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영국 낭만주의 시기의 애나 바볼드(Anna Letitia Barbauld)가 1812년 2월에 발표한 장시(長詩) <1811>(Eighteen Hundred and Eleven)을 다룬다. <1811>을 발표 당시 처음 읽은 평론가들은 시가 영국이 머지않아 쇠락할 것이라는 충격적이고 비애국적인 예언을 담 ...
본 연구는 영국 낭만주의 시기의 애나 바볼드(Anna Letitia Barbauld)가 1812년 2월에 발표한 장시(長詩) <1811>(Eighteen Hundred and Eleven)을 다룬다. <1811>을 발표 당시 처음 읽은 평론가들은 시가 영국이 머지않아 쇠락할 것이라는 충격적이고 비애국적인 예언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바볼드를 ‘차가운’ 여자라고 맹비난했는데, 본 연구자는 바로 이 ‘차가움’이 <1811>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라고 본다. ‘차가움’은 바볼드가 이 시에서 조국 영국의 멸망을 선포하는 예언자로 서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었다. 본 연구는 평론가들이 바볼드에게서 느낀 ‘차가움’의 본질을 분석할 것이다. 이와 함께 필자는 <1811>에서 예언의 능력이 의인화되어 나타난 ‘공상’(Fancy)에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다. 이 공상이 시에 드러난 바볼드의 역사관 및 예술관과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왜 하필 공상이 예지력과 동일시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것이다. 정리하자면 본 연구는 ‘차가움’과 ‘공상’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통해 <1811>에 접근하고자 한다. 이 두 키워드가 연구 초반에는 별개의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종국에는 밀접하게 하나로 엮일 것이다. 이 둘을 결합시킬 매개 역할을 할 또 하나의 키워드는 ‘자유주의’이다. 필자는 <1811>을 바볼드의 급진적 자유주의를 총결산하는 작품으로 본다. 이 시는 바볼드가 평생을 자유주의에 헌신하고 내린 결론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결론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것이다.
기대효과
본 연구는 국내 영문학계에서 바볼드의 <1811>에 대한 사실상 최초의 본격적 연구가 될 것이다. 적어도 필자가 알기로는 바볼드에 대한 국내의 어느 선행연구도 <1811>에 온전히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따라서 본 연구는 국내 학계에서 바볼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녀 ...
본 연구는 국내 영문학계에서 바볼드의 <1811>에 대한 사실상 최초의 본격적 연구가 될 것이다. 적어도 필자가 알기로는 바볼드에 대한 국내의 어느 선행연구도 <1811>에 온전히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따라서 본 연구는 국내 학계에서 바볼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녀를 낭만기 ‘주요’ 시인으로 재조명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어려운 작품인 탓에 학부수업에서 읽기는 여전히 힘들겠지만, 대학원수업에서는 낭만주의의 정전(正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바볼드의 공상력 개념에 대한 필자의 논의는 코울리지 연구에도 신선한 자극을 주리라 기대한다. 바볼드가 시적 영감의 원천으로 공상을 내세운 것은 코울리지가 6년 후 <문학 평전>(Biographia Literaria, 1817년)에서 상상력과 공상력을 구분하며 전자(前者)를 우위에 둔 것을 떠올릴 때 상당히 흥미롭다. 두 사람의 공상력 개념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연구요약
필자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먼저 이 시의 핵심내용을 명료하게 정리한 다음, 동시대 비평가들이 이 시를 어떻게 평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필자의 <1811> 연구에서 당대의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아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1811-12년의 영국의 국 ...
필자는 독자의 편의를 위해 먼저 이 시의 핵심내용을 명료하게 정리한 다음, 동시대 비평가들이 이 시를 어떻게 평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필자의 <1811> 연구에서 당대의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아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1811-12년의 영국의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영국의 멸망을 경고한다는 것은 엄청난 비난을 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런 위험에도 바볼드는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얘기를 했고, 당연히 모두로부터 ‘차가운’ 여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본 연구의 또 하나의 키워드인 공상은 바볼드의 역사관과 예술관을 포괄하는 능력으로서 곧 예지력이기도 하다. 공상의 힘으로 과거와 현재의 인간사를 통찰하고 자유주의 사상의 고취를 작품 활동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예술가는 그가 속한 사회의 미래를 예단할 능력 혹은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국가의 앞날이 멸망으로 귀결되는 것이 보인다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한다는 마음으로 동시대인들에게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 바볼드에게 여성의 ‘따뜻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평론가들의 비난은 그녀가 예언자로서 가졌던 공적 의무감이 당대의 여성성과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일깨워준다. 다시 말해 바볼드의 ‘차가움’은 1810년대 초반의 영국사회에서 그녀가 예언자로 서기 위해 갖추지 않으면 안 될 필수덕목이었다. 이렇게 <1811>에서 바볼드의 공상력과 차가움은 자유주의의 이상을 매개로 불가분의 관계를 띠게 된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애나 바볼드는 1812년에 발표한 <1811>에서 대영제국의 문명이 붕괴할 것임을 예언하는데, 이는 당연히 당대 평론가들을 크게 격분시켰다. 평론가들은 특히 바볼드가 나폴레옹의 프랑스로부터 큰 위협을 당하고 있는 조국에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것에 화를 냈다. 이들 ...
