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성과물검색
유형별/분류별 연구성과물 검색
HOME ICON HOME > 연구과제 검색 > 연구과제 상세정보

연구과제 상세정보

접경의 아이덴터티: 한-중-러 접경지역의 선사시대 고고문화 연구
Identity of the border: a study of the archeological culture in the prehistoric era on the border region among Korea, China and Russia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학문후속세대양성_학술연구교수(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2S1A5B5A02023162
선정년도 2012 년
연구기간 3 년 (2012년 07월 01일 ~ 2015년 06월 30일)
연구책임자 김재윤
연구수행기관 국립부경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국경의 문제를 다각적인 관점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근`현대에 성립된 ‘국경’의 개념 때문에 생기게 된 각 국가 간의 분쟁 문제는 그 동안 연구는 국경수립 전후 상황이나, 각 국가 간의 이해관계 속에서 그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본 연구는 그 간의 연구와는 달리 「접경의 아이덴터티」라는 문제를 접근하기 위해서 이 지역의 선사문화를 구체화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자 한다. 접경의 문제가 비단 근현대사만의 문제가 아닌 점은 몇 년 전부터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로 붉어지게 된 고구려와 발해 문제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한국역사학계는 북방연구의 중요성을 더욱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만 강조하다 보면, 마치 고구려와 발해가 존재한 지역과 시간에만 한국의 역사영역인 것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역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선사시대부터 꾸준하게 한국역사의 한 켠을 차지해 왔다는 점이다.
    역설적이지만, 접경 문제에 대한 해결은 오히려 선사시대 연구가 그 초석이 될 수 있는데, 이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지 불과 몇 백 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한국, 중국, 러시아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이 ‘국경’의 개념을 초월한 공통적인 시각으로 역사적 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국, 중국, 러시아의 각국 학자들은 각 국가의 연구방법이나 역사관점에 입각해서 현재의 국경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대부분이지만 이는 모순이라는 점을 주지하는 바이다. 이는 이제까지 여러 정치적 상황이나 언어의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감히 접근하지 못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사시대문화의 변천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국가에 치우치지 않고 공통적인 연구가 이 접경지대에 필요한 실정이다. 고구려와 발해만이 아니라, 그 이전 시기부터 이 지역의 역사가 어떻게 변해왔으며 한국사의 영역임을 인식하고 연구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연구가 바탕이 된다면, 비단 ‘접경’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어느 특정시기만이 한반도의 경계를 벗어난 것이 아닌 동아시아 전체역사에서 ‘廣義의 한국사’를 만들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중심의 기존 역사인식에서 탈피해서 좀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역사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연변 같은 한국의 주변이나 연구가 미진했던 분야에 대한 관심으로 표현될 수 있다.
  • 기대효과
  • 접경의 아이덴터티를 역설적으로 선사시대를 통해서 연구한다는 점은 기존의 아이디어를 깨는 것이지만, 과거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역사적 담론을 이끌 수 있다. 어느 한 시대에 국한시켜서 삼국이 접하고 있는 접경의 영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과는 다른 시각으로 연구한다는 점에서 그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고고학계에 있어서도, 이 지역이 선사문화의 하나 기원지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울 수 있다. 그간 동북한과 그 인접한 지역의 연구는 이제까지 여러 가지 원인들 때문에 한국학자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본 연구가 실행되고, 결과물로 나온다면 다른 학자들에게 자료 및 정보제공의 효과는 극대화 될 것이다. 