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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쟁과 베스트팔렌 강화조약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소통적 기억: 평화축제와 민중의 자기증언 기록물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The Cultural and Communicative Memory on the Thirty Years' War and the Peace of Westphalia: Research on the Peace Festivals and the Self-Testimonies of the Common People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3S1A5A8021188
선정년도 2013 년
연구기간 2 년 (2013년 05월 01일 ~ 2015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황대현
연구수행기관 목원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에서는 역사학의 ‘문화적 전환’ 이후 국내 서양사학계에서도 이미 핵심적인 연구영역의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기억문화’ 내지는 ‘기억의 터’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에 유념하면서, 17세기 독일사의 최대 비극으로 손꼽히는 30년전쟁(1618~1648)과 전쟁을 종결지은 베스트팔렌 강화조약이 당대와 후대의 독일인들에게 어떻게 경험되고 기억되었는지의 문제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30년전쟁은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대(大)전쟁”, “전쟁 중의 전쟁”으로 불리면서 수백 년 동안 독일인들의 집단기억 속에 마치 전쟁의 대명사와 같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고 베스트팔렌 조약 역시 독일을 넘어 유럽적 차원에서 기억의 터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기억의 관점에서 이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 초기의 독일인들이 장기간에 걸친 전쟁의 격랑을 어떻게 헤쳐 나갔고 평화가 회복된 이후에 예전의 참혹했던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후세에게 전수하면서 끊임없이 기억 속에서 되살리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내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30년전쟁 및 베스트팔렌 조약과 관련해서는 이 어려운 문제를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2가지 핵심 매개체가 존재한다. 그 첫 번째 매개체는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된 것을 계기로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도래를 축하하기 위해 독일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거행되었던 평화축제(Friedensfest)이다. 성대한 불꽃놀이와 예포발사를 비롯해서 시민들이 참석하는 대규모 축하예배와 시가행진, 기념메달과 기념인쇄물의 발행과 같은 다양한 축하형식이 수반되었던 평화축제는 근대 초기 공적 축제문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평화축제는 일부 지역에서는 단순히 일과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이후에도 매년 같은 날 거행되면서 연례 기념일로 고착, 제도화하는 양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기억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를 살펴보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30년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에 대한 당대인들의 생생한 기억을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매개체는 이 격동의 시기를 온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이 작성한 연대기나 일기와 같은 이른바 자기증언 기록물(Selbstzeugnis)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자의식이 강한 지식인이나 지배 엘리트 계층이 남긴 자서전이나 회고록과는 달리, 농민이나 민중계층이 남긴 자기증언 기록물은 내면적인 자기서술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기보다는 차라리 주변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경험과 인식을 묘사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기 구성적 요소가 적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본 연구에서 평화축제와 민중의 자기증언 기록물에 대한 분석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30년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을 심성사 내지는 인식의 역사(Wahrnehmungsgeschichte)의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하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를 위해서는 17세기 독일인들이 직면했던 절체절명의 생존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던 내적, 심리적 기제를 밝혀내고 동시에 그것이 결국 특정한 형태의 집단 정체성 형성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과정을 해명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평화축제와 민중의 자기증언 기록물이 30년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에 대한 기억을 재현해내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얀 아스만이 제창한 ‘소통적 기억’과 ‘문화적 기억’의 개념은 본 연구의 방법론으로 활용하기에 상당히 유용하다. 민중의 자기증언 기록물이 ‘아래로부터의’ 소통적 기억을 훌륭하게 대변해주는 자료라면, 연례적인 평화축제를 통해서는 소통적 기억이 문화적 기억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추적해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근대 초기라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했고 이와 관련된 ‘기억의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현재화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19ㆍ20세기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에게도 기억의 문제를 통시적인 차원에서 비교, 고찰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 기대효과
