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시대 대 명필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 1786~1856)가 직접 필사한 한글편지에 나타나는 서예적 조형미를 시기별로 변천사적 측면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서예교육 및 서체활용에 응용할 수 있게 하고 판독문 또한 국어학, 역사학등 다방면에서 활용 ...
본 연구는 조선시대 대 명필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 1786~1856)가 직접 필사한 한글편지에 나타나는 서예적 조형미를 시기별로 변천사적 측면에서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서예교육 및 서체활용에 응용할 수 있게 하고 판독문 또한 국어학, 역사학등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데에 목적을 둔 서예분야의 연구이다.
추사는 충청도 예산에서 아버지 경주김씨 유당 김노경(酉堂 金魯敬, 1766~1837 : 당시 21세)과 어머니인 기계 유씨(杞溪 兪氏 : 1768~1801, 兪駿柱의 딸) 사이에서 3남 2녀 중 장자로 태어났다. 8세 때 김노영의 양자로 들어가 24세에 생원시험에서 일등으로 급제하고, 34세 문과에 급제, 41세 충청우도 암행어사, 42세 예조참의, 51세 성균관대사성, 54세 형조참판, 55세부터 63세까지 제주 유배생활, 63세부터 66세 강상시절, 66세에서 67세 북청 유배생활 이후 철종 7년 1856년 10월10일 과천 별저에서 7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렇게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학자로 예술가로 71세까지 살면서 학문과 서예술 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문서예의 대가인 추사가 쓴 한글편지 서체 그 예술성이 대단히 높다하겠다. 추사 한문서예는 추사의 한문서간에 나타나는 서체의 변천과 동일하다는 것을 추사가 30대부터 71세까지 쓴 40편의 한문편지에 나타난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사례(ㅇㅇㅇ, 2010, 추사 김정희 서간의 서예미학적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92~117쪽)가 있다. 또한 이 연구를 기저로 하여 연령별 변천의 특징을 ‘유당입진(由唐入晉)의 첩학미학(帖學美學 : 35~45세), 종비입진(宗碑入晉)의 비학미학(碑學美學 : 46~63세), 빈모상득(牝牡相得)의 도(道)의 미학(道의 美學 : 63~71세)로 변천한 특징을 찾아 내었다.(ㅇㅇㅇ, 2011, 秋史 書簡書體의 美學的 特徵, 한국서예학회, 학회지 제19호. 229~265쪽).
그런데 한문편지 서체와는 달리 그가 관직과 학문 생활을 하면서 부인에게 쓴 한글편지의 서체적 예술성에 대하여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거나 연구된 적이 드문 편이다. 추사는 33세부터 46세까지 관직생활을 하면서 서울 장동, 온양, 예산, 대구 등지에서 떨어져 살던 부인에게 쓴 한글편지와 55세부터 63세까지 제주유배생활을 하던 시기에 예산에 거주하던 부인과 며느리에게 쓴 편지 등 27년간 쓴 편지 40여 편이 남아있다.
따라서 27년간에 걸쳐 쓴 한글편지 40편[글자수 15,384자]에 나오는 어휘와 음절을 조형적 특징 분석을 통하여 연령별로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가를 파악하여 추사의 한글서간체의 변천사적 특징을 밝혀보고, 한문서간 변천과의 관계, 한문서간 문자의 기본획과의 획형에 대한 관계성을 밝혀 예술성을 증명하고, 새로운 한글서간 서체의 정립을 물론 작품 창작과 응용에 도움이 되게 하는데 본 연구의 구체적인 목적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