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적인 특유의 근대적 인간상, 즉 일정한 성격의 근대적 주체를 전제로 하고 있는 서양근대사, 특히 절대군주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라는 절대군주가 지배했던 시대에 남성중심의 시대적 분위기에 함몰되지않고 주체적 삶을 살아 ...
남성 중심적인 특유의 근대적 인간상, 즉 일정한 성격의 근대적 주체를 전제로 하고 있는 서양근대사, 특히 절대군주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라는 절대군주가 지배했던 시대에 남성중심의 시대적 분위기에 함몰되지않고 주체적 삶을 살아간 여성 중 하나는 맹트농 부인(Madame de Maintenon : 1635-1718)일 것이다. 사실 맹트농 부인은 프랑스 역사에 있어서 그 어떤 인물보다 ‘역사적 페르소나’를 확고히 가지고 있으면서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어렸을 적 이름이 프랑수아즈 도비녜(Françoise d'Aubigné)인 그녀는 위그노 작가이자 앙리 4세의 친구이기도 했던 아그리파 도비녜(Agrippa d'Aubigné)의 손녀이자 지방의 전통 귀족 가문출신으로서 그 삶의 여정이 대단히 드라마틱하여 매 시기 어떤 각도에서 연구하는 가에 따라 역사소설속의 여성, 교육행정가로서의 모습,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 등 여러 모습으로 발견된다. 맹트농 부인이 살아갔던 시대는 루이 14세 통치하의 절대왕정 시대였다. 절대왕정은 다양한 이데올로기 및 장치들을 동원해 정치적 통합을 바탕으로 한 권력 강화에 골몰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루이 14세의 절대군주정이 표방한 여러 정책들은 국가권위에 복종하는 신민 양성을 통해 사회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과 연결된다. 또한 왕은 국가의 아버지로서 강화된 사회적 위계를 바탕으로 한 부계질서속에서 경건하고 순응적인 여성을 주조하여 사회의 근원이자 국가의 버팀목으로서의 가정에서부터 체제순응적인 신민을 양성하고자 했다. 따라서 국가권력과 계급관계가 확립된 이후에는 어느 사회에서나 여성이 종속적 지위에 놓여있었고 여성을 받아들이는 종교교단을 제외하고 여성들은 법적, 제도적으로 사실상 가정이외의 모든 영역에서 배제되었다고는 하지만 특히나 이 시대는 더욱 그러했을 것을 사료된다. 이러한 시대성을 고려할 때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으로서 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최고 정점까지 올라갔던 맹트농 부인의 치열한 삶을 우리 눈앞에 다시 생생하게 불러내는 것은 절대왕정기를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바로미터가 되어 줄 것이다. 더욱이 이는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고자 했던 그간의 작업들은 여성이 얼마나 억압당했고,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지배하였던가에 대한 분석이 주종을 이루어왔다. 이는 여성이 억압당해왔었다는 사실 자체를 확립하고 그 억압의 원인을 밝히는 일이 선결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압의 원인 및 구조와 그 지속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이 그 극복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하더라도 억압에 저항하는 주체가 없다면 구조는 극복되지 않고 지속될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여성 주체’의 문제이다. ‘주체’란 자기 결정권에 입각해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 ‘여성 주체’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넘어서서 자신의 의지와 능력과 삶의 방식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여성을 말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성이 주체가 된다는 것은 여성이 누구인가를 여성 자신이 정한다는 것일 게다. 따라서 이제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는 피억압과 희생의 삶이 아닌, 능동적 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던 여성의 모습을 찾아내는 일일 텐데, 루이 14세라는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절대국가권력의 시대에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으로서 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최고 정점까지 올라갔던 맹트농 부인의 공적 활동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접근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본 연구는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 맹트농 부인의 공적 활동을 짚어 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절대왕정기를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기대효과
본 연구는 문헌사료 분석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3단계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첫째, 맹트농 부인의 공적 활동의 배경으로서 그녀의 다양한 교육경험 및 교육실험을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 유년 시절 맹트농 부인이 경험했던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릭시즘이라는 두 ...