특히 이 지역의 정보가 일본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어 다시 들어오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연출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고고학자들의 직접 연구가 반드시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면, 급증하고 있는 북방사에 대해서 또 다른 연구주제와 관점등을 제시하게 되어 많은 후속 연구를 파생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연구가 연구결과물로 공간된다면, 가장 기본적으로는 북방 지역에 대한 중요도나 관심에 비해서 아직까지 한국어로 된 동북아시아고고학에 관한 책이 없다는 점에서 학생들과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러시아 자료는 중국 자료에 비해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노력은 더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그 연구내용이나 연구관점 등은 결국 근·현대사에서 졉경문제를 인식하는 데 하나의 장르로서 인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한민족 문화에 대한 다각적인 노력으로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연구의 결과물이 공간된다면, 한국 선사고고학, 동북아선사고고학을 연구하는 연구자 및 학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어로 된 동북아시아고고학 개설서가 없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연구가 진행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 연구요약
  • 1년차- 동북한을 중심으로 한 문화권의 형성시점-신석기시대
    1년차에는 이 지역에 대한 선사시대를 통틀어 동아시아 각 국가의 이 지역에 대한 연구경향과 연구관점을 파악하고, 본격적으로 자료를 분석해서 신석기시대부터 고고문화를 파악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한-중-러 접경지역으로 동북한을 중심으로 인접한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길림 지역을 아우르는 곳이다. 어느 한 국가에 치우치지 않고, 문화권에 대해서 공통적이고 총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 지역이 하나의 문화권이 형성되는 시기는 신석기시대 부터로 생각되고 있기 떄문이다. 동북한의 자료는 거의 대부분 1960~1970년대 자료로 거의 변화한 것이 없는 반면에, 인접한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길림은 자료증가가 폭발적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국경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는데, 이들을 아우르는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 서포항 유적을 중심으로 유적의 신석기시대 연대가 전기까지 올라갈 수 없음을 밝히는 새로운 견해가 제기 되었다. 특히 전기, 중기, 후기의 공통적인 신석기시대 양상 뿐 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서 사용하는 고고문화가 같은 잣대로 보았을 때 전체적인 시대흐름 및 어떠한 점 등이 차이가 있고, 이 문화지역에서 또 지역성 등을 구체화 하고자 한다.
    2년차-연구내용 <동북아시아에서 동북한문화권의 특수성-청동기시대>
    동북아시아의 특징적인 비파형동검이 이 지역에는 출토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동북아시아 청동기시대의 시작문제 뿐만 아니라 특수성 등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의 발전과정이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청동기시대는 1차 년도에 이미 연구된 신석기시대의 연구배경을 바탕으로 해야만 곧바로 직시할 수 있다.
    구체적인 연구내용은 한-중-러 접경지역 가운데서, 청동기시대 시작에서 신석기시대와 변화의 획을 크게 긋는 조기를 설정할 수 있는지, 설정할 수 있다면 그 지역적 범위는 어떠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중기 이후의 문제도 접근하고자 한다.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 중국은 흥성문화와 유정동 유형, 러시아는 마르가리토프카 문화, 아누치노 문화, 시니가이 문화 등이 해당되고, 북한은 오동과 호곡 유적의 청동기시대 등이 해당된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문화 등이 각 국가 별로 검토되고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국경을 배제하고 이러한 문화 혹은 유적이 어떻게 상관관계가 있는지 검토하도록 하겠다.
    3년차 <동북아시아에서 비중국적 철기문화권>
    동북아시아의 철기문화는 중국의 문화를 중심으로 설명되어 왔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지역은 중국보다 앞선 철기시대의 연대로 보아,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비중국적인 철기문화가 있었던 지역이 존재에 대한 연구이다. 이 지역의 철기시대는 앞서 검토된 어떠한 시대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특히 러시아에서는 철기시대가 얀콥스키 문화부터 시작되는데, 이 문화의 중심 시기는 대개 기원전 8~7세기가 된다. 이는 한반도 서북부와 요동에 비해서 현저하게 빠르기 때문에 많은 관심과 의구심을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이 시기 한-중-러 접경의 중국에는 단결문화만이 밝혀져 있는데 반해서 러시아는 얀콥스키 문화와 크로우노프카 문화, 북한에는 오동 유적과 호곡 유적 등이 일부 해당된다. 따라서 이 지역의 철기시대 시작은 반드시 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하다면, 요동보다 빠르게 시작되는 철기시대의 지역적 범위를 확연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철기시대 문화로 얀콥스키 문화, 크로우노프카 문화, 단결문화 등이 알려져 있다. 