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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곡학파 傳乘 관계 재정립 연구
The Syudy on the succession of Hagok school Redefined
  • 연구자가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시스템에 직접 입력한 정보입니다.
사업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지원년도 신청 요강 보기 지원년도 신청요강 한글파일 지원년도 신청요강 PDF파일 ]
연구과제번호 2015S1A5A2A01012414
선정년도 2015 년
연구기간 3 년 (2015년 05월 01일 ~ 2018년 04월 30일)
연구책임자 천병돈
연구수행기관 대진대학교
과제진행현황 종료
과제신청시 연구개요
  • 연구목표
  • 본 연구의 목표는 ‘하곡학파’ 재정립이다.
    하곡은 환갑이 되던 해에 강화로 옮긴다. 환갑 이전에 지은 중요 저서로 『學辯』『存言』이 있다. 강화로 옮긴 후 지은 저서로는『大學說』『中庸說』『論語說』『孟子說』『經學集錄』『心經集義』『定性書解』『通書解』등이 있다. 하곡은 『學辯』과 『存言』에서 양명학을 바탕으로 한 자신의 實心實學 사상을 밝혔다. 강화로 옮긴 후의 저서는 모두 이 실심실학 사상을 바탕으로 지은 것이다.
    하곡은 41세에서 60세까지 안성에 거주한다. 이때의 문인으로 樗村 沈錥, 이진병, 윤순, 유수원, 심대윤 등이 있고, 강화로 온 뒤 이광신, 이광사, 정후일, 이광명, 이광려, 신대우 등이 있다. 이들을 ‘초기 하곡학파’라고 부른다. ‘중기 하곡학파’는 신대우의 아들 申綽과 申絢, 이광사의 아들 이긍익과 이영익, 이광려의 제자 정동유, 이광명의 양아들 이충익, 그 뒤를 이은 이시원과 이지원 등이다. 하곡의 아들 정후일의 고손인 정문승, 정기석, 정원하, 이시원의 학문을 계승한 이상학, 이건창, 이건승, 이지원의 학문을 계승한 이건창 등이 ‘후기 하곡학파’다.
    이와 같이 하곡학은 하곡을 중심으로 하곡학만의 독창적인 학설을 가지고 師承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에 국한시킨 ‘강화학파’가 아니라 학곡학적 사유의 전승 관점에서 ‘하곡학파’라고 불러야 한다. 만약 ‘강화학(강화하곡학)’이라고 하면 안성의 초기 문인들은 제외되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연구자는 시기별로 구분된 ‘하곡학파’를 내용적으로 분류하여 ‘正宗 하곡학파(하곡학적 사유를 심화시킨 문인. 창시자의 정통을 이어받은 종파를 뜻하는 의미에서 ‘正宗’이라고 함)’, ‘傍系 하곡학파(하곡의 핵심 개념을 언급했지만 학술적 논의를 하지 않은 문인. 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친계를 뜻하는 의미에서 ‘방계’라고 함)’, 그리고 ‘別種 하곡학파(하곡학을 계승했지만 문집 속에서 하곡학적 사유를 발견할 수 없지만, 다른 학문 분야의 한 계보를 형성했기 때문에 ‘별종’이라고 함)’라는 假設 아래 하곡학의 전승관계를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자가 파악한 ‘하곡학파’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하곡학적 사유의 핵심 내용(예를 들면 心卽理․實心實學․眞假論․生理 등)이 문집에서 명확하게 드러났을 뿐 아니라 학술적 논의를 한 경우다. 둘째, 하곡학의 핵심 내용은 언급했지만 학술적 논의는 없는 경우다. 셋째, 家承 혹은 師承으로 하곡학을 배웠지만 하곡학적 사유를 문집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다. 기존의 연구는 이상 세 가지를 ‘강화학파’라는 이름으로 연구했다. 그러다 보니 학술사상의 전승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제 연구 방법을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 하곡학파에 대한 연구는 ‘文集’ 위주로 이루어졌다. 『연려실기술』은 이긍실의 저술로 역사서다. 기존의 연구는 ‘강화학파’라는 이름으로 ‘하곡학파’ 범주에 넣었다. 이긍익의 어떤 학술사상을 근거로 ‘하곡학파’라고 할 수 있는가? 또 하곡학적 사유의 핵심 내용(心卽理․實心實學․眞假․生理 등)을 언급했지만 그에 대한 해석이 전혀 없는 문인도 있다. 따라서 연구는 개인의 문집 중심이 아니라, 하곡학적 사유의 핵심 내용을 기준으로 하곡 학설에 대한 損益을 고찰해야 한다. ‘강화학파’로 연구된 하곡학파들의 학술사상은 후학들이 무엇을 계승했고(益), 무엇이 빠졌는지(損) 알 수 없다.
