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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한국의 기생충 감염의 사회사
A Social History of Parasite Diseases in Korea: 1945 ~ 1991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4S1A5A8016498
선정년도 2014 년
연구기간 2 년 (2014년 05월 01일 ~ 2016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김옥주
연구수행기관 서울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해방 후 한국의 기생충 질환에 주목하여, 생태계로 연결된 기생충과 인간의 몸을 한 축으로 하고, 의학자와 전문가집단, 그리고 국가와 정치권력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였는가를 고찰할 것이다. 해방 직후에는 일제강점기와 마찬가지로 기생충 감염률이 전 인구의 90%를 넘을 정도로 높았으나 점차로 떨어져 매5년마다 실시하는 전국민조사에서 1991년 조사결과 감염률이 0.3%로 드러나 기생충감염이 사실상 퇴치되었다고 볼 수 있는 1991년까지가 연구의 대상이 되는 시기이다. 한국의 현대사를 거치며 정치권력과 의학지식이 어떻게 생태계의 맥락에서 존재하는 인간과 기생충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질환 유행의 양상에 대해 한국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바라보았는가, 그리고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또한 이 변화된 인간과 기생충의 생물학적 관계가 역으로 인간의 사회와 문화, 학문, 정치적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일 것이다.
  • 기대효과
  • 본 연구는 기생충 질환에 대한 사회사적 연구는 질병생태계로부터 국가의 통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한국 현대사에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연구가 될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대다수 민중들이 노동하며 생존하여 살면서 자연과 기생체와의 관계에서 변화하는 신체와 몸의 역사를 고찰함으로써, 한국 현대사를 생태주의적 관점과 질병의 사회사적 관점에서 복원해내고, 현대사의 미시사 연구에 풍부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현대보건의료의 10대 성취 중 하나인 기생충질환에 대한 본 연구로 질병의 사회사 연구의 문을 연 다면, 막대한 양의 사료를 보유하고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역사 연구가 부족했던 한국 현대사의 질병사와 의학사의 다양한 주제들이 향후에도 연구될 수 있을 것이다.
  • 연구요약
  • ‘해방 후 한국의 기생충 질환의 사회사’를 목표로 ① 기생충 감염의 생태학적 지형도의 변화를 개괄하고 기생충질환이 한국에서 특히 유병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맥락을 고찰한다. 기생충과 인간 사이의 생태학적 연결망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② 의학과 의료전문가 집단의 기생충질환 대응에 대한 자료 분석과 고찰을 통해 이들 집단이 정부나 환자 집단의 인식 및 대응과의 비교 분석을 위해 당시 학술 기사와 논저, 구술 자료 및 면접 자료들을 확보하여 재구성한다. ③ 1960년대 국가에서 집중 관리를 위해「기생충질환예방법」(1966)의 별도 법안이 제정되는 등 국가 주도로 기생충 감염에 대한 정책이 국가관리보건체계의 구축과 동시에 이루어진 내용에 대해 문헌과 구술채록을 분석을 한다. ④ 사회구성원의 기생충감염에 대한 인식과 질병 경험을 문헌과 구술을 통해 수집·분석한다. 당시 한국 사회를 빈곤한 제3세계 국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당 질병들의 유행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동원했던 지식, 가치, 문화 등의 요소들을 검토한다. 특히 정부, 의학자, 환자 집단 및 일반인의 담론과 인식 및 대응에 관한 고찰을 상호참조하여 분석한다. 언론매체, 여성잡지, 신문기사, 표어, 여성단체에서 발행하는 매체 등을 조사하고 당시 여성과 주부를 중심으로 전개된 기생충 박멸과 같은 계몽운동의 성격을 분석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1966년 ‘기생충질환예방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기생충박멸협회’가 설립되면서, 1970년대 한국은 연간 1000만명 이상의 전면적인 대중동원을 통한 기생충 박멸 사업을 이뤄낸다. 이와 같은 대중 동원은 기생충 박멸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국민적 인식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방 직후에도 기생충 감염, 특히 회충 감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박멸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에서 1966년 법률 도입 시점 사이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 이와 같은 대중 동원과 사회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본 연구에서는 1966년 기생충질환예방법 도입 이전까지 회충 감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다룬다.
