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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상세정보

데카르트의 회의주의 유산
The Legacy of skepticism from Descartes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시간강사지원사업
연구과제번호 2012S1A5B5A07037387
선정년도 2012 년
연구기간 1 년 (2012년 09월 01일 ~ 2013년 08월 31일)
연구책임자 원석영
연구수행기관 성균관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과제명 "데카르트의 회의주의 유산" 이 의미하듯, 데카르트가 후대에 남긴 철학적 유산 가운데 하나인 회의주의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다. 후대인들은 데카르트에게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부여 했다. 데카르트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한 칭호라고 생각된다. 데카르트가 남긴 철학적, 과학적, 수학적 유산들을 생각하면, 그것은 합당한 것이라 할 수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남긴 회의주의 유산과 관련해서만은 그 칭호가, 아이러니하게도, 글자 그대로 이해되어 부정적인 칭호가 될 수 있다. 그 부정적 의미는 우리가 그것을 "근대 철학의 어머니"라는 칭호와 비교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연구자는 누구나 그 두 칭호의 차이를 이해하리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누가 왜 데카르트에게 "근대 철학의 어머니"가 아니라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부여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남긴 회의주의 유산과 관련해서만은 그것이 옳바른 선택이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연구자는 데카르트의 회의주의 유산과 관련해서 그의 충실한 상속자가 되고자 한다. 충실한 상속자로서 해야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두개 있다. 하나는 그 유산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이 두과지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 기대효과
  • 오늘 날 철학은 여러모로 상당히 궁핖한 입장에 처해있다. 호킹은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을 포함해서 인간의 모든 지식을 연구 분야로 삼았던 철학이, -우주의 기원에 대한 물음까지-, 오늘 날 얼마나 그 영역이 축소되었는가를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어, 즉 "철학에 남겨진 유일한 임무(task)는 언어분석뿐이다", 비웃는다. 호킹은 "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에 이르는 철학의 위대한 전통에 비한다면 이 얼마나 몰락인가!" 라며 종지부를 찍는다. 오늘 날 우리가 철학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특정 분야" 혹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 라는 말은 이러한 사실에 편승한 결과이다. 철학이 글자 그대로 칸트 시대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은 거부되어야 하며, 받아들여야 할 이유 또한 없다. 따라서 스트라우드가 올바르게 지적하듯이, "특정 분야" 혹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 라는 말 역시 a bad joke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호킹이 주장하는 과학적 결정론인데, 나는 이 또한 거부되어야 하며 거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정 철학이 추구하는 바이며, 더 나아가 일반 사람들이 철학에서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최소한의 것이다. 흔히 철학은 어려운 것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말이 조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자신의 삶을 조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스트라우드가 주장하듯,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에 대한 이해,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녹아 스며들어야 하는 곳이 철학이라면, 철학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삶이 지닌 불확실성과 더불어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와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감안한다면, 그것은 당연하다. 이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 A판 서문을 시작하는 말과 맥을 같이한다. 즉 "인간의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서는 특수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 이성은 이성의 자연본성 자체로부터 부과된 것이기 때문에 물리칠 수도 없고 그의 전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어서 대답할 수도 없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적인] 문제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와 해결의 추구는 과학에 의해서 수행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옳다. 