티노의 ‘제국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선행되어져야 할 논의이다. 마티노의『정치경제의 실례』는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와 새롭게 부상하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해리엇 마티노의 ‘제국 문제(Empire Question)’에는 어떤 내용들이 포함되는가? 이 질문은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마티노의 입장을 알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제국 문제’는 ‘전쟁과 평화’라는 맥락에서 역사적 접근이 요구된다. 영국 측에서 볼 때, 제국을 팽창해가는 과정에서 수반되었던 침략과 약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들이 주장하는 당위성은 무엇이었는가를 분석할 것이다. 예를 들어 ‘문명화 사명’이나 ‘기독교 전파’와 같은 문화적 요소들 말이다. 이외에도 경제적 측면에 대한 분석도 이루어질 것이다.

    셋째, ‘아일랜드 문제’에는 어떤 내용을 포함하는가? 백인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는 영연방 안에서 정치적, 경제적 동등한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국과의 마찰과 갈등을 일으켰다. 열악한 경제, 농업 기술, 기근, 그리고 종교 문제 등은 이를 형성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본 연구자는 해리엇 마티노가 ‘아일랜드 문제’를 어떠한 시각으로 규정하고 있는가를 분석하고자 한다.

    넷째, ‘인도 문제’에는 어떤 내용을 포함하는가? '인도 문제'는 특별하면서도 가장 골치 아픈 대영제국의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제국주의와 실현되지 못한 문명화 사명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서 마티노는 인도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영국 제국주의의 일대 전환기라 할 수 있는 1857-59년에 발생한 인도 항쟁(Indian Rebellion)에 대한 마티노의 시각을 살펴볼 것이다. 당시 영국은 인도 항쟁에 대한 후속 조치로서 1858년 새로운 인도 통치법(Government of India Act)을 발표하였으며, 제국의 통치를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황제 자리를 겸함으로써 이전보다 강력한 식민정책을 실시하였다. 여기에서 영국 정부가 요구했던 것은 강한 남성성의 제국 이미지와 약한 여성성의 인도의 이미지였던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인도에 관한 마티노의 시각을 조망하기 위해 마티노의 작품인 『영국의 인도 통치(British Rule in India)』(1857)와『후대의 인도 통치를 위한 제언(Suggestions Towards the Future Government of India)』(1858)을 분석할 것이다.
  • 한글키워드
  • 아일랜드 문제,문명화 사명,빅토리아기 제국,별개 영역,페미니즘,해리엇 마티노,제국주의,여성 문제,제국 문제,정치경제학,인도 문제
  • 영문키워드
  • Harriet Martineau,Political Economics,Ireland Question,Woman Question,Imperialism,Empire Question,Civilizing Mission,Victorian Empire,Indian Question,Separate Sphere,Feminism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고는 아일랜드 여행을 통해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티노의『아일랜드에서 온 편지』에 대한 논의이다. 마티노가 여행한 1852년은 아일랜드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인 ‘대기근’이 어느 정도 사라진 뒤였다. 영 제국의 시민이었던 마티노에게 아일랜드 여행은 자칫 편협해지기 쉬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티노는 ‘아일랜드 문제’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관찰하고 이에 대한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사명과 정체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아일랜드에서 온 편지』는 기근 직후의 아일랜드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텍스트인 것이다.
    마티노는 기근의 피해가 컸던 서부 지역을 목격하고 이에 대한 슬픔을 여러 번 상기시켰다. 마티노는 아일랜드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나아가 ‘아일랜드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마티노는 풍부한 천연자원, 아일랜드 국민, 그리고 교육을 통해 아일랜드의 갱생 가능성을 언급했다. 무엇보다 마티노는 가난한 아일랜드인의 “토지에 대한 열망”을 간파했다. 그들에게 토지는 “힘, 독립, 그리고 존엄성”을 의미했다. 그래서 타당한 지대, 보유권 고정, 토지 개선분에 대한 보상, 그리고 자작농으로의 전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기근 시기에 실제적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아일랜드 구빈원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나아가 아일랜드 산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여성 산업에 대해 한편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생활의 퇴보’를 가져왔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즉, 기근, 남성들의 이주, 낮은 임금, 여성노동자의 대체, 그리고 가정경제 파탄과 같은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다. 그래서 마티노는 이러한 “경제적 징후”를 아일랜드의 “이례적인 상황을 명시하는 특징들 중 하나”로서 설명했다.
    사실 기근 전부터 ‘아일랜드 문제’는 영 제국의 골치 아픈 문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1830-40년대부터 전개된 합방폐지운동은 그 중 하나였다. 여기에 6년 동안(1845-1851) 지속된 대기근은 아일랜드와 영 제국 사이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마티노는 합방옹호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에 대한 영 제국의 실정을 인정하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기근에 대한 무관심과 늑장 대응 그리고 정부정책의 비효율성 등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아일랜드의 산업발전과 토착민과 이주민 사이의 조화와 협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아일랜드와 영 제국의 관계에 대한 적절한 사례로 간주했다. 요컨대 마티노는 영국정부의 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대응을 통해 기근으로 고통 받는 아일랜드인을 구제하는 것이 영국정부의 역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 영문
  • This paper examines Harriet Martineua's Letters from Ireland, focusing on the 'Irish Question' which included from geographical and agricultural to social and economic themes. Such public works projects as railroads and bridges, reforestation, and bog reclamation were crucial to the industrialization of Ireland, as was implementing modern methods of agriculture and flax production. It was post-famine in 1852 that 'The Great Famine', the wretched accident in Ireland's history, passed by. As a citizen of the British Empire, Harriet Martineau was apt to have a prejudice. However, she tried to see and report correctly 'Irish Question' based on an objective gaze. This demonstrated a mission and identity of journalist. Letters from Ireland was an important text which could understand post-famine Ireland.
