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적 기억의 장소 만들기: '그뤼네스반트(Grünes Band)'
- 독일 비무장지대에서 유럽 그린벨트로 - Making the Ecological lieux de mémoire: ‘Grünes Band’
―from the German DMZ to the European Greenbelt―
‘생태학’과 ‘기억의 장소’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일견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자는 자연과학의 범주에 속하지만 후자는 인문학의 담론이며, 전자는 현재의 문제들을 겨냥하지만 후자는 과거의 흔적들을 추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개념은 ‘자연’과 ‘인간’ ...
‘생태학’과 ‘기억의 장소’라는 두 단어의 조합은 일견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자는 자연과학의 범주에 속하지만 후자는 인문학의 담론이며, 전자는 현재의 문제들을 겨냥하지만 후자는 과거의 흔적들을 추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개념은 ‘자연’과 ‘인간’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사상적 맥락에서 생태학은 자연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의 두 흐름으로 압축되며, 기억의 장소는 인간과 그를 둘러싼 자연의 관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어 온 자취들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 두 개념의 공통분모를 학문적 영역으로 치환하면 ‘환경사’라는 분야가 도출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환경사 연구의 주류는 과거 인간중심적인 환경주의와 자연중심적인 생태주의를 구분하고자 했다. 하지만 최근 생태학의 입장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로 유연해졌다. 즉 자연을 절대선으로, 인간의 개입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극단적 이원론의 입장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많은 연구자들의 동의를 얻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환경사 연구의 목적은 인간과 그 주변 환경 사이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것으로서, 바로 여기에서 기억 이론과 환경사가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과 당위성이 도출된다. 이 연구는 이러한 환경사의 문제의식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절한 이론틀을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에서 찾는다. 이론보다는 사례연구에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온 독일 환경사의 흐름을 잇는 이 연구는 경험적 분석과 이론적 성찰 사이의 균형추를 찾고자 한다. 따라서 이 연구는 ‘철학이 없는 환경사’도, ‘철학만 존재하는 환경사’도 지양한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역사적으로 탐구하는 환경사의 과제에 가장 잘 부응할 수 있는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는 바로 이러한 의도에 부합하는 방법론이다. 환경문제와 관련된 독일의 경험 중에서도 반드시 반추해 보아야 할 대상 가운데 하나가 과거 독일의 비무장지대였던 ‘그뤼네스반트(Grünes Band)’다. 분단은 과거 동서독 군사분계선의 생태환경 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냉전이 초래한 철조망과 지뢰는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의 생존을 위협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은 오히려 오랫동안 인간의 간섭이 미치지 않은 덕분에 희귀 생물종들이 서식할 수 있는 천혜의 장소가 되었다. 1989년 12월 이곳은 ‘그뤼네스반트’로 공식 선언되었고, 이로써 분단과 죽음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평화와 생명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2002년 고르바초프는 그뤼네스반트를 남북으로 확장하는 ‘유럽 그린벨트’ 운동을 제창했고, 이로써 과거 ‘철의 장막’이었던 이곳은 유럽의 정계와 시민사회에서 가장 주목하는 공간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냉전의 기억의 장소였던 비무장지대가 유럽인들의 미래 환경을 담보하는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로 거듭난 것이다. 그뤼네스반트가 선포된 지 25년 남짓 지난 시점에서 역사화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으나, 독일 통일의 경험이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되어 온 만큼 이 역시 한반도 환경정책의 수립에 반드시 참조해야 할 사안이다. 역사학적 가치로만 보아도 이는 기억의 장소 이론의 확대, 적용 가능성을 실험해본다는 측면에서 중요성이 충분히 인정된다. 그뤼네스반트는 민족적 기억과 유럽적 기억, 지구적 기억이 교차하고 중첩되는 장소다. 2012년 그뤼네스반트 운동을 주관하는 독일연방자연보호청과 비무장지대의 문제를 공유하는 경기도가 상호협력을 선언한 사실은 이 주제가 갖는 지구적 의미를 증언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경계는 분리하고 자연은 연결한다”는 그뤼네스반트 운동의 구호처럼, 지역적·국가적 갈등과 전지구적 화합의 흐름이 공존하는 현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환경사 연구의 사례를 소개하고 이를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라는 분석틀로 조명하는 데 있다. 분단의 경험과 통일의 과제를 공유하는 독일 그뤼네스반트의 사례는 역사교육, 환경교육, 평화교육의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반드시 성찰이 필요한 주제라고 판단된다.
