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반도의 대외교류 범위는 중국과 일본, 몽골 등 동북아시아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동남아시아에도 미치고 있었다. 고대 한국도 동서교섭의 실크로드라는 원거리 교류망 속에 존재하였지만 이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미미하다. 특히 바다길 ...
고대 한반도의 대외교류 범위는 중국과 일본, 몽골 등 동북아시아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동남아시아에도 미치고 있었다. 고대 한국도 동서교섭의 실크로드라는 원거리 교류망 속에 존재하였지만 이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미미하다. 특히 바다길을 통한 동남아시아와 한반도 사이에 이루어진 교류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불모의 상태나 다름 없다. 일부 선행 연구가 있기는 하지만 양지역의 유사성에 초점을 맞추고 비교하는 소박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와 동남아시아 사이에 전개된 고대 장거리 교류에 대한 연구가 부진한 이유는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의 부족, 중요성의 몰각, 그리고 역사학과 고고학, 미술사 등 여러 분야의 연구성과를 종합하여야 한다는 방법론적 어려움에 기인한다. 본 연구는 단편적 자료에 의지하던 기존 연구방법론을 탈피하여 동남아시아의 고대사, 고고학, 미술사에 대한 사전 학습을 기초로 삼아 한반도의 관련 자료와 입체적인 비교, 분석을 시도하려고 한다. 경주에서 출토된 인면문 유리구슬이나 무령왕릉 출토 유리구슬에 대한 형태적, 화학조성 분석을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제작되었음을 규명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이런 물품이 장거리를 이동하여 한반도에 반입되는 경로와 계기, 그리고 그 역사적 맥락을 복원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는다.
기대효과
A. 학문적 기여 본 연구를 통하여 그동안 동북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하던 고대 한반도 대외교섭의 폭을 동남아시아로 확대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방 초원의 길, 사막 오아시스 길에 비해 주목되지 못하던 바다길은 이슬람도자기, 중국, 베트남자기, 일본 히 ...
A. 학문적 기여 본 연구를 통하여 그동안 동북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하던 고대 한반도 대외교섭의 폭을 동남아시아로 확대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방 초원의 길, 사막 오아시스 길에 비해 주목되지 못하던 바다길은 이슬람도자기, 중국, 베트남자기, 일본 히젠요 자기가 교역되던 도자기의 길이며 장보고와 엔닌이 활동하던 길이기도 하다. 바다길을 통한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교류를 입체적으로 복원하려는 본 연구는 한국 고대사, 미술사, 고고학의 연구시야 확대와 방법론의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B. 사회적 기여 * 한국사회의 글로벌화 경제규모의 확대와 내수시장의 포화상태라는 경제조건을 고려할 때 아세안을 비롯한 동남아지역과 인도와의 통상규모는 급증할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비한 이 지역의 역사 및 문화 연구의 필요성이 절실한 실정에서 이 지역과 한반도의 교류 양상을 다룬 연구가 필요하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2011년 말 기준으로 외국출신 다문화인구가 140만명을 넘어섰고 2020년에는 전체 인구의 5%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문화가정에서 출생한 2세들의 역사교육은 종전처럼 단일민족의 단혈성과 순수성을 강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인이라는 존재는 고대부터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주변지역과 장기간의 교섭을 통해 형성되었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된다. 이런 점에서 본 연구는 동남아지역 출신 이주민과 2세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 * 인력양성과 교육망 연계 본 연구의 모든 과정에 석사과정생을 포함시켜 동남아시아와 한반도 사이에 전개된 교류사 전문가로 양성할 계획이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학회발표와 기고를 통해 다문화사회에 대비한 역사연구와 교육, 자민족 중심주의적 역사인식의 탈피, 동남아시아에 대한 심화된 이해의 필요성 등에 역설할 예정이다.
연구요약
3년계획으로 진행될 예정인 본 연구의 연차별 연구내용은 아래와 같다. A. 1년차: 삼국성립 이전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교류 *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 한반도에서 발견된 유리구슬의 산지를 추정하여 동남아시아-중국남부-한반도-일본열도로 이어지는 고대 해양 ...