  • 30년전쟁과 베스트팔렌 강화조약을 평화축제와 민중의 자기증언 기록물에 대한 분석을 통해 기억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은 아직 국내 학계에서는 시도된 바가 없는 새로운 연구주제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기억문제에 관한 연구 성과들이 그간 상당히 많이 양산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 주제가 지금까지 전혀 다뤄지지 않았던 것은 국내 서양사학계, 특히 독일사학계의 현대사 편중 상황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기억의 문제는 결코 현대사나 근대 국민국가 성립 이후의 시기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근대 초기에 집중하는 본 연구는 국내 독일사 연구자들의 과도한 19-20세기사 편중으로 인해 초래된, 역사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잇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독일에서도 본 연구 주제를 역사가들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어서,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 350주년이 되는 1998년 무렵에야 본격적으로 관련 연구 성과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근대 초기 독일사 연구자인 하인츠 두흐하르트(Heinz Duchhardt)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30년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에 대한 문화사 연구(예컨대 축제문화 연구)와 자기증언 기록물에 대한 연구는 그 핵심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충분한 상태에 머물러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독일 역사학계의 최신 연구동향에 부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1, 2차 세계대전이나 홀로코스트와 같은 현대사의 트라우마적 사건에 대한 인식 및 기억문제와도 상호 비교, 검토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이 분야를 전공하는 국내 연구자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기에도 적합한 주제이다. 또한 본 연구는 기억의 다양한 재현매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서양의 축제문화의 역사적 배경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인이나 자기증언 기록물의 사료적 가치 및 활용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연구자들에게도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본 연구는 최근의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도 상당히 시의성이 있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인해 조성된 위기상황은 한반도가 여전히 불안정한 휴전상태에 놓여있으며 전쟁과 평화의 문제가 결코 학문적인 관심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이 달린 현실적인 사안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하도록 만들고 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정확히 60년이 되는 현 시점에서도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이 남한은 물론 북한에서도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정치공학적인 대응이나 국제적인 역학관계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지난 전쟁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끈질기게 전승되고 기억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다각적인 성찰이 반드시 수반되어야한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이전까지 중부 유럽지역에서 가장 파괴적이었던 전쟁으로 평가되곤 하는 30년전쟁과 이 전쟁을 종결지으면서 새로운 국제체제를 수립한 베스트팔렌 조약을 기억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자 하는 시도는 비교사적인 측면에서 분명 우리에게도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함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교육과의 연계 활용방안으로 본 연구자는 소속 대학에서 이 주제와 관련된 전공강좌를 매 학기마다 개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 마침 연구자가 속한 학과에서는 담당교수가 서양사 분야에서 자유롭게 강의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전공과목이 매 학기 하나씩 설강되기 때문에 연구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해나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먼저 1차년도에는 기억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함께 특히 기억과 전쟁 문제를 다룬 역사학계의 다양한 연구 성과들을 살펴보는 것에 초점을 맞춰 강의를 진행해나갈 생각이다. 다음으로 2차년도에는 축제 및 자기증언 기록물과 관련된 문제를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연구서를 토대로 30년전쟁기의 평화축제와 민중의 자기증언 기록물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수업에서 다뤄볼 계획이다. 이렇게 본 연구주제가 일반 학생들과 공유되는 것을 통해, 한국사나 동양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학생들도 기억이라는 관점에서 전(前) 근대 시기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 연구요약
