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에서 북방민족 집단의 연구는 그 중요성에 비해서 연구현황은 매우 열악하다. 중국사 중심의 동양사와 한반도 중심의 한국사의 사이에서 중국 동북지방 및 연해주 일대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이유는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사료가 부족하다는 이유와 그들에 대 ...
한국 고대사에서 북방민족 집단의 연구는 그 중요성에 비해서 연구현황은 매우 열악하다. 중국사 중심의 동양사와 한반도 중심의 한국사의 사이에서 중국 동북지방 및 연해주 일대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이유는 그들에 대한 기본적인 사료가 부족하다는 이유와 그들에 대한 연구를 러시아, 중국 등의 고고학 자료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송화강 유역 일대와 연해주 및 흑룡강성 일대에 서기 1천년기에 거주했던 부여와 말갈계의 집단에 대한 연구는 그 실질적인 접근이 어려웠다. 본 연구주제는 “고대 북방민족 연구(부여 말갈)”이라는 지정주제를 수행하기 위함이다. 학계에선 널리 통용되는 ‘북방민족’이라는 범주는 사실 광범위한 지역에서 다양하게 거주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표현한 것으로 지정주제로 북방민족으로서 부여, 말갈을 지정한 이유는 이와 같이 서로 상이한 집단들이 거주하는 북방지역의 고대민족사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의도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본 지원과제는 예맥계인 부여를 중심으로 그 동북편의 고아시아족계통이 말갈, 그리고 서북쪽의 유목문화계(흉노 및 선비계) 등 크게 3가지 부류의 북방민족을 모두 포괄한 종합적 연구를 지향한다. 즉, 1차년도에서는 부여 전기의 부여와 유목계문화의 검토, 2차년도에서는 부여 중기의 삼강평원 지역과의 교섭 등을 수행하여 연차적으로 부여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고대사의 북방사에 대한 종합적인 복원을 시도한다.
기대효과
본 연구를 통해서 기대되는 학문및 사회적인 기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러시아 극동, 중국의 흑룡강성 및 길림성 등에 산견되어 있는 한국사 관련 고고학적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 두 번째로 한국 고대문화 형성과정을 ...
본 연구를 통해서 기대되는 학문및 사회적인 기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러시아 극동, 중국의 흑룡강성 및 길림성 등에 산견되어 있는 한국사 관련 고고학적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위한 단초를 제공한다. 두 번째로 한국 고대문화 형성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기존의 많은 연구들은 대부분 한국과 중국이라고 하는 문화의 교류 경로에만 집착해왔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부여를 통하여 그 시야를 말갈 및 흉노와 선비 세력 등을 확대하고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새로운 자료들을 제시함으로써 국내 고대사연구를 활성화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발해와 고구려에 집중되어 있는 북방지역의 연구를 다변화시켜서 부여와 말갈계 등 시공간적으로 그 저변을 확대할 수 있다. 이 연구가 성공적으로 수행될 경우 이후 북방고고학의 저변이 여진, 거란, 몽골 등으로 확대되어서 한국사의 저변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네 번째로, 고고학적 자료를 통한 민족집단의 비정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사료가 부족한 극동지역 고대사의 연구에 새로운 지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부여와 말갈 등 우리역사의 북방지역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수 있다. 실제로 국사시간에 만주 일대의 부여, 읍루, 말갈, 옥저 등의 이름은 나오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배우지 못한다. 또한 말갈은 발해의 기층세력으로 한국사와는 별개라는 식의 잘못된 이해가 주를 이룬다. 말갈은 읍루의 계통을 이으며 부여와 고구려 시기에 지속적으로 복속되어왔던 기층세력이라는 점에서 무작정 한국사에서 제외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 소외된 한국북방사에 대한 새로운 방법과 자료에 입각한 연구를 통하여 한국 선사-고대사에서 좀 더 발전적인 역사인식을 심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요약
본 연구에서는 700여년 간 존속했던 부여를 크게 그것은 선부여기(西團山문화, 白金寶문화 등 기원전 8~3세기의 문화), 전기(부여 국가의 형성기, 기원전 2~서기 1세기), 중기(연맹체 형성시기, 서기 2~4세기), 후기(4세기 중반~멸망, 천도이후) 등으로 세분하고, 그 중에서 전 ...
본 연구에서는 700여년 간 존속했던 부여를 크게 그것은 선부여기(西團山문화, 白金寶문화 등 기원전 8~3세기의 문화), 전기(부여 국가의 형성기, 기원전 2~서기 1세기), 중기(연맹체 형성시기, 서기 2~4세기), 후기(4세기 중반~멸망, 천도이후) 등으로 세분하고, 그 중에서 전기와 중기 시기의 교섭관계를 고고학적으로 살펴본다. 1차년도에서는 우선 왕궁이나 왕릉급 고분은 거의 알려져있지 않으며, 그 영역 내에서 다양한 문화들이 혼재하는 부여에 대한 연구방법론을 제시하고, 그 영역 내에 존재하는 서차구와 노하심 유적등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이들 문화와 호룬뻘 평원의 초기 선비문화, 몽골, 대흥안령, 자바이칼 등 부여의 동편에 위치한 서기 1~5세기의 다양한 유목문화를 살펴보고, 그들과 부여 영역 내의 유목계통 문화요소를 비교 검토하겠다. 이러한 유목계문화가 부여 국가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살펴보아서 정착과 유목이 공존하는 국가정치체가 부여에 도입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2차년도에서는 삼강평원에서 발굴된 滾兎嶺文化(기원전 2~서기 3세기)와 鳳林文化(서기 3세기~서기 6세기)에 주목한다. 이들은 시공적으로 본다면 물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고학적을 보면 기존에 알려진 읍루계 문화인 폴체문화 또는 말갈문화와는 완전히 상이한 양상이며, 부여와 옥저계통의 문화와 더 많은 유사성을 보여준다. 이에 두막루 등 당시 이 지역 주변에서 기록된 여러 집단들과 비교하여 분석해보고자 한다. 또한 그를 통하여 부여계문화가 부여영역을 벗어난 삼강평원까지 확산된 원인과 그 의의를 부여라는 국가체제와 관련하여 설명해볼 예정이다. 이와 같이 지원자의 연구는 크게 전기의 초원계문화와 교섭(1차년)과 중기의 부여계문화의 확산(2차년)으로 나뉘어서 진행되며, 각각 공간적으로는 부여의 서부와 동북지역 등과의 교섭을 살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