기대효과
첫째, 학문적 차원에서 이 연구의 활용 방안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환경사 연구와 기억 연구의 확산 가능성이 그것이다. 환경사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이론이나 연구사 소개 또는 경험적 연구 한 쪽에 편중되어 왔던 연구경향을 발전적으로 보완하게 될 것이며, 기 ...
첫째, 학문적 차원에서 이 연구의 활용 방안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환경사 연구와 기억 연구의 확산 가능성이 그것이다. 환경사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이론이나 연구사 소개 또는 경험적 연구 한 쪽에 편중되어 왔던 연구경향을 발전적으로 보완하게 될 것이며, 기억 연구 측면에서는 역사와 기억 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풍성하게 하는 사례들을 제공할 수 있다. 둘째, 사회적 차원에서 이 연구는 우리의 현안인 통일과 그 이후의 문제 해결에 중요한 독일의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역사학이 공동체의 현재적 필요에 부응해야 할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의 결과를 통해 환경문제 및 환경의 역사에 대한 대중의 문제의식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교육적 차원에서도 이 연구의 활용 가치는 높다. 그뤼네스반트의 사례는 경험적 환경사 연구로서 역사교육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환경보전을 통한 평화교육의 사례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최근 한반도 비무장지대의 생태보전지구화 및 평화공원 건설에 관한 논의는 ‘그린 데탕트(Green Détente)’라는 개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환경보호를 둘러싼 남북한의 대화가 가속화되고 그로 인해 상호이해의 증진이 가능해진다면, 중장기적으로 통일을 위한 점진적인 인식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독일 그뤼네스반트 운동은 통일을 대비한 평화교육과 환경교육의 일환으로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귀중한 사례가 될 것이다.
연구요약
방법론적 측면에서 이 연구는 첫째, 이론과 사례연구의 결합을 시도한다. 이는 미국 중심의 거시적 관점과 이론적 연구를 독일 중심의 경험연구가 갖는 장점과 결합하려는 시도다. 구체적으로는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라는 이론과 ‘그뤼네스반트’라는 사례를 통해 환경사 ...
방법론적 측면에서 이 연구는 첫째, 이론과 사례연구의 결합을 시도한다. 이는 미국 중심의 거시적 관점과 이론적 연구를 독일 중심의 경험연구가 갖는 장점과 결합하려는 시도다. 구체적으로는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라는 이론과 ‘그뤼네스반트’라는 사례를 통해 환경사와 기억의 장소 이론이 결합되었을 때 어떠한 상승효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검증하고자 한다. 둘째, 이 연구는 독일 환경사 연구의 일부로서, 독일 환경주의의 두 가지 특징인 국가의 정책적 지도력과 시민사회의 자율적 동력이라는 긴 흐름을 결합한다. 독일연방자연보호청과 독일 최대의 민간 환경단체인 BUND를 양대 축으로 전개되는 그뤼네스반트 운동이야말로 이 두 가지 힘이 수렴되는 장소다. 이처럼 독일 환경주의의 긴 흐름 속에서 이 주제를 고찰하는 것은 이 운동의 역사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이 연구는 대상의 성격상 지역, 국가, 초국가라는 다차원적 시각에 입각하여 진행된다. 즉 냉전이라는 트랜스내셔널 구도에서 생겨난 동서독 군사분계선이 독일 ‘민족’의 문제가 되고, 다시 유럽 및 지구 차원으로 확대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넷째, 이 연구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생태학의 시대’의 한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연구에 해당한다. 생태주의와 환경주의 사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가능성 여부에 대한 논란이다. 이 연구는 독일 그뤼네스반트 운동이 주력하고 있는 ‘체험 그뤼네스반트’ 프로그램의 사례를 통해, 자연체험 및 향유가 과연 자연보호와 공생 가능한가를 질문하고자 한다. 논문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본론의 첫 부분인 Ⅱ장은 연구의 이론적 바탕을 다지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를 위해 논문의 전개에 전제가 될 질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서술할 예정이다. 연구의 출발 단계에서 가정하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①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라는 개념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②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가 일반 기억의 장소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디인가? ③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에 대한 연구는 환경사와 기억 이론에, 궁극적으로는 역사학에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Ⅲ장은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 이론에 입각하여 독일 비무장지대가 그뤼네스반트로 진화한 과정과 그 주요 활동 및 수용의 역사를 검토한다. 