    이상의 문제점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하곡학파의 재정립이 시급하다. 이것이 본 연구의 목표다.
  • 기대효과
  • 본 연구의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곡학파 연구의 새로운 방향 제시: 하곡학파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하곡학파 문인들의 한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이런 결과 하곡학파의 중심축인 ‘하곡학적 사유의 전승’이라는 핵심 내용이 사라져 버렸다. 본 연구는 ‘하곡학적 사유의 전승’ 관점에서 ‘하곡학의 損益(『논어』「爲政」23에 나오는 損益을 가리킴)’을 검증하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의 연구는 지금까지 없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후 진행되는 하곡학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둘째, 하곡학파 분류 방식의 새로운 방안 제시: 일반적으로 하곡학파를 분류할 때 시기적으로 분류한다. 즉 초기․중기․후기 하곡학파가 그것이다. 연구자는 연구 방법 측면에서 시기적 분류에 따라 후학들을 연구하지만, 연구 최종 단계에서는 후학들의 ‘하곡학적 사유의 심화’ 정도에 따라 ‘正宗 하곡학파’ ‘傍系 하곡학파’ ‘別宗 하곡학파’로 나눈다. 이렇게 하곡학파를 분류해야 ‘하곡학적 사유’가 어떻게 전승되었는지 분명해진다.
    셋째, 연구되지 않았던 문집 및 문인 연구: 본 연구 내용에는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문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樗村 沈錥의 『樗村遺稿』, 冠陽 李匡德의 『冠陽集』, 恒齋 李匡臣의 『先藁』, 圓嶠 李匡師의 『斗南集』(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필사본), 月巖 李匡呂의 『李參奉集』, 宛丘 申大羽의 『宛丘遺集』, 信齋 李令翊의 『信齋集』, 玄同 鄭東愈의 『晝永編』, 岱淵 李勉伯의 『岱淵遺藁』, 沙磯 李是遠의 『沙磯集』(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필사본), 蘭谷 李建芳의 『蘭谷存稿』(청구문화사 영인본) 등이다. 이들 문인에 대한 연구는 물론 문집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문집은 필사본 상태로 도서관에 소장되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가 마무리되면 이들 문인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문집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될 것이다.
    넷째, 표점 작업: 문인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문집의 표점 작업이 필수다. 본 연구는 표점 작업을 통해 문집을 활자화하고, 이를 통해 후속 연구자들이 하곡학파 문인들을 쉽게 접근하는데 기여한다.
    다섯째, 2010년 9월 강화도에 ‘하곡학연구원’(원장, 세종대 이경룡 교수)이 개원했다. 연구원은 개원 이후 지금까지 『하곡집』을 강의했으며, 2013년 8월부터 ‘하곡학 교실’을 운영하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곡사상을 강의하고 있다. 연구원의 강의 내용 대부분은 하곡사상이다. 그 이유는 하곡 후학들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후학 연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문집의 표점화도 진행한다. 본 연구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 및 標點화된 자료는 하곡학연구원을 통해 일반인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이것은 본 연구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고, 동시에 교육과 연계되어 활용된다.
