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르주 상드의 기독교적 코뮤니즘과 19세기 유토피아 사상 비교
-생시몽, 프루동, 푸리에를 중심으로- Christian communisme of George Sand and theories utopique of Saint-Simon, Proudhon and Fourrier
이 연구는 "죠르주 상드의 기독교적 코뮤니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 중 그 후속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계획된 것이다. 죠르주 상드의 기독교적 코뮤니즘이 왜 지금 이 시대에 연구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지난 번 지원 과정에서 자세히 설명한바 있다. 다시 간략 ...
이 연구는 "죠르주 상드의 기독교적 코뮤니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 중 그 후속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계획된 것이다. 죠르주 상드의 기독교적 코뮤니즘이 왜 지금 이 시대에 연구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지난 번 지원 과정에서 자세히 설명한바 있다. 다시 간략히 말하자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오늘 날 공산주의가 완전히 실패하고 자본주의 또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지금 19세기 맑시즘에 의해 밀려났던 기독교적 사회주의, 즉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모델을 우리는 죠르주 상드의 기독교적 코뮤니즘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지금까지의 연구는 죠르주 상드의 작품에 나타난 사상연구와 그녀의 정치 활동에 촛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드의 사상이 가지는 특징을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해 당시에 유행처럼 번졌던 다른 사상들, 다시 말해 생 시몽, 프루동, 푸리에와 같은 19세기 사상가들과 상드의 사상을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들은 상드와 마찬가지로 폭력을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가정의 가치를 무시하고 성해방을 부추기어 도덕적 무질서를 초래하고 지나치게 귀족 엘리트 중심이거나(생시몽주의) 혹은 과도하게 노동자 중심(프루동)이란 점 또 완전히 무신론적 입장이라는 점에서 상드의 사상과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상드 사상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으로 우리는 르루와 라므네를 들 수 있으며 이 셋의 공통점은 철저히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는 데있다. 그러므로 19세기에 유행하였던 다른 평화주의적 사회주의와 상드의 사상을 비교함으로 평화적 사회주의에 대해 상드만이 가지고 있는 이념과 방법론을 밝혀보려는 것이 이 연구의 목표이다.
기대효과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우리는 오늘 날 우리 사회의 화두인 “경제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유토피아에 대한 19세기의 이와 같은 생각은 무신론적 공산주의의 전복적이고 폭력적인 혁명으로 그 빛을 잃었지만 초기 기독교 ...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우리는 오늘 날 우리 사회의 화두인 “경제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유토피아에 대한 19세기의 이와 같은 생각은 무신론적 공산주의의 전복적이고 폭력적인 혁명으로 그 빛을 잃었지만 초기 기독교 사회 이후로 한 번도 실현되 보지 못한 이와 같은 정치제도는 오늘 날 우리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줄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19세기에 대한 정치 사회적 연구는 많이 있다, 주로 이 주제와 관련된 담론을 통한 학문적 접근이다. 그러나 사회학자가 아닌 한 소설가의 편지나 전기등을 통한 사상연구는 딱딱한 이데올로기 이면에 나타나는 보다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관점들을 드러내줄 것이다. 이와 같은 문학적 접근은 단순한 사회학적 혹은 정치적 이데올로기 분석이 드러내줄 수 없었던 부분을 조명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죠르주 상드가 여자라는 점 또한 주목해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생시몽이나 푸리에 등은 가족해체, 성해방을 통해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유토피아를 역설하였으나 여자인 상드는 그 안에서 여자들을 불행하게 할 요소들을 발견하고 그와같은 사상을 반대하게 된다. 당시 여성들을 가정으로부터 뛰쳐나오게 했던 유토피아 사상에 대한 이와같은 여성적 시각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상드만이 보여주는 독특한 관점이 아닐 수 없다. 근본적으로 가정의 가치를 역설하는 상드의 사상은 가정의 가치가 파괴되고 해체되어가는 오늘 날 우리사회가 다시 귀기울여야할 목소리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드이 기독교적 사회주의 연구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자본주의의 빈부격차 문제, 복지 문제, 또 가정해체로 인한 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줄 것이다.