현재까지 연구로 얀콥스키 문화는 연해주에서만 확인되는데, 이 시점의 인접한 북한과 중국에서는 없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도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또한 막연하게 토기의 성격으로 러시아의 크로우노프카 문화와 중국의 단결문화는 같은 문화로 알려져 있다. 이 고고문화는 위지동이전의 ‘옥저’로 비정된다. 고고학 자료와 사료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두 문화가 비교연구 된 바가 없기 때문에 이 문제부터 판별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옥저로 비정되는 이 두 문화가 어떻게 분포했으며, 어느 시기부터를 옥저로 비정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철기시대 시작부터 러시아의 크로우노프카 문화, 중국의 단결문화까지 이다. 실제 러시아에서는 폴체문화까지를 철기시대로 보고 있으나, 이 문화와 중국의 동인문화는 기원후를 많이 넘어가고, 전체시대에서 연대가 너무 많이 멀어지며, 말갈문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본 연구의 주제와는 벗어나기 때문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한-중-러 접경지역의 신석기시대 고고문화<동일시대로, 같은 지구에 분포하며, 공동의 특징을 가지는 유적과 유물의 복합체를 가리킨다.(몬가이트 1955)>는 지금으로부터 10000 년 전무렵 출현하는 고토기< 정선되지 않은 태토에 동물의 털이나 식물과 같은 유기물질을 섞어 저화도에서 소상한 토기> 이후에 7500 년 전 부터 연해주와 목단강 유역에서 소위 ‘아무르편목문토기< 아무르 강의 그물문양 토기라는 의미이다. 토기 문양이 삼각형 혹은 능형의 도장으로 토기의 입술주변에 찍은 문양토기.>’가 출토되는데, 루드나야 문화의 루드나야 유형, 세르게예프카 유형, 베트카 유형 등이 관련이 있다. 세르게예프카 유형은 목단강 유역의 신개류 유적의 하층 진흥 1기의 갑조(組)<갑이라고 하는 유물의 집합> A유형에서도 확인되며 대략 6500B.P.까지 이다. 그 뒤에 베트카 유형은 신개류 유적의 상층이나 진흥(振興) 유적의 1기 갑조(組) B유형에서도 확인되며 대략 6000B.P.까지 이다. 세르게예프카 유형<루드나야 문화의 하위 유형. 루드나야 문화는 세모나 능형문양을 찍은 토기가 주요한 연해주의 신석기문화. 토기의 생김새와 문양으로 루드나야 문화 가운데서 하위 집합체를 구분.>이 퍼지는 7000B.P. 무렵 연해주의 일부 지역에서는 보이스만 문화가 시작된다. 이 문화의 2기(6000B,P,)와 비슷한 성격의 토기가 목단강 유역의 진흥 유적의 1기 B유형, 아포력북사장 유적에서 확인된다. 두만강 하류의 라진 유적에서는 보이스만 2~3기에 해당되는 토기들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서 두만강 남쪽에서도 보이스만 문화가 퍼져있을 가능성이 있다. 보이스만<러시아 연해주의 남부해안가에 위치한 보이스만-2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를 루드나야 문화 및 자이사노프카 문화와 구분하면서 생긴 용어. 보이스만-2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다치구로 찍은 토기인데, 유적의 층위가 모두 6층위이며 각 층위마다 토기의 특징 및 연대차이가 있다.> 문화가 끝남과 동시에 5000 B.P.무렵에 두만강 유역부터 연해주 내륙, 목단강 유역까지 ‘자이사노프카 문화<러시아 연해주의 자이사노프카 1유적을 기준으로 개념 정립된 고고문화, 토기의 문양특징은 선을 그은 문양과 찍은 문양 등이 복합되는 단계부터 점차 그은 문양으로 단순화된다.>’가 퍼지며, 대략 3800 B.P.무렵까지 공통적인 성격은 보이지만 각 지역 특징이 확인되며, 시기에 따라서 시문방법이 변화하다가 침선문토기를 마지막으로 무문토기 등이 나타나게 되면서 청동기시대가 된다. 한-중-러 접경지역은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하나의 문화권이 아닌 4개의 지역성이 드러난다. 연해주의 내륙, 연해주의 해안가, 두만강 내륙과 동해안북부(동북한의 해안가)로 지역성이 좀 더 뚜렷해진다. 연해주의 해안가에 위치한 마르가리토프카 문화는 토기의 특징에 따라서 1유형과 2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두만강 내륙의 흥성문화는 3기로 보고되었으나, 토기형식에 따라서 보고서의 1기와 2기를 1유형으로, 대형토기가 등장하는 3기를 2유형으로 보고자 한다. 동북한의 호곡 1호, 서포항 5기, 서포항 6기,오동 청동 1기는 발형의 이중구연토기<구연부: 토기의 입술부분. 토기의 입술을 점토를 접어서 이중으로 표현한 것과 점토를 덧댄 것 두가지 방법으로 표현된다.>와 잔발이 주류를 이루며, 모두 이중구연+적색마연토기, 이중구연, 적색마연<토기의 표면을 정리하는 한 방법. 토기의 표면을 마무리 한 후 붉은 색으로 색을 입히고 돌이나 가죽 등으로 토기의 표면을 깍듯이 정리하는 방법> 이라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하나의 유형(동북한 1유형)으로 설정할 수 있다. 한편 해안가에 위치한 송평동 청동기1기와 서포항 4호는 이중구연_지두문<손으로 찍은 문양> 혹은 구순각목<토기의 입술 윗 단에 눈금을 새긴 것>인 송평동 청동 1 단계, 서포항 7-1기와 송평동 2기는 이중구연, 적색마연 토기는 남아 있지만 이중구연+적색마연은 없어진다. 긴 경부가 달린 호형의 적색마연토기가 새로 등장하고, 서포항 6기와 층서를 이루어 시간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2유형으로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동북한 내에서도 두만강 내륙에 속한 오동과 해안쪽에 위치한 송평동이 차이점이 있고, 서포항에는 4호 주거지가 해안가의 특징이다. 한-중-러 접경지역의 철기시대는 얀콥스키 문화부터 시작해서 연해주에서는 크로우노프카 문화, 수분하 유역에서는 단결문화가 알려져 있는데, 사실 같은 성격의 문화이다. 