본 연구는 문헌사료 분석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3단계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첫째, 맹트농 부인의 공적 활동의 배경으로서 그녀의 다양한 교육경험 및 교육실험을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 유년 시절 맹트농 부인이 경험했던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릭시즘이라는 두 라이벌 종교조직으로부터의 교육경험과 시인 폴 스카롱과의 결혼으로 인해 경험하게 된 살롱 문화에 대한 체험이 그것이다. 또한 생시르 기숙학교 이전의 교육실험으로서 궁정 가정교사 및 몽모랑시 학교와 뤼에유 교육공동체에 대한 후원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험 및 실험이 향후 그녀의 공적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여성교육분야에서의 그녀의 공적 활동으로서 생시르 기숙학교 설립 운영을 주목하고자 한다. 비록 루이 14세라는 당대 최고 권력자의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기는 했지만, 여성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사실상 부족했고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활동이 그리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임을 감안할 때 여성 교육에 있어서의 그녀의 활동 및 역할은 충분히 개척자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생시르 기숙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으로서 맹트농 부인은 커리큘럼과 교수법을 수립했는데, 그것들은 서양교육사에서 그녀를 시대를 앞서간 교육이론의 선구자로 자림매김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고 사료된다. 셋째, 낭트칙령 폐지 및 스페인 왕위계승전쟁과 맹트농 부인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정치적 영역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학문적 공헌도 및 교육에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본 연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한 여성의 공적 활동을 돌아보는 시도를 통해 절대주의 시대 주체적 여성의 존재방식을 조망함으로써 근대 프랑스 여성사를 구축하는 데 하나의 지형도를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우리에게 습속화된 남성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의 시각에서 절대왕정 시대를 이해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것이다. 둘째, 절대왕정시대를 포함한 서양 근대사에 대한 학계의 미진한 연구를 보완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근대사의 관심대상을 여성으로 확대함으로써 연구영역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여성학, 교육학, 정치학 분야와 연계해서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근대 여성이 지닌 명백한 역사적 성격을 정제할 경우, 학제간 연구의 활성화와 연구진의 교류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현재 각 대학에 개설된 사학과 전공자들과 일반시민의 서양 근대사 나아가 서양사에 대한 역사 인식 및 소양을 증대시킬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그들에게 근대 서양사에 대한 여성의 역할을 이해시킴으로써 각 학부에 개설된 서양사 관련 과목 등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서양근대사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 넷째, 여성의 역할이 증가하고, 심지어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앞으로의 시대는 여성들이 개인, 가정, 사회와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가와 관련해서 여성의 역할 및 인식에 대한 훈육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학부수준에서 그동안 간과되었던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에 접근하는 훈련이 필요하며 이는 역사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의 형성이라는 점에서도 적합한 주제일 수 있다. 다섯째,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학이 상대적 위화감과 갈등을 빚고 있는 현실에서 역사가 갖는 진부하고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어감을 상쇄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학문과 재력, 물리력, 그리고 의지를 갖춘 청년 남성의 거침없는 성공담처럼 보이는 서양 근대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굴곡진 삶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재능과 의지로 삶을 개척해 나가고자 한 맹트농 부인의 삶은 ‘개인적 가능성’이 강조되는 21세기 현대사회에 적용가능한 실천적 논리이며, 이로부터 서양의 역사가 학계와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것이다.
연구요약
본 연구는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 맹트농 부인의 공적 활동을 짚어 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절대왕정기를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프랑스 역사에 있어서 그 어떤 인물보다 ‘역사적 페르소나’를 확고히 가지고 있으면서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특히 ...
