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1945~46년 남한에서 발간된 기념시집들을 대상으로, ‘3․1운동’과 ‘해방’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기념’의 형식을 통해 집단적 기억으로써 현재화되고, 나아가 새로운 민족공동체적 정체성을 창출하게 되는 양상과 의미를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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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45~46년 남한에서 발간된 기념시집들을 대상으로, ‘3․1운동’과 ‘해방’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기념’의 형식을 통해 집단적 기억으로써 현재화되고, 나아가 새로운 민족공동체적 정체성을 창출하게 되는 양상과 의미를 검토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해방 직후 남한의 문단은, 정치사상적 이념과 문학 경향에 따라 여러 문예단체들이 결성과 해체, 재편과 통합을 거듭하였다. 이들 문예단체들은 서울과 지방에서 지부 조직을 결성하고, 기관지를 발간하고, 대중적인 문학 강연과 시낭송회, 연극공연을 개최하고, 정치적인 집회에 참가하는 등의 다양한 문화․정치활동을 경쟁적으로 펼쳐나갔다.
해방기(1945.8.15~1948.8.15)는 가히 ‘거리의 정치와 문화’의 시대였으며, 시는 급변하는 정치 상황과 대중들의 고양된 열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장르로 부상하였다. 시인들은 자발적 또는 조직적으로 기념식장과 대중 집회에 참가하여 시를 낭송하였고, 시 낭송회를 개최하였으며, 잡지와 신문들은 편집진의 정치사상적 이념에 부합하는 시인들의 시를 게재하였다. 시집의 발간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지금까지 확인된 것으로, 해방기에 발간된 시집은 총 103권에 이른다.
해방기에 발간된 대표적인 기념시집은 중앙문화협회의 <해방기념시집>(1945.12), 조선문학가동맹의 <3․1기념시집>(1946.3), 박세영(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의 해방기념시집 <횃불>(1946.4.20),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경남지부의 해방1주년 기념시집 <날개>(1946.4.4)가 있다. 기념시집의 발간은 각 문예단체들의 전략적인 조직 사업으로 추진되었으며, 기념시집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도 매우 높았다. 실제로 <3․1기념시집>은 발간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3만 부가 매진되었다고 한다.
해방기 기념시집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념시집에는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기성시인들과 신진시인들이 망라되어 있어서, 해방 직후 남한 시단의 면모와 경향을 조망할 수 있다. 이들은 중앙문화협회, 조선문학가동맹,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핵심적인 시인들이다. 특히 <날개>는 그동안 제목으로만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발굴하여 소개하게 되었다. <날개>는 경남 지역 ‘우파’ 시인들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며, 그동안 서울 중심의 문단 연구를 지역 문단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기념시집에서 ‘3․1 운동’과 ‘해방’을 ‘기념’하는 형식은, 각 문예단체가 지향하는 정치적인 이념에 근거하여 역사적 사건을 현재화함으로써, 새로운 민족공동체적 정체성을 창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일례로 중앙문화협회에서 발간한 <해방기념시집>은 ‘해방’을 ‘님의 귀환’으로 형상화하였다. 이것은 ‘님의 부재’라는 근대시의 대중적인 정서 코드를 계승한 것으로, 식민지시대와 해방기는 ‘님의 떠남-고난과 기다림-님의 귀환’이라는 ‘님의 서사’로 완성되었다.
셋째, 기념시집은 해방기 시의 특징인 낭독시, 행사시, 현장시의 형식을 집약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해방기 시의 형식적․ 미학적 성격을 규명할 수 있다.
해방기의 낭독시, 행사시, 현장시는 집단의 정서와 언어로 표현된 ‘공감의 수사학’ ‘동원의 수사학’을 핵심으로 한다. 이러한 해방기의 낭독시, 현장시의 형식은 식민지 시대의 시문학 전통, 특히 1920~30년대 프롤레타리아 시운동과 1940년대 국가총동원령시기의 ‘친일시’의 형식과 연결되어 있다. 해방 후 즉각적인 비판과 단절의 대상이었던 ‘친일시’의 언어와 형식이 해방기의 시에서 재생산되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그런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시와 ‘친일시’의 형식을 해방기 낭독시, 행사시와 비교하여 그 차이를 형식적․미학적 차원에서 규명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 연구는 먼저 해방기에 발간된 기념시집들에 나타난 남한 시단의 면모와 경향을 고찰하고, 기념시집들이 ‘3․1 운동’과 ‘해방’을 ‘기념’하는 형식을 통해 역사적 기억을 현재화하고, 정치적 이념에 따라 집단적인 정체성을 창출하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방기 시의 한 특징으로서 기념시(낭독시, 행사시, 현장시)의 형식적․미학적 성격을 규명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