이 문화의 주거지와 토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대략 III기로 구분되는데, 1기는 기원전 7세기부터 대성자 유적이나 크로우노프카 유적과 같이 수분하 유역에서 확인되며, 2기는 기원전 4~3세기이며, 수분하 유역으로부터 연해주의 각 지역으로 뻗어져 나가며, 3기는 해안가 유적에서 확인된다. 특히 페트로바 섬 유적에서는 온돌의 기원인 쪽구들이 확인된다. 3기의 상한은 기원전 1세기부터 하한은 기원후 1세기 중반부터 2세기 까지로 볼 수 있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서 언급된 옥저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로 비정되지만, 기록에 남아 있는 옥저로 볼 수 있는 기간은 이 문화의 3기에 해당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해안가에 유적이 위치하는데, 기록에 옥저의 특산품으로 기록되어 있는 해산품이나 소금과도 연결시켜 볼 수 있다. 또한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의 범위는 동강유형의 특징으로 보아서 목단강 유역은 포함되지 않고 수분하 유역부터 연해주 및 두만강 유역까지 포함된다. 기원전 7세기부터 이 문화가 시작되며 얀콥스키 문화는 조금 더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압록강 유역과는 차이가 있는데 앞으로 좀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한-중-러 접경지역의 선사시대 고고문화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문화권의 범위가 약간 축소되지만 그 이면에는 시대가 늦어지면서 지역성이 강화되는 점이 더 큰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중국 목단강 일대의 고고 유적 조사가 주로 발해시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청동기시대 자료 및 철기시대 자료가 부족한 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분하와 두만강, 목단강은 동북한문화권의 범위에 속하며 한국고고학의 연구영역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 영문
  • The archaeological culture of the border among Korea, China and Russia has been studying focused on the Latter Neolithic Age so far. However, it is hard to understand the overall aspect of the archaeological culture. As comparing the data of the Mokdan river with the Maritime Province to check the aspect before the Latter age, it is identified that these two areas were similar with overall aspect. The Neolithic Age in the border among Korea, China and Russia begins with appearance of the Old pottery about 10000 B.P. The upper limit and the lowest limit of this period is not unknown yet. As the Rudnaya Culture appears from 7500B.P. in these area, the Neolithic culture begins in earnest. The Sergeyvka type of the Rudnaya Culture of the Maritime Province is found in the lower layer of the Sin-gae-ryu site of the Mokdan river area. It progresses with change to about 7000B.P. After this, the Vetka type appears, and it is found in the upper layer of the Sin-gae-ryu site and the first period of Jin-heng site. The Boisman Culture begins in the Maritime Province in 7000B.P. when the Sergeyvka type spreads. The similar pottery with the second period of this culture - 6000B,P, - is checked in a part of the first period of Jin-heng -the type B- and the Aporyuk Buk-sa-jang site. It is possible that the Boisman culture spreads to the southern part of the Duman river as the pottery pieces of the second, third period of the Boisman culture are found in the Ra-jin site of this river. With the end of the Boisman culture, the Zaisanovka Culture spreads from the Duman river area to the inland of the Maritime Province, the Mokdan river area. The character is common to about 3800 B.P. As the local feature appears and the decorating method changes as time passes, the Bronze Age begins with the appearance of the patternless pottery. As comparing wide area, various terms that represents cultural exchange or the unit of culture appear such as the flat