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우리 민족사에서 근대가 급속도로 수용되는 시기를 다룬 세 대하소설-태백산맥, 혼불, 토지-에 나타난 겁탈 모티프에 초점을 맞추어 겁탈이 제도화되는 경로를 드러내고 이러한 정상화의 각본에 맞서 여성인물들이 근대적 주체로서 자기 정체성을 ...
이 연구는 우리 민족사에서 근대가 급속도로 수용되는 시기를 다룬 세 대하소설-태백산맥, 혼불, 토지-에 나타난 겁탈 모티프에 초점을 맞추어 겁탈이 제도화되는 경로를 드러내고 이러한 정상화의 각본에 맞서 여성인물들이 근대적 주체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양상과 그 의미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지 어언 20년이 되었지만 기실, 겁탈이 범죄로 인정받기까지는 천년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유장한 세월이 필요했다. 인권에 대한 인식이 등장한 연후에야 비로소 겁탈은 법의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겁탈은 일탈적, 예외적 범죄로 취급되거나 피해자책임에 의거 사적 영역에 차폐됨으로써 실제로 제도적 처벌이 이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겁탈의 역사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는 탄식은 이에 연유한다. 프로이트도 침묵할 정도로 겁탈은 오랫동안 공론화되지 못한 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식과는 달리, 위의 세 소설들에서 겁탈은 다양하게 반복, 제시된다. 권력이 있는 곳에 겁탈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겁탈모티프가 자주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들의 연구사에는 겁탈과 연관된 시각이 일관되게 결여되어 있다. 소설이 드러낸 것을 연구사가 외면한 셈이다. 연구사의 결여는 위에서 설명한 겁탈의 통념이 아직도 현실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방증에 다름아니다. 여전히 겁탈은 구조적인 범죄가 아니라 일탈적이고 예외적인 범죄로 간주되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부장 체제의 근본모순 중 하나인 성모순에 기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간폭력은 결코 사소한 예외가 아니며 제도적 처벌로써 강간폭력에 대한 대응이 완료되는 것도 아니다.
이에, 이 연구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연속선 개념과 비가렐로의 겁탈의 계보학에 기대어 겁탈은 정상과 질서를 위태롭게 만드는 예외적이고 일탈적인 범죄가 아니라 정상과 질서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에 이미 잠재되어 있는 구조적, 제도적 폭력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려 하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폭력, 성매매, 아름다운 성과 사랑 그리고 결혼은 모두 불평등한 남/녀 권력관계의 연속선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위의 세 소설에서 겁탈에 대한 이와 같은 구조적, 제도적 정상화의 각본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겁탈을 예외적 악한에 의한 예외적 범죄가 아니라 제도화되고 구조화된 폭력임을 증명하려 한 것이다.
[토지]의 분석에서 겁탈은 남성간 회계 혹은 남성동맹의 주요한 매개로 작용하고 사랑, 결혼, 아버지-되기 등과 무리없이 연동됨을 드러낼 수 있었다. 남성들은 겁탈을 통해 여성을 교환함으로써 거래를 완료하거나 동맹을 돈독히 하며 겁탈을 통해 사랑과 결혼을 실현시키기도 하는 것에서 겁탈과 제도의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혼불]의 분석 역시 유사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겁탈은 남성인물이 근대의 개인주의적 주체로 재탄생하거나 신분을 타파하는 평등화된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임을 드러내었다. 겁탈을 통해 남성인물은 결혼제도로 편입되는 동시에 공동체를 떠나 근대적 주체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 또한 실현시키는 것이다. [태백산맥]에서는 겁탈의 예외화와 상례화의 백터를 분석함으로써 그 정당화의 각본을 드러낼 수 있었다. 겁탈은 예외적 폭력인 것처럼 제시되지만, 겁탈의 자연화와 제도화를 통해 이 예외를 상례화함으로써 결국 겁탈을 정상과 질서로 편입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겁탈은 상식과 질서를 위반하는 일탈적, 예외적 폭력이 아니라 바로 그 일상을 주조하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폭력으로 정의될 수 있다. 겁탈은 사회체계가 토대하는 구조와 연동되기에 사랑, 결혼, 사회적 업무와 쉽게 접속되어 쉬운 폭력으로 실현되며 나아가 남성주체화와 남성동맹의 매개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연구는 이와 같은 발생구조 속에서 피해자화, 타자화하기 쉬운 여성의 입지를 넘어서기 위하여 새론 마커스와 깁슨 그래함의 담론전략과 기든스, 루만, 에바 일루즈의 로맨스 이데올로기를 원용하였다. 이들의 이론에 기대어 겁탈에 대한 여성인물들의 대응양식을 따라가봄으로써 여성을 침묵시키고 무력하게 만들며 수동적 존재로 고착시키는 남성지배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수 있는 능동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겁탈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는 위의 세 소설이 일치점을 보였으나, 겁탈에 대한 여성인물의 대응양식에서는 편차가 크게 드러났는데 이는 텍스트의 배면을 이루는 젠더무의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우선, [태백산맥]의 경우 겁탈의 제도적 처벌과정이 어느 소설보다 선명하게 제시되지만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오히려 여성의 비가시화와 피해자화 그리고 남성의 젠더권력은 재강화된다는 한계를 지닌다. 피해자책임론의 위험으로부터 여성인물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처벌과정은 남/녀를 계몽주체/대상, 판단주체/대상에 분할, 배치함으로써 남성의 지배권력을 확산시킨다. 제도적 처벌을 완료함으로써 이미 다 이루었다는 확신 속에서 법과 제도에 의존하는 사후처리가 갖는 한계를 간과하고 여성을 타자화하는 결락지점을 드러낸 것이다.
[토지]와 [혼불]은 여성의 행위성을 중심으로 겁탈이 서술된다는 점에서 [태백산맥]과 구별된다. [토지]의 여성인물들은 겁탈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고통에 처단되지만 이들의 고통은 단순히 피해만이 아닌 능동적 반담론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정조관념으로부터 일탈하여 죽음 혹은 의사죽음을 명령하는 가부장제와 협상하거나 나아가 정조를 빌미로 죽음을 명령하는 가부장제의 체계 자체를 비트는 동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겁탈 상황과 맥락을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 재구성하는 행위성을 확인함으로써 취약한 내부공간으로 의미화되는 여성의 몸담론의 외부를 상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혼불]의 여성인물들은 전락의 외길에 처단되어 겁탈과 성매매를 사랑으로 수용하는 한계를 드러내지만, 이들의 사랑을 유일성과 통일성에 대한 근대적 자아기획으로 해석함으로써 여성주체의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었으며 특히 소문과 정조관념에 대한 이들의 거리두기에서 여성의 몸을 침탈공간으로 간주하는 겁탈 스크립트 자체를 균열할 수 있는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의 몸을 오염, 타락에 취약한 닫힌 공간이 아니라 행위성의 장소로 자리매김함으로써 [혼불]과 [토지]는 여성통제 매커니즘을 넘어서는 반담론의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