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가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그날 밤의 거짓말』에 그려진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 네 죄수들의 삶의 이야기가 사령관을 속이려는 거짓말이기도 하지만 이드, 자아, 초자아의 갈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보고 그들 이야기를 불안에 대한 자아의 방어기제를 중심 ...
이탈리아 작가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그날 밤의 거짓말』에 그려진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 네 죄수들의 삶의 이야기가 사령관을 속이려는 거짓말이기도 하지만 이드, 자아, 초자아의 갈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보고 그들 이야기를 불안에 대한 자아의 방어기제를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 현대인과 현대 사회의 심리를 연구해보고자 한다. 또한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이론을 비판하며 행복해지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아들러의 심리학에서 프로이트와 안나 프로이트의 자아 방어기제를 넘어서는 불안 극복의 방법이 있지 않은지, 『그날 밤의 거짓말』의 네 죄수가 보여주는 프로이트의 승화의 방어기제가 아들러의 우월성을 향한 열등감 극복과 공동체 감각 회복과 통하며, 이것이 현대인과 현대사회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닌지 연구해 보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이드, 자아, 초자아의 갈등으로 야기되는 불안을 도덕적 불안, 현실적 불안, 신경증적 불안 세 가지로 구분했다. 안나 프로이트도 아버지의 구분을 따라 방어를 촉발하는 동기를 초자아 불안, 객관적 불안, 본능적 불안으로 구분했다. 본 연구에서는 안나 프로이트의 방어기제를 현대 심리학에서 많이 언급되는 방어기제 용어로 바꾸어 투사, 부정, 억압, 합리화, 주지화, 반동형성, 전위, 퇴행, 동일시, 승화 열 가지로 구분해 연구해보고자 한다. 『그날 밤의 거짓말』의 네 죄수의 방어기제를 분석하기 위해 사령관에게 보고된 죄수들의 조서, 사형되기 전날 밤 죄수들의 이야기, 마지막 부분 사령관이 자살하기 앞서 남긴 유언장의 내용을 비교 연구하여 네 명의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과 거짓, 의식과 무의식, 불안을 밝히고자 한다.
맨 처음 이야기를 시작하는 죄수는 학생 나르시스 루치로라이다. 이름이 나르시스이듯 루치로라에게는 자기애와 자기도취적 성향이 강하다. 학생 나르시스는 자신을 이상화한 연인과의 사랑을 통해 연약한 자아를 부풀리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자기애 방어를 보인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이상적인 면을 보호하려는 자기애 방어를 행하며 무의식적 억압, 부인, 왜곡, 투사 등 일련의 방어기제를 발동한다. 조서, 나르시스의 이야기, 사령관의 유언장, 세 가지 정보를 종합해볼 때 나르시스에게서는 ‘억압', 투사', '전위'의 방어기제가 보인다. ‘억압’은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이나 충동을 의식화하지 않으려는 무의식적 노력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불안하고 무의미한 존재라는 것을 느낌을 회피하기 위해 ‘투사’ 방어기제를 동원한다. '투사'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일으키는 자신의 감정이나 사고를 타인에게 있는 것처럼 전가시킴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이다. 금기를 깨고 친누나를 유혹했던 사실을 정원사 가스파레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불안을 덜어낸다. 나르시스의 불안과 방어기제는 주관주의에 침몰된 현대 사회의 나르시시즘을 보여준다. 병적인 자아도취에 젖은 사람들은 타인이나 공동체와의 공감 능력을 상실한 채 이기주의에 침몰되기 쉽고, 그런 이기적 나르시시즘 사회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고 을에 대한 갑의 횡포를 정당화하는 사회가 된다.
