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에 제작된 크리스 마커의 <환송대>는 영화사의 기억 속에 현재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는 텍스트이다. 실제로 <터미네이터> 연작과 <매트릭스> 연작, <12 몽키스> 등 대표적인 공상과학 장르가 이 영화의 모티프를 차용하고 있고, 알랭 레네의 <사랑해, 사랑해> 등도 ...
1963년에 제작된 크리스 마커의 <환송대>는 영화사의 기억 속에 현재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는 텍스트이다. 실제로 <터미네이터> 연작과 <매트릭스> 연작, <12 몽키스> 등 대표적인 공상과학 장르가 이 영화의 모티프를 차용하고 있고, 알랭 레네의 <사랑해, 사랑해> 등도 이 영화의 자장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5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이 27분짜리 단편영화 한 편이 이렇게 수많은 영화에 인용되고 변주되며 또한 세계적인 차원에서 비중 있는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가장 문제적인 영화 텍스트들 중 하나다. 여기서 이 연구의 목표는 기존 연구의 접근방식과 다른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치밀한 텍스트분석을 기반으로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단편영화들 중 하나’인 <환송대>의 미적 원리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미적 원리라고 설정할 수 있는 일관된 컨셉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이 영화의 심층적인 작동원리로 기능하는 영화 속의 ‘사유’를 규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한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치밀한 텍스트 분석은, 문학이나 음악, 연극 등 영화의 다른 인접예술들과 달리 아직 한국에서 정착되어 있지 않다. 종합예술로서 영화의 성격을 충분히 고려한 영화 텍스트 분석 방법론을 구축하는 것은 이 연구의 배경에 깔려 있는 장기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이러한 텍스트 분석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미적 컨셉을 규명하는 작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컨셉은 단지 영화의 특정한 측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핵심적인 요소들까지 설명할 수 있는 포괄적인 차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환송대>의 경우 이 미적 컨셉은 일단 문학적이면서 철학적 성격을 띠는 이 영화의 나레이션에 대한 엄밀한 규명—이를 위해서 필자는 이 영화의 나레이션 전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사전 작업을 수행했다—, 다른 영화와의 상호텍스트성—여기서는 알드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 대한 규명, 나아가서 이 컨셉은 또한 ‘거의 모든 장면이 정지된 사진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 작품의 독특한 형식을 규명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각각 이 논문의 세부 목차가 되는 ‘불가능한 시간여행’, ‘‘불가능한 기억’의 기원: 히치콕의 <현기증>’, ‘사진의 새로운 차원’이 된다.
기대효과
이 연구는 기본적으로는 크리스 마커의 특정 작품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이 감독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려는 시도로서 이와 비슷한 연구를 추동할 수 있다. 영화작품을 대상으로 정교한 텍스트분석을 시도하는 다른 연구들을 추동하는 것이 이 연구의 중요한 기대효과지 ...
이 연구는 기본적으로는 크리스 마커의 특정 작품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이 감독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려는 시도로서 이와 비슷한 연구를 추동할 수 있다. 영화작품을 대상으로 정교한 텍스트분석을 시도하는 다른 연구들을 추동하는 것이 이 연구의 중요한 기대효과지만, 여기서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연구의 실천적 측면, 즉 이런 연구가 궁극적으로는 단편영화, 정확하게는 단편독립영화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편독립영화의 활성화는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외적/물질적/제도적인 지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다 가까이에서는 한 영화의 내적 구조와 컨셉을 치밀하게 규명한 연구도 보다 본질적인 지점에서 같은 목적에 기여할 수 있다. 치밀한 작가정신의 구현만이 저예산 단편독립영화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을 때, <환송대>와 같이 이를 실제적으로 구현한 작품에 대한 미적인 분석은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자유롭고 실험적인 창작의욕을 추동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 영화 속에 들어 있는 사유를 명료한 언어로 옮기고 이를 치밀한 텍스트분석에 의거해서 규명해내는 작업은, 외적/제도적 지원과 다른 차원에서 창작을 추동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영화의 양적/질적 진흥에서 단편독립영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프랑스의 누벨바그라는 이 거대한 영화적 흐름은 몇 가지 계기로 생겨났는데, 여기서 무엇보다도 단편영화의 성숙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단편영화의 성숙은 누벨바그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58년-1960년이라는 짧은 시기에 누벨바그로 폭발하기 전에 많은 단편영화 작업들이 있었다.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크리스 마커의 경우 <조각상도 죽는다>(1953), <시베리아에서 온 편지>(58), 그리고 이 연구의 대상이 되는 <환송대>(1962) 같은 작업을 했다. 