연구요약
I. 19세기 다른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가들과 죠르주 상드의 사상을 비교분석한다. 1. 생시몽과 죠르주 상드를 비교분석한다. 생시몽주의는 모두가 일하고,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가장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를 꿈꾸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상적 ...
I. 19세기 다른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가들과 죠르주 상드의 사상을 비교분석한다. 1. 생시몽과 죠르주 상드를 비교분석한다. 생시몽주의는 모두가 일하고,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가장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를 꿈꾸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상적 사회주의 이론이다. 이들또한 상드처럼 평화주의적 변혁과 사유재산 폐지등을 주장함으로 평화적 사회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마디로 이것은 귀족 엘리트 중심의 개혁이다. 모든 자본을 국가가 통제하며 그것을 관리하는 것은 엘리트층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급부상하는 부르주아에 대한 귀족 혹은 지각있는 자들의 견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니 그렇게 변질되어 간다. 천박한 부르주아들에게 국가 자본과 모든 통제권을 맡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은행의 중앙통제를 주장하고 철도나 도시 계획, 공공사업, 식민지정책, 수에즈 운하 등 국가적 큰 사업을 주도한다.그러나 노동계급의 정치참여를 반대한다. 또한 여성해방운동을 전개하고 더 나아가 자유결혼, 성해방을 주장하기도 한다. 상드는 이 사상이 단순히 경제논리에 따른 변혁이라는 점, 또 프로레타리아가 아닌 엘리트 중심개혁이라는 점 또 여성해방이 여성을 더 불행하게 하는 관념이라는 점에서 반대한다. 2. 프루동과 죠르주 상드를 비교 분석한다. 프루동은 노동자 출신의 최초의 무정부주의자이다. 그 또한 생시몽주의자들처럼 모든 것을 경제적인 문제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유재산은 인정하지만 공공재산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사상을 보여준다. 노동자로서 그는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사회주의에 철저히 반대하였다. 상드는 그가 폭력적인 방법을 반대한다는 것과 그가 노동자 출신이란 것 또 재산권을 사유재산과 공공재산 둘로 나누는 것 등에는 긍정적 반응을 하였지만, 종교에 있어 적대적인 것과 이론적인 부분에서 논리적이지 못하고 모순되는 것에 반발한다. 그녀는 "프루동에게 있어 이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생각들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멋있어 보이지만 모순된 생각들과 그럴듯한 패러독스들의 짜집기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결코 하나의 학설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서간집. T. XI. p.184)라고 쓴다. 3. 푸리에와 죠르주 상드를 비교 분석한다. 푸리에는 자본주의로 인해 점점 더 불행해지는 삶으로부터 인간들을 해방시키길 원한다. 그는 자본주의적인 상업을 사회악으로 간주한다. 그는 경제적 교환으로 변질된 가정을 해체하고 싶어한다. 그는 국가나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생산과 소비의 공동체 생활을 꿈꾸었다. 그러나 상드는 완전히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된 그의 이론에 반대한다. 단지 생산과 소비 방식의 변혁을 위해 가정을 해체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함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었던 그의 생각을 부정한다. 그녀의 생각으로는 생산 소비의 방식이 아닌 의식의 개혁이 더 문제였던 것이다. 더우기 그녀에게있어 가정해체는 그 어떤 이유에서건 용납될 수 없는 문제였다. 따라서 상드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적 형제애의 실현으로 그것은 우선적으로 정신적인 개혁을 의미했다. 그녀는 물질을 생산하고 나누는 방법을 바꾸는, 물질적 방식으로 사회가 달라질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기독교적 형제애의 실현만이 이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경제구조가 아니라 의식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또 그녀는 공장 노동자 뿐 아니라 농민의 인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대부분의 사회주의가 자본가와 공장 노동자들인 프로레타리아의 관계에 집중해있다면 그녀의 사상은 모든 약자, 즉 노동자와 농민과 여자의 인권에 집중되어 있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19세기 맑시즘에 의해 밀려났던 기독교적 사회주의, 즉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죠르주 상드의 기독교적 코뮤니즘과 당시에 유행처럼 번졌던 사회주의 사상들, 다시 말해 생 시몽, 프루동, 푸리에와 같은 19세기 사상가들과 상드 ...