  • 연구요약
  • 1. 연구목적:
    기존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하곡학파’에 대한 기존의 분류 방식은 초기․중기․후기 등 ‘시기별 분류’다. (그래서 본 연구에서는 ‘하곡학파’ 다른 방식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둘째, 기존 연구에는 연구되지 않은 하곡학파도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심육, 이광덕, 이광려, 이면백, 이시원, 정동유, 이건승, 이건방 등이다. (본 연구에서는 이들의 학문보다는 ‘하곡학적 사유’에 중점을 두고 연구한다). 셋째, 이미 연구되어 있지만, ‘文集’ 내용이 특정 분야에 한정된 관계로 하곡학적 사유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 또한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이긍익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이긍익에 대한 연구 대부분은 역사학에서 이루어졌다. 이외에 언어학과 관련된 정동유, 노자와 관련된 이충익, 經學과 관련된 申綽 등도 여기에 속한다. (이와 같은 하곡 문인들에 대해 무엇을 근거로 ‘하곡학파’ 범주에 넣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상 세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곡학파의 분류 방식을 새롭게 세우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하곡학적 사유’를 기준으로 학곡학파를 방편적으로 ‘正宗하곡학파’ ‘방계하곡학파’ ‘別宗하곡학파’ 등 세 부류로 나누어 진행하려고 한다.
    하곡학파의 시기별 구분(초기, 중기, 후기)은 ‘하곡학적 사유의 계승’ 관점에서 볼 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연구는 시기 순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연구 내용은 1차년도에 ‘초기 학곡학파’를, 2차년도에 ‘중기 하곡학파’, 3차년도에 ‘후기 하곡학파’로 하고자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2. 연구 내용
    2-1. 1차년도 연구 내용 및 방법
    1차년도의 연구내용은 하곡학파의 시기별 구분에서 초기에 해당된다. 1차년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금까지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문인들에 대한 연구다. 대표적인 문인이 樗村 沈錥, 冠陽 李匡德, 月巖 李匡呂, 宛丘 申大羽 등이다. 문인들의 문집은 ‘한국문집총간’에 있다. 연구방법은 하곡학의 핵심 개념(心卽理․實心實學․眞假論․生理 등)을 언급했는지 살펴본다. 만약 언급하지 않았다면 핵심 개념과 유사한 개념을 언급했는지 살펴본다. 精讀보다는 通讀의 방법을 통해 문집의 내용을 분석한다.
    2-2. 2차년도 연구 내용 및 방법
    2차년도 연구 내용은 시기별로 ‘중기 학곡학파’에 속하는 문인들이다. ‘중기 학곡학파’에는 신대우의 아들 申綽과 申絢, 이광사의 아들 이긍익과 이영익, 이광려의 제자 정동유, 이광명의 양아들 이충익, 그 뒤를 이은 李勉伯, 李是遠과 李止遠, 沈錥의 손자 白雲 沈大允 등이 있다. 이 중 申絢, 이지원의 문집은 남아 있지 않다.
    2차년도 연구 대상 문인들의 문집은 하곡학적 사유보다는 역사나 문학, 언어, 경학 등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문인들의 문집에서 하곡학적 사유를 모색해야 한다.
    2-3. 3차년도 연구 내용 및 방법
    정후일의 高孫 정문승, 정원하, 이시원의 학문을 계승한 이상학, 이건창, 이건승, 그리고 이건방 등이 연구 내용이다. 이 중 정문승, 정기석, 정원하(만주로 망명해서 독립운동), 이상학 등의 문집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건창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많이 이루어졌다. 본 연구에서는 ‘하곡학적 사유’가 실천정신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지를 살펴본다.
    난곡 이건방과 경재 이건승의 문집은 한국문집총간에 없다. 『난곡존고』는 청구문화사에 의해 영인본이 보존되어 있고, 『경재집』(『海耕堂收艸』라고도 한다)은 출판되었다. 그러나 출판된 『경재집』은 만주로 망명한 후의 遺稿다. 경재는 망명 이전에서 많은 글을 남겼는데, 이것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필사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경재의 문집에는 만주에서 독립운동 서술이 많다. 난곡은 경재에 비해 하곡학적 사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난곡은 道義․眞假 등 하곡학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의 학술사상을 드러냈다.
