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예방 원칙은 지금까지 환경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미 1992년 리우 환경회의에서 환경에 대한 손상이 심각하거나 회복 불가능 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협에 대해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효율적 대책을 실행할 것을 권고하는 조항(15조)을 ...
사전예방 원칙은 지금까지 환경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미 1992년 리우 환경회의에서 환경에 대한 손상이 심각하거나 회복 불가능 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협에 대해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효율적 대책을 실행할 것을 권고하는 조항(15조)을 리우선언 안에 포함시켰다. 유럽연합 역시 사전예방 원칙을 환경문제를 다루는 주요 원칙으로 삼고 있다. 리우환경회에서 채택한 사전예방원칙은 다음과 같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각 나라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 예방적 접근을 광범위하게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심각하거나 혹은 회복될 수 없는 손상의 위협이 있는 곳에서, 완벽한 과학적 확실성의 결핍이 환경파괴를 막기 위한 비용효과적인 조치를 다음 순서로 미루는 이유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본 연구는 사전예방적 원칙을 환경문제를 넘어 신생기술들(emerging technologies)에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신생기술(emerging technologies)이란 지금까지의 기술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에 접근하며, 그에 따라 기존의 기술들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결과를 약속하고 있는 기술들이다. 만일 그 약속들이 실현된다면 그 영향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개인에게 미치는 것이든 사회, 혹은 인류 전체에 미치는 것이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도일 것이다. 대표적인 신생기술로는 나노기술(nanotechnology), 생명공학(biotechnology),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신경과학(neuroscience), 로봇공학(robotics)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기술들을 혁명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기존의 기술들과는 획기적으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나 그 결과물의 성격에서나 혁명적으로 다른 기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기술들이 인간 사회와 인간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혁명적이라고 할 정도로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신생기술들은 나노기술을 중심으로 서로 융합되는 성격이 있으므로 융합기술(convergent technologies 혹은 converging technologies)이라고도 부른다.
2004년 유럽공동체집행부(EC)는 신생기술들이 여타의 기술들과 다른 특징들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것들 몇 가지를 정리해냈다. EC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신생기술들은 자아, 자연, 사회적 환경 사이의 전통적 경계를 허문다. 또한 모든 문제들에 대한 기술적 해결을 약속한다. 신생기술들은 살상 로봇처럼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기계에서부터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를 통한 인간 한계 초월까지 마음과 몸에 대해 공학적으로 접근한다.
신생기술의 이런 특징들 때문에 신생기술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빌 조이(Bill Joy)는 <와이어드(Wired)> 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나노기술과 신경공학, 로봇공학 같은 신생기술들이 미래에 인류에게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하였다. 물론 창조의 엔진(Engine of Creation)을 저술하고 나노기술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의 나노기술에 대한 전망처럼 신생기술의 미래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제시되고 과장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전망을 바탕으로 한 빌 조이의 비관론 또한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노기술과 같은 신생기술이 불러올지 모르는 위험이 인류가 지금까지 맞이해온 어떤 위험보다도 막대하다는 점이다. 또한 신생기술들이, 그것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말이 모두 현실화되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 사회와 개인의 삶에 역사상 유래 없는 급격하고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점 또한 사실이다.
이 점들을 감안할 때, 신생기술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 인간 사회의 안전은 물론, 신생기술의 올바른 발전과 사회적 수용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본다. 오늘날과 같은 첨단 기술의 발전은 자본화 및 상업화의 영향은 물론이고 전문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보는 쪽에서는 기술의 장점만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극도로 전문화된 탓에 기술의 영향과 함축에 대해 일반 대중은 물론 지식인들도 무지하기는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본 연구는 이런 인식 속에서 신생기술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신생기술의 바람직한 사회적 수용 방식을 고민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신생기술에 대한 윤리적 쟁점들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싶은 욕심에서 계획되었다.