그뤼네스반트 운동의 탄생일은 1989년 12월 9일로서, 이날 동서독 환경운동가들이 모인 가운데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사이의 경계지대는 중유럽의 녹색 띠이자 생태적 척추로서,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그뤼네스반트 운동은 민·관의 합작 형태로 진행되며, 구체적으로는 연방정부가 재정, 주정부는 행정, 환경단체는 운영과 연구를 담당한다. 이로써 그뤼네스반트 운동은 사안에 따라 국가와 협력하기도, 저항하기도 하는 독일 환경운동의 유연성을 입증한다. 주력 사업은 사유지 매입을 위한 ‘그뤼네스반트 증서’ 판매, 그리고 자연보호와 자연향유의 목적을 결합한 ‘체험 그뤼네스반트’ 프로그램 운영이다. Ⅳ장은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의 맥락에서 독일 그뤼네스반트가 유럽 그린벨트로 확대되는 과정과 그 의미를 검토한다. 2002년 6월 19일 아이히스펠트에서 개최된 ‘동서의 문’ 개막식에 초청받은 고르바초프는 ‘그뤼네스반트 증서’를 받고 유럽 그린벨트 운동을 제창했다. 냉전기에 ‘철의 장막’을 형성했던 이곳을 생태보전지역으로 부활시키고자 하는 유럽 그린벨트 프로젝트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중유럽/발칸/오스트제 구역으로 4분되어 진행되고 있다. Ⅴ장은 그뤼네스반트 운동의 초국가적, 생태적 함의를 언급하고자 한다. 독일 그뤼네스반트와 유럽 그린벨트 운동은 분열과 죽음의 공간이었던 과거의 상흔을 지우고 연대와 생명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말처럼, “오늘날 그것은 유럽 국가들과 민족들의 성장과 평화로운 미래를 향한 희망을 상징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이 연구는 독일 그뤼네스반트 운동을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로서 조명하고자 한다. 뮌헨의 레이첼 카슨 센터에서 ‘환경과 기억’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위쾨터에 따르면, 이는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소’ 이론을 환경사의 문제의식과 결합한 것이다. 노라의 정의에 따 ...
이 연구는 독일 그뤼네스반트 운동을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로서 조명하고자 한다. 뮌헨의 레이첼 카슨 센터에서 ‘환경과 기억’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위쾨터에 따르면, 이는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소’ 이론을 환경사의 문제의식과 결합한 것이다. 노라의 정의에 따르면 ‘기억의 장소’는 반드시 지리적 장소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하고 풍부한 상징적, 감정적 함의들을 통해 우리의 역사적 기억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해 준다. 마찬가지로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 또한 인간과 자연세계의 상호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 시기적 그리고 지리적으로 제한된 역사적 사건들을 의미한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환경에 관한 오늘날의 논쟁과 실천들을 구성하고 있는 정치적, 문화적 제반 결과들을 생산했다. 독일 그뤼네스반트란 과거 독-독 내부국경을 일컫는 새로운 이름이다. 독일 통일 첫 해인 1989년 12월 독일연방자연보호청 바이에른 지부는 호프에서 동서독 환경운동가들의 첫 집회를 개최했으며, 이곳에서 통일 독일 최초의 자연보호 프로젝트인 그뤼네스반트 운동의 명칭과 개념이 탄생했다. 그뤼네스반트는 독일 정부가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자연경관의 하나이며, 연방정부와 주정부, 기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독일 그뤼네스반트 안에는 수많은 생물종이 있으며 독특하고 가치 있는 서식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은 여가활동의 장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현재 ‘체험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는 자연보호와 '생태'관광이라는 두 목적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
영문
This study discusses the German Grünes Band Movement as an 'ecological site of memory.' After Frank Uekötter, leader of the project 'Environment and Memory' of the Rachel Carson Center in Munich, Pierre Nora's idea of lieux de mémoire(sites of memory) ...