    ‘후기 하곡학파’의 특징은 그들이 처한 시대적 배경 때문에 ‘하곡학적 사유’보다는 실천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3차년도 연구는 시대적 배경과 연결하여 하곡학파의 ‘실천정신’을 찾는데 주력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 국문
  • 본 연구는 ‘한국유학에서 ‘하곡학파’란 무엇인가?’ ‘한국유학에서 ‘하곡학파’는 존재하는가?’라는 두 가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출발했다. 본 연구의 연구결과를 초기하곡학파, 중기하곡학파, 후기하곡학파로 나누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초기하곡학파: 문인들의 문집에서 하곡학적 사유체계가 비교적 농후한 李匡臣과 李匡師 및 李匡呂의 하곡학적 사유를 밝히고, 나아가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하곡의 학문을 수용하고 살펴보려고 한다.
    심성론: 하곡의 心은 性이고 理이다. 하곡은 性을 ‘性의 德’과 ‘性의 質’로 나눈다. ‘성의 덕’은 도덕실천의 본성으로서 도덕심이다. ‘성의 질’은 육체적 욕망 욕심이다. 하곡이 말하는 ‘성즉리’의 性, ‘心卽理’의 心은 전자의 도덕본성이고 眞理之心(實心)이다. 항재는 心도 性도 理氣의 합으로 보았다. 그래서 ‘성즉리’도 형기와 관련되지 않은 性만이 ‘성즉리’라고 했다. 항재가 말한 ‘형기와 관련되지 않은 성’이란 하곡의 도덕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항재는 하곡의 심성론을 부분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원교의 ‘겉과 속이 꼭 같게 하는 것(以其心情, 只如外面, 已而已矣)’은 하곡의 實心이다. 그러므로 원교는 하곡의 實心을 철저하게 계승했다. 원교 또한 ‘性卽理’를 주장했지만, ‘性’이 악이 될 수 있다는 점은 하곡과 다르다. 월암에게 있어서 ‘실심’은 학문의 근원일 뿐 아니라 실천의 근원이며, 도를 실현하는 근본이다. 따라서 실심을 리로 본 것은 틀림없다. ‘性’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이기론: 하곡의 리는 妙用不息하면서 常體常存하는 역동적인 리이다. 이기의 관계에 있어서는 理氣一元이지만 리를 氣보다 본질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 항재는 理氣一物을 부정하지만, 오묘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一物로 본다. 이것은 하곡이 理氣를 연관관계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본 것과 유사하다. 항재는 ‘寂然’의 ‘寂’을 리의 역동적인 오묘함을 형용하는 것이라고 보고, ‘寂然의 리’를 통해 動靜體用同一論을 주장하는데, 하곡의 ‘妙用不息과 常體常存’의 ‘理’와 유사하다. 원교는 理와 氣를 둘로 나누는 것을 우려했을 뿐 아니라, 理氣를 動과 靜으로 나누고, 또 理의 역동성을 부정하는 朱栗의 성리학에 불만을 가졌다. 이는 動靜一理를 주장하고 리의 역동성을 강조한 하곡의 이기론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격물치지론: 왕양명은 ‘格’을 ‘바르게 하다(正)’로, ‘物’을 ‘心 안의 物’로, ‘知’를 良知로 해석했다. 하곡의 해석은 양명과 같다. 핵심은 ‘物’이 心 밖의 物이 아니라, ‘心 안의 物’이라는 점이다. 항재는 ‘格’을 ‘이르다(至)’ 또는 ‘바르게 하다(正)’ 모두 상관없다고 보았고, 또 ‘치지’의 知도 ‘良知’와 ‘지식의 知’ 모두 상관없다고 보았다. 物은 ‘심 밖의 物’로 파악했다. 이처럼 항재는 ‘격물치지’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이런 관계로 ‘朱王절충론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원교의 문집에는 ‘격물치지’를 논한 글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中翁의 편지를 근거로 유추할 때, 物을 ‘心 안의 物’로 보았기 때문에 하곡의 ‘物論’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중기하곡학파:
    후기하곡학파: 실심은 하곡학의 常道이며, 상도로서의 실심은 후기 하곡학자 영재 이건창, 경재 이건승 그리고 난곡 이건방으로 이어지고, 후에 위당 정인보로 계승되었다. 영재, 경재, 난곡은 실심을 바탕으로 서세동점과 일제 강점기라는 국가적 위기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다.