  • 본 연구에서는 먼저 1차년도 주제로 베스트팔렌 조약과 관련된 다양한 종류의 평화축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다음, 민중의 자기증언 기록물에 대한 분석은 2차년도 연구과제로 수행하려고 한다. 1차년도 연구주제인 평화축제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룰 부분은 축제의 제도화에 성공했던 대표적인 도시인 아우크스부르크의 사례가 될 것이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1650년 8월 8일에 처음으로 거행되었던 평화축제의 전통이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독일에서는 유일하게 평화축제일이 당당히 법정 공휴일의 지위를 확보하기까지 했다. 그런 점에서 아우크스부르크 평화축제는 명실상부한 ‘기억의 터’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소통적 기억에서 문화적 기억으로의 전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아우크스부르크 평화축제의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가 문화적 기억의 핵심 기능인 집단 정체성의 창출에 기여했는지를 밝혀냄과 동시에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전쟁과 평화에 대한 기억의 내용이 어떻게 변형되어 갔는지를 재구성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아우크스부르크와 다른 지역 도시의 사례에 대한 비교 분석은 평화축제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때 축제가 갖고 있는 상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축제의 상징적인 측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의례적인 요소이고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축제를 거행하는 것은 곧 의례를 거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궁정축제와 유사한 양상을 띠었던 뉘른베르크 평화축제에서는 지나간 전쟁의 불행했던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을 상징적인 방식으로 순치시키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간주할 수 있는 연출된 행사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본 연구에서는 축제의 이런 의례적 측면에 유의하면서 뉘른베르크 평화축제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 통과의례적 요소가 다른 지역의 평화축제들에서도 발견되는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또한 특정 제후에게 예속되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했던 제국도시들의 평화축제와 작센 선제후령처럼 개신교와 루터파 신앙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영방국가에서 거행된 평화축제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지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2차년도 연구주제인 민중의 자기증언 기록물과 관련해서는, 이 기록물이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와는 달리 저자의 내면적인 성찰과 ‘개인의 발견’에 초점이 놓여있기보다는 주로 외부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대상물과 같이 비교적 ‘단순한’ 주제들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모든 것이 불확실한 위기의 시대에 작성된 민중의 자기증언 기록물에서는 자아(ego)가 집단적인 생존을 보장해주는 초개인적인 공동체 뒤로 숨어버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더구나 17세기는 개인적 기억이 집단적 기억으로부터 분리되는 기억의 사유화가 아직 확고하게 관철되지 못한 시기였다. 따라서 30년전쟁을 배경으로 한 민중의 자기증언 기록물은 단순히 개인적 기억의 산물이 아니라 민중의 ‘사회적인 자기의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집단기억으로서의 소통적 기억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민중의 자기증언 기록물 중에서도 특히 전쟁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였던 농민들이 남긴 자료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0년전쟁 시기에 쓰인 자기증언 기록물의 저자가 대개 성직자나 도시민이었다는 점에서 농민의 기록물이 간행된 경우는 손으로 꼽을 만큼 소수에 불과한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한스 헤벌레(Hans Heberle)와 카스파르 프라이스(Kaspar Preis)의 연대기이다. 