알랭 레네는 첫 장편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58)을 찍기 전에 이미 8편의 단편영화를 찍는다. 여기에는 <반 고호>(48), <게르니카>(50), <고갱>(51)처럼 회화작품만을 대상으로 찍은 단편영화도 들어 있고, 도서관에 대한 단편영화 <세상의 모든 기억>(56)과 아우슈비츠에 대한 유명한 다큐멘터리 <밤과 안개>(1956)도 들어 있다. 아녜스 바르다도 50년대에 네 편의 단편영화를 찍고, 장-뤽 고다르도 1950년대에 다섯 편의 단편영화를 찍는다.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본 능력과 실험은 이때부터 진행된 것이다. 단편영화에서 이미 수많은 걸작들이 나왔으며, 누벨바그가 가져온 프랑스영화의 영예는 오히려 이런 단편영화들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단편독립영화의 활성화를 위하여 치밀한 작가정신의 구현이라는 점에서 가장 전범이 되는 영화에 대한 연구는 비슷한 창작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여기서 <환송대>와 관련해서 단편영화창작의 두 가지 방향을 강조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확고한 (미적/영화적) 컨셉을 가진 개념적 창작이다. 현재 한국에서 많은 경우 단편영화창작은 즉흥적으로, 대개는 개념적 작업과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환송대>에서 볼 수 있듯이 기존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고 여기서 일정한 컨셉을 끌어내고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작품에 적용시키는 작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환송대>에 대한 연구는 개념적 창작의 예를 보여주는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롭고 실험적인 창작이다. 이 창작의 자유와 실험에는 매체를 넘나드는 창작도 포함된다. 정지된 사진들의 몽타주와 시적/철학적 나레이션을 통해서 전례 없는 영화를 만들어냈던 크리스 마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통섭과 융합에 기반한 창작을 추동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요약
크리스 마커의 영화 <환송대>를 대상으로 한 국제적 차원의 많은 연구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주요하게는 내러티브상의 심연 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실은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 영화의 주요한 사건들은 엄밀한 인과율 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내러티 ...
크리스 마커의 영화 <환송대>를 대상으로 한 국제적 차원의 많은 연구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주요하게는 내러티브상의 심연 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실은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 실제로 이 영화의 주요한 사건들은 엄밀한 인과율 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내러티브상의 심연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예외가 된다. 여기서 한 남자의 유년시절의 기억 속에 또렷하게 기입된 이미지가 결국 그 자신이 죽음의 이미지로 밝혀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구상을 ‘불가능한 기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공상과학의 외피 속에 들어 있는 이 영화의 심층적인 지층—이 남자의 기억 속에 있던 또 다른 이미지인 한 여인(의 이미지)과 기억 속에서 만나 순수한 (정신적)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은 바로 이 ‘불가능한 기억’의 모티프를 전면적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크리스 마커는 바로 이 개념을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에 대한 독특한 (재)해석을 통해 끌어낸다. 마커가 영화잡지 『포지티프』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쥬디의 출현의 시작되는 <현기증>의 2부는 정신병에 걸린 한 남자의 순수한 창작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이 영화의 1부가 정신병에 걸린 한 남자의 상상이며 2부가 진짜 진실을 보여준다—을 전복시킨 마커의 해석은 <환송대>의 가장 중요한 장면들 중 하나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는다. 그것이 바로 약간의 변형을 거쳐 <환송대>에 은밀하게 인용되는 <현기증>의 장면, 즉 뮤어우드 국립공원 방문 장면이다. 여기서 여주인공 매들린은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기억을 진술한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불가능한 기억’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여주인공의 진술은 이를 확고하게 믿고 있는 남자주인공 스카티의 정신 속에서는 의미심장한 반향을 이끌어낸다. 이것이 공간적 현기증—외면상의 고소공포증—이 시간적 현기증으로 바뀌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것이 거기 있었다”를 사진의 본성으로 규명한 롤랑 바르트의 테제를 받아들인다면, 사진은 본성적으로 (과거의 특정한 순간으로의) ‘시간여행’에서 생겨나는 참을 수 없는 멜랑콜리를 담고 있다. 영화 거의 전체가 정지된 사진으로 만들어진 <환송대>는 이러한 매체의 본성을 영화 자체의 움직임으로 변형시킨다. 기억의 본성이 또한 단편적이고 모순적이며 파편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환송대> 역시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이 열어놓은 ‘기억의 영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포함될 수 있다.
한글키워드
크리스 마커, <환송대>, 불가능한 기억, 기억의 영화, 알프레드 히치콕, <현기증>, 사진
영문키워드
Chris Marker, La Jetee, impossible memory, cinema of the memory, Alfred Hitchcock, Vertigo,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