신생기술에 관한 윤리적, 내지 철학적 논의가 국내에서는 매우 빈약한 상태이다. 국내 연구는 1990년대에 붐을 이룬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적 논의, 이른바 생명윤리 연구에 치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윤리 역시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는 생명공학을 추적하기보다는 생명의료윤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한정되고 집중되어 있다. 생명공학에서 앞으로 쟁점으로 부상할 이종이식의 문제만 해도 이상헌과 이상욱의 연구 정도 밖에 눈에 띄지 않다가 최근 들어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이 한 둘 있을 뿐이다. 최근 막대한 연구비를 흡수하며 각광을 받고 있는 나노기술에 대해서도 국내의 철학자나 윤리학자의 관심은 미미하다. 생명공학의 최첨단 분야인 합성생물학에 대해서는 이상헌의 논문이 국내에서 유일하다. 로봇에 관해 유난히 관대한 동아시아 전통 때문인지 로봇윤리에 대한 관심도 합성생물학의 윤리에 대한 관심보다 나을 것이 없다.
사전예방 원칙의 관점에서의 신생기술에 대한 접근은 두 가지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하나는 신생기술이 무엇인지, 신생기술의 잠재적 위협이 무엇인지에 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신생기술의 잠재적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작업에 착수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설정한 이유는 신생기술의 특성을 고려할 때, 신생기술은 기존의 기술들이 수용되는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방식대로, 다시 말해 국가, 사회적 필요나 상업적 필요 등에 대한 고려를 통해 여과 없이 대중과 사회에 제공되는 방식으로 등장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신생기술은 사회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여과 장치를 통하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노기술의 예를 들어 보자. 나노기술의 위험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어떤 기술의 위험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가장 근사한 것이 방사능 물질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방사능 물질의 위험은 국지적이다. 수 백 개 핵폭탄이 동시에 터지다면 아마 지구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반면에 생물 자원을 먹이로 하는 변형된 나노로봇은 극소수만으로 지구 전체의 생명체를 몰살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이유로 나노기술에 대해서는 좀더 적극적인 윤리적 원칙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고, 사전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의 적용을 제안하는 것이다.
사전예방 원칙은 나노기술처럼 심각하고 광범위한 위험의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할 때 적용될 수 있다. 기존에는 위험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위험에 대한 문제 제기가 무시되곤 하였지만, 사전예방 원칙에서는 과학적 증거보다는 위험의 심각성이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 물론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는, 허구적 위험까지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위험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없을 뿐이며, 과학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뿐이지 당연히 과학적 증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리우선언에서 밝힌 것처럼 심각하고 회복 불가능한 위험이 문제이다. 사전예방 원칙은 책임 있는 과학기술 연구를 강조한다. 위험 가능성이 있는 연구에 대한 지식, 위험에 대한 예측의 능력 면에서 볼 때 연구자와 일반 대중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광대한 간격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성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 과학적 입증의 책임이 전적으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진행하는 쪽에서 연구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입증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사전예방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사전예방 원칙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식화되지만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 형식만으로 구분해서 논의한다. 사전예방 원칙은 강한 해석과 약한 해석이 있다. 강한 해석에 따르면, 위험을 유발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어떤 연구가 위험을 발생시킬 것이라면 그런 연구를 진행하지 않는 것이 선호된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서는 위험만이 고려 대상이며 이득과 위험에 관한 비용 분석은 없다. 약한 해석에 따르면, 위험이 예상될 때 유험을 유발하는 행동을 금지하는 대신에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적 행동을 찾는 것이 옳다. 잠재적 위험이 감지되었을 때는 덜 위험한 대안을 찾아 실행하는 것이 적절한 반응이라는 생각이다.