3년계획으로 진행될 예정인 본 연구의 연차별 연구내용은 아래와 같다. A. 1년차: 삼국성립 이전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교류 *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 한반도에서 발견된 유리구슬의 산지를 추정하여 동남아시아-중국남부-한반도-일본열도로 이어지는 고대 해양길의 일부를 복원한다. * 위만조선의 멸망과 한군현의 설치라는 사건을 일국사적 관점이 아니라 동일시기에 유사한 사건이 전개된 남월국의 경우와 비교하여 한제국을 매개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간접적으로나마 연결되는 양상을 복원하고 그 의미를 파악한다. * 한반도 중부 이남의 원삼국-삼국초기 분묘에서 자주 발견되는 홍색 유리구슬을 과연 동남아시아산 무티사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를 진행한다. B. 2년차: 신라, 가야와 동남아시아의 교류 * 현재 학계의 주류 입장은 신라의 탈해신화와 금관가야 허왕후 신화를 동남아시아, 인도와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지만 고대 인도-동남아시아-중국 남부-한반도-일본열도를 연결하는 바다길이 이미 전한대에 개통되었음을 인식한다면 인도-동남아시아의 물품과 정보가 한반도 남부에 전해지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되므로 이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 김해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발견되는 수정제 다면옥과 동일한 형태의 물품이 당시 바다길의 중요 기착지 중의 하나였던 베트남 남부 옥 에오(Ok Eo) 유적에서 다량 출토된 점을 주목하여 동남아시아산 수정, 유리 구슬의 유통과 한반도 반입의 진위 여부를 규명한다. 아울러 동 자와(Jawa) 제작 가능성이 제기된 경주 미추왕릉지구 인면문 유리구슬에 대한 검증을 실시한다. C. 3년차: 백제와 동남아시아의 교류 * 무령왕릉 출토 유리구슬의 태국 광산 납 사용문제를 소재로 삼아 扶南과 林邑(참파), 狼牙修國 등 동남아시아 대륙부, 해양부 국가와 백제 사이에서 전개된 직, 간접적인 교류의 내용을 복원한다. * 일본서기에 기록되어 있는 扶南, 崑崙과 백제의 장거리 교류의 실상을 파악하여 바다길 동북부에서 백제가 점한 위상을 규명한다. * 부여 가탑리 금동여래입상처럼 사비기 백제 불상 중에 돌연 나타나는 인도(굽타)풍은 인도-동남아시아-남조-백제라는 경로를 경유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경로에 대한 입체적인 조망을 시도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 사이에 전개되었던 교류는 문헌기록보다도 고고학적 물질문화에 많이 남아 있다. 한반도의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리제품의 산지는 대개 남부 중국과 동남아시아일대로 추정된다. 이러한 물품들은 고대의 바다길을 따라 ...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 사이에 전개되었던 교류는 문헌기록보다도 고고학적 물질문화에 많이 남아 있다. 한반도의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리제품의 산지는 대개 남부 중국과 동남아시아일대로 추정된다. 이러한 물품들은 고대의 바다길을 따라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로까지 전래된다. 그 결과 일본의 큐슈(九州), 산잉(山陰), 단고(丹後)지역에서 남중국과 동남아시아산 유리제품이 발견되는 것이다. 한반도 원삼국기 삼한 분묘에서 발견된 붉은 색상의 유리구슬과 금(은)박 구슬 역시 인도-태평양 유리구슬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 유리구슬의 산지로는 인도의 아리카메두와 동남아시아 각지의 공방이 상정되고 있다.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발견된 유리구슬의 대부분은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유리의 생산과 유통은 바닷길을 통한 동남아시아와 한반도의 교섭을 추정하는 데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본 연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베트남 남부의 옥 에오유적(푸난의 외항)에서 유리구슬을 채집하여 국내 전문가의 힘을 빌어 분석한 결과 삼한-백제 무덤 출토 유리구슬의 화학적 조성과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푸난과 백제가 교섭하였다는 문헌기록의 존재를 고려할 때, 한반도에 반입된 유리구슬의 많은 부분이 동남아시아산일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으며 베트남 지역과 한반도의 교섭을 상정할 수 있다. 비단 푸난만이 아니라 임읍(참파) 역시 동진대 백제와 나란히 중국에 사신을 보내고 있으며 말레이반도의 랑카수카 역시 남조 양에 사신을 보내었음을 『양직공도』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랑카수카의 사신과 백제 사신이 교류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결국 동남아시아와 한반도 사이에 전개된 교섭은 상당히 장기간 진행되었으며 해상교통 과정에서 나주, 김해, 늑도와 같은 항시가 한반도 곳곳에서 출현하고 일본의 이키섬, 츠시마섬, 후쿠오카에서도 동일한 양상이 전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한반도와 일본열도도 바다길의 한 축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영문
Most evidences of the interaction between Korea and Southeast Asia are archaeological artifacts and relics rather than documentary records. Glass beads and vessels found in ancient Korean Peninsula and Japan were recognized to be brought through Mari ...
