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20세기 후반 형성된 한국 현대음악의 흐름을 사회문화사적인 맥락 속에서 본격적으로 탐사해나가려는 기획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의 음악문화는 이전 세기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서양음악 ...
이 연구는 20세기 후반 형성된 한국 현대음악의 흐름을 사회문화사적인 맥락 속에서 본격적으로 탐사해나가려는 기획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의 음악문화는 이전 세기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서양음악의 유입으로 ‘작곡가’와 ‘작품’이라는 서구 근대의 표상이 음악 창작의 영역에 자리 잡게 된 후, 오늘날까지 수많은 음악들이 새롭게 창작되고 연주되었지만, 그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아직 걸음마단계에 불과하다. 최근 들어 한국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연구가 증가하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그것이 단순한 생애 기술과 작품 분석을 넘어서 논점이 있는 작가론이나 작품론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대한 통찰과 사회적 맥락, 미학적 가치에 대한 해석이 면밀히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개별 작곡가나 작품에 대한 연구에서조차 한국 창작음악의 전반적 흐름에 대한 조망이 어느 정도는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도된 바 없다. 특히 20세기 후반의 한국 현대음악에 대해서는 이슈와 논점은 물론이고 정확한 자료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 연구는 바로 이 지점에 천착하여,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현대음악의 지형도를 그려나가기 위한 기초 연구로서 기획되었다. 그 첫 시도로서 우선 한국 현대음악의 역사에서 두드러진 패러다임 변화를 모더니티(현대성), 정체성, 전지구화 라는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조명해보고자 한다.
한국에 ‘현대음악’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이나, 이 연구는 1960년대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의 ‘새로운’ 창작이 본격적으로 시도되었고,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납치 귀국한 윤이상으로 인해 현대음악에 대한 사회적 관심 또한 크게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1960년대는 한국 사회 전반에서 지적, 문화적 ‘현대성’이 형성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연구는 그 첫 과제로 한국 현대음악의 형성과정에서 모더니즘의 문제를 다룬다. 과연 한국의 음악 장(場)에서는 모더니즘이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내고, 전지구화 시대에 이르면 그 문제의식이 어떻게 변모되어 가는지도 함께 살펴보려 한다.
한편 방법론의 측면에서 이 연구는 지금까지의 개별 작곡가나 작품 연구와 달리 그들을 가로지르는 사유와 담론을 통해 그 시대의 창작적 이슈와 화두를 찾아내고, 그것을 한국 현대사의 맥락 속에서, 타 예술들과의 연관 속에서 해석해보고자 한다.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문화적 정체성, 전지구화 담론은 인문학 전반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바, 최근의 새로운 연구 방법론까지 포함하여, 한국 현대음악의 흐름을 심층적으로 논구하는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현대음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음악이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다른 분야의 특정한 전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가 그간의 창작 음악 연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라면, 바로 음악 연구를 인문학적 지평으로 확장해보려는 시도가 아닐까 한다. 개별 작곡가나 작품의 음악적 측면은 각각의 주제 속에서 적절한 예시를 통해 충분히 다뤄질 것이다.
이 연구는 다양한 시공간과 층위에서 벌어진 개별 작업들을 사유와 담론의 틀에 따라 연관 짓고 계열화함으로써 한국 현대음악의 역사적 내러티브를 재구성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러한 내러티브(서사)들이 풍부해지고 두터워질수록 한국 현대음악은 음악계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속에서, 나아가 세계 음악의 현장에서 자신의 존재론적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음악적 모더니즘의 형성과정, 정체성에 대한 작곡가들의 문제의식 변화, 전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벌어지는 융합과 분기의 현장을 살펴보는 것은, 결국 현재의 모습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1960년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 현대음악의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한국 현대음악의 흐름을 심층적이고 두텁게 이해하는 단초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21세기 현대 한국 현대음악의 모습을 반추하는 계기로 삼고자 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