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연구의 비판을 통해-
본 연구는 종교학과 해석학의 이론을 적용하여 정약용 사유의 종교적 특징을 해석해 보려는 시도이다. 140여년의 종교학의 역사는 신학, 철학 등 타학문과 다른 자신의 정체성, 학문으로서 갖추어야 할 방법론과 규범을 모색해온 지난한 역사였 ...
-선행 연구의 비판을 통해-
본 연구는 종교학과 해석학의 이론을 적용하여 정약용 사유의 종교적 특징을 해석해 보려는 시도이다. 140여년의 종교학의 역사는 신학, 철학 등 타학문과 다른 자신의 정체성, 학문으로서 갖추어야 할 방법론과 규범을 모색해온 지난한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윌프레드 C. 스미스(W.C. Smith, 1916-2000)를 기점으로 종교 연구의 범주는 크게 바뀌었다. 전통, 제도, 의례를 중심으로 했던 연구 범주가 개별 주체들의 인격성에서 드러난 ‘종교적’ 현상을 탐구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개별 주체들을 주목하게 되면서 종교학계는 스트렝(F. Streng, 1933-1993)이 제안한 변모(transformation)를 종교의 정의로 공유하게 되었고, 비로소 서구의 신학과는 다른 방식, 다른 관점에서 종교적 삶을 영위해 온 또 다른 종교전통, 그리고 그 내부자들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규범과 방법론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종교학은 스미스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내면의 마음(mind)을 연구 범주로 삼는 인지적 종교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종교학의 인격주의 이론은 유교의 종교성을 탐구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유교의 천(天)은 심성을 매개로 인간과 관계되어 있고, 도덕적 실천을 통해서 인간이 천(天)을 인식한다고 한 모종삼의 주장을 따른다면, 심성, 도덕적 실천은 유교의 종교적 차원을 드러내는 핵심지표가 되며, 따라서 유교의 종교적 현상은 궁극적 실재인 천(天) 보다는 천을 닮아 가려는 인간 주체를 주목하고 이에 입각해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약용 사유의 종교적 특징을 규명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약용의 종교적 특징을 연구하는 선행연구들은 인격주체를 주목하고 주체의 마음[영명, 영지]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경우는 없다. 그래서 천명(天命)으로 주어진 심성(心性), 그리고 도덕실천을 직접 행하는 주체를 종교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정약용의 종교적 사유에 대한 선행 연구들을 검토하면, 다음과 같은 아쉬움들이 있다.
첫째, 정약용 사유의 종교적 특징을 탐구하는 데 있어 대상, 접근, 해석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선행 연구들은 대부분 ‘상제’ 혹은 ‘천’의 궁극적 실재에 초점을 두고 해명해왔다. 그러나 심성, 천인관계 등 유교가 지닌 종교적 도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능적 해석 이상은 하기 어렵다. 종교적인 것(religiousness)은 실재의 두 축 즉 궁극적 실재와 인간의 상호관계성에서 드러나며, 구체적으로는 주체가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가운데 통찰한 실재와 이 실재에 헌신하는 삶의 태도에서 드러난다고 본다. 이를 정약용의 종교적 사유를 해명하는 데에 적용한다면, 연구의 초점은 상제관의 기원 혹은 상제가 갖는 기능적 차원만이 아니라, 상제라는 초월적 지평에서 정약용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상제에 헌신했는지[事天]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즉 정약용의 종교적 사유를 연구하는데 실존 주체를 포함하게 된다.
두 번째, 지금까지의 정약용 사유의 종교적 특징을 연구하는 또 다른 흐름은 정약용의 상제관과 서학과의 비교다. 이 같은 방향은 정약용 사유가 그리스도교와의 만남, 수용, 변용의 창조적 결합이라는 점을 밝히는 긍정적 의미는 있으나, 그가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세계관을 어떻게 결합시켜 갔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정약용의 사유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 해석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어서 아쉽다.
세 번째 심성론을 연구 범주로 삼은 논문들이 있다. 그러나 종교학적 관점에서 보면, 유교에서 궁극적 실재와 인간의 관계는 천명(天命)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주체가 실천하는 가운데 궁극적 실재를 더욱 자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유교에서 종교적 특징은 심성론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정약용에게 있어서 이 점은 영명한 하늘과 이를 직통하고 있는 인간[天之靈明 直通人心]이라는 명제로 아주 분명하게 주장되고 있다. 정약용은 또 인간의 성을 ‘우영우선(又靈又善)’이라고 하여 ‘영(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영에 관한 용어도 '영명'에서 '영지'로 바뀌고 있다.
이제 정약용 사유의 종교적 특징을 연구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종교로서의 유교의 종교적 도식에 대한 이해(천인상관성), 2) 연구 대상을 개별적 인격주체에 초점을 맞추고(심성), 3) ‘영명’과 ‘영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인간과 천의 관계성을 구별하려 한 정약용의 의도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자는 정약용에게서 주체, 주체의 의식역량[靈, 靈體]을 규명했으며 이제 이 연구를 기반으로 해서 천과 인의 관계성을 통해 종교로서의 유교의 독특성을 확인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