This study discusses the German Grünes Band Movement as an 'ecological site of memory.' After Frank Uekötter, leader of the project 'Environment and Memory' of the Rachel Carson Center in Munich, Pierre Nora's idea of lieux de mémoire(sites of memory) offers points of departure. Following Nora, 'sites of memory' are not necessarily geographic places, and comprise an abundance of symbolic and emotional connotations that open a window into our historical memories. In the same manner, ecological sites of memory mean historical events, limited in chronological and geographic respects, that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interaction of man and the natural world. They resonated in history over a longer period of time, producing a multitude of political, cultural and other consequences that still shape environmental debates and practices in our present time. The German Grünes Band(Green belt) is the new name of the former inner-German border. Back in the first year of reunification, in December 1989, the Bund Naturschutz(BN), the Bavarian branch of the Bund für Umwelt und Naturschutz Deutschland(BUND), organised the first meeting with nature conservationists from East and West Germany in Hof. Here the name and the concept of the Grünes Band was born, the first pan-German nature conservation project. It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natural landscapes of Germany, promoted by the German government. Today many partners are involved in the German Grünes Band: federal and local authorities along with numerous local volunteers. The German Green Belt hosts high species richness and form a unique system of valuable habitats. It thus also offers high recreation value for people. The 'Green Belt Experience' project initiated successful cooperation between nature conservation and 'ecological' tourism.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이 연구는 노라의 ‘기억의 장소’ 이론을 환경사의 문제의식과 결합한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 이론을 바탕으로, 이를 독일 그뤼네스반트 운동의 사례에 적용한 시도의 결과물이다. 이 연구는 독일 환경주의의 두 특징인 국가의 정책적 지도력과 시민사회의 자율적 동력이 ...
이 연구는 노라의 ‘기억의 장소’ 이론을 환경사의 문제의식과 결합한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 이론을 바탕으로, 이를 독일 그뤼네스반트 운동의 사례에 적용한 시도의 결과물이다. 이 연구는 독일 환경주의의 두 특징인 국가의 정책적 지도력과 시민사회의 자율적 동력이 그뤼네스반트 운동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지역과 국가, 초국가라는 다차원적 관점에서 그뤼네스반트 운동이 갖는 의미를 성찰한다. 즉 냉전이라는 트랜스내셔널 구도에서 생겨난 동서독 군사분계선이 독일 ‘민족’의 문제인 군사분계선이 되고, 탈냉전 후 환경운동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이 지역으로부터의 영향이 다시 유럽과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보고자는 연구기간 동안 총 2차례의 현장 답사를 수행했다. 2016년 1월-2월의 1차 답사에서는 뉘른베르크의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 사무소, 옛 독일 내부국경이자 유럽 그린벨트 운동의 발상지인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 베를린 베르나우어 거리의 장벽 기념관에서 이루어지는 통일, 평화, 환경교육 현황을 점검했다. 2016년 7월의 2차 답사에서는 ‘체험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의 거점 중 하나인 렌첸을 방문하여 여가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생태관광과 자연보호의 두 목적이 그뤼네스반트 운동 안에서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가를 관찰했다. 2차례의 답사 및 연구문헌 검토의 결과, 연구 범위는 계획서 제출 당시의 내용에서 일부 수정되었다. 유럽 그린벨트 운동을 포함했던 원래의 계획을 축소하고, 대신 독일 그뤼네스반트 운동의 기억을 긴 흐름에서 추적하기 위해 통일 이전 독일 내부국경의 기억을 다룬 장을 추가했다. 논문은 총 5장으로 구성된다. 본론의 첫 부분인 Ⅱ장은 연구의 이론적 바탕을 다지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를 위해 논문의 전개에 전제가 될 질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①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라는 개념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 ②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가 일반 기억의 장소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디인가? ③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에 대한 연구는 환경사와 기억 이론에, 궁극적으로는 역사학에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Ⅲ장은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 이론에 입각하여 통일 전후 그뤼네스반트 지역을 둘러싼 기억의 변화를 추적한다. 