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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국의 전쟁수행방식의 변화와 군사사상의 흐름에 관한 연구 —전략문화의 관점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Change of ‘Way of War’ and the Current of ‘Military Thought’ in Early China —Focusing on the Strategic Culture—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인문사회)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4S1A5A8012475
선정년도 2014 년
연구기간 3 년 (2014년 05월 01일 ~ 2017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기세찬
연구수행기관 국방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는 춘추전국시대를 주된 범위로 삼아 고대중국의 전쟁수행방식과 군사사상의 변화과정의 분석을 통해 당시의 전쟁양상과 전쟁관을 보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략문화라는 관점에서 서양의 일반적인 전략문화와 비교하여 고대중국 군사사상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함께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1970년대 이후 출토문헌인 󰡔銀雀山漢簡󰡕과 󰡔馬王堆漢墓帛書󰡕, 그리고 󰡔睡虎地秦墓竹簡󰡕은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은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을 담고 있으므로 이 문헌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기존 정치사상 중심의 연구를 극복하여 새로운 이해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기초 자료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사상에 관한 연구는 단순히 특정 개개인의 분야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군사사상은 기본적으로 특정 시대의 군사문제와 관련된 견해, 관념, 개념에 관한 것으로 전쟁에 관한 인식, 군대의 조직과 동원, 제도, 기능과 운용 방식의 일단이 잘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군사사상에 관한 구체적인 이해를 통해 군사 부문 이외에 당시의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깊게 할 수 있고, 전쟁 자체를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하여 그동안 이루어진 주관적 전쟁 이해의 한계를 비판,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중국의 전략문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그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중국고대 사상사를 전쟁이나 평화를 주된 관점으로 삼아 연구한 사례는 많지 않다. 그 직접적인 원인으로 생각되는 것은 중국이 옛날부터 「文」명국이며, 「文」치 국가였다는 중국관이다. 이는 아직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의 이해가 대단히 주관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즉 고대중국에 대한 군사사상의 이해는 유가적인 의전(義戰)사상과 손자의 부전승(不戰勝)사상이 지배적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확실히 중국은 서양처럼 자신들의 선조를 난폭한 전쟁의 신에서 찾거나 민족의 특성을 ‘무용(武勇)’, ‘호전(好戰)’이라는 부분에서 찾지 않았다. 그러나 육국을 병합한 진제국은 물론이고, 유교를 국교로 삼은 한제국과 문치주의를 표방한 송왕조도 군사(軍事)와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文’적인 인상과는 반대로 군비증강, 내란 진압, 이민족과의 항쟁이라는 ‘武’의 현실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 연구에서 ‘무’력을 보유, 행사해 온 역사를 경시하고, 사상사 연구를 학술과 문화 등 ‘문’적인 관점에서만 연구를 진행해 나가는 것은 역사의 실상을 놓치는 위험을 안고 있다.
    고대중국의 전쟁수행방식의 변화에 따른 주요 군사사상의 시대적 전개 양상을 밝히고자 하는 본 연구를 통해 춘추전국시대 전쟁행태의 변화와 그와 관련된 전쟁에 대한 인식, 즉 공세적 군사사상이나 패도적 군사사상의 출현배경과 그 내용들에 대한 실상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주관주의적 시각에 침윤되어 있는 고대중국의 군사사상 이해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수적으로 본 연구의 결과는 최근 다방면에서 활발히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국 전략문화의 실체를 밝히는데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는 인문학의 영역을 보다 넓은 범위로 확대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사업의 목적에도 부합할 것으로 기대한다.