본 연구에서 이 두 연대기를 주목한 이유는 해제를 덧붙인 연대기가 간행되었다는 점 이외에도, 전쟁의 폐해를 문자 그대로 온 몸으로 뼈저리게 체험했던 두 농민 저자들이 평화가 회복된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글쓰기를 계속 이어가면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전쟁과 평화에 대한 당대인들의 소통적 기억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농민 저자들의 연대기를 농민과 적대적인 입장에 서 있었던 용병의 자기증언 기록물이나 전쟁 시기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전단지, 소책자, 주간신문과 같은 다른 인쇄매체들과 비교해보면 전쟁 당시 민중의 소통적 기억을 재구성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에서는 17세기 독일사의 최대 비극으로 손꼽히는 30년전쟁(1618~1648)과 전쟁을 종결지은 베스트팔렌 강화조약이 당대와 후대의 독일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기억되었는지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17세기 독일인들이 장기간에 걸친 전쟁의 격랑을 어떻게 헤쳐 나갔으며, 평화가 회복된 이후에 예전의 참혹했던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후세에게 전수하면서 끊임없이 기억 속에서 되살리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30년전쟁 및 베스트팔렌 조약과 관련해서는 이 어려운 문제를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2가지 핵심 매개체가 존재한다. 그 첫 번째 매개체는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도래를 축하하기 위해 독일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거행되었던 평화축제(Friedensfest)이며 두 번째 매개체는 격동의 시기를 온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이 작성한 연대기나 일기와 같은 이른바 자기증언물(Selbstzeugnis)이다.1차년도 연구에서는 남부 독일의 대표적인 두 도시인 뉘른베르크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거행된 평화축제의 비교 분석을 통해, 축제라는 문화적 형식을 빌어 표출된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인식과 기억의 문제를 살펴보았다. 먼저 축제의 유형 측면에서 두 평화축제를 비교해보자. 뉘른베르크 평화축제는 전쟁이 종식되는 시점에서 평화의 도래를 재확인하고 축하하는 의미에서 화려한 볼거리와 산해진미를 갖춘 호화로운 잔치로 치러졌지만, 일단 실질적인 평화가 달성된 이후에는 더 이상 그런 통과의례를 반복할 필요가 없었기에 일과성 행사로 그치고 말았다. 반면, 신ㆍ구교도가 서로 이웃해 살았던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후세들이 이후로도 개신교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계속 고수해나가게 할 목적으로, 전쟁 중의 종교 박해와 관련된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교육적 측면에 치중한 평화축제가 루터파의 연례행사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다음으로 축제의 기능면에서 살펴보자면,
    뉘른베르크 평화축제는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특성을 지닌 고도로 연출된 행위를 통해 적대진영간의 갈등과 불화를 해소하고 화해와 통합을 창출해내는 데 주력했다. 반면, 아우크스부르크 평화축제는 비록 신ㆍ구교간의 갈등이 심각한 사태로까지 확산되도록 의도적으로 조장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가톨릭 교인들이 배제된 루터파만의 교회축제의 속성이 강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개신교인들의 교파적 구별짓기의 도구로 활용된 측면이 많았다. 이런 점에서 다양한 축제문화를 비교, 분석하면서 역사가 미하엘 마우러가 내린 결론, 즉 “축제를 거행하는 것은 사회, 문화적 통합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 차별화에도 기여한다”는 명제는 두 도시의 평화축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2차년도 연구에서는 전쟁을 직접 체험한 농민이나 민중이 기록한 자기증언물을 통해 당대인들의 생생한 기억을 되살려보고자 했다. 하지만,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내 역사학계에서 아직까지는 생소한 개념인 자기증언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기에, 부득이하게 자기증언물의 일반적인 사료적 특성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역사인식론적 함의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자기증언물을 여타 사료와 구분해주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명시적 자아에 의한 자기 주제삼기’와 글쓴이의 자발성이다. 자기증언물에 대한 역사가들의 관심은 이른바 자율 주체로서 개인이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역사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 초기 자기증언물에서 빈번하게 목격되는 사회적 역할행동에 부합되는 태도나 규범적 담론의 영향력은 개인을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된 자율적 존재로 파악하거나 텍스트 속에서 개인의 자아의식이나 개인성의 요소를 찾는데 집중하는 기존의 접근방식이 명백히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서구사회의 개인화 과정을 염두에 둔 채 자기증언물을 근대 초기 서양인들의 개인성을 엿볼 수 있는 이상적인 사료로만 간주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근대 초기에 작성된 자기증언물은 자신의 내면세계에 몰입하는 개인이 아니라 한 사회적 인격체가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와 맺는 관계를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자서전을 분석했던 연구자들도 예전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자전적 텍스트의 핵심문제로 파악했다면, 이제는 텍스트 속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질문의 내용이 “나는 어디에 속해있는가?”로 바뀌게 되었다. 특별히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된 자기증언물조차도 상호텍스트성에 주목해 당대나 이전의 문헌들과 비교해보면 종종 잘 짜 맞춘 전통적 구성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자기인식과 자기서술이 언제나 사회문화적 담론과 집단기억에 구속되어 있음을 일깨워준다.