19세기 맑시즘에 의해 밀려났던 기독교적 사회주의, 즉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죠르주 상드의 기독교적 코뮤니즘과 당시에 유행처럼 번졌던 사회주의 사상들, 다시 말해 생 시몽, 프루동, 푸리에와 같은 19세기 사상가들과 상드의 사상을 비교하는 작업을 하였다. 이들은 상드와 마찬가지로 폭력을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가정의 가치를 무시하고 성해방을 부추기어 도덕적 무질서를 초래하고 지나치게 귀족 엘리트 중심이거나(생시몽주의) 혹은 과도하게 노동자 중심(프루동)이란 점 또 완전히 무신론적 입장이라는 점에서 상드의 사상과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상드 사상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으로 우리는 르루와 라므네를 들 수 있으며 이 셋의 공통점은 철저히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19세기에 유행하였던 다른 평화주의적 사회주의와 상드의 사상을 비교함으로 평화적 사회주의에 대해 상드만이 가지고 있는 이념과 방법론을 밝혀보았으며 그 결과로 상드의 계층간의 화합, 연대의식, 평화주의적 사회주의를 상드의 사상적 특징으로 분석하였다. 먼저 상드의 사상적 특징 중 하나인 ‘계층간의 화해’에 있어 양편을 화해시키고자 했던 상드의 노력은 소설을 쓰는 것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가난한 노동자의 친구였으며 라마르틴과 같은 정치계 지도층 인사와도 신분이 두터웠던 그녀는 양쪽을 중재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음은 정치적으로 상드의 반대진영에 서있던 토크빌이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에게 들은 충고이다.
“그녀는 파리 노동자의 상태나 조직, 숫자, 무기나 준비상황, 생각, 정열, 그 무서운 결의까지도 내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만화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거리의 인민을 불안하게 하거나 흥분 시켜 인민을 압박하지 않도록, 당신이 친구들을 만류하여 주십시오. 나도 내 친구들에게 인내하도록 노력하라고 말하겠어요. 왜냐고요. 만일 투쟁이 벌어지면 당신들은 모두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 완전 반대편에 서있던 토크빌은 상드와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눈 후 "나는 그 유명한 상드 부인의 말을 듣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라고 자신의 회고록에서 고백한다. 역사 사회학자 미쉘 페로는 이 부분을 인용하면서 "사회에 대한 그녀의 깊은 성찰은 이『미국의 민주주의의 』의 저자를 충격에 빠뜨렸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녀는 민중과 소통 불가능한 사회 지배층에 민중의 생각을 정확히, 그리고 충격적으로 알려줄 수 있었던 코뮤니스트였던 것이다. 그리고 토크빌에게 한 간곡한 충고를 통해 우린 그녀가 계층간의 화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계층간의 화합, 모든 사람들의 ‘연대의식 solidarité’은 상드에게 있어 "권리보다 앞서는 의무"이며 그것은 "실현되어야 할 하나의 종교이며 시행되어야 할 독트린이다. 상드는 우리 모두가 힘을 다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우리를 슬프게만 하는 개인주의"를 잊어야 한다고 말한다. 페로는 개인주의의 해독제로 이 "공동체주의"를 들면서 상드는 "형제애"보다 "연대의 원칙"에 더 무게를 두었다고 설명한다,이제 평화적 연대는 상드의 정신 혁명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그녀의 자서전『내 생애 이야기』서문에서도 "우리 시대에 인간 정신의 진보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종교적 원천은 바로 인간사이의 연대의식이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진보의 생명력은 "지난 세기에 있어서는 감성이었으며 그 이전에는 자선이었고 50년 전에는 형제애" 였다는 것이다." 이제 상드는 자기 시대에 인류 진보의 원천으로 '연대의식'을 들고 있다. 그녀는 자기 시대의 가장 큰 잘못이, 그 당시 똑똑한 자들이 생각하듯 "권리와 의무에 대한 잘못된 구분이 아니라 연대감의 완전한 상실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태도를 어떤 사람들은 "공상적 사회주의", 다시 말해 뜬구름 잡는 소리로 폄하했지만 지난 20세기 동안 있는 자에 대한 적개심을 바탕으로 "연대의 원칙"을 상실한 사회주의가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우리는 목도하였으며 지금도 목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이와 같은 상드의 기독교적 사회주의에 다시 주의를 기우려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영문
In this article, we compare the christian communisme of George Sand and the socialisme of 19th century such as Saint Simon, Proudhon and Fourrier. They oppose violence as Sand. But they ignore the value of family, and fosters gender liberation. They l ...