bottom pottery culture sphere, the Amur net pattern pottery culture sphere and the Eastern North Korea pottery culture sphere. It is also related with the Northern part and the eastern coast of Korea. Eastern North Korea entered the Bronze era at the end of 3500 B.P. While the Xingsheng and Margarinovka cultures represent the Bronze era of Yanbian and Primorsky respectively, the second period of Hogok or, the firth Hogok and the fifth period of Seopohang are the representative cultures of the Bronze era of eatern North Korea. The Margarinovka culture is divided into the first and second assemblages according to the characteristics of ceramics. The Xingsheng culture has been reported as the third assemblage. But this study re-defines the first and second phases as the first assemblage, and the third phase which saw the appearance of large ceramics as the second assemblage. 1 dwelling of Hogok, the fifth and sixth phases of Seopohang, the firth bronze period of Songpyedong and the firth bronze period of Odong are characterized by two-folded rims of bolws. And all of them share the same features of two-folded rims + red burnished ceramics, two-folded rims and red burnished , which can be identified as a specific assemblage (the first assemblage of eastern North Korea) The 7-1 phase of Seophohang and the second phase of Songpyedong consist of two-folded rims and red burnished pottery but witnessed the disappearance of of two-folded rims + red burnished ceramics . The phases are defined as the second assemblage since around this time red burnished pot appears and there seem to be difference of periods from the sixth period of Seophohang. The 4 dwelling of Odong is considered as the third assemblage in that it features not only two-folded and banded around rims of bolws ceramics but also large ceramics whose bottom is much smaller compared to its body. The site of Odong is divided into the first phase of the Bronze era of Odong (dwelling 8, 1, 2, 7), and the second phase of the Bronze era of Odong (dwelling 4). The first phase is similar with the Margarinovka culture while the second phase share similar features with the Xingsheng culture.Through the comparison with the existing sites, the archaeological culture of the Bronze era of earstern North Korea can be identified as 'the Bronze culture of Odong '. Although the red burnished ceramics of the Bronze culture of Odong and Margarinovka culture have different form of ceramics, the two cultures appear to have begun around the same time and their Bronze cultures consider to have succeeded the Neolithic era since they share the same origin of pottery with lighting design ceramics of the late Neolithic era. The first assemblage of the Bronze culture of Odong seems to have begun in the same chronology of 3500 B.P. with the Margarinovka culture. Considering the chronology of the Anuchino-Sinigaye-Soborobo culture (3000 B.P.) and of the Liutingtong assemblage (3100 B.P.), its chronological period is no earlier than 3000 B.P. In addition, unlike the Bronze ages of other rigions of eastern North Korea, this site does not show Liaoning bronze dagger and its Bronze period is relatively short. However, if the time that the excavated Bronze remains belong to marks the beginning of the Bronze age, it is fair to say that it is "the period of transition = the period of beginng" that lasted from 300 to 400 years. The period is defined by a particular type of ceramics that are much developed compared to those of the Neolithic era, and are made by totaly diffent technique from those of the Neolithic age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한-중-러 접경지역의 신석기시대 고고문화는 10000 B.P. 