  • 기대효과
  • 고대중국의 전쟁수행방식의 변화에 따른 군사사상의 흐름을 고찰해보고자 하는 본 연구는 향후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에 대해 보다 폭넓은 이해의 방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에 관한 연구는 개개의 병서에 대한 문헌학적, 병학적 의미를 밝힌다거나 혹은 다른 주제와 관련하여 병서를 언급한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전쟁과 평화라는 관점에서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을 분석한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경향을 극복하고 군사사적인 시각에서 연구할 수 있는 시각의 확보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현재 실체가 다소 불문명한 고대중국의 전쟁관이나 전략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고대중국을 대상으로 한 전략문화에 관한 연구는 공자-맹자 패러다임으로 인식하는 매우 단편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銀雀山漢簡󰡕, 󰡔馬王堆漢墓帛書󰡕, 󰡔睡虎地秦墓竹簡󰡕의 내용들의 분석을 통해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셋째, 비교 군사사 연구의 확대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군사사상에 대해서는 그 양상을 비교사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따라서 고대중국의 전쟁수행방식과 전쟁관에 대한 분석 및 복원적 접근을 시도한 본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이나 다른 국가와의 비교는 한국의 군사사를 보다 보편성 높은 학문 분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상과 같은 연구사적인 측면의 기대효과와 함께 본 연구는 그 활용성 측면에서도 다소의 기여가 있을 것이다. 먼저 군사사상사 연구의 기초자료의 확보 측면이다.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사 연구는 그동안 무경칠서 병서 위주로 연구되어 자료의 제약이 많았다. 출토문헌들의 군사관계 문서들을 다루려는 본 연구는 고대중국의 군사사상 연구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본 연구의 결과물은 안보관련 종사자들에게 약간의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적 연구가 전장에서 승리를 보장하진 않지만, 본 연구의 성과는 전쟁 경험이 부족한 군인에게 전문적인 군사업무수행에 관한 유용한 이론, 개념, 해석들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 연구요약
  • 춘추전국시기를 중심으로 전쟁수행방식의 변화와 군사사상의 분석을 통해 고대중국의 전략문화의 이해를 시도한 본 연구는 시기별로 춘추시대, 전국시대 초중기, 그리고 진의 육국병합이 이루어지는 전국후기 부분으로 구성된다. 본고는 각 시대별로 전쟁행태와 전쟁관, 그리고 병서의 분석이 주를 이루게 된다.
    제1부에서는 춘추시대의 전쟁수행방식과 전쟁관을 분석한다. 먼저 서주적 전쟁관의 특징과 춘추시대의 전쟁수행방식의 분석을 통해 서주적 전쟁관이 여전히 춘추시대에도 반영되고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다음으로 춘추시대의 전쟁관과 군제의 형태 및 그것에 수반된 전쟁관의 특성을 󰡔춘추좌씨전󰡕에 기재된 전쟁관계 기사에서 찾아내어 검토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손자󰡕와 󰡔오자󰡕의 병서를 중심으로 그들 군사사상적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병서의 연구는 병학적 입장에서 전략, 전술의 연구도 중요하지만 전쟁과 평화라는 관점에서 어떠한 전쟁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연구시각의 확보도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손자󰡕와 󰡔오자󰡕의 병서를 통해 전쟁의 정당성 측면이나 두 병서의 인과관계, 그리고 전쟁관의 시각 확대 및 심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제2부에서는 전국시대 전쟁형태 및 전술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전쟁관의 변화 상황을 살펴볼 것이다. 이는 춘추시대의 전쟁수행방식과 군사사상에 대한 흐름의 변화를 추적한다는 점에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 군사사상의 분명한 차이점을 밝혀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전국시대에 들어서 전쟁수행방식이 춘추시대와 대비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살펴보고 그와 관련되어 춘추시대에 나타난 부국강병사상이 전국시대에 어떤 식으로 공고화 되었는지 국력의 회복과 군사력의 강화측면에서 그 시책들을 추적해 볼 것이다. 다음으로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병서인 󰡔孫臏兵法󰡕과 󰡔尉繚子󰡕를 중심으로 이들 병서에 담겨있는 전략전술의 변화와 전쟁의 정당성에 관해 검토해 볼 것이다. 