    후기학곡학파의 학문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영재는 왕에게 올리는 시무책을 통해 국왕의 공정한 법집행․인재등용․공정한 시험 등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영재 동생 경재는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을 때, 자결하지 못하고 간도로 망명했다. 강화도에 있을 때에는 계명의숙을 통해어 동양의 학문 뿐 아니라 서양의 학문도 가르치면서 인재를 양성했다. 고난한 망명지에서는 민족정신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한국역사 및 독립투사들의 항일운동을 기록했다.
    영재의 從弟 난곡은 종형 경재의 만류로 강화에 남아 하곡학을 전수했다. 난곡은 을사늑약으로 인한 순절 문제, 剃髮 문제 등에 대해 실심을 지키면서 시의성 있는 행동을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순절과 체발의 적절성 여부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상황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형 경재와 마찬가지로 서양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난곡 자신도 서양의 학문을 탐구했다.
  • 영문
  • The main theme of this study is 'What is' Hagok School 'in Korea Confucianism?' And 'Hagok School' in Korea Confucianism. The results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Early, middle, and late Hagok school.
    This study examined a early stage Hagok school’s Thought. The person who belongs to the early stage Hagok school Wongyo, Woram, Hangjae, Simyuk, Ijinbyeong, Yunsun, Yusuwon, Simdaeyun. In this paper, Hangjae, Wongyo, Woram hagokak of the discussion.
    Theory of mind: The mind what Hagok said is Nature(性) and Li(理). The mind what Hagok said is divided ‘nature of moral(性의 德)’ and ‘nature of quality(性의 質)’. ‘nature of moral’ is Moral Mind(도덕심). ‘nature of quality’ is physical desire and greed. Hagok say Nature, Mind is Moral nature and sincere mind(實心). Hanjae saw the mind, the nature, too Li and Qi in the mix. This is Hagok’s theory of mind. Wongyo’s mind is Hagok’s sincere mind. So Wongyo thoroughly succeed Hagok’s sincere mind. Wongyo too insist ‘nature is Li’. But Wongyo insist nature will be evil. This is different from Hagok. For woram the source of ‘sincere mind’ is the source of learning, and practice. So sincere mind must be seen as Li. It is almost no mention of nature.
    Theory of Li-Qi: Hagok’s Li is dynamic Li. Li and Qi relationship is ‘Li and Qi One source’. But ‘Li’ was seen as essential than ‘Qi’. Hangjae denied ‘Li and Qi one things’. But That there is a close relationship in terms of ‘one things’ thought. This is Hagok’s Li and Qi relationship. Hangjae says ‘Li’ is similar to Hagok of ‘Li’. Wongyo is divided by ‘Li and Qi’ and objected, divided by ‘movement and stillness’. This is succeeded Hagok’s theory of Li-Qi.
    The inverstgation of things and extension of Knowledge: Wang Yangming translate into ‘investigate(格)’ the ‘straighten out (正)’, and translate into ‘things’ the things in the mind’, translate into ‘knowledge’ the good knowledge. The Hangjae investigate all ‘come’ or ‘straighten out’ doesn't matter. Hangjae ‘know’ the interpreted ‘good knowledge’ or ‘knowledge’ but all it doesn't matter. and ‘the things out the mind’ to the things. The hangjae of very vague in a ‘the inverstgation of things and extension of Knowledge’ attitude. Wongyo discuss ‘gaining knowledge by the study of things’ in a collection of works of the article doesn't look.
    Middle Hagok school:
    The late Hagok School:
    Real Mind(實心) is the unchanging principle of Hagok. The Unchanging Principle of Real Mind was passed on to Lee geonchang, Lee geonseung and Lee geonbang, who later became Chung inbo scholars. Lee geonchang, Lee geonseung and Lee geonbang responded in various ways to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based on the Real mind.
    The academic leader of the late Hagok school is Lee geonchang. He argued that the king should be given fair law enforcement, good talent recruitment and fair test. He tried to overcome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rough this system.
    Lee geonseung When he lost his country to Japanese imperialism, he refused to commit himself and exiled to the north Gando of China.
    When He was in Ganghwa Island before exile, He built a school(啓明義塾) and cultivated talent while teaching Western sciences as well as oriental sciences. After the exile, he wrote history of Joseon and anti-Japanese movement of independence fighters to inspire national spirit and historical consciousness.