  • 영문
  • This research project aims to reconstruct the German's memories on the Thirty Years' War and the Treaty of Westphalia in 1648 by concentrating on two media of the memory: the Peace festivals and the so-called 'self-testimonies'. Peace festivals were organized by the authorities in a lot of imperial cities in the Holy Roman Empire to celebrate the conclusion of the Treaty of Westphalia. Whereas Nuremberg Peace festival in 1649/50 was as a temporary event no more than a kind of the baroque court banquet, its counterpart in Augsburg developed into a Lutheran jubilee to commemorate the acquisition of the confessional parity in the city. Even today, the citizens of Augsburg celebrate annually the Peace festival on August 8 as a municipal holiday. Many German historians have engaged in studying the ‘self-testimonies’ in which authors explicitly deal with their own lives and minds, and which include a variety of genres such as diaries, letters, autobiographies, memoirs, travel accounts, chronicles and so on. Although the self-testimonies have been still considered the typical documents revealing the individuality of a autonomous subject by plenty of historians, two essential characteristics of these texts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must not be ignored: first, the author relies on other texts in their writing so often that their self-testimony can be regarded as the product of a collective process (intertextuality); second, the autobiographical text tends not to reproduce the author’s experiences and mentalities as they are, but rather to narratively adapt them for the normative discourses of the time. Consequently, we need to analyse the self-testimonies of early modern Europe less in the context of individualization than that of the interrelationships between the author and other persons (humans or God).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에서는 ‘기억문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 성과들에 입각하여, 30년전쟁과 전쟁을 종결지은 베스트팔렌 조약이 당대와 후대의 독일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기억되었는지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자는 이 사건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지속적으로 불러일으키는 2가지 핵심 매개체, 즉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을 계기로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도래를 축하하기 위해 독일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거행되었던 평화축제와 격동의 시기를 온 몸으로 겪은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기록한 이른바 '자기증언물'을 각각 1, 2차년도 연구의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얀 아스만이 제창한 ‘소통적 기억’과 ‘문화적 기억’의 개념은 이 2가지 기억의 매개체를 분석하는 방법론적 틀로서 상당히 유용하다. 민중의 자기증언물이 ‘아래로부터의’ 소통적 기억을 훌륭하게 대변해주는 자료라면, 연례적인 평화축제를 통해서는 소통적 기억이 문화적 기억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추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1차년도 연구주제인 평화축제와 관련해서는 연례축제라는 형태로 축제의 제도화에 성공함으로써 소통적 기억에서 문화적 기억으로의 전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아우크스부르크의 사례와 통과의례적 특징을 보여주었던 뉘른베르크 축제의 사례를 상호 비교, 분석해보았다. 두 도시의 평화축제는 베스트팔렌 조약이 이룩한 성과를 재확인하고 뒷받침하려 했고 교회당국이나 지배 엘리트 계층이 주도한 공적 축제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기는 했지만, 사실 양자 사이에는 서로 대조되는 측면이 훨씬 더 많았다. 왕족이나 귀족출신 협상대표들이 주도했던 뉘른베르크 평화축제가 국가권력 담지자들의 자기과시 내지는 자기연출에 기여한 세속적인 궁정축제의 변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면, 루터교 교회가 주관했던 아우크스부르크 평화축제는 종교개혁 기념제와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전형적인 교회축제의 모습을 띠었고 무엇보다도 개신교 시민들의 정체성 강화에 이바지하는 기억의 터로 자리매김 되었다. 한편, 30년전쟁을 직접 체험했던 민중의 자기증언물을 통해 소통적 기억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2차년도 연구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증언물에 대한 정확한 개념규정과 사료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한다. 자기증언물의 개념규정을 시도한 크루젠슈톄른에 따르면, 이 사료군(群)을 여타 사료와 구분해주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명시적 자아에 의한 자기 주제삼기’이다. 글쓴이가 단지 암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역할을 특정 사건이나 현상을 보고하는 것에만 국한시킨 경우에는 자기증언물로 보기 어렵다. 자기증언물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기준으로 크루젠슈톄른이 내세우는 것은 글쓴이의 자발성이다. 즉, 자기증언물은 일반적으로 글쓴이가 스스로 작성하거나 최소한 구술한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저자의 자발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텍스트여야 하고 그런 점에서 강제된 비자발적인 진술까지 포괄하는 이른바 '에고기록물'과는 구분된다. 