󰡔손빈병법󰡕과 󰡔울료자󰡕에 보이는 전쟁의 정당성과 부국강병사상에 대한 고찰은 앞서 󰡔손자󰡕, 󰡔오자󰡕의 군사사상과의 동질성과 차별성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銀雀山漢簡󰡕과 󰡔馬王堆漢墓帛書󰡕의 왕패(王覇)관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들은 전국시대부터 한(漢)대에 걸쳐 성립했다고 생각되는 다른 문헌들과의 연관성이 높아 다른 고대 병서의 성립과정을 해명할 때도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제3부에서는 전국말기 진의 육국병합과 패도(覇道)적 군사사상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곳의 분석은 전국시대의 군사사상이 결국 진의 천하통일로 완결되기 때문에 천하통일의 기반이 되는 진의 군사사상이 무엇이었으며, 유교적 의전(義戰)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가운에 진이 어떻게 전쟁의 정당성을 부여했는지 확인시켜 줄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전국 말기 전쟁이 대규모화되고 장기화되면서 점차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진이 어떻게 육국과의 화친정책과 강경정책을 병해가면서 전국을 통일해 나갔는지, 그리고 실제 전투수행에 있어서 그 특징은 무엇인지를 분석하여 진제국이 가지고 있었던 전략‧전술적 특징을 규명해 볼 것이다. 다음으로 진율(秦律)의 이념과 진의 법사상(法思想)을 검토해 볼 것이다. 여기서는 수호지진묘죽간의 내용을 토대로 전국 말의 진이 관료체제를 바탕으로 어떻게 강력한 중앙집권화 국가를 건설하려 했으며, 그러한 제도를 배경으로 하여 어떻게 군사력의 증강을 도모했는지 검토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진나라의 통일전쟁의 정당화 논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재상 여불위(呂不韋)가 식객 수천인에게 편찬하게 한 󰡔呂氏春秋󰡕에 보이는 그 사상적 특징에 관한 검토는 진의 법사상과 의병설이 어떤 논리로 침략전쟁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주었는지 확인시켜 줄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주왕실의 세력이 급격히 쇠퇴한 춘추시대에는 서주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 전쟁관이 전쟁형태의 변용에 수반하여 서서히 변화되어 갔다. 그러나 춘추시대에는 서주시대와 달리 전쟁형태와 전술 면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엿보인다. 우선 보병의 대두로 여러 전투에서 전차와 보병의 합동작전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여러 형태의 전투 대형도 등장했다. 이러한 보병의 대두는 당시의 신분질서를 동요시킬지도 모르는 군대 구성원의 변용을 촉진했다. 대규모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전차전을 담당했던 귀족 전투원이 아닌 ‘농민’을 대량으로 동원해야 했는데, 이러한 변화는 전시 동원 행정, 막대한 군사비를 비롯해 국가의 종합적인 역량이 문제시되는 부국강병 사상을 출현시켰다.
    전쟁이 전차전을 기본으로 한 귀족끼리의 단기결전에서 국력을 경주한 대규모 침략전쟁으로 변용되어 가자, 뒤이어 그러한 거대한 사업을 수행 할 때 그 정당성, 부국강병책과 대규모 병력의 통솔 문제가 등장했다. [손자]는 춘추시대의 전쟁양상과 전쟁관의 변화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에 따른 ‘모공(謀攻)’, ‘궤도(詭道)’ 등의 전략적 사고와 ‘용중(用衆)’, ‘용병(用兵)’ 등의 문제들을 충실히 다루었다. 그러나 전쟁 자체의 정당성의 문제, ‘천하통일’에 대한 인식 문제와 부국강병책에 관한 문제는 구체적으로 이론화되지는 않았다. 이것은 [손자] 이후 전국시대에 등장하는 오기(吳起), 손빈(孫臏), 울료자(尉繚子)를 비롯한 병가(兵家)에 남겨진 과제였을 것이다.
    중국의 전국시대는 전쟁형태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전대미문의 변화를 겪었다. 전국시대는 전쟁의 주요목적이 성과 땅을 빼앗는 것에서 영토의 확대로 바뀌었고, 소국 겸병이 거의 완료됨에 따라 강국 간의 합종과 연횡이라는 복잡한 국제정세가 출현했다. 이러한 전국시대 전쟁양상의 변화는 사회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각국의 통치자들은 격렬한 겸병전쟁의 와중에 생존과 발전을 위해 인재들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책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국시대에 전국칠웅은 부국강병을 목표로 나름대로의 개혁정치를 펼쳐나갔으며, 개혁정치를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시행했던 국가는 번영의 길로 나아갔고, 그렇지 않은 국가들은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전국시대의 주요 병서인 [오자]와 [손빈병법]은 [손자]의 사상을 기본적으로 계승하면서도 군사적 사고의 수준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오자]는 특히 전쟁의 원인과 성격에 대해 분석하였고, 그 분석이 매우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전쟁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분류하여 정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손빈병법]에서는 ‘인의’와 ‘예악’만을 표방하는 반전론자들을 비판하면서 전쟁은 천하를 복종시키고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정당하면서도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은작산한간]과 [마왕퇴한묘백서]에 따르면, 전국시대의 전쟁은 이미 ‘병서’가 독점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 문헌들에는 군사력의 적극적인 사용을 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왕의 모습은 인덕에 의해 세계를 복종시킬 수 있다는 유가적 왕자(王者)가 아니라 무력행사를 전제로 한 패자(霸者)였다.