    1950년대까지 사회적 인식 속에서 회충은 사람의 모든 기능을 지배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회충은 사람들의 삶에서 박멸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체내에서 제거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켜 기생충 박멸 사업을 추동하고자 하는 정부와 의학계의 노력은, 기존의 인식과 끊임없이 경합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한국전쟁의 의학 경험, 그리고 1960년대 파독 광부 기생충 감염 사건과 전주예수병원 회충성 장폐색 사망 사건을 통해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수치심의 시각화였다.
    수치심은 ‘정상’이 아니라는 자신의 약점이 보여지고, 노출되어, 경멸 받는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된다. 파독 광부 기생충 감염 사건은 한국의 기생충 감염이 세계적으로 노출되는 경험이었으며, 회충성 장폐색 사망 사건은 대중들이 수치심의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사건이었다. 회충성 장폐색 사망 사건은 아동의 배 속에서 나온 회충의 모습을 그대로 실어, 수치심의 시각화를 도왔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대중들은 회충이 신체의 필수적 구성 요소가 아니라, 한국민의 수치인 ‘비정상’적인 요소임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수치심의 시각화에 기반한 정상과 비정상의 전복을 통해 회충은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 영문
  • Until the 1950s, Ascaris was regarded as an essential part of life which controls every aspect of human physiology among Koreans. Therefore, Ascaris should not be removed from human body. Efforts from medical professionals and the Korean government officials who wished to push forward the parasite control program, had to constantly contest with this perception of Ascaris among ordinary Koreans. In 1966, the ‘Parasitic Disease Prevention Act’ was promulgated and ‘the Korean Association for Parasite Eradication (KAPE)’ established in Korea. From the 1970s, Korea mobilized 15 million people each year to achieve the eradication goal. Such mass mobilization could not be possible without public awareness on necessity of parasite eradication. Until the early 1960s, however, Korean people were not sympathetic to the needs of eradication of parasites, especially that of Ascaris. Then, what changed the social perception towards Ascaris during the 1960s? What contributing factors allowed the mass mobilization and public involvement for that campaign? Employing newspaper articles and periodicals, this paper analyzes how social perception on Ascariasis changed during the 1960s, when the ‘Parasitic Disease Prevention Act’ was established.
    During the 1960s, Ascariasis became a shameful disease for Koreans. A series of events made Ascariasis more visible and shameful to Koreans. First event happened with Korean miners who were dispatched to Germany in 1963. When the miners turned out to have been infected with intestinal parasites, they were prohibited from work at the mines by the authorities in Germany and quarantined for several weeks. This humiliating experience of Korean expatriate people having bodies swarmed with parasites became a national shame to Koreans. The parasite infected bodies of Korean workers were revealed to the World through German newspapers. Second event happened when a child died of intestinal obstruction due to Ascariasis. The doctor retrieved 1,063 Ascaris from the bowel of the 9 year-old girl, and the photo of the 1,063 worms was published in several newspapers. It was a shocking visualization of Ascariasis in Korean society. Through these visualizations of Ascariasis, the Korean society began to perceive Ascariasis as a shame of the nation as well as that of an individual.