Most evidences of the interaction between Korea and Southeast Asia are archaeological artifacts and relics rather than documentary records. Glass beads and vessels found in ancient Korean Peninsula and Japan were recognized to be brought through Maritime Silk Road. There is high possibility that the bluish tubular glass beads excavated from sites of the Early Iron Age in the Southeast area of Korean peninsula had come from South China and Southeast Asia. Therefore bluish tubular beads and bracelet made in the Southern China and Southeast Asia, have been frequently found from tombs in Kyushu(九州), Sanin(山陰) and Dango(丹後). Reddish brown glass beads and gold(silver) foil glass beads from grave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are assumed to be from India(Arikamedu) or Southeast Asia. These beads belong to Indo-Pacific glass beads. It is most likely that glass beads excavated from ancient Korea and Japan were imported through Maritime Silk Road. Hence, the research on the producing area and distribution network of glass container and glass beads excavated from ancient Korean peninsula has strong relationship with the studies on the correlation of the powers across the Maritime Silk Road. The observation and analysis results of glass beads samples collected from Oc Eo site in Vietnam, an outport of the ancient port city Funan, was proceeded. The type of glass beads is round, the color are reddish brown, greenish blue, green, black and purplish blue, and the chemical composition is soda glass group. This means that they are similar in type, color and chemical compositions to glass beads from the ancient Korean peninsula. It it is significant that similar making technique and chemical composition are being observed in both the glass beads from Oc Eo and those of Korea. It is clear that there was direct or indirect exchanges between Southeast Asia and Korean Peninsula. Not only Funan, but also Champa in middle Vietnam and Baekje sent an ambassador to China in the 4th C. too. Lankasuka in Malay Peninsula sent an ambassador to China in the 6th C. and there is a possibility of interaction between Baekje ambassador and Langkasuka ambassador. The interaction between Korea and Southeast Asia lasted for a long time and numerous port cities(Naju, Gimhae, Neukdo, Iki, Tsusima, Hakata) had developed along with the Maritime Silk Road. Therefore, Korean Peninsula and Japanese Archipelago should be considered as the main part of the Maritime Silk Road.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교섭의 흔적이 보이는 것은 초기철기시대부터이다. 부여 합송리, 공주 봉안리, 당진 소소리, 완주 갈동과 신풍, 장수 남양리 등지에서 출토된 유리는 관옥형태와 고리 형태로 나뉘는데 푸른색의 납-바륨계통이란 점이 공통적이다. 모두 외래기 ...