In this article, we compare the christian communisme of George Sand and the socialisme of 19th century such as Saint Simon, Proudhon and Fourrier. They oppose violence as Sand. But they ignore the value of family, and fosters gender liberation. They lead to moral anarchy. They are too aristocratic(saint-simonisme) or excessively too proletarien(Proudhon). They are completely atheistic. At this point they are fundamentalyl different from Sand's ideology. The philosophes who gave the most direct influence on the ideas of George Sand are Lamennais and Leroux. They dreamed of a utopia based on Christian values. Therefore, this paper reveals the philosophy and methodology of George Sand and looked for peaceful socialisme by comparison George Sand with the other socialism of 19th century.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19세기 맑시즘에 의해 밀려났던 기독교적 사회주의, 즉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죠르주 상드의 기독교적 코뮤니즘과 당시에 유행처럼 번졌던 사회주의 사상들, 다시 말해 생 시몽, 프루동, 푸리에와 같은 19세기 사상가들과 상드 ...
19세기 맑시즘에 의해 밀려났던 기독교적 사회주의, 즉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꿈꾸었던 유토피아의 모델을 보여주고 있는 죠르주 상드의 기독교적 코뮤니즘과 당시에 유행처럼 번졌던 사회주의 사상들, 다시 말해 생 시몽, 프루동, 푸리에와 같은 19세기 사상가들과 상드의 사상을 비교하는 작업을 하였다. 이들은 상드와 마찬가지로 폭력을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가정의 가치를 무시하고 성해방을 부추기어 도덕적 무질서를 초래하고 지나치게 귀족 엘리트 중심이거나(생시몽주의) 혹은 과도하게 노동자 중심(프루동)이란 점 또 완전히 무신론적 입장이라는 점에서 상드의 사상과 근본적인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상드 사상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람으로 우리는 르루와 라므네를 들 수 있으며 이 셋의 공통점은 철저히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19세기에 유행하였던 다른 평화주의적 사회주의와 상드의 사상을 비교함으로 평화적 사회주의에 대해 상드만이 가지고 있는 이념과 방법론을 밝혀보았다.
상드의 사회주의의 특징으로 우리는 ‘계층간의 화해’를 들 수 있다. 양편을 화해시키고자 했던 상드의 노력은 소설을 쓰는 것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가난한 노동자의 친구였으며 라마르틴과 같은 정치계 지도층 인사와도 신분이 두터웠던 그녀는 양쪽을 중재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다음은 정치적으로 상드의 반대진영에 서있던 토크빌이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에게 들은 충고이다.
