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뉴질랜드 마오리 혼혈 여성작가 케리 흄의 소설『태초의 사람들』에서 그려지는 “하위주체”로서 여성, 마오리 청년, 그리고 백인 소년의 상호 타자적, 협력적 관계를 통해 부족, 혈연, 결혼이라는 문화적 관습과 기존 체제적 관념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형 ...
본 연구는 뉴질랜드 마오리 혼혈 여성작가 케리 흄의 소설『태초의 사람들』에서 그려지는 “하위주체”로서 여성, 마오리 청년, 그리고 백인 소년의 상호 타자적, 협력적 관계를 통해 부족, 혈연, 결혼이라는 문화적 관습과 기존 체제적 관념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혼종적 가족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ㆍ탐구하고자 한다.
먼저, 본 연구는 유럽과 북미 편향의 시각을 탈각하여 “세계가 상호연결 되고 서로 의존하면서도 변별성을 가지는 구성체로 이해”(정정호 11)하려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즉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가깝지만 문화적으로는 유럽적 특징을 강하게 내포한 뉴질랜드의 탈근대적, 탈식민적 존재로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전환과정을 고찰하고자 한다. 서양과 동양, 남성과 여성, 파케하와 마오리, 어른(부모)과 아이(자식), 신화와 현실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을 해체하는 탈국가적 페미니즘, 생태비평, 탈식민 글로벌 문화연구이론으로 마오리 문학 텍스트 읽기ㆍ분석의 기본 틀을 마련할 것이다.
다음으로 마오리 여성의 글쓰기와 문학에 관해 전반적으로 조망하면서 케리 흄의 글쓰기를 비교ㆍ분석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식민역사와 이산경험으로 문화적 뿌리를 잃어버린 유색여성들의 글쓰기는 문화적 소외와 역사적 단절, 동화와 차별, 공동체적 기억과 대화적 상상력을 통하여 정체성을 구체화하여 과거에서 비롯된 현재의 상처를 치유하는 탈식민 과정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케리 흄은 이러한 탈식민적, 여성적 치유의 과정을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과 서구 문학의 핵심적 기법인 의식의 흐름을 발전ㆍ활용한 중층적인 내러티브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으며 마오리 전통과 신화를 낭만적으로만 그리지 않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본 연구의 분석 대상인 흄의『태초의 사람들』은 복권에 당첨되어 물질적인 풍요로운 삶이 주어지지만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고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 예술가(캐러윈)의 그림,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잃은 아픔을 겪고 술에 의지하는 저임금 공장노동자(조)의 폭력 그리고 마약밀매 난파선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8살 벙어리 소년(사이먼)의 침묵을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신화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상호보완적이고 유기적인 내러티브는 끊임없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의식의 연속성에 기초해서 어두운 과거와 상처를 치유하는 화해와 용서의 과정을 보여준다. 다른 마오리 작가들이 인간과 자연의 상호공존 관계의 재현을 통하여 마오리 정체성을 지키려하거나 집단구성원으로서 일체감을 고취시키는 경향이 있다면, 흄은 뉴질랜드의 식민역사를 넘어서 마오리와 파케하 모두를 위한 유토피아적 화합이라는 탈식민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음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본 연구는 조의 폭력과 사이먼의 침묵을 치유하고 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 형성의 구심점이 되고 사회적 통념의 틀을 벗어난 무성(asexual)의 캐러윈의 문화적 혼종성과 여성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마오리와 파케하,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의 “사이의 공간”(Bhabha 1)에서 캐러윈의 여성적, 혼종적 경험과 생물학적 무성의 몸을 통해서 모성과 가족 그리고 생명 원천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여성의 몸의 공동체적 이미지는 재조명될 것이다. 더 나아가 본 연구는 역사적, 신화적, 문화적 관점에서 캐러윈, 조, 사이먼의 육체적 상처와 기적적인 회복 그리고 귀향과 새로운 가족의 형성이 어떻게 치유적 언어로 미학적으로 재현되는지를 분석하면서 흄 특유의 주제적, 형식적 요소들을 고찰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흄의 소설에서 지리적으로 고립된 섬나라 뉴질랜드 특유의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음악, 낚시, 해변가 오두막집, 선술집, 사회보장제도 등 문화적, 언어적, 사회제도적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앞의 내용들을 요약․정리하면서, 생명존엄이 부재한 현실에 대한 생태ㆍ문화 비판적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는『태초의 사람들』에 나타난 흄의 글쓰기와 몸/귀향/가족 담론은 뉴질랜드 특유의 현대적 일상과 신화적 요소가 공존하는 상상력의 공간에서 타자화 된 하위주체들의 육체적 회복과 정신적 치유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귀향과 부여된 위계질서 없이 차이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의 열린 결말을 보여주고 있음을 강조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본 연구는 오늘날 뉴질랜드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영한 흄의 저항적, 비판적 문학텍스트를 중심으로 기존의 지식이나 상징담론의 틀에 의존해서는 파악될 수 없는 자기파괴적 의식과 폭력 그리고 침묵 속에 갇힌 타자화된 하위주체들의 자기치유적 귀향과 가족의 형성 과정을 분석하는 것을 그 주된 내용으로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