고대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교섭의 흔적이 보이는 것은 초기철기시대부터이다. 부여 합송리, 공주 봉안리, 당진 소소리, 완주 갈동과 신풍, 장수 남양리 등지에서 출토된 유리는 관옥형태와 고리 형태로 나뉘는데 푸른색의 납-바륨계통이란 점이 공통적이다. 모두 외래기성품으로 판단되며 일본 큐슈 사가(佐賀)현 요시노가리(吉野ケ里) 분구묘 출토 유리관옥도 한반도의 출토품과 동일한 형태임이 밝혀졌다. 납-바륨계 유리구슬의 제작지는 중국 廣東, 廣西지역이 유력한 것으로 예상되지만 구체적인 비교는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중국 남부만이 아니라 인도차이나반도 북부의 납-바륨계 유리산지 및 출토지까지 연구 대상에 포함하여 푸른 유리구슬이 한반도로 반입되는 경위를 복원한다. 이후에도 동해에 접한 일본열도 해안가(특히 산잉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청색의 유리환은 완주 갈동과 신풍유적에서 다량 출토된 청색 유리환과 직결된다. 한반도 서남부-제주-큐슈-단고-산잉으로 이어지는 이 루트는 야요이시대에 한반도 남부의 철기가 전래되던 루트이기도 하다. 동남아시아-중국-한반도를 경유하여 일본열도로 푸른 유리구슬이 확산되는 과정,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반도 남부 정치체의 역할을 검토한다. 한반도 남부의 원삼국시대 및 삼국 초기의 무덤에서는 다양한 색상의 유리구슬이 많이 발견되었다. 그 대부분은 인도-퍼시픽 유리구슬의 범주에 포함되며 그 산지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주목되는 것은 흔히 무티사라라고 불리는 불투명한 진홍색의 작은 유리구슬이다. 특히 마한권역에서 다수 발견되며 일본에서는 한반도와 긴밀한 교섭을 진행했던 지역에서 출토례가 알려져 있다. 이러한 유리구슬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국내외 사서에 전해주는 명주, 야광주와 관련된다. 그 실체는 진주, 수정, 유리구슬(특히 금박구슬)로 좁혀진다. 진주는 이란과 인도산, 수정은 베트남산, 중층구슬은 광역의 동남아시아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동남아시아산 물품이 삼국시대에 국가 간 교섭에서 위세품으로 거래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한편 금관국 건국신화에서 등장하는 허왕후가 과연 인도에서 직접 이주하였는지에 대하여 학계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로마-알렉산드리아-홍해-아라비아반도-인도-동남아시아-남중국으로 이어지는 바다길은 이미 漢代에 개통되어 금과 견직물, 유리의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인도에서 김해로 직접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기착지를 상정한다면 한반도 남부에서 인도에 대한 정보, 물품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까닭에 동남아시아 고대국가 출현의 토대가 되는 항시의 기능과 김해지역을 연결할 필요가 있다. 김해 양동리를 비롯한 구야국과 금관가야 분묘에서는 투명한 수정제 다면옥이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형태의 수정제 다면옥이 베트남 남부의 옥 에오(Oc Eo)유적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다. 옥 에오유적은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메콩강 델타 일대를 무대로 동서 교섭의 가교역할을 하던 扶南國(현재의 베트남 남부, 캄보디아, 타일랜드에 걸쳐 있음)의 외항이다. 옥 에오 유적에서 직접 채집한 유리구슬에 대한 화학적 분석결과 백제 유적 출토 유리구슬과 화학적 조성이 동일함을 규명한 것은 이번 연구의 큰 성과였다. 이는 단편적인 분석결과만이 아니라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日本書紀』欽明紀와 皇極紀에는 백제가 扶南의 물품과 노예를 일본에 전해주거나 崑崙(인도차이나반도에 위치한 나라) 사신과 분쟁이 생기는 등 동남아지역과 교역을 진행하였음을 보여주는 기사가 있다. 게다가 인도산으로 추정되는 毾㲪을 거래하는 등 인도-동남아시아와 일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성장한 港市國家인 扶南과 林邑(훗날의 참파)은 3세기 후반 서진의 등장 직후 빈번하게 사신을 보내고, 그 후 한동안의 공백기를 거친 후 5세기 이후 송과 양에 자주 사신을 파견한다.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마한과 백제가 중국과 활발히 교섭을 전개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동북아시아 국가(백제)가 중국과 교섭한 시점이 동일함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곤란하고 동아시아 각국 간에 모종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梁職貢圖』에 백제 사신과 나란히 랑카수카(狼牙修)國 사신이 등장함은 6세기 양의 조정에서 백제와 동남아시아 국가 간의 교섭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높여 준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현지답사를 통하여 랑카수카가 항시에서 항시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추적할 수 있었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1. 연구결과
1) 학문, 사회적 기여
(1) 학문적 기여
* 한국고대사의 외연 확장 본 연구를 통하여 종전 동북아시아에 시각이 한정되어 있던 한국고대의 교섭의 폭을 동남아지역으로 확장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동남아지역 고대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의 ...