냉전기에 독-독 내부국경은 인간은 물론 동식물을 비롯한 생태계에 큰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인 1989년 12월 9일 동서독 환경운동가들은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사이의 경계지대는 중유럽의 녹색 띠이자 생태적 척추로서,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이로써 과거의 내부국경은 ‘그뤼네스반트’로 변모했다. 그뤼네스반트 운동은 민·관 합작 형태로 진행되며, 구체적으로는 연방정부가 재정, 주정부는 행정, 민간 환경단체는 운영과 연구를 담당한다. 이로써 그뤼네스반트 운동은 사안에 따라 국가와 협력하기도, 저항하기도 하는 독일 환경운동의 유연성을 입증한다. Ⅳ장은 ‘체험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의 네 거점지역 중 아이히스펠트와 렌첸을 중심으로 자연보호와 자연향유라는 두 목적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를 검토한다. 아이히스펠트는 옛 독일 내부국경 가운데 대표적인 국경초소로서 분단의 비극이 아로새겨진 곳이었으나 현재는 국경박물관으로 변신하여 통일, 평화 환경교육의 메카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은 또한 2002년 고르바초프가 ‘유럽 그린벨트 운동’을 제창한 장소이기도 하다. 렌첸에서는 엘베 강 생태체험을 비롯한 다양한 여가활동이 가능하며, 그밖에도 4개 연방주의 접경이라는 지리적 특징을 활용한 역사, 자연, 문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Ⅴ장은 그뤼네스반트 운동의 초국가적, 생태적 의미를 성찰한다. 독일 그뤼네스반트는 분열과 죽음의 공간이었던 과거의 상흔을 지우고 연대와 생명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운동을 과거의 철의 장막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고르바초프의 말처럼, “오늘날 그것은 유럽 국가들과 민족들의 성장과 평화로운 미래를 향한 희망을 상징한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과제 신청 당시 제출했던 계획서에서 밝혔듯이, 이 연구는 한국 역사학계에서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억의 장소’ 이론과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의 문제의식을 환경사 연구와 결합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첫째, 학문적 차원에서 환경사 연구와 기억 연구를 ...
과제 신청 당시 제출했던 계획서에서 밝혔듯이, 이 연구는 한국 역사학계에서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억의 장소’ 이론과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의 문제의식을 환경사 연구와 결합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이 연구는 첫째, 학문적 차원에서 환경사 연구와 기억 연구를 융합함으로써 각 분야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환경사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이론이나 연구사 소개 또는 경험적 연구 한 쪽에 편중되어 왔던 연구경향을 발전적으로 보완하게 될 것이며, 기억 연구 차원에서는 역사와 기억 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풍성하게 하는 사례들을 제공할 수 있다. 둘째, 사회적 차원에서 이 연구는 우리의 현안인 통일과 그 이후의 문제 해결에 중요한 독일의 경험을 제시함으로써 공동체의 현재적 필요에 부응해야 할 역사학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 현재 경기도와 강원도, 즉 비무장지대가 위치한 지방자치체는 독일 그뤼네스반트의 활용 현황에 깊은 관심을 갖고 상호 협약을 체결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물론 독일 그뤼네스반트에서도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 한국의 사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이 주제에 관해 일부 정치학자들만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뿐이다. 역사학 분야에서 그뤼네스반트 운동의 진행뿐만 아니라 그 대중적 ‘수용’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 연구는 종래 그뤼네스반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의 결과를 통해 환경문제 및 환경의 역사에 대한 대중의 문제의식을 높일 수 있다. 오늘날 점증하는 환경위기는 ‘위로부터의’ 정책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각성과 움직임이 전제되어야만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본 지원자는 학술대회나 학회지 발표뿐만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한다. 셋째, 교육적 차원에서도 이 연구의 활용 가치는 높다. 그뤼네스반트의 사례는 경험적 환경사 연구로서 역사교육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환경보전을 통한 평화교육의 사례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최근 한반도 비무장지대의 생태보전지구화 및 평화공원 건설에 관한 논의는 ‘그린 데탕트(Green Détente)’라는 개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무장지대의 환경보호를 둘러싼 남북한의 대화가 가속화되고 그로 인해 상호이해의 증진이 가능해진다면, 중장기적으로 통일을 위한 점진적인 인식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독일 그뤼네스반트 운동에 대한 이 연구는 통일을 대비한 평화교육과 환경교육의 일환으로서 관심을 기울일 만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생태학적 기억의 장소’로서 독일 그뤼네스반트와 유럽 그린벨트 운동은 이처럼 학문적, 사회적, 교육적 요구를 두루 충족시킬 수 있는 시의성 높은 주제라고 판단된다.
색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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