    전국시대 후기의 전쟁양상은 전국 전기와 비교해 여러 가지 면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전쟁 규모가 급격히 확대됨에 따라, 각국에서는 농민들을 징집하여 병력을 충당했고, 대군을 지휘통솔하기 위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군사 인재를 등용했다. 전쟁 수행 방식 면에서는 주력부대가 기병과 보병으로 구성되었고, 특히 기병의 등장은 전투 속도의 증가, 우회·후방 차단 등 전술의 다양화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각국의 전쟁 목적은 패권이나 영토획득에 머물지 않고 ‘천하’ 경영을 의식한 타국 병탄으로 나아갔다.
    진은 기원전 230년 한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육국을 병합해 나갔다. 진이 육국을 병합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군사 개혁에 있었다. 신상필벌과 엄법시행의 원칙에 따라 추진된 상앙의 변법은 모두 부국강병이라는 현실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진율은 그러한 상앙의 개혁정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단기간에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홀연히 군사강국으로 성장했던 진나라 군대의 배후에는 바로 이러한 진율이 존재했던 것이다. 또한 [여씨춘추]에 보이는 ‘병’의 정당성에 관한 논리는 진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천하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적 역할을 했다.
  • 영문
  • As the Zhou dynasty power was declined, the view warfare in China changed radically in the Spring and Autumn Annals. Wars became more intensive, organized, and severe, fought by bigger states with more sophisticate technique and larger forces. After war was protracted, states needed a mass mobilization. Accordingly, the ideas of national prosperity and defense began to emerge in the Spring and Autumn Annals.
    As the Sun-tzu makes plain, violence is only one part of warfare and not even the preferred part. The aim of war induce his compliance. The most economical means is the best. This stress on gaining victory without fighting is not a utopian fancy but part of the larger view that seeks maintain the established order without the use of violence. Although Sun-tzu presents the thoughts of ‘mougong(謀攻)’, ‘guidao(詭道)’, and ‘yongzhong(用衆)’, but it is still lack of explanations of justification for the war, attitude toward unification, and a measure to enrich and strengthen a country.
    The Warring States Period of China had experienced an unprecedented change of the form of warfare. The main goal of warfare changed from taking land and castle to expanding territory. The complicated international situation which was called ‘he zong lian heng(合從連衡) appeared, as the annex of small countries had been almost completed. This change of the pattern of warfare in the Warring States Period had a great impact on the entire society. The Seven Warring Sates initiated their own reformative politics with the goal of achieving national prosperity and enhancing military power. The countries which continually and strongly executed their reformative politics had maintained their prosperity for a long time, while the others which did not had fallen into decline.
    The ‘Wu-zi’ and ‘Sun Bin’s Art of War,’ the Warring States Period’s main art of war, reflected the pattern of warfare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The ‘Wu-zi’ tried to systematically classify the form of complicated warfare, and analyze the cause and nature of warfare. The ‘Sun Bin’s Art of War’ criticized anti-war activists and regarded warfare as the inevitable series of incidents to maintain social stability. In the excavated literatures ‘yin que shan zhu jian(銀雀山漢簡)󰡕’ and ‘ma wang dui han mu bo shu(馬王堆漢墓帛書)’, the warfare in the Warring States Period had already become the issue that was discussed not only in ‘bing shu(兵書),’ but also in political thought. The literatures not only encourage the active use of military power, but also writes that the form of ideal king is not confucian ‘wang-zhe(王者)’ but ‘bai-zhe(霸者)’ based on the use of armed force. In conclusion, the military thought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also considers the national governing principle as a way to organize and develop the system of state for military victory beyond the simple military issue.
    The pattern of the warfare in the latter period of the Warring States had made a big change compared to its former period in many aspects. As the scale of the warfare had been extremely expanded, each country conscripted peasants to make up the troops and appointed talented people to lead large army. In the way of conducting war, the main forces were made up of infantry and cavalry, particularly the appearance of calvary had brought a diversification of tactics such as the increase of fighting speed, and the interdiction of side and rear. The goal of each country was not just gaining territory but reached to annex other countries pursuing the management of the world.
