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 철학은 여러모로 상당히 궁핍한 입장에 처해있다. 호킹 Stephen Hawking의 진단을 보자. “18세기에 철학자들은 과학을 포함해서 인간의 모든 지식을 자신들의 연구 분야로 삼았고 ‘우주에는 시초라는 것이 있었는가?’[did the universe have a beginning?]와 같 ...
오늘 날 철학은 여러모로 상당히 궁핍한 입장에 처해있다. 호킹 Stephen Hawking의 진단을 보자. “18세기에 철학자들은 과학을 포함해서 인간의 모든 지식을 자신들의 연구 분야로 삼았고 ‘우주에는 시초라는 것이 있었는가?’[did the universe have a beginning?]와 같은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에 과학은 극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철학자나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전문적이고[technical] 수학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범위를 너무나 축소시켜서 금세기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에 남겨진 유일한 임무는[task] 언어분석뿐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에 이르는 철학의 위대한 전통에 비한다면 이 얼마나 큰 몰락인가!” (스티븐 호킹,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김동광 역, 까치, 1998, 233) 오늘 날 우리가 철학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특정 분야” 혹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는 말은 이러한 사실에 편승한 결과물이다. 물론 철학이 글자 그대로 칸트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은 거부되어야 하며, 받아들여야 할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트라우드가 올바르게 지적하듯이, “특정 분야” 혹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는 말 역시 a bad joke에 불과하다 (Stroud, The Quest for Reality,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Preface ix-x). 그렇다면 문제는 호킹이 주장하는 과학적 결정론인데 (같은 책 11장 참조), 연구자는 이 또한 거부되어야 하며 거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정 철학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이며, 더 나아가 일반 사람들이 철학에서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최소한의 것이다. 흔히 철학은 어려운 것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말이 오늘 날 조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자신의 삶을 조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스트라우드가 주장하듯,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에 대한 이해,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녹아 스며들어야 하는 곳이 철학이라면, 철학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삶이 지닌 불확실성과 더불어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와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감안한다면, 그것은 당연하다. 이는 칸트가<<순수이성비판>>1판 혹은 A판 서문을 시작하는 다음의 진단과 맥을 같이 한다. “인간의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서는 특수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 이성은 이성의 자연본성 자체로부터 부과된 것이기 때문에 물리칠 수도 없고 그의 전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어서 대답할 수도 없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적인] 문제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AVII, 백종현 역) 칸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와 해결의 추구는 과학에 의해 수행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서 오늘 날 과학이 후원자로서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는 있다 (칸트 역시 이러한 생각인데). 연구자가 이러한 역할로써 의미하는 바는 인문학이나 예술로의 과학 특히 유전 생물학의 수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수용에 대해 나는 부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그러나 과학이론을 지배하는 단순성과 경제성 그리고 설명력이 지닌 유혹적인 매력에 의해 야기되는 무차별적인 단순화와 게걸스러운 환원주의적 독단주의가 문제다(호킹 1장과 11장 참조; 이러한 점에 대한 경고와 관련해서는 데넷 Daniel Dennett, Darwin's Dangerous Idea, Simon & Schuster Paperbacks, 1995, 511-520쪽 참조). 무엇보다도 그러한 독단주의가 가져오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있다. 이러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나는 미래 세대가 유전적으로 보수적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들은 장애를 야기하는 결함을 치료하는 것 외의 유전적 변화를 거부할 것이다.”(윌슨, <<통섭>>, 최재천 역, 사이언스 북스, 1998, 476쪽) 라는 윌슨식의 근거 없는 낙관론에는 사실 대책이 없다. 연구자는 데카르트가 유산으로 남긴 회의주의에 대한 본 연구가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존재자이기를 원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새로운 인간상의 추구와 확립이 절실한 오늘 날 그 단초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