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시(빌립보서 2:5-11)를 통해 원시 기독교 예배 공동체가 어떻게 삼위 하나님의 관계를 이해하였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빌립보서는 성자가 성부의 관계(the Son in the Father)에 있음을 보여주며,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성자처럼 자신을 비우는 삶을 살기를 권면하는 ...
찬양시(빌립보서 2:5-11)를 통해 원시 기독교 예배 공동체가 어떻게 삼위 하나님의 관계를 이해하였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빌립보서는 성자가 성부의 관계(the Son in the Father)에 있음을 보여주며,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성자처럼 자신을 비우는 삶을 살기를 권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빌립보 신앙 공동체에게 겸비와 복종으로 하나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사실, 바울은 현학적인 기독론을 설명하려고 시도 한 것은 아니다, 예수가 누구인가를 설명하고 예수를 따라 살길 권면하고자 한다. 사실 이 찬송시의 강조점은 예수에 관한 것보다도, 새로운 하나님의 이해에 관한 것이다. 즉 삼위 하나님의 이해의 출발점이다. 찬양시의 Kenosis와 십자가는 하나님은 자기 비움과 십자가의 하나님이고,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적 관계성에서 성취 되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Kenosis는 배경은 원시 기독교의 공동체의 예배 경험을 반영하는 찬송시와 관련이 있다. 사실, 이 찬송시와 Kenosis: 성육신 교리를 엄격하게 구분할 수 없으며, 찬송시가 담고 있는 Kenosis는 예배 공동체의 관계성을 형성하게 하는 사건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찬송시를 단순히 윤리적인 것으로 또는 추상적 기독론교리에 관한 지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찬송시는 기독론과 윤리를 함께 어우르는 언어이며, 이 언어를 실행하는 예배의 공동체의 경험 안에서 삼위 하나님 공동체적 관계인 비움, 겸비가 구체적인 사건으로 드러나게 된다. 예배자들은 찬송시를 통해 삼위 하나님의 Kenosis에 관해 찬양하며, 이런 찬양을 통해 삼위하나님의 관계성이 구체화 되고, 이런 kenosis의 관계성으로 예배자들을 참여하게 한다. 진정한 자유와 힘은 역설적으로 가난한자, 억압된자, 소외된자, 힘 없는 자들을 섬길 때 성취된다. 힘은 지배나 억압이 아니다. 찬송시는 예수 그리스도: 성자의 겸비, 낮어짐, 순종이 바울이 빌립보 공동체로 하여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높임 받은 주이심을 다시 한 번 상기 시킨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여 주고자 함이다. 본 논문은 원시 기독교의 예배 공동체에서 찬양된 kenosis통한 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적 관계 실행은 삼위일체론자들의 perichoresis를 통한 삼위 하나님의 관계성 이해는 근대 정치 철학의 관계 개념: 평등에 근거를 두고 있고, 이에 관한 문제점을 제기 할 것이다. Kenosis를 통한 삼위하나님의 관계실행은 평등의 관계성이 아니라, 자신의 비움, 겸비, 낮어짐, 순종과 희생의 삶을 사는 자들의 관계로 부름을 받었다는 것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맹목적 순정이나, 가난한자, 여성의 억압이 정당화 되는 것을 빌립보서의 찬양시가 드러내는 관계성은 아니다. 찬양시의 kenosis는 힘과 사회적 지위에 있는 자들에게 도전한다. 찬양시의 kenosis의 근본 목적은 사회적으로 높은자에게 자기 겸비와 사회적 약자를 섬길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런 자기 겸비의 관계 안에서 가난한자, 낮은자의 복종을 정당화 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진정한 힘과 자유는 겸비와 섬김에 있고, 이런 겸비의 관계에서 사회적 지위의 불평등을 패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기 겸비의 삼위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함으로 예배 공동체는 높은자가 섬기는 자가 됨으로 낮은자를 높이는 kenosis 공동체적 관계를 실행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