    Lee geonbang is a cousin of Lee geonchang. Lee geonbang remained in Ganghwa Island in opposition to his cousin Lee geonseung's asylum, teaching his students the discipline of Hagok. He insisted on keeping the Real mind in mind for self-immolation for one's loyalty, the ordinance prohibiting topknots, and so on. In academic terms, like Lee geonseung, he argued that he should actively learn Western studies. And he himself explored Western studies.
연구결과보고서
  • 초록
  • 본 연구는 ‘한국유학에서 ‘하곡학파’란 무엇인가?’ ‘한국유학에서 ‘하곡학파’는 존재하는가?’라는 두 가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출발한다. 이 두 가지 문제의식을 통해 연구자는 ‘하곡학파’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를 재정립하려고 한다. 즉 하곡학은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연구자가 말하는 ‘재정립’이란 하곡학 전승 과정에서 하곡학의 핵심 개념(예를 들면 心卽理․實心實學․眞假․生理 등)이 재해석되었는지? 다시 말하면 학술적 심화가 이루어졌는지? 혹은 하곡학의 개념을 언급했지만 학술적 심화는 없는 경우다. 또 다른 경우는 家承이든 師承 관계이든 어떠한 형태로든 하곡학을 배웠지만, 하곡학과는 별로 관계없는 길을 간 경우도 있다. 기존의 연구는 이들 모두를 ‘강화학파’라고 하면서 하곡학 범주에 두었다.
    현재 하곡학에 대한 연구는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이제 하곡학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家乘 혹은 師承 관계로 하곡학을 접했지만, 문집이 서예나 역사․文章․老莊學 등에 국한되어 있는 사람도 ‘하곡학파’에 넣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만약 ‘하곡학파’에 넣는다면 학술적 심화를 이룬 사람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하곡학은 ‘강화학파’라는 이름으로 ‘초기 하곡학파’ ‘중기 하곡학파’ ‘후기 하곡학파’ 등 시기별로 구분했다. ‘시기별 구분’은 가장 단순한 방법이다. 연구자는 하곡 문인들의 하곡사상 계승의 정도에 따라 ‘正宗 하곡학파(하곡학적 사유를 심화시킨 문인. 창시자의 정통을 이어받은 종파를 뜻하는 의미에서 차용함)’, ‘傍系 하곡학파(하곡의 핵심 개념은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문인. 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친계를 뜻하는 의미에서 차용함)’, 그리고 ‘別宗 하곡학파(家學 혹은 師承 관계로 하곡학을 계승했지만 문집 속에서 하곡학적 사유를 발견할 수 없는 문인. 본관이 같으면서 종족을 달리 하는 의미에서 ‘별종’이란 용어를 차용했다. 하곡학과 전혀 다른 학문의 한 계보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용했다)’라는 假說 아래 하곡학파를 재정립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재분류를 통해 하곡의 학술사상을 계승한 문인이 누구이고, 계승된 하곡의 학술사상이 어떻게 전개되어 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이 하곡학파를 재정립하려는 의도이면서 본 연구의 목적이다.
    본 연구는 하곡학파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연구를 진행했다. 초기하곡학파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역할 수 있다. 심성론: 하곡의 心은 性이고 理이다. 하곡은 性을 ‘性의 德’과 ‘性의 質’로 나누었다. 항재는 心도 性도 理氣의 합으로 보았다. 이는 항재가 하곡의 심성론을 부분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교 또한 ‘性卽理’를 주장했지만, ‘性’이 악이 될 수 있다는 점은 하곡과 다르다. 월암은 실심을 리로 보았다. 이기론: 하곡의 리는 妙用不息하면서 常體常存하는 역동적인 리이다. 항재는 하곡과 마찬가지로 리를 妙用不息과 常體常存의 ‘理’로 보았다. 원교 또한 리의 역동성을 강조한 하곡의 이기론을 계승했다. '격물치지'에 있어서는 항재는 모호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 원교의 문집에는 ‘격물치지’를 논한 글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이 초기하곡학파의 사상적 특징이다.