무렵 출현하는 고토기 이후에 7500B.P.부터 연해주와 목단강 유역에서 소위 ‘아무르편목문토기’가 출토되는데, 루드나야 문화의 루드나야 유형, 세르게예프카 유형, 베트카 유형 등이 관련이 있다. 세르게예프카 유형은 목단강 유역의 신개류 유적의 하층 진흥 1기의 갑조(組) A유형에서도 확인되며 대략 6500B.P.까지 이다. 그 뒤에 베트카 유형은 신개류 상층이나 진흥(振興) 유적의 1기 갑조(組) B유형에서도 확인되며 대략 6000B.P.까지 이다. 세르게예프카 유형이 퍼지는 7000B.P. 무렵 연해주의 일부 지역에서는 보이스만 문화가 시작된다. 이 문화의 2기(6000B,P,)와 비슷한 성격의 토기가 목단강 유역의 진흥 유적의 1기 B유형, 아포력북사장유적에서 확인된다. 두만강 하류의 라진 유적에서는 보이스만 2~3기에 해당되는 토기들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서 두만강 남쪽에서도 보이스만 문화가 퍼져있을 가능성이 있다.보이스만 문화가 끝남과 동시에 5000 B.P.무렵에 두만강 유역부터 연해주 내륙, 목단강 유역까지 ‘자이사노프카 문화’가 퍼지며, 대략 3800 B.P.무렵까지 공통적인 성격은 보이지만 각 지역 특징이 확인되며, 시기에 따라서 시문방법이 변화하다가 침선문토기를 마지막으로 무문토기 등이 나타나게 되면서 청동기시대가 된다. 한-중-러 접경지역 청동기시대는 3500B.P 이후부터 시작되는데 중국 연변에서는 흥성문화,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마르가리토프카 문화, 동북한에서는 호곡 2기, 호곡 1기 혹은 서포항 5기로 대표된다. 한-중-러 접경지역은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하나의 문화권이 아닌 4개의 지역성이 드러난다. 연해주의 내륙, 연해주의 해안가, 두만강 내륙과 동해안북부(동북한의 해안가)로 지역성이 좀 더 뚜렷해진다. 연해주의 해안가에 위치한 마르가리토프카 문화는 토기의 특징에 따라서 1유형과 2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두만강 내륙의 흥성문화는 3기로 보고되었으나, 토기형식에 따라서 보고서의 1기와 2기를 1유형으로, 대형토기가 등장하는 3기를 2유형으로 보고자 한다. 동북한의 호곡 1호, 서포항 5기, 서포항 6기,오동 청동 1기는 발형의 이중구연 토기와 잔발이 주류를 이루며, 모두 이중구연+적색마연 토기, 이중구연, 적색마연 이라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하나의 유형(동북한 1유형)으로 설정할 수 있다. 한편 해안가에 위치한 송평동 청동기1기와 서포항 4호는 이중구연_지두문 혹은 구순각목인 송평동 청동 1 단계, 서포항 7-1기와 송평동 2기는 이중구연, 적색마연 토기는 남아 있지만 이중구연+적색마연은 없어진다. 긴 경부가 달린 호형의 적색마연토기가 새로 등장하고, 서포항 6기와 층서를 이루어 시간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2유형으로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동북한 내에서도 두만강 내륙에 속한 오동과 해안쪽에 위치한 송평동이 차이점이 있고, 서포항에는 4호 주거지가 해안가의 특징이다. 한-중-러 접경지역의 철기시대는 얀콥스키 문화부터 시작해서 연해주에서는 크로우노프카 문화, 수분하 유역에서는 단결문화가 알려져 있는데, 사실 같은 성격의 문화이다. 이 문화의 주거지와 토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대략 III기로 구분되는데, 1기는 기원전 7세기부터 대성자 유적이나 크로우노프카 유적과 같이 수분하 유역에서 확인되며, 2기는 기원전 4~3세기이며, 수분하 유역으로부터 연해주의 각 지역으로 뻗어져 나가며, 3기는 해안가 유적에서 확인된다. 특히 페트로바 섬 유적에서는 온돌의 기원인 쪽구들이 확인된다. 3기의 상한은 기원전 1세기부터 하한은 기원후 1세기 중반부터 2세기 까지로 볼 수 있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서 언급된 옥저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로 비정되지만, 기록에 남아 있는 옥저로 볼 수 있는 기간은 이 문화의 3기에 해당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해안가에 유적이 위치하는데, 기록에 옥저의 특산품으로 기록되어 있는 해산품이나 소금과도 연결시켜 볼 수 있다. 또한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의 범위는 동강유형의 특징으로 보아서 목단강 유역은 포함되지 않고 수분하 유역부터 연해주 및 두만강 유역까지 포함된다. 한-중-러 접경지역의 선사시대 고고문화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문화권의 범위가 약간 축소되지만 그 이면에는 시대가 늦어지면서 지역성이 강화되는 점이 더 큰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중국 목단강 일대의 고고 유적 조사가 주로 발해시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청동기시대 자료 및 철기시대 자료가 부족한 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분하와 두만강, 목단강은 동북한문화권의 범위에 속하며 한국고고학의 연구영역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결과의 학문․사회적 기여도 본 연구를 통해서 기대되는 학문적 사회적인 기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廣義의 한국사’를 실현하는데 하나의 큰 초석이 될 것이다. 