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해방 후 한국의 기생충 질환의 사회사’를 목표로 ① 기생충 감염의 생태학적 지형도의 변화를 개괄하고 기생충질환이 한국에서 특히 유병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맥락을 고찰하였다. 기생충과 인간 사이의 생태학적 연결망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② 의학과 의료전문가 집단의 기생충질환 대응에 대한 자료 분석과 고찰을 통해 이들 집단이 정부나 환자 집단의 인식 및 대응과의 비교 분석을 위해 당시 학술 기사와 논저, 구술 자료 및 면접 자료들을 확보하여 재구성하였다. ③ 1960년대 국가에서 집중 관리를 위해「기생충질환예방법」(1966)의 별도 법안이 제정되는 등 국가 주도로 기생충 감염에 대한 정책이 국가관리보건체계의 구축과 동시에 이루어진 내용에 대해 문헌과 구술채록을 분석하였다. ④ 사회구성원의 기생충감염에 대한 인식과 질병 경험을 문헌과 구술을 통해 수집 및 분석하였다. 당시 한국 사회를 빈곤한 제3세계 국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당 질병들의 유행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동원했던 지식, 가치, 문화 등의 요소들을 검토하였다. 특히 정부, 의학자, 환자 집단 및 일반인의 담론과 인식 및 대응에 관한 고찰을 상호참조하여 분석하였다. 언론매체, 여성잡지, 신문기사, 표어, 여성단체에서 발행하는 매체 등을 조사하고 당시 여성과 주부를 중심으로 전개된 기생충 박멸과 같은 계몽운동의 성격을 분석하였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자료 분석을 통해 기생충을 비롯한 다양한 보건의료 활동들이 해방 후 한국사회와 대중의 경험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음이 드러났다. 연간 1,000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된 채변검사와 구충제 투약은 대중의 인식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또한 그보다 앞서 일어난 1950년 한국전쟁과 1960년대 초반 파독 광부 기생충 감염 사건, 전주예수병원 장폐색 아동 사망 사건들을 지나며, 장내기생충 회충은 당연한 일상의 동반자에서 수치스러운 질병으로 변화해갔다.
    일차년도 사료를 검토를 통해 전후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국가 만들기(재건)의 과정에서 다양한 질병과 보건의료 문제들이 국가의 관심 대상이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결핵, 한센병, 가족계획, 그리고 기생충이 있다. 특히 기생충은 1966년 기생충예방법이 제정되었으며, 가족계획은 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 결핵은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포함되며, 국가 상위 정책 단위의 보건사업이 되었다. 1956년 보건소법에 제정되면서 국가는 보건정책을 전국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조직의 뼈대를 갖추게 되었지만, 여전히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자원은 제한적이었다. 전후에 대단히 제한적인 자원만을 활용할 수 있었던 국가는, 다양한 민간단체, 전문가 집단, 해외 원조 등을 통하여 보건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협회’로 대표되는 활동들이 두드러졌다. 각각의 질병을 대표하는 집단, 즉 대한결핵협회(결협), 대한나협회(나협), 대한가족계획협회(가협), 한국기생충박멸협회(기협)은 정책 입안과 관련 법규 제정, 사업 수행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민간단체들은 자금과 인력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서 충당하고 있어, 준정부기구라 볼 수 있다. 또한 제한된 전문가 인력 풀에서 각 협회들이 인력을 교환하는 경우가 많아, 서로간의 사업 수행 양식에 있어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일본의 사례에서 기생충 관리 사업과 가족계획 사업이 서로를 보완하는 형태의 체계로 변화해 갔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다양한 보건의료 사업들이 협회라는 매개조직, 또한 상하위정치를 통해 다양한 상호작용을 맺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1960-70년대 국가동원 체제에서 가족계획은 국민의 일상생활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박정희 정부는 군사정부 초기(1961년)부터 1979년까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가족계획을 수행했다. 이는 가족계획이 동원체제의 큰 틀 속에서 경제발전과 같은 더 큰 목표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과제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김명숙, 2008) 군사정권은 민간부분에서 미약하게 실시해오던 가족계획을 주요 정책으로 삼아 국가 정책에 통합했으며, 중간조직(대한가족계획협회)와 말단조직(가족계획어머니회)을 이용하여 국민의 일상생활로 만드는데 주력했다. 연구결과를 통해 수집된 자료를 통해 기생충 감염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국제 정치 레짐이 어떻게 한국의 보건의료 체계 형성과 한국 사회의 경험에 영향을 주었는지, 또한 이에 국가와 민중은 어떻게 대응하고 상호작용 하며 생태적 환경을 형성하였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 색인어
  • 한국 현대사, 기생충 감염, 질병의 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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