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해방기의 남북한 시문학 작품에 총체적 시각으로 접근하여 이념적․공간적 횡단의 흔적과 징후를 검토하고 이를 통해 남과 북의 문학적 동역학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전쟁 후 분단이 고착되기 전까지 삼팔선이라는 경계는 지리적인 면에 ...
이 연구는 해방기의 남북한 시문학 작품에 총체적 시각으로 접근하여 이념적․공간적 횡단의 흔적과 징후를 검토하고 이를 통해 남과 북의 문학적 동역학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전쟁 후 분단이 고착되기 전까지 삼팔선이라는 경계는 지리적인 면에서든 이념적인 면에서든 넘을 수 없는 철의 장벽이 아니었다. 단독정부 수립 전까지 문학계에 좌우익 및 비정치적 성향의 문인이 섞여 있었던 것은 삼팔선 이남 뿐 아니라 이북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많은 작가 및 시인들이 이념적 이유로, 혹은 개인적 이유로, 또는 단순 방문차 삼팔선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1946년 2월 결성된 ‘조선문학가동맹’은 서울 중심이긴 했으나 남북과 좌우를 아우르는 전국규모의 단체였다. 북에 머무르던 일군의 문인들은 이 단체의 결성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다녀갔다. 더불어 북한의 소식은 남한의 신문이나 잡지에, 남한의 소식은 북한의 신문이나 잡지에 즉시 보도되곤 했다. ‘원산문학가동맹’에서 발간한 시집 <응향>(1946)에 대한 ‘북조선문학예술총연맹’의 결정서가 서울에서 발간되던 잡지 <문학>(1947. 3)에 실리며 남한의 문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사실은 문학 쪽의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남한에서 발표된 시들이 북한에서, 북한에서 발표된 시들이 남한에서 재발표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령 ‘조선문학가동맹’에 의해 서울에서 1947년 발간된 <(1946년판) 조선시집>에는 남한 거주 시인의 작품 37편과 함께 북한 거주 시인의 작품 11편도 함께 실려 있다. 또한 서울에서 1946년 4월에 발간된 합동시집 <횃불>의 일부 시들은 그해 8월 평양에서 발간된 합동시집 거류에 재수록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간 문단의 재편성 및 작가조직 결성의 차원에서만 주로 언급되었을 뿐 작품 자체의 연구에 적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몇몇 작가연구를 제외하고는 영역 및 대상의 선정에 있어서 삼팔선 이남의 문학, 혹은 이북의 문학으로 한정하여 전개되는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삼팔선이 견고한 벽이 아니었던 만큼, 해방기의 문학에 보다 온전히 접근하기 위해서는 횡단의 가능성 및 징후를 다방면에서 적극적으로 포착할 필요가 있었다. 해방기에는 월북․월남이라는 공간적 횡단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작품 발표 매체 및 발표 경로에서, 그리고 시인의 시적 행보에서, 횡단의 역동적 실제를 확인해야만 하며, 남과 북의 상호간섭적인 파장이 문학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고려하여야 한다. 해방기 작품들은 남한에서 창작된 경우 남한 사회의 구성원을, 북한에서 창작된 경우 북한 사회의 구성원을 주된 독자나 청자로 상정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삼팔선 건너의 세계 역시 의식되어야 할 대상으로, 일종의 ‘잉여적 수용자’로서 존재하다. 작품은 어떤 사회를 향해, 어떤 독자를 향해 발화할 것인가에 따라 달리 쓰여질 수 있다. 또한 어떤 사회 속에서, 어떤 독자에 의해 읽혀지는가에 따라 같은 작품이라 해도 의미가 달라질 수 있으며 각기 다른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해방기의 텍스트를 다루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수용론적 문제의식을 예각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 바탕 위에서 해방기 시에 나타나는 시인 개개인의 고유한 파토스가 당대의 정치적 상황 및 이념, 그리고 월북이라는 계기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혹은 이면으로 숨는지를 살피고자 했다. 당시 남과 북이 완전히 갈라지지 않은 ‘아직 하나의 공동체’였다는 점, 그리고 교류와 소통의 문이 열려 있었다는 점을 보다 강조하며 당대의 시 텍스트를 정치하게 살필 때, 역사성이라는 씨줄과 문학 일반의 가치라는 날줄이 교직되는 방식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며 분단 전 우리문학의 ‘기원적’ 공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궁극적 목적을 위해 이 연구는 해방기 남북한이 ‘따로 또 같은’ 하나의 공동체였다는 점을 시야에 두고 시대적 맥락에 밀착하여 남과 북에서 발간된 시집 및 발표된 시들을 함께 검토하였다.