1. 연구결과
1) 학문, 사회적 기여
(1) 학문적 기여
* 한국고대사의 외연 확장 본 연구를 통하여 종전 동북아시아에 시각이 한정되어 있던 한국고대의 교섭의 폭을 동남아지역으로 확장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동남아지역 고대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널리 주지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외래기성품과 고대 장거리 교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 한반도와 동남아시아의 교류는 장기적으로는 바다의 실크로드를 복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북방 초원의 길, 사막 오아시스길에 한정되어 있던 국내 학계의 동서교섭사 연구에서 바다의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한다. 8-9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도자기와 유리, 베트남 도자기, 일본 히젠요(備前窯) 자기가 바다길을 통해 교역되지만 유독 한반도만 누락되어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연구 시각과 방법론의 촉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회적 기여
* 한국의 글로벌화에 기여 한국 경제규모의 확대, 내수시장의 포화상태 등을 고려할 때 아세안을 비롯한 동남아지역과 인도에 대한 통상, 문화교류의 필요성이 급증하고 있지만 일반 시민들의 관심은 별로 없는 상태이다. 동남아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중적인 개설서가 필요한 현실에서 이 지역과 고대 한국 간에 전개된 교류의 실상을 정리하는 작업이 긴요하다.
* 다문화사회에 대비한 역사교육 현재 한국은 많은 수의 이주민 노동자와 결혼 이주민으로 인해 급격히 다문화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이들과 2세들이 겪고 있는 민족적 정체성의 혼란은 한국인이 단일민족이 아니며 동남아시아지역을 포함한 주변지역과의 긴밀한 교섭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점에서 동남아지역과 한반도의 교류에 대한 연구는 사회적 통합에 일정부분 기여할 수 있다.
2. 연구결과의 활용방안
(1) 학계
* 전문 연구자의 양성 지난 2년간 대학원 석사과정생 중 1인을 선발하여 본 연구의 연구보조원으로 선정하여 연구의 전 과정에 참여시켰다. 자료의 종합과 정리, 과학적 분석작업 참여, 국내외 학술대회 참여, 현지 답사에 동행하면서 동남아시아 전문 연구자로 육성하고 있다. 앞으로 베트남의 고대 유적 발굴조사에 참여시킬 것이다. 이 연구가 종료된 후에는 호주나 싱가포르의 동남아연구소에 유학을 추진할 예정이다.
* 학계의 관심 촉구 지난 2년간 진행된 연구성과를 각종 학술대회에서 발표하여 동남아시아 고고학 및 고대사 연구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하였다. 나아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각종 강좌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강연을 실시하였다.
(2) 사회
* 다문화사회에 필요한 역사교육 동남아시아출신 이주민 노동자, 결혼이주민, 2세들의 역사교육에 본 연구성과를 활용함으로써 그들의 균형 잡힌 민족 정체성 및 역사인식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자민족 중심주의적 역사인식의 탈피 한민족의 형성, 주변 문화와의 비교과정에서 근거 없이 반복되고 있는 자민족 중심주의적 해석을 벗어나 한국문화의 형성이 선사시대 이후 주변 지역과의 끊임없는 교류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아울러 주변 민족과의 항쟁 못지않게 상호 교류의 가치를 강조한다.
* 동남아시아에 대한 이해의 심화 한, 중, 일의 역사분쟁 및 영토분쟁의 해결과 미래지향적인 역사교육을 위해 동북아시아 각국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졌지만 앞으로는 동남아지역을 포괄한 역사교육이 필요하다. 장차 이루어져야 할 이 작업에 본 연구성과가 적극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