    She tried to sympathize the Irish's suffering and consider settlements. It was abundant natural resources, Irish people, and education to which Martineau consistently appealed as the permanent remedy for the 'Irish Question'. Above all, she told us of 'the Irishman's passion for land' as being explainable in terms of the symbolic meaning of land as a source of 'power, independence, and dignity'. She insisted a proper lent, fixity of tenure, the value of the improvements of land, and a change as a land owner. She explained the Irish workhouses which related to the condition of the famine of Ireland. Moreover, she gave a positive assessment of the industry of the women in Ireland on the one hand and a negative view of it on the other hand. Because the women had to work out of the house and home for making a living during the famine.
    In fact, 'Irish Question' has been one of the most troublesome problems in the British Empire before the famine happened. The Union Repeal Movement had been developed in the 1830-40. After that, the relations between two countries were made worse than before through the great famine. She supported the union of two countries. She acknowledged, however, the British Empire's misgovernment toward Ireland and heavily criticized it. In Short, She emphasized the real remedy for the Ireland's difficulties and the duty of the British Empire leading the Irish to do better.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고는 아일랜드 여행을 통해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티노의『아일랜드에서 온 편지』에 대한 논의이다. 마티노가 여행한 1852년은 아일랜드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사건인 ‘대기근’이 어느 정도 사라진 뒤였다. 영 제국의 시민이었던 마티노에게 아일랜드 여행은 자칫 편협해지기 쉬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티노는 ‘아일랜드 문제’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관찰하고 이에 대한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티노는 기근의 피해가 컸던 서부 지역을 목격하고 이에 대한 슬픔을 여러 번 상기시켰다. 마티노는 아일랜드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나아가 ‘아일랜드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마티노는 풍부한 천연자원, 아일랜드 국민, 그리고 교육을 통해 아일랜드의 갱생 가능성을 언급했다. 마티노는 타당한 지대, 보유권 고정, 토지 개선분에 대한 보상, 그리고 자작농으로의 전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기근 시기에 실제적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아일랜드 구빈원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나아가 아일랜드 산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여성 산업에 대해 한편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생활의 퇴보’를 가져왔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즉, 기근, 남성들의 이주, 낮은 임금, 여성노동자의 대체, 그리고 가정경제 파탄과 같은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다. 그래서 마티노는 이러한 “경제적 징후”를 아일랜드의 “이례적인 상황을 명시하는 특징들 중 하나”로서 설명했다.
    사실 기근 전부터 ‘아일랜드 문제’는 영 제국의 골치 아픈 문제들 가운데 하나였다. 1830-40년대부터 전개된 합방폐지운동은 그 중 하나였다. 여기에 6년 동안(1845-1851) 지속된 대기근은 아일랜드와 영 제국 사이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다. 마티노는 합방옹호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에 대한 영 제국의 실정을 인정하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기근에 대한 무관심과 늑장 대응 그리고 정부정책의 비효율성 등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아일랜드의 산업발전과 토착민과 이주민 사이의 조화와 협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아일랜드와 영 제국의 관계에 대한 적절한 사례로 간주했다. 요컨대 마티노는 영국정부의 좀 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대응을 통해 기근으로 고통 받는 아일랜드인을 구제하는 것이 영국정부의 역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연구결과
    본 연구는 원래 “해리엇 마티노의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담론: ‘제국 문제(Empire Question)’를 중심으로” 라는 제목으로 계획되었으나 범위가 넓고 자료가 너무 많은 관계로 ‘제국 문제’ 가운데서도 ‘아일랜드 문제’에 국한시켜 연구를 진행하였다. 본 연구자는 아일랜드를 덮친 대기근 직후인 1852년 아일랜드를 직접 방문하여 경험한 내용을 저술한 『아일랜드에서 온 편지』를 주된 사료로 이용하여 ‘아일랜드 문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마티노의 아일랜드 여행과 글쓰기, 대기근 직후의 아일랜드, 여기에는 첫째, 아일랜드의 구빈원, 둘째, 아일랜드의 여성논동, 셋째, 아일랜드의 산업현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끝으로 ‘아일랜드 문제’의 해결책에서는 천연자원과 교육 그리고 토지개혁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연구결과의 기대효과 및 활용방안
    1)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새로운 담론 형성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는 강한 남성상이었다. 이는 남성과 여성, 지배와 피지배, 약함과 강함 이라는 이중적인 구조를 사회 인식의 토대로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해리엇 마티노의 빅토리아기 제국에 대한 담론은 주변부의 역사적 재현을 위한 중요한 전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2) 해리엇 마티노 연구를 통한 학제 간 연구 도모
    마티노의 '제국문제'에 대한대한 연구는 사회학,경제학,역사학,문학,철학 등 학제 간 연구를 도모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3) 해리엇 마티노에 대한 종합적 논의의 확대
    해리엇 마티노의 활동과 사상을 재현함으로써 19세기 영국의 근대 페미니즘, 더 나아가 영국의 역사에서 그녀를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4) 학생들에게 새로운 인물을 소개하고 연구 지평의 확대를 도모
    5) 해리엇 마티노의 제국 담론에 관한 논문
    해리엇 마티노의 ‘아일랜드 문제’는 ‘빅토리아기 제국 담론’이라는 커다란 틀을 완성하기 위한 첫 출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본 연구는 영국 역사의 패러다임에 혁신적인 변화를 도모하고.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 담론에 알차고 깊이 있는 내용을 보완함으로써 영국 역사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에 부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색인어
  • 영 제국, 아일랜드 문제, 아일랜드에서 온 편지, 해리엇 마티노, 대기근, 구빈원, 토지개혁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