비록 과학이 후원자로서의 역할은 할 수 있지만 말이다(칸트 역시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과학이론을 지배하는 단순성과 경제성 그리고 설명력이 지닌 유혹적인 매력에 의해 야기되는 무차별적인 단순화, 그리고 데넷의 표현을 빌자면, 게걸스러운 환원주의적 독단주의가 문제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독단주의가 가져오는 근거없는 낙관주의가 있다. 연구자는 이러한 근거없는 낙관주의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래세대가 유전적으로 보수적일 것이라고 에상한다. 그들은 장애를 야기하는 결함을 치료하는 것 외의 유전적 변화를 거부할 것이다" 라는 에드워드 윌슨의 근거없는 낙관론에는 사실 대책이 없다. 연구자는 데카르트 회의주의 유산에 대한 연구가 우리가 어떤 존재자이고, 어떤 존재자이길 원하는가라는 원초적인 물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연구요약
  • 데카르트가 제 1 성찰에서 이른바 외부세계의 존재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의심하게 하는 꿈의 논증을 제시한 이래 우리는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부세계의 존재에 대한 인식가능성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현실이 제 2 의 꿈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는 논증. 이것이 데카르트가 남긴 철학적 유산 가운데 하나이다. 이 논증은 이후 서양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이는 오늘 날에도 변함이 없다. 데카르트 이래 많은 철학자들이, 예를 들자면, 버클리, 흄, 러셀, 카르납, 콰인 등등이 관념론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자는 그 누구도 관념론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인 실재론이 우리가 원하는 것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데카르트의 회의 논증에 대해 직접적인 실재론을 강력하게 그리고 대담하게 내 세운 철학자는 여전히 무어밖에 없다. 우리가 이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까? 꿈의 논증에 대해 우리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직접 그 논증을 대면 할 경우, 우리는 그 논증에 압도 된다.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고백할 정도로. 그러나 그 후 언제 그랬냐는듯이 일상으로, 즉 직접적인 실재론자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우연히 다시 그 논증에 생각이 미치면, 다시 압도 된다. 이처럼 뭔지 모를 석연치 않은 상태가 반복해서 일어난다. 일상의 관점에서 보면, 반박할 수 있다면 최선인데, 반박은 요원하고 막막한 일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현실을 제 2의 꿈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꿈의 논증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란, 꿈의 논증을 반박하기 어려운 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회의주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한 가지 중요한 지침을 제공해 준다. 만일 우리가 앞서 말한 두 태도 가운데 어느 하나에 천착할 수 없다면,-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그러한 사실이 회의주의에 대한 접근과 이해와 논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러한 태도 가운데 어느 하나를 버릴 수 없다면, 아는 회의주의 문제가 발생하게된 근원이 우리가 회의주의에 대해 그러한 태도를 취하게 된 근원과 밀접한 관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데카르트의 회의주의에 대한 반박이나 옹호에 주안점을 두지 않고, 데카르트 회의주의에 대해 우리가 보이는 상반된 태도를 염두에 두고 그 근원과 본질을 이해하는데 역점을 두고자 한다. 데카르트 역시 그 두 가지 태도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는 다음의 4 단계로 구성될 것이다. 1. 데카르트의 회의 논증을 재 구성하는 것이다. 오늘 날까지 많은 다양한 재구성 작업이 행해졌다. 연구자는 오 늘날 새로운 버전을 제시한다는 것은 a bad joke라고 연긴다. 따라서 여러 버전들을 검토하여 간단하고 설득력있는 버전을 제시할 것이다. 2. 데카르트가 제 일 성찰에서 자신이 제시한 꿈의 논증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 역시 우리와 같은 태도를 취한다고 할 수 있는데) 를 고찰함으로써, 회의주의 유산을 좀 더 구체화 할 것이다. 3. 후대 철학자들이 데카르트의 유산을 어떤 식으로 수용했는지에 대해 간단히 원리적이고 일반적인 설명을 제시할 것이다. 결국 그들이 충실한 후손이 아님을 지적하게 될 것이다. 4. 연구자의 견해에 따르면, 데카르트의 회의주의 유산과 이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자신의 철학에서 가장 충실히 반영한 철학자는 칸트라고 생각한다. 이 주장은 당연히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주장이다. 연구자는 이를 위해 칸트의 회의주의 반박과, 스트로슨, 스트라우드, 칼, 데이비슨과의 논의를 통해 연구자의 입장을 정당화 할 것이다.