자기증언물을 분석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을 늘 염두에 두어야한다. 첫째로 자기증언물은 비록 개인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 하더라도 예외 없이 집단적 과정의 산물이고 그런 점에서 결코 집단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자전적 텍스트는 단지 글쓴이의 기억에만 의지해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텍스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기증언물의 저자들은 이런 자료들을 통해 자신의 기억을 보완하거나 교정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쓴 텍스트의 신빙성을 높이고자 했다.특히 모든 것이 불확실한 위기의 시대에 작성된 민중의 자기증언물에서는 자아가 집단적인 생존을 보장해주는 초개인적인 공동체 뒤로 숨어버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둘째로 여타 사료에 비해 주관적인 특성이 강한 자기증언물은 글쓴이의 경험과 인식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서사적으로 가공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자기양식화나 역사적 실제의 굴절현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고려해야한다.하지만 이런 자기구성적 요소 때문에 자기증언물을 허구적인 텍스트로 간주하여 그 사료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자기증언물에서 보이는 거짓말은 때로는 글쓴이가 실제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의무감을 느끼는 것의 표현일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저자의 ‘실존적 진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초기 자기증언물에서 빈번하게 목격되는 사회적 역할행동에 부합되는 태도나 규범적 담론의 영향력은 개인을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된 자율적 존재로 파악하거나 텍스트 속에서 개인의 자아의식이나 개인성의 요소를 찾는데 집중하는 기존의 접근방식이 명백히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지난 2년간 수행한 연구는 그동안 국내학계의 기억연구가 가지고 있는 내용적, 시기적 편향성을 극복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즉 그동안 기억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자들은 대체로 기념비나 기념식, 박물관, 교과서 등과 같은 문화적 기억의 매개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소통적 기억에 주목하는 연구자들은 회고록이나 자서전 등을 분석 자료로 이용하면서 특히 구술사(oral history)의 방법론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경우 그 연구는 부득불 현대사 쪽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본 연구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시기인 근대 초기의 경우에도 귀족 출신 인사들의 회고록을 분석한 개별 연구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집단기억의 한 형태라 할 소통적 기억의 관점에서 접근한 경우는 드물고 더욱이 아래로부터의 소통적 기억에 천착했던 사례는 사실상 전무한 형편이었다. 본 연구는 근대 초기라는 특정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독일인들이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했고 이와 관련된 ‘기억의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과거를 현재화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19-20세기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에게도 기억의 문제를 통시적인 차원에서 비교, 고찰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2차년도 연구성과 논문을 통해 기억의 다양한 재현매체가 실제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밝혀냄으로써 서양의 축제문화의 역사적 배경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인이나 자기증언물의 역사적 가치 및 활용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연구자들에게도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2012년 '역사비평' 가을호에 에고기록물에 대한 외국논문이 번역 게재된 것을 제외하면 그간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자기증언물에 대한 체계적인 방법론적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을 고려할 때, 본 2차년도 연구의 성과물인 자기증언물 및 에고기록물 관련 비평논문은 해당 분야의 후속 연구들을 고무하는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감히 자평해본다. 하지만 정작 2차년도 연구의 중점과제인 30년전쟁기 민중의 자기증언물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분석을 아직 수행하지 못한 점은 못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기증언물에 의거해 30년전쟁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의 소통적 기억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헤벌레나 프라이스 같은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들의 연대기만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농민들을 약탈하고 때로 농민들과 크고 작은 싸움을 벌이기도 했던 전쟁 가해자인 용병들이 남긴 자기증언물을 비롯해서 당시 봇물처럼 출간되어 나온 소책자, 전단지, 신문과 같은 여러 인쇄매체들을 함께 비교, 검토해볼 때에야만이 전쟁 당시 민중의 소통적 기억의 진면목을 좀 더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 가해자의 기억과 관련해서는 30년전쟁기의 가장 참혹했던 사건으로 손꼽히는 마그데부르크 시의 공방전에 참전했던 한 용병이 25년간에 걸쳐 쓴 일기를 분석한 연구 성과가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나왔기 때문에, 이를 농민 저자들의 연대기와 비교해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일련의 작업은 1~2년 안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 연구자는 앞으로도 장기적인 후속 연구 프로젝트로서 꾸준히 이 주제에 천착해 나갈 생각이다.
  • 색인어
  • 30년전쟁, 베스트팔렌 조약, 소통적 기억, 문화적 기억, 평화축제, 아우크스부르크, 뉘른베르크, 자기증언물, 에고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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