    The Qin dynasty merged six countries with the occupy of Han Dynasty as the first step in 230 B.C. The fundamental cause that made the Qin be able to annex six countries was political and military reform. The Shang Yang Reforms that was implemented following the principle of dispensation of justice both to services and crimes and the enforcement of server laws had a practical purpose of national prosperity and military power, and Qinlü(秦律) reflected the reformation spirit of Shang Yang. The Qinlü existed in the background of the Qin’s Army that radically developed its national power in short term and suddenly grew up to a military power. And the logic of legitimacy of military force to be seen in the Lu Shi Chun Qiu(呂氏春秋) had played a theoretical role to justify the war of aggression of Qin and to back up universe unification.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춘추전국시대를 주된 범위로 삼아 고대중국의 전쟁수행방식과 군사사상의 변화과정의 분석을 통해 당시의 전쟁양상과 전쟁관을 보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고대중국의 전략문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그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고대중국에 대한 군사사상의 이해는 유가적인 의전(義戰)사상과 손자의 부전승(不戰勝)사상이 지배적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확실히 중국은 서양처럼 자신들의 선조를 난폭한 전쟁의 신에서 찾거나 민족의 특성을 ‘무용(武勇)’, ‘호전(好戰)’이라는 부분에서 찾지 않았다. 그러나 육국을 병합한 진제국은 물론이고, 유교를 국교로 삼은 한제국과 문치주의를 표방한 송왕조도 군사(軍事)와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文’적인 인상과는 반대로 군비증강, 내란 진압, 이민족과의 항쟁이라는 ‘武’의 현실을 내포하고 있다. 고대중국의 전쟁수행방식의 변화에 따른 주요 군사사상의 시대적 전개 양상을 밝히고자 하는 본 연구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주왕실의 세력이 급격히 쇠퇴한 춘추시대에는 서주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 전쟁관이 전쟁형태의 변용에 수반하여 서서히 변화되어 갔다. 우선 보병의 대두로 여러 전투에서 전차와 보병의 합동작전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여러 형태의 전투 대형도 등장했다. 이러한 보병의 대두는 당시의 신분질서를 동요시킬지도 모르는 군대 구성원의 변용을 촉진했다. 대규모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전차전을 담당했던 귀족 전투원이 아닌 ‘농민’을 대량으로 동원해야 했는데, 이러한 변화는 전시 동원 행정, 막대한 군사비를 비롯해 국가의 종합적인 역량이 문제시되는 부국강병 사상을 출현시켰다. 전쟁이 전차전을 기본으로 한 귀족끼리의 단기결전에서 국력을 경주한 대규모 침략전쟁으로 변용되어 가자, 뒤이어 그러한 거대한 사업을 수행 할 때 그 정당성, 부국강병책과 대규모 병력의 통솔 문제가 등장했다. [손자]는 춘추시대의 전쟁양상과 전쟁관의 변화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에 따른 ‘모공(謀攻)’, ‘궤도(詭道)’ 등의 전략적 사고와 ‘용중(用衆)’, ‘용병(用兵)’ 등의 문제들을 충실히 다루었다. 그러나 전쟁 자체의 정당성의 문제, ‘천하통일’에 대한 인식 문제와 부국강병책에 관한 문제는 구체적으로 이론화되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전국시대는 전쟁의 주요목적이 성과 땅을 빼앗는 것에서 영토의 확대로 바뀌었고, 소국 겸병이 거의 완료됨에 따라 강국 간의 합종과 연횡이라는 복잡한 국제정세가 출현했다. 각국의 통치자들은 격렬한 겸병전쟁의 와중에 생존과 발전을 위해 인재들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책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자]와 [손빈병법]은 [손자]의 사상을 기본적으로 계승하면서도 군사적 사고의 수준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오자]는 특히 전쟁의 원인과 성격에 대해 분석하였고, [손빈병법]에서는 ‘인의’와 ‘예악’만을 표방하는 반전론자들을 비판하면서 전쟁은 천하를 복종시키고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정당하면서도 필연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은작산한간]과 [마왕퇴한묘백서]에 따르면, 전국시대의 전쟁은 이미 ‘병서’가 독점적으로 다뤄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이 문헌들에는 군사력의 적극적인 사용을 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상적인 왕의 모습은 인덕에 의해 세계를 복종시킬 수 있다는 유가적 왕자(王者)가 아니라 무력행사를 전제로 한 패자(霸者)였다.
    전국시대 말기 진은 기원전 230년 한을 시작으로 차례차례 육국을 병합해 나갔다. 진이 육국을 병합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군사 개혁에 있었다. 신상필벌과 엄법시행의 원칙에 따라 추진된 상앙의 변법은 모두 부국강병이라는 현실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진율은 그러한 상앙의 개혁정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또한 [여씨춘추]에 보이는 ‘병’의 정당성에 관한 논리는 진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천하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적 역할을 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1. 연구결과
    가. 예상 게재 학술지명
    본 연구는 고대 중국의 전쟁수행방식과 군사사상의 흐름에 관한 실증적 연구를 중점으로 다루고 있어 국방, 군사사, 그리고 중국사와 관련된 학술지에 게재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예상 게재 학술지명으로는 국방연구(국가안정보장연구소), 군사(국방부 군산편찬연구소), 사총(고려대학교역사연구소), 역사와담론(호서사학회) 등이 있다.