한-중-러 접경지역의 연구는 중국 중심의 연구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선사시대의 연구영역을 넓힌다는 점에서 선사시대 연구관점을 넓힐 수 있다. 비록 동북공정은 마무리 되었지만, 중국 중심의 역사해석과 그 효과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금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학계의 대응은 중국이 제공하는 자료를 재해석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학자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중국에서 수입되는 선진문화가 한국 문화발전의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는 인식은 같다. 사실, 이러한 관점은 중국의 ‘역사패권주의’가 가지고 있는 어 한반도 문화발전의 기본이 되었다고 보는 데에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고대문화연구에서 탈피하여 비중국적인 지역적 전통을 부각한다는 점에서 광의의 한국사를 실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연구이다. 둘째, 북한의 선사시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 한-중-러 접경지역에 대한 연구는 현재 우리가 가볼 수 없는 북한지역의 고대문화 연구에 필수적이다. 동북한 두만강유역의 선사시대 중요한 문화중 하나이지만 직접 자료를 접할 수 없었지만, 본 조사를 통해 그 실물자료를 얻고 북한 선사시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한국 고대문화 형성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발해위주의 북방사 연구에서 다변화하여 좀 더 고고학적인 원칙에 충실한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최근 한국의 연해주에 대한 관심은 발해에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이 지역은 한국사의 일부였으며 읍루, 옥저, 동예와 같은 민족이 거주했다. 천편일률적인 발해위주의 조사에서 실질적인 한국고대문화 규명으로 연구폭을 확대하였다. 작금의 발해위주 공동조사는 순수한 고고학적 관심이라기보다는 역사찾기와 같은 대중적이고 정치적인 이해가 많이 작용한 것이다. 2) 결과물의 학계 내 파급효과 첫 번째로 한-중-러 접경지역의 연구는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학계에서도 이러한 종합적인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고고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다. 더욱이 러시아 자료에 대해서 한국 학자들은 일본자료를 통해서 얻는 경우가 많은 데, 이렇게 입수된 자료는 1차 자료로써가 아닌 일본 연구자들의 시각이 덧붙여져서 2차 자료로써의 효과만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가 한국에서 진행된다면, 1차적인 고고자료를 한국 고고학계 뿐 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학계에 종합연구로써 파급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한국 고고학의 연구영역은 최근 들어서 많이 넓어지는 추세이지만, 아직까지 동북아시아고고학 관련된 개설서가 한국어로는 없다. 언어의 문제 뿐 만 아니라, 우리 한국학자의 입장, 시각에서 씌여진 결과물이 없다는 점이 더욱 문제가 있다. 물론, 본 연구 결과물이 동북아시아 전체를 포함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연구물의 기초자료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는 이 연구에서 그치지 않고 동북아시아 전체를 그 대상으로 넓혀서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점에서 이 결과물은 학계내에서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세 번째로 2,3차년도 연구결과물을 게재하고 난 후(1차년도 결과물은 이미 게재)단행본으로 간행해서 출간하고자 한다. 3) 사회적 파급효과 이번 연구는 현재 한국 고대사에서 첨예한 관심이 되는 발해의 영역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발해로 대표되는 역사에 대한 관심은 학문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자칫 연해주를 비롯한 동북한 지역의 역사를 지나치게 편협한 ‘동북공정의 대응을 위한 지역’으로만 비추어질 수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 한-중-러 접경지역의 진정한 한국 선사-고대사에서의 위치를 자리매김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좀 더 발전적인 역사인식을 심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 색인어
  • 한-중-러 접경지역, 신석기시대, 고고문화, 루드나야 문화, 신개류 유적, 보이스만 문화, 진흥 1기의 갑조(組) 마르가리토프카 문화, 흥성문화, 오동청동기문화, 전환기, 조기, 얀콥스키 문화,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 수분하, 옥저, 해안
  • 연구성과물 목록
데이터를 로딩중 입니다.
데이터 이용 만족도
자료이용후 의견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