“그녀는 파리 노동자의 상태나 조직, 숫자, 무기나 준비상황, 생각, 정열, 그 무서운 결의까지도 내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만화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거리의 인민을 불안하게 하거나 흥분 시켜 인민을 압박하지 않도록, 당신이 친구들을 만류하여 주십시오. 나도 내 친구들에게 인내하도록 노력하라고 말하겠어요. 왜냐고요. 만일 투쟁이 벌어지면 당신들은 모두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앙드레 모르와, 『조르쥬 상드』, 권영자 옮김, 율성사, 1978, p. 121에서 재인용)
정치적으로 완전 반대편에 서있던 토크빌은 상드와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눈 후 "나는 그 유명한 상드 부인의 말을 듣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라고 자신의 회고록에서 고백한다. 역사 사회학자 미쉘 페로는 이 부분을 인용하면서 "사회에 대한 그녀의 깊은 성찰은 이『미국의 민주주의의 』의 저자를 충격에 빠뜨렸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녀는 민중과 소통 불가능한 사회 지배층에 민중의 생각을 정확히, 그리고 충격적으로 알려줄 수 있었던 코뮤니스트였던 것이다. 그리고 토크빌에게 한 간곡한 충고를 통해 우린 그녀가 계층간의 화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계층간의 화합, 모든 사람들의 ‘연대의식 solidarité’은 상드에게 있어 "권리보다 앞서는 의무"이며 그것은 "실현되어야 할 하나의 종교이며 시행되어야 할 독트린이다. 상드는 우리 모두가 힘을 다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우리를 슬프게만 하는 개인주의"를 잊어야 한다고 말한다. 페로는 개인주의의 해독제로 이 "공동체주의"를 들면서 상드는 "형제애"보다 "연대의 원칙"에 더 무게를 두었다고 설명한다,이제 평화적 연대는 상드의 정신 혁명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그녀의 자서전『내 생애 이야기』서문에서도 "우리 시대에 인간 정신의 진보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종교적 원천은 바로 인간사이의 연대의식이다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진보의 생명력은 "지난 세기에 있어서는 감성이었으며 그 이전에는 자선이었고 50년 전에는 형제애" 였다는 것이다." 이제 상드는 자기 시대에 인류 진보의 원천으로 '연대의식'을 들고 있다. 그녀는 자기 시대의 가장 큰 잘못이, 그 당시 똑똑한 자들이 생각하듯 "권리와 의무에 대한 잘못된 구분이 아니라 연대감의 완전한 상실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태도를 어떤 사람들은 "공상적 사회주의", 다시 말해 뜬구름 잡는 소리로 폄하했지만 지난 20세기 동안 있는 자에 대한 적개심을 바탕으로 "연대의 원칙"을 상실한 사회주의가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우리는 목도하였으며 지금도 목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이와 같은 상드의 기독교적 사회주의에 다시 주의를 기우려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화두인 “경제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9세기에 태동되었던 이와 같은 평화주의적 방식은 공산주의의 전복적이고 폭력적인 혁명으로 그 빛을 잃었지만 초기 기독 ...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화두인 “경제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9세기에 태동되었던 이와 같은 평화주의적 방식은 공산주의의 전복적이고 폭력적인 혁명으로 그 빛을 잃었지만 초기 기독교 사회 이후로 한 번도 실현되어 보지 못한 정치제도이다. 이 연구는 공산주의도 실패로 끝나고 자본주의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오늘 날 우리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19세기에 대한 정치 사회적 연구는 많이 있다, 주로 이 주제와 관련된 담론을 통한 학문적 접근이다. 그러나 사회학자가 아닌 한 소설가의 편지나 전기등을 통한 사상연구는 딱딱한 이데올로기 이면에 나타나는 보다 구체적이고 인간적인 부분을 드러내줄 것이다. 이와 같은 문학적 접근은 단순한 사회학적 혹은 정치적 이데올로기 분석이 드러내줄 수 없었던 부분을 조명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죠르주 상드가 여자라는 점 또한 주목해보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생시몽이나 푸리에 등은 가족해체, 성해방을 통해 모든 남녀에게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역설하였으나 여자인 상드는 그 안에서 오히려 그들을 불행하게 할 요소들을 발견하고 그와 같은 사상을 반대하게 된다. 당시 여성들을 가정으로부터 뛰쳐나오게 했던 유토피아 사상에 대한 이와 같은 여성적 시각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상드만이 보여주는 독특한 관점이 아닐 수 없다. 근본적으로 가정의 가치를 역설하는 상드의 사상은 가정의 가치가 파괴되고 해체되어가는 오늘 날 우리사회가 다시 귀기울여야할 목소리이다. 따라서 상드의 기독교적 사회주의 연구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자본주의의 빈부격차 문제, 복지 문제, 또 가정해체로 인한 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색인어
죠르주 상드, 기독교적 코뮤니즘, 19세기 사회주의, 생시몽, 프루동, 푸리에, 연대의식, 계층화합, 평화주의적 사회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