사전예방 원칙의 강한 해석을 고수할 때, 대부분의 과학 연구가 어려움에 봉착한다. 과학 연구 가운데 위험이 도사리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물론 위험의 정도에 대한 기준을 설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해석은 신생기술(emerging technology)처럼 새로 개척되는 연구 분야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다. 어떤 이는 과학기술은 위험을 감수하는 가운데 발전하였다고 주장할 것이고, 그런 주장이 전혀 불합리하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사전예방 원칙의 약한 해석은 과학기술 연구의 길을 차단하지 않으면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생각된다. 이런 해석은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는 연구는 전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떤 연구에 대해서는 허용 불가는 판정할지도 모르지만 어떤 기술에 대해서는 부분적 허용을 판정할 것이고, 또한 대안적 기술의 개발을 촉진할 것이다. 사전예방 원칙의 약한 해석은 과학기술 발전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 연구의 목적을 인류의 행복 증진에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에게 좀더 풍요롭고 자유로운 세상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하여 안전한 세상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은 과학기술이라고 해도 심각하고 회복 불가능한 잠재적 위험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위험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선행시켜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나노기술에 대한 사전예방 원칙의 적용은 나노기술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기술의 발전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을 오히려 촉진하는 것이라는 인식 아래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전예방 원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윤리적 근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내 철학계에서 사전예방원칙에 대해 논의한 선례가 거의 없다. 이중원이 2009년에 나노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능력 향상(enhancement)에 대해 논의하면서 사전예방원칙을 적극 활용하여 논지를 전개한 바 있고, 같은 해에 고창택이 사전예방원칙의 도덕적 근거를 탐구한 시도가 있다. 본 연구는 이중원 교수의 논문과 달리 사전예방 원칙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사전예방원칙을 나노기술에 국한하지 않고 신생기술 전반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을 노리고 있다. 또한 사전예방원칙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사전예방원칙의 실효성 있는 해석 방식과 윤리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본 연구는 고창택의 연구와 다른 방향에서 사전예방원칙의 도덕적 정당화 근거를 찾고 있다.
먼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사전예방원칙을 행위의 원칙으로 삼을 수 있는 지를 검토한다. 공리주의적 정당화의 관건은 잠재적 위험, 실현되지 않은 위험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달려 있다. 더욱이 신생기술의 잠재적 위험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그런 위험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위험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결여되어 있다. 이런 종류의 위험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문제이다. 이런 위험의 추정이 경험적으로, 혹은 유비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면 신생기술에 대한 사전예방적 접근의 공리주의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신생기술의 위험 가운데는 경험적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종류의 것도 있다. 이런 위험에 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정당하게 받아들일 근거를 찾아볼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마수나(O,Mathuna)가 나노기술에 대해 사용한 개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오마수나는 나노기술을 정상나노기술과 미래적 나노기술로 구분하였다. 미래적 나노기술은 이론적 상상을 통해서는 상상해볼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나노기술이다. 이런 개념 구분을 활용하면, 미래적 신생기술에 대해서는 사전예방원칙 적용의 공리주의적 근거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며, 정상적 신생기술에 관해서는 사전예방원칙 적용의 공리주의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다.
사전예방원칙의 신생기술에 대한 적용을 인간존중의 윤리학의 관점에서 정당화할 수 있을까? 인간존중의 윤리학에서는 모든 인간에게 동등한 존엄성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행위에 전제된 도덕 규칙을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는데 동의할 수 있다면 그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다’고 말한다. 또한 인간존중의 윤리학에서 수단과 목적의 원리에 주목한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을 단순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는 행위는 옳다’고 할 수 있다. 사전예방원칙이 이 두 기준을 통과할 수 있다면 인간존중의 윤리학의 관점에서 행위의 원칙으로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스 요나스(Hans Jonas)는 현대 과학기술의 막강한 위력에 주목하여 기술에 책임 개념을 묶어 놓았다. 책임은 현대 과학기술이 갖는 새로운 특성이다. 오늘날 기술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행사한다. 기술의 영향은 먼 미래 세대까지 지속되며, 현대의 기술과 제품은 전 세계 모든 곳에 퍼져 있다. 오늘날 기술이 가진 힘은 전대미문의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고안한 기술이 그것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세계 곳곳의 수많은 사람들과 미래 세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기술에서 책임 개념을 분리할 수 없다. 이것이 요나스의 주장이다. 요나스의 주장을 따르면, 신생기술은 인간과 자연,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신생기술의 위험에 대해 사전예방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가능한 위험으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인류를 보호하고, 자연을 보호할 책임이 기술과 기술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