애나 바볼드는 1812년에 발표한 <1811>에서 대영제국의 문명이 붕괴할 것임을 예언하는데, 이는 당연히 당대 평론가들을 크게 격분시켰다. 평론가들은 특히 바볼드가 나폴레옹의 프랑스로부터 큰 위협을 당하고 있는 조국에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것에 화를 냈다. 이들이 바볼드를 차가운 여자로 비난한 것은 코울리지가 바볼드의 차가움에 대해 비꼬는 말을 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코울리지의 바볼드에 대한 반감의 뿌리는 바볼드의 1798년 시 <코울리지 씨에게>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볼드가 이 시에서 시인의 공적 의무에 방점을 둔 것은 그녀가 <1811>에서 스스로를 여선지자로 내세운 것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선지자로서의 그녀의 공적 역할은 영국인들에게 전쟁 중인 나라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개인의 자유를 짓밟는 것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부가 자행하는 자유의 침해가 필연적으로 영국의 쇠퇴를 가져올 것이라 믿었다. 여선지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바볼드는 차가운 여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1811>에서 미래를 예언하는 그녀의 능력은 공상으로 의인화된다. 이 공상은 코울리지의 공상 개념과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공상의 능력에 대한 바볼드의 믿음은 자유에 대한 그녀의 확고한 믿음에 기반을 둔다. 예술과 역사에 대한 바볼드의 자유주의적 시각은 그녀의 공상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영문
Anna Barbauld’s Eighteen Hundred and Eleven, in which she prophesizes the collapse of the British civilization, sparked fury among reviewers when it first appeared in 1812. They especially condemned Barbauld’s coldness towards her home country, which ...
Anna Barbauld’s Eighteen Hundred and Eleven, in which she prophesizes the collapse of the British civilization, sparked fury among reviewers when it first appeared in 1812. They especially condemned Barbauld’s coldness towards her home country, which was faced with grave threats from Napoleon’s France. Their representation of Barbauld as a cold woman coincides with Coleridge’s snide remark about her iciness. His antipathy to Barbauld has roots, it seems, in her 1798 poem “To Mr. Coleridge.” The great stress that Barbauld lays on the poet’s public duty in this poem anticipates her casting herself as a prophetess in Eighteen Hundred and Eleven. Her public role as a prophetess is to warn the British people about individual freedom being violated under the pretext of protecting the nation at war—violations that, in her prophetic vision, will lead inevitably to the decline of Britain. Barbauld has to be a cold woman in order to serve as a prophetess in her society. In the poem, her ability to envision the future is personified as Fancy, which invites an interesting comparison with Coleridge’s conception of fancy. Barbauld bases the faculty of fancy on her firm belief in human liberty, and also incorporates in this faculty her liberal views on art and history.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바볼드의 공상력을 작동시키는 핵심가치는 인간의 천부적 자유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이런 측면에서 <1811>에 등장하는 공상은 바볼드의 역사관과 예술관이 압축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바볼드에게는 자유권의 추구가 역사발전의 원동력이고, 예술행위 역시 자유권 ...
바볼드의 공상력을 작동시키는 핵심가치는 인간의 천부적 자유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이런 측면에서 <1811>에 등장하는 공상은 바볼드의 역사관과 예술관이 압축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바볼드에게는 자유권의 추구가 역사발전의 원동력이고, 예술행위 역시 자유권이 창조적으로 실현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관과 예술관을 포괄하는 능력으로서의 공상은 곧 예지력이기도 하다. 공상의 힘으로 과거와 현재의 인간사를 통찰하고 자유주의 사상의 고취를 작품 활동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 예술가는 그가 속한 사회의 미래를 예단할 능력 혹은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국가의 앞날이 멸망으로 귀결되는 것이 보인다면 자신의 공적 의무를 이행한다는 마음으로 동시대인들에게 엄중히 경고해야 한다. 예언자 바볼드의 시각에서 국부(國富)를 부당한 방법으로 축적하며 무의미한 전쟁으로 수많은 국민들(특히 여성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영국의 미래는 지극히 암울할 수밖에 없다. 영국이 지금의 죄를 뉘우치고 자유의 가치를 다시 회복시키지 않는다면 쇠망은 머지않아 필연적으로 맞이할 운명이다. 지금은 제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어도 영국은 미래에 그리스와 로마제국처럼 돌무더기 유적으로만 기억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러나 1811-12년의 영국의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런 미래를 경고한다는 것은 엄청난 비난을 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런 위험에도 바볼드는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얘기를 했고, 당연히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바볼드가 여성이 마땅히 갖춰야 할 ‘따뜻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평론가들의 비난은 그녀가 예언자로서 가졌던 공적 의무감, 모두가 미워해도 경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이 당대의 여성성과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일깨워준다. 다시 말해 바볼드의 ‘차가움’은 1810년대 초반의 영국사회에서 그녀가 여성시인으로, 또 예언자로 서기 위해 갖추지 않으면 안 될 필수덕목이었다. 남성 평론가들은 바볼드가 보여준 미움받을 용기에 차가운 여자라는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지금껏 우리나라 학계에서 제대로 논의가 된 적이 없는 1811을 다룬다는 점에 이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1811>뿐 아니라 이 장편시와 주제적 측면에서 엮을 수 있는 다른 시들도 함께 논한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바볼드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코 ...
지금껏 우리나라 학계에서 제대로 논의가 된 적이 없는 1811을 다룬다는 점에 이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1811>뿐 아니라 이 장편시와 주제적 측면에서 엮을 수 있는 다른 시들도 함께 논한다는 점에서 이 연구는 바볼드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코울리지 씨에게」와 「윌버포스에게 보내는 서한」 역시 국내에서는 별로 논의된 적이 없다. 교육적으로는 낭만주의 시라면 소위 Big Six(워즈워스, 코울리지, 블레이크, 키츠, 셸리, 바이런)의 작품들에만 익숙해있는 국내 영문학 전공자들의 시야를 넓혀준다는 데 이 연구의 또 다른 가치가 있다. 영문학 전공자들은 바볼드를 비롯한 여성 시인들이 낭만주의 운동에 기여한 바를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