    중기하곡학파의 특징은 하곡학적 학술사상이 문집에 확연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곡학적 사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상적 은둔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후기하곡학파의 특징은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과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실천에 중점을 두었던 점이 특징이다. 후기하곡학파 영재, 경재, 난곡은 하곡의 실심을 바탕으로 서세동점과 일제 강점기라는 국가적 위기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다. 영재는 왕에게 올리는 시무책을 통해 국왕의 공정한 법집행․인재등용․공정한 시험 등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영재 동생 경재는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을 때, 자결하지 못하고 간도로 망명했다. 강화도에 있을 때에는 계명의숙을 통해어 동양의 학문 뿐 아니라 서양의 학문도 가르치면서 인재를 양성했다. 고난한 망명지에서는 민족정신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한국역사 및 독립투사들의 항일운동을 기록했다.
    영재의 從弟 난곡은 종형 경재의 만류로 강화에 남아 하곡학을 전수했다. 난곡은 을사늑약으로 인한 순절 문제, 剃髮 문제 등에 대해 실심을 지키면서 시의성 있는 행동을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순절과 체발의 적절성 여부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상황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형 경재와 마찬가지로 서양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난곡 자신도 서양의 학문을 탐구했다.
  •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 산업사회 속에서 인문학의 위상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의 고민 역시 안문학적 연구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많은 고민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학술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하곡학 연구의 길을 열어놓은 정량완, 심경호의 공저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1-4)』은 현재 하곡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저술이다. 다시 말하면 비록 하곡학 연구자들만 보는 저술이지만, 지금처럼 하곡학과 관련된 연구 성과가 많이 나오게 하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하곡학파 전체를 ‘하곡학’이라는 사상적 관점에서 하곡학파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과 차이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 연구의 활용성은 하곡학파 연구를 심도 있고 세분화하는데 기여하리라 기대한다. 본 연구결과의 활용계획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곡학파 연구의 새로운 방향 제시: 하곡학파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하곡학파 문인들의 한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이런 결과 하곡학파의 중심축인 ‘하곡학적 사유의 전승’이라는 핵심 내용이 사라져 버렸다. 본 연구는 ‘하곡학적 사유의 전승’ 관점에서 ‘하곡학의 損益(『논어』「爲政」23에 나오는 損益을 가리킴)’을 검증하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의 연구는 지금까지 없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후 진행되는 하곡학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둘째, 연구되지 않았던 문집 및 문인 연구: 본 연구 내용에는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문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언급했다). 이들 문인에 대한 연구는 후속 연구 발전에 기초가 된다.
    셋째, 표점 작업: 문인들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문집의 표점 작업이 필수다. 본 연구는 표점 작업을 통해 문집을 활자화하고, 이를 통해 후속 연구자들이 하곡학파를 쉽게 접근하는데 기여한다.
    넷째, 우리말 번역: 문집 전체를 번역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상과 관련된 부분에서 주요 부분은 대부분 번역했으며, 그 결과의 일부분을 논문을 통해 발표했다.
    다섯째, 2010년 9월 강화도에 ‘하곡학연구원’이 개원했다. 개원 이후 줄곧 하곡학과 관련된 문집(특히 하곡후학과 관련된 문집)을 강의 하고 있으며, 2013년 8월부터 ‘하곡학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곡학 교실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다. 본 연구에서 이루어진 성과 및 標點화된 자료, 그리고 우리말로 번역된 자료는 하곡학연구원을 통해 일반인에게 제공되고 있다.
    여섯째, 하곡학파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미진하다. 특히 연구되지 않은 문집도 있고(월암 이광려의 필사본 문집), 연구되었다 하더라도 문집의 내용에 대해서는 연구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다(석천 신작의 『역차고』). 본 연구는 이들에 대해서도 연구가 되었다. 따라서 이후 하곡학파 연구에 많이 활용될 수 있다.
  • 색인어
  • 하곡 정제두, 항재 이광신, 원교 이광사, 월암 이광려, 완구 심대우, 신재 이영익, 석천 신작, 心卽理, 實心, 實學, 格物致知, 초기하곡학파, 중기하곡학파, 후기하곡학파, 이건창, 경재 이건승, 난곡 이건방
  • 연구성과물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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