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철학자 볼테르의 본격적인 탄생 과정을 1734년의 『철학서한』을 통해 보고자 한다. 영국 체류를 중심으로 하여 사상적 기반 마련과 발전을 살펴보는 작품 생성적 차원의 접근을 제1장에서 다루고, 철학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종교, 정치, 과학, 문학과 예술에 대 ...
본 연구는 철학자 볼테르의 본격적인 탄생 과정을 1734년의 『철학서한』을 통해 보고자 한다. 영국 체류를 중심으로 하여 사상적 기반 마련과 발전을 살펴보는 작품 생성적 차원의 접근을 제1장에서 다루고, 철학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종교, 정치, 과학, 문학과 예술에 대한 고찰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철학서한』의 내용 전개와 구성에 대한 분석을 제2장에서 다루며, ‘서한’이라는 형식과 문체 관한 연구를 제3장에서 다루려 한다.
볼테르가 영국에서 맛본 자유의 기운과 사실에 기초한 경험주의 철학에 대해 전에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직접적인 체험은 그저 알기만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차원에서의 영향 외에도 영국이 계몽기 철학자들 전반에 끼친 영향을 두루 살펴보는 것도 필요할 터인데, 『철학서한』에서 볼 수 있는 영국에 관한 내용의 상당수가 당대 지식인들과 공유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철학서한』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는 25편의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 과학과 학문, 예술과 문학, 철학, 그리고 그 유명한 파스칼에 관한 마지막 편지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교육을 받은 식자층을 위한 저서이다. 제일 앞부분의 편지들에서는 종교를 주제로 하여 그가 주위에서 볼 수 있었던 퀘이커교, 영국성공회, 장로회, 소치니파를 점검한다. 계몽사상과 대척점에 있는 반계몽적 실체를 종교로 보았던 볼테르였으므로 언제나 제일 먼저 등장하는 화두이다. 이를 전통적인 가톨릭교 의식을 비판하는 계기로 삼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부분에서, 볼테르가 말년에 달랑베르를 부추겨서 『백과전서』의 <제네바> 항목에서 제네바 성직자들을 ‘이신론자’로 여기게끔 한 에피소드와 관련지어 고찰해보는 것도 고려해봄직 하다. 그 다음의 서한들은 정치, 철학, 예술, 문학 등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영국 체류 동안 중요한 지식인들을 만난 바 있는 볼테르는 영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큰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뉴턴과 로크의 영향도 매우 컸으므로, 프랑스 사회의 개혁에 대한 신념이 더욱 더 다져진다. 그로서는 이런 개혁에 참여하는 방법이란 여전히 글을 통해서이므로, 『철학서한』은 그러한 개혁 의지의 구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고 권위의 두 주체인 왕과 가톨릭교회, 즉 군주제와 기독교계는 서로 공생관계에 놓여 있었으므로, 교회는 신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군주를 섬기라고 가르치고, 군주는 교회를 비호하는 시스템 속에서 그 두 권위에 빌붙어서 특권을 누리거나 그들의 법에 그저 복종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 그대로 몸으로 겪은 볼테르이므로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영국의 시스템과 분위기는 좋은 준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세간의 주목을 받은 제10편은 ‘교역’을 다루면서 영국의 교역을 찬양한다. 볼테르는 교역이 영국 백성들의 자유에 기여를 하고, 이 자유 또한 교역의 발전에 공헌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계기로 볼테르는 이런 유형의 일에 관심이 없는 프랑스와 독일의 귀족들을 신랄하게 풍자하면서 이들은 세계의 행복에 공헌하는 교역상들과는 반대로 그리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사례를 발판으로 하여 실용주의적 입장을 보이는 볼테르 철학자의 윤곽이 서서히 잡혀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외에 로크나 뉴턴에 대한 고찰을 비롯하여 과학과 학문에 대한 내용들에서는 철학자 볼테르가 더 넓은 대중을 위해 ‘진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어떤 방식으로 대중화시키는지 볼 수 있는데, 이런 작업의 의도는 구체제를 굳세게 붙들고 있는 권위당국들과 권력층이 바로 이 ‘진보’를 통해 흔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계몽사상과 과학의 대중화는 진보를 위한 철학자들의 투쟁의 일부였음을 본 연구는 볼테르의 『철학서한』을 통해서도 확인해볼 계획이다.
한편, 18세기 영국의 사회상을 묘사하는 이 저서의 진정한 저작 동기는 ‘관용정신’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철학서한』이 근대 자유주의의 일종의 지침서로 여겨지며, 철학자 볼테르의 탄생을 상징하는 저서로 꼽힐 수 있는 것이다. 일견 다양하고 서로 다른 영역의 주제들처럼 보이는 서한들에 어떤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많이 알려진 바대로 저작활동과 구체적 실천을 통해 볼테르가 구현한 관용정신은 장 칼라스의 복권운동과 이에 관한 『관용론』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볼테르가 평생에서 가장 바람직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 때라 할 수 있다. 볼테르의 삶이 이런 아름다운 행위로 귀결되고, 평생의 궤적에 의미 있는 일관성을 갖게 해주는 것도 바로 ‘관용’이라는 철학적 무기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각 주제들이 철학자 볼테르의 한결 같은 슬로건인 ‘관용’에 어떻게 관련지어지는지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