1년차 연구는 해방기 남북에서 각각 발간된 합동시집을 중심으로 시적 횡단의 궤적을 파악하고 수용공간에 따른 의미의 스펙트럼을 검토한다는 기획 하에, 1946년 4월 서울에서 발간된 횃불」과 1946년 8월 평양에서 발간된 거류(巨流)에 초점을 맞추어 ‘남→북’의 텍스트 횡단 양상에 주목하여 진행하였다. 두 시집의 성격을 검토하고 삼팔선을 넘어 두 시집에 공히 수록된 텍스트들을 중심에 두되, 경우에 따라 판본 검토의 범위를 넓혀가며 수용공간에 따라, 예상독자에 따라, 의미에 어떤 변경이 기입되는지를 살피며 미시적인 차원의 횡단, 즉 텍스트 자체의 월경과 이로 인한 (예기치 않은) 의미 굴절 효과에 주목해 보려 하였다. 해당 결과물을 학술지 한국근대문학연구 32(한국근대문학회, 2015년 하반기)에 발표하였다. 2년차 연구는 해방기 문학․문화 운동에서 횡단의 거점이 된 단체였던 이남의 ‘조선문학가동맹’과 이북의 ‘북조선예술총연맹’이 보여준 연대와 단절의 향방을 따라가며 ‘문맹’이 1947년 3월에 발간한 (1946년판) 조선시집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이를 위해 기관지 문학 등과 ‘북예맹’의 기관지 문화전선에 실린 시와 비평,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시인의 시들을 면밀히 검토하며 ‘북→남’의 텍스트 횡단 양상을 살폈다. 해당 연구결과물은 현재 학회지에 투고된 상태이다. 1, 2년차의 연구가 남과 북에서 발간된 합동시집을 초점에 두고 이루어졌다면 3년차 연구는 이 바탕 위에서 해방기 시에 나타나는 시인 개개인의 고유한 파토스가 당대의 정치적 상황 및 이념, 그리고 월북이라는 계기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혹은 이면으로 숨는지를 살피고자 했다. 오장환, 임화, 김기림 등 식민지 시대부터 활동했던 세대의 시인들이 해방 후 문학계에 등장한 신인들인 김광현, 유진오, 김상훈, 이병철, 박산운, 상민 등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참회해야 할 과거가 없고 그래서 죄의식에 사로잡힐 필요 없이 당당하게 ‘전진’과 ‘건설’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시대의 목소리, 이념의 목소리, 개인의 목소리가 일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들에게서 보고자 하는 ‘소망’의 표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자기비판’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들에게서 시대의 목소리와 개인의 목소리가 분열되어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한다. 목소리의 분열은 해방기의 신세대 시인들에게 유독 강한 기대를 표한 임화, 오장환에게서 특히 유의해 보아야 할 점이기도 했다. 임화는 시인으로서보다는 다분히 조직의 수장으로서, 운동가로서, 혹은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강조되는 경향이 강했고, 시 역시 그러한 방향에서 독해되어 온 편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역량이 시적 재능보다 더 활발하게 작동하던 시기였다 하더라도, 당대의 시대적 요구와 공통의 목소리 속에 녹아들 수 없는 문학적 파토스가 여전히 그의 작품 속에 강하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 역시 결코 평가절하될 수는 없다. 또한 지병에 시달리면서도 조선문학가동맹 시부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한 오장환 역시 마찬가지다. 1947년에 발간된 개인시집 병든 서울은 이 균열을 선명히 노정하고 있는 편인데, 잡지나 신문에 발표되었으나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 잡지나 신문을 거치지 않고 시집에만 바로 수록된 작품들을 구분하여 살피며 이 균열의 의미를 세밀해 해독해 볼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