본 연구는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 맹트농 부인의 공적 활동을 짚어 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절대왕정기를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프랑스 역사에 있어서 그 어떤 인물보다 ‘역사적 페르소나’를 확고히 가지고 있으면서 논쟁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다. 특히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으로서 그녀는 다양한 교육경험과 교육활동을 토대로 절대왕정에 가장 가가이 있으면서 정치적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하였다. 맹트농 부인의 이러한 다양한 모습은 일견 그녀의 역사적 정체성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바로 그 다양성속에 보다 중요한 역사적 함축성이 내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까지 맹트농 부인에 대한 여러 사료를 토대로 여러 시각에서 접근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그간의 맹트농 부인에 대한 일면적 평가들이 결국 오늘날까지도 그녀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어렵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주지하듯 그녀가 살았던 당시는 루이 14세 통치하의 절대왕정 시대로서 왕이 국가의 아버지로서 강화된 사회적 위계를 바탕으로 한 부계질서가 강조되었다. 이러한 시대성을 고려할 때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으로서 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최고 정점까지 올라갔던 맹트농 부인의 공적 활동은 반드시 고찰되고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사료된다. 더욱이 이는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이고 그런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여성 주체’의 문제이다. ‘주체’란 자기 결정권에 입각해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 ‘여성 주체’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넘어서서 자신의 의지와 능력과 삶의 방식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여성을 말할 것이다. 루이 14세라는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절대왕정 시대에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으로서 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최고 정점까지 올라갔던 맹트농 부인의 공적 활동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접근가능하다고 본다. 본 연구는 문헌사료 분석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3단계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우선, 맹트농 부인의 공적 활동의 배경으로서 그녀의 다양한 교육경험 및 교육실험을 주목하고자 한다. 둘째, 여성교육분야에서의 그녀의 공적 활동으로서 생시르 기숙학교 설립 운영을 주목하고자 한다. 셋째, 낭트칙령 폐지 및 스페인 왕위계승전쟁과 맹트농 부인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정치적 영역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학문적 공헌도 및 교육에서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선, 절대주의 시대 주체적 여성의 존재방식을 조망함으로써 근대 프랑스 여성사를 구축하는 데 하나의 지형도를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우리에게 습속화된 남성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의 시각에서 절대왕정 시대를 이해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것이다. 둘째, 절대왕정시대를 포함한 서양 근대사에 대한 학계의 미진한 연구를 보완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근대사의 관심대상을 여성으로 확대함으로써 연구영역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여성학, 교육학, 정치학 분야와 연계해서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근대 여성이 지닌 명백한 역사적 성격을 정제할 경우, 학제간 연구의 활성화와 연구진의 교류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현재 각 대학에 개설된 사학과 전공자들과 일반시민의 서양 근대사 나아가 서양사에 대한 역사 인식 및 소양을 증대시킬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그들에게 근대 서양사에 대한 여성의 역할을 이해시킴으로써 각 학부에 개설된 서양사 관련 과목 등에서 여성의 시각으로 서양근대사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 넷째, 여성의 역할이 증가하고, 심지어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앞으로의 시대는 여성들이 개인, 가정, 사회와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가와 관련해서 여성의 역할 및 인식에 대한 훈육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학부수준에서 그동안 간과되었던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에 접근하는 훈련이 필요하며 이는 역사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의 형성이라는 점에서도 적합한 주제일 수 있다. 다섯째,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학이 상대적 위화감과 갈등을 빚고 있는 현실에서 역사가 갖는 진부하고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어감을 상쇄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학문과 재력, 물리력, 그리고 의지를 갖춘 청년 남성의 거침없는 성공담처럼 보이는 서양 근대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굴곡진 삶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재능과 의지로 삶을 개척해 나가고자 한 맹트농 부인의 삶은 ‘개인적 가능성’이 강조되는 21세기 현대사회에 적용가능한 실천적 논리이며, 이로부터 서양의 역사가 학계와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맹트농 부인(Madame de Maintenon)은 루이 14세(Louis XIV) 통치하의 절대왕정 시대를 살아가며 다양한 공적 활동을 보여주었다.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으로서 그녀는 다양한 교육경험과 교육활동을 실천했다. 또한 그녀는 루이 14세의 ‘비밀스런’ 두 번째 왕비로서 정치적 ...