  • 한글키워드
  • 데카르트, 흄, 칸트, 스트라우드, 스트로슨, 칼, 카르납, 콰인, 회의주의, 유산, 꿈의 논증, 실재론, 관념론, 경험적, 초월적
  • 영문키워드
  • Descarttes, Hume, Kant, Stroud, Strason, Carl, Carnap, Quine, Skepticismus, Legacy, Dream-argument, realism, idealism, empirical, transcendental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자는 오늘 날 회의주의 문제를 가장 심도 있게 다루는 철학자 가운데 하나인 스트라우드의 회의주의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을 집중적으로 연구 했다. 회의주의에 대한 몇가지 종류의 반박들과 이것들을 뒷받침해 주는 인식론들에 대한 스트라우드의 비판적 전략적 논의를. 다른 한편, 칸트의 선험철학을 검토한 결과, 연구자는 칸트가 데카르트나 스트라우드처럼 회의주의를 전략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더, 회의주의에 대한 우리의 태도나 반응에 주목한 철학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따라서 본 과제를 실현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칸트 선험 철학에 대한 스트라우드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이를 집중적으로 수행하였다. 칸트 선험 철학에 대한 스트라우드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결과, 연구자는 칸트의 선험철학에 대한 스트라우드의 전략적 접근 방식이 커다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은 바로 그 접근 방식이 그로 하여금 회의주의 문제와 칸트의 선험 철학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파학하지 못하게 한 원인이라는 것인데, 이는 실로 아이러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영문
  • I have concerned to examine Stroud's strategic approach to some types of anti-skeptical arguments based on their own theory of knowledge. Stroud is known as one of the most famous philosophers who are deeply engaged in the problem of philosophy. On the other hand, I have considered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y and come to the conclusion that , even though Kant differentiate himself from Descartes and Stroud in that he does not use skepticism as a strategic means for achieving something else, he, too, or more than them, paid attention to our everyday reaction or responds to the skeptical argument developed by Descartes. This led me to the thought that it is the best way for me to do my job to examine Stroud's strategic approach to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y, so I have been trying to do it. This revealed Stroud's strategic approach to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y to be so entangled in his own net as to make him unable to see the right connection between the problem of skepticism and Kant’s transcendental philosophy. And this is really a very unexpected ironical result.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오늘 날 철학적 담론에서 회의주의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외부 세계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다는 테제로 이해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테제의 기원은 데카르트가 <<제일 철학에 대한 성찰>>의 제 일 성찰에서 잠정적으로 도달한 회의적 결론에 있다. “잠정적”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다음이다. 데카르트는 그곳에서 자신이 펼친 회의 논증과 그 결론을 뒤따르는 다섯 개의 성찰에서 자신이 체계적으로 구상한 보다 광범위하고 긍정적인 형이상학적 프로그램을 실천해 나가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으로 여겼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방법론적 회의”라는 말은 데카르트의 그러한 의도를 정확히 해 주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회의주의에 대한 스트라우드의 접근 방식은 그런 면에서 데카르트의 접근 방식과 유사한 점이 있다. 데카르트의 회의 논증과 그 결론을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다양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우리는 그 논증으로부터 강력한 인상과 함께 압도 되어 그 논증을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는 어떤 다른 선택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혹은 바로 그 때문에, 좀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 논증을 궤변에 능숙한 철학자들의 궤변으로 치부해 버리면서 무시하고자 할 수도 있다. 혹은 그 논증을 반박하고자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이 가운데 어떤 태도를 취하든, 우리는 잠시 후 다시 계속 되는 일상적 삶에 시달려 그 상황자체를 잊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아직 다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연유에서건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다시금 그 논증과 대면하게 되면, 위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고, 더욱이 우리가 어떤 상태에서 그 논증과 대면하게 되는 지에 따라 이전에 취했던 태도와 다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회의주의와 관련해서 우리가 드러내는 이러한 복잡한 태도 혹은 반응들을 어떻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철학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문제는 이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다는데 있다. 데카르트이후 많은 철학자들은 회의론을 반박하기 보다는 생산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이유는 당연히 회의론을 반박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버클리, 흄, 러셀, 카르납, 콰인 등등이 관념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관념론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우리가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직접적인 실재론이 direct realism 우리가 원하는 것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나와는 독립적으로 저기에 존재하고 있는 저 책상들을 직접 보고 안다’라는 것 말이다. 데카르트의 꿈의 논증에 대해 이러한 직접적인 실재론을 강력하게 그리고 대담하게 내 세운 철학자는 여전히 무어밖에 없다. 그러나 무어의 입장은 거센 반박과 반론에 노출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이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회의주의 문제와 관련해서 스트라우드의 접근 방식이 주목을 끄는 이유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스트라우드는 회의주의를 반박해야 할 혹은 받아들여야만 할 혹은 무시해야할 혹은 잊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해해야할 대상으로, 이해할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생각한다. 