    나. 학자 및 군인들에게 중국의 군사사상에 관한 개론적 참고자료로 활용
    본 연구의 결과는 현재 실체가 다소 불분명한 고대 중국의 군사사상과 전쟁수행방식에 대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에 관한 기존 연구는 개개의 병서에 대한 문헌학적, 병학적 의미를 밝힌다거나 혹은 다른 주제와 관련하여 병서를 언급한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전쟁과 평화라는 관점에서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을 분석한 본 연구는 기존의 연구경향을 극복하고 군사사적인 시각에서 연구할 수 있는 시각의 확보를 가져올 것이다. 학문적 연구가 전장에서 승리를 보장하진 않지만, 본 연구결과는 전쟁 경험이 부족한 군인과 정책기획가들에게 전문적인 군사업무수행에 관한 유용한 이론, 개념, 해석들을 발전시키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 교육과의 연계 활용 방안
    본 연구를 통해 축적된 자료와 지식은 전쟁과 군사사상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문서와 강의 형태로 제공될 것이다. 특히 본 연구자는 국방대학교의 교수로서 국가안보와 군사분야에 종사하는 전문 직업군인과 공무원 등을 교육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본 연구자를 포함해 군 교육 기관 및 일반대학 관련 전공 학과에서 본 연구 결과물을 잘 활용한다면 미래 한국의 전쟁을 대비하는 정책 실무자들과 중국의 군사사와 전쟁사를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전수되어 총체적으로는 국가안보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2. 연구성과
    가. 논문 게재 현황 및 향후 계획
    1) 본 연구는 3년 연구 과제로서 1‧2년차 연구 결과는 관련 학술지에 이미 게재하였고, 3년차 연구 결과는 현재 초고 완료 상태이다.
    2) 논문 게재 현황
    - 1년차: "춘추시대의 전쟁수행방식과 군사사상"(사총 제 91호, 2017. 6)
    - 2년차: "전국시대의 전쟁양상과 그 군사사상"(국방연구 제60권 3호, 2017. 9)
    - 3년차: 초안완료
    나. 학문적 기여도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에 관한 연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내에서 전략문화라는 관점에서 고대중국의 전쟁수행방식과 군사사상을 통찰할 수 있는 논문이나 연구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의 군사사상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은 개별적인 인물 중심의 연구나 개별 병서의 연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특히 중국 고대의 전략문화에 관한 연구는 미개척지와 같다. 따라서 춘추시대로부터 진의 통일에 이르기까지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의 변화추이를 그들의 전쟁관과 전쟁수행방식의 상호 연관성을 중심으로 분석한 본 연구는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에 대한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제시함과 동시에 기존 연구의 공백을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연구의의와 활용의 폭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다. 비교 군사사 연구의 확대 가능
    국내에서 군사사상에 대해서는 그 양상을 비교사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고대중국을 대상으로 한 전략문화에 관한 연구는 공자-맹자 패러다임으로 인식하는 매우 단편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銀雀山漢簡], [馬王堆漢墓帛書], [睡虎地秦墓竹簡]의 출토문헌들의 사료 분석을 통해 본 연구는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고대중국의 전쟁수행방식과 전쟁관에 대한 분석 및 복원적 접근을 시도한 본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의 군사사를 보다 보편성 높은 학문 분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라. 활용성 측면의 기여도
    중국고대의 군사사상사 연구의 기초자료를 후학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사 연구는 그동안 주로 [손자], [오자], [울료자] 등 무경칠서 병서 위주로 연구되어 자료의 제약이 많았다. 지금까지 다루어지지 못한 [銀雀山漢簡]․[馬王堆漢墓帛書]․[睡虎地秦墓竹簡] 군사관계 문서들을 분석한 본 연구는 고대중국의 군사사상에 관한 훌륭한 기초 자료를 연구자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아울러 본 연구의 결과물은 안보관련 종사자들에게 약간의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실제 전쟁행태에 따라 군사사상이 변화된 점을 고려한다면 시대별 전쟁양상에 따라 군사사상의 흐름을 추적한 본 연구는 중국의 전략문화를 이해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 색인어
  • 고대중국의 전쟁관, 군사사상, 전쟁양상, 춘추시대, 전국시대, 진 제국, 손자, 오자, 손빈병법, 진율, 여씨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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