네 죄수의 우두머리 격인 귀족 인가푸 남작의 이야기는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준다. 남작에게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보인다. 정체성 결여 문제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혼돈스러워하고 자신을 다수의 인격으로 경험하는 장애이다. 이중인격 또는 다중인격이라고 불리는 정신질환으로 어떤 정신적 충격이 계기가 되어 불안전한 개인의 기억 등의 일부가 해리되어 마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증세다. 이런 남작에게 '부정'과 '합리화'의 방어기제가 보인다. 부정은 고통스런 환경이나 위협적인 정보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에서 도피하는 방법이다. 합리화는 불합리한 태도, 생각, 행동을 합리적인 것처럼 정당화시킴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방법이다. 남작은 자신이 쌍둥이 동생이었으면서도 형으로 행세하며 형의 죽음을 부정한다. 형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 자아는 부정하지만 형의 장자권을 탐내 형에게 우울증이 생긴 건 아닐까하는 죄책감이 남작으로 하여금 형과 자신을 바꿔 형이 자신의 삶을 사는 것으로 합리화한 것으로 보인다. 인가푸 남작이 겪고 있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많은 현대인들이 조금씩은 안고 있는 정체성 결여 문제을 보여준다. 사람은 저마나 여러 개의 인격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병적인 정신 분열로 나아가지 않는 한,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치하다보면 오히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군인 아제실라오 델리 인체르티는 ‘조서’에서 집시 어머니에게서 사생아로 태어나 수도원에서 자라다가 수도원을 나와 나이를 몇 살 더 올려 군대에 입대했고, 명령 불복종으로 장교의 미움을 받게 되자 홧김에 장교를 죽이고 잔인하게 성기를 절단했으며, 인가푸 남작의 열렬한 추종자였로 기록됐다. ‘사령관의 유언장’에선 아제실라오가 여자를 놓고 치졸한 싸움을 벌이다 상관을 살인한 것으로 밝혀진다. 아제실라오에겐 '합리화'와 ‘주지화’, '전위'의 방어기제가 보인다. 전위란 자신의 충족되지 않는 욕구를 전혀 다른 대상으로 옮겨 충족하는 것을 말한다. 아제실라오는 아버지 살해 욕구를 자신을 미워한 상관으로 대상을 옮겨 충족했다. 아제실라오가 상관을 죽이고 성기를 절단했다는 사실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결하지 못한 무의식적 충동이 보인다. 유아는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아버지의 법을 받아들이고, 지적으로 성숙하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한다. 이 단계를 제대로 넘기지 못했을 경우 자기 자신의 인격이나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타자를 제거하고 살해하게 되는 것이다. 거세 공포의 불안이 타자에 대한 폭력과 살해로 이어진다. 현대 사회에 만연한 타자에 대한 폭력과 살해는 거세 공포의 불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결하지 못한 무의식적 충동의 결과일지 모른다. 아버지 대신 상관을 살해한 아제실라오가 국왕 살해 음모에 가담함으로써 민중을 억압하는 왕권에 저항하는 자유주의자가 되었지만 그 신념과 행동 아래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결하지 못한 타자 살해의 충동이 숨어 있다.
다.
마지막으로 시인 살림베니는 ‘조서’에서 가장 베일에 싸인 선동가이고, 부드러운 달변과 깔끔한 외모로 사람들을 현혹했으며, 음악애호가여서 무대와 소극장을 돌아다니며 과격한 내용의 유인물을 뿌리고 다녔던 것으로 기록됐다. ‘살림베니의 이야기’에서 살림베니는 자신이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 삶을 살아왔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됐으며, 분장한 희극배우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살림베니는 자신이 미망인 공작부인과 어린 아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공작부인이 산적에게 강간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아들이 어머니에게 실망해 자살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치릴로 수사와 사령관의 유언장은 공작부인이 산적이 아니라 살림베니에게 강간당했고 이로 인해 소년이 자살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밝힌다. 살림베니에게는 '투사'와 '동일시'의 방어기제가 보인다. 살림베니의 불안과 방어기제는 현대인의 가면을 쓴 인격, 페르소나를 연상시킨다.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인격으로 실제 성격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살림베니는 여자들에게는 매력적인 남자, 민중에게는 과격한 선동가, 공작의 어린 아들에게는 자상한 형 역할 등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여러 다른 인격의 가면을 쓰고 마치 배우처럼 연극하듯 살아가며 진실과 거짓, 목적과 수단을 혼동한다. 시인 살림베니처럼 현대인은 여러 개의 페르소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페르소나와의 동일시가 너무 강해서 자기 자신을 잊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적절한 가면은 필요하기에, 자기 자신과 페르소나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안나 프로이트는 자아가 성숙함에 따라 사용하는 방어기제도 함께 발달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유형의 방어기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아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 부정, 투사, 퇴행 등은 초기의 미성숙한 방어기제이고 초자아의 존재를 전제하는 억압이나 승화는 상대적으로 발달 과정 후기가 되어야 동원될 수 있는 성숙한 방어기제이다. 폭군에 고통당하는 민중들을 해방시키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사회를 만들고자 죽음의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네 죄수에게서 이타주의적 포기를 볼 수 있다.
이타주의적 포기는 승화의 방어기제와 통한다. 승화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충동을 허용되는 행위로 전화하는 것이다. 네 죄수는 인정받지 못할 자신들의 무의식적 충동과 폭력, 죽음의 공포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순교자의 이미지로 승화시켜 충족시키고자 한다.
본 연구자는 승화의 방어기제가 아들러의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우월성 추구의 욕구와 통한다고 본다. 아들러는 인간은 누구나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 뛰어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있으며, 이것을 우월성 추구라고 했다. 우월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열등감도 생기는 것이며, 따라서 열등감 자체는 병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심리다.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성을 추구하려는 건전한 노력은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충동을 허용되는 행위로 변화시키려는 승화와 통한다고 본다. 열등감과 이기주의를 이타주의로 승화했을 때 자아는 보다 성숙한다. 공동체에게 유익한 존재라고 느끼면서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때 인간은 비로소 삶의 용기를 얻게 되고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날 밤의 거짓말』의 네 죄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순교자의 이미지를 획득함으로써 자신들의 가치를 실감하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용기 내어 죽음의 불안을 떨쳐내며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