회의주의에 대한 스트라우드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그의 일반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 즉 철학적 문제에 대한 탐구는 그 결과와 무관하게 인간 본성 깊숙이 놓여 있는 것들을 해명해 줄 수 있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 스트라우드는 데카르트의 회의 논증을 분석하고 재 구성한 후 그 논증의 어떠한 면이 우리에게 다양한 태도를 야기하게 되는지를 검토한다. 그리고 그는 한편으로는 회의주의 논증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다양한 태도나 반응에 의존해서, 몇 가지 대표적인 타입의 인식론을 회의론 반박을 위한 전략으로 간주하고 분석한다. 그것들이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실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들이 실제로 하는 것이 실제로 그것들이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검토하기 위해서. 따라서 스트라우드는 회의주의에 대한 이러한 방식의 탐구가 철학적 인식론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무엇인지를 해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는 인간 본성 깊이 놓여 있는 어떤 것을 해명해주리라고 생각한다. 연구자는 스트라우드의 접근 방식이 회의주의의 문제에 접근하는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스트라우드와의 비판적인 논의를 통해 본 과제를 실현해 나갔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오늘 날 철학은 여러모로 상당히 궁핍한 입장에 처해있다. 호킹 Stephen Hawking의 진단을 보자. “18세기에 철학자들은 과학을 포함해서 인간의 모든 지식을 자신들의 연구 분야로 삼았고 ‘우주에는 시초라는 것이 있었는가?’[did the universe have a beginning?]와 같은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에 과학은 극소수의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철학자나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전문적이고[technical] 수학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범위를 너무나 축소시켜서 금세기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에 남겨진 유일한 임무는[task] 언어분석뿐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에 이르는 철학의 위대한 전통에 비한다면 이 얼마나 큰 몰락인가!” (스티븐 호킹,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김동광 역, 까치, 1998, 233) 오늘 날 우리가 철학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특정 분야” 혹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는 말은 이러한 사실에 편승한 결과물이다. 물론 철학이 글자 그대로 칸트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은 거부되어야 하며, 받아들여야 할 이유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트라우드가 올바르게 지적하듯이, “특정 분야” 혹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는 말 역시 a bad joke에 불과하다 (Stroud, The Quest for Reality,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Preface ix-x). 그렇다면 문제는 호킹이 주장하는 과학적 결정론인데 (같은 책 11장 참조), 연구자는 이 또한 거부되어야 하며 거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정 철학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이며, 더 나아가 일반 사람들이 철학에서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최소한의 것이다. 흔히 철학은 어려운 것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말이 오늘 날 조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자신의 삶을 조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스트라우드가 주장하듯,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에 대한 이해,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녹아 스며들어야 하는 곳이 철학이라면, 철학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삶이 지닌 불확실성과 더불어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와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감안한다면, 그것은 당연하다. 이는 칸트가<<순수이성비판>>1판 혹은 A판 서문을 시작하는 다음의 진단과 맥을 같이 한다. “인간의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서는 특수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 이성은 이성의 자연본성 자체로부터 부과된 것이기 때문에 물리칠 수도 없고 그의 전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어서 대답할 수도 없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적인] 문제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AVII, 백종현 역) 칸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와 해결의 추구는 과학에 의해 수행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서 오늘 날 과학이 후원자로서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는 있다 (칸트 역시 이러한 생각인데). 연구자가 이러한 역할로써 의미하는 바는 인문학이나 예술로의 과학 특히 유전 생물학의 수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수용에 대해 나는 부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그러나 과학이론을 지배하는 단순성과 경제성 그리고 설명력이 지닌 유혹적인 매력에 의해 야기되는 무차별적인 단순화와 게걸스러운 환원주의적 독단주의가 문제다(호킹 1장과 11장 참조; 이러한 점에 대한 경고와 관련해서는 데넷 Daniel Dennett, Darwin's Dangerous Idea, Simon & Schuster Paperbacks, 1995, 511-520쪽 참조). 무엇보다도 그러한 독단주의가 가져오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있다. 이러한 근거 없는 낙관주의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나는 미래 세대가 유전적으로 보수적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들은 장애를 야기하는 결함을 치료하는 것 외의 유전적 변화를 거부할 것이다.”(윌슨, <<통섭>>, 최재천 역, 사이언스 북스, 1998, 476쪽) 라는 윌슨식의 근거 없는 낙관론에는 사실 대책이 없다. 연구자는 데카르트가 유산으로 남긴 회의주의에 대한 본 연구가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존재자이기를 원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새로운 인간상의 추구와 확립이 절실한 오늘 날 그 단초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색인어
  • 데카르트, 흄, 칸트, 스트라우드, 스트로슨, 칼, 카르납, 콰인, 회의주의, 유산, 꿈의 논증, 실재론, 관념론, 경험적, 초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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