맹트농 부인(Madame de Maintenon)은 루이 14세(Louis XIV) 통치하의 절대왕정 시대를 살아가며 다양한 공적 활동을 보여주었다.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으로서 그녀는 다양한 교육경험과 교육활동을 실천했다. 또한 그녀는 루이 14세의 ‘비밀스런’ 두 번째 왕비로서 정치적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하였다. 그녀의 이러한 공적 활동은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소개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법적, 제도적으로 사실상 가정이외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이 배제되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여성 주체’로서의 그녀의 공적 활동을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영문
Madame De Maintenon showed her various public activities during the reign of Louis XIV ruled under a system of absolute monarchy. She was a family of ruined peers but she put various educational experiences and activities into practice. Also, as Louis ...
Madame De Maintenon showed her various public activities during the reign of Louis XIV ruled under a system of absolute monarchy. She was a family of ruined peers but she put various educational experiences and activities into practice. Also, as Louis XIV’s ‘secrete second wife’, she made her political voices. In the meanwhile, her public activities were introduced in a piecemeal way. Therefore this study aims to shed new light on her public activities as a woman of the age when women were legally and institutionally excluded from all areas in fact, except home.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맹트농 부인(Madame de Maintenon)은 루이 14세(Louis XIV) 통치하의 절대왕정 시대를 살아가며 다양한 공적 활동을 보여주었다.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으로서 그녀는 다양한 교육경험과 교육활동을 실천했다. 또한 그녀는 루이 14세의 ‘비밀스런’ 두 번째 왕비로서 정치적 ...
맹트농 부인(Madame de Maintenon)은 루이 14세(Louis XIV) 통치하의 절대왕정 시대를 살아가며 다양한 공적 활동을 보여주었다. 몰락한 귀족가문 출신으로서 그녀는 다양한 교육경험과 교육활동을 실천했다. 또한 그녀는 루이 14세의 ‘비밀스런’ 두 번째 왕비로서 정치적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하였다. 그녀의 이러한 공적 활동은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소개되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법적, 제도적으로 사실상 가정이외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이 배제되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여성 주체’로서의 그녀의 공적 활동을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역사속에는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였던 상태에서 벗어나 참된 자기 자신을 찾고, 성별 때문에 자기 존재에 대해 구속감을 느끼고 죄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향해 나아간 여성들이 존재한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절대왕정시대를 ...
역사속에는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였던 상태에서 벗어나 참된 자기 자신을 찾고, 성별 때문에 자기 존재에 대해 구속감을 느끼고 죄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향해 나아간 여성들이 존재한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절대왕정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가며 시대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준 맹트농 부인의 사례는 그러한 점에서 ‘집단적 결정론’이 아닌 ‘개인적 가능성’이 강조되는 21세기 현대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 사료된다. 더욱이 본 연구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서양사학계에서 미진하게 다루어졌던 절대왕정시대 및 서양근대 여성사 분야에 대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기존 학술지식의 증진 및 확장을 통한 서양근대사 연구의 풍성한 외연 확장에 기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기여를 통해 전공자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연구, 연구자 사이에서만 의미 있는 연구가 아닌,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교양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지식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연구의 한 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하는 바가 클 것이다. 우선, 본 연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한 여성의 공적 활동을 돌아보는 시도를 통해 절대주의 시대 주체적 여성의 존재방식을 조명함으로써 근대 프랑스 여성사를 구축하는 데 하나의 지형도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특히 우리에게 습속화된 남성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의 시각에서 절대왕정 시대를 이해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것이다. 둘째, 절대왕정 시대를 포함한 서양 근대사에 대한 학계의 미진한 연구를 보완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근대사의 관심 대상을 여성으로 확대함으로써 연구영역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기존의 여성학, 교육학, 정치학 분야와 연계해서 주체적 여성으로서의 근대 여성이 지닌 명백한 역사적 성격을 정제할 경우, 학제간 연구의 활성화와 연구진의 교류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현재 각 대학에 개설된 사학과 전공자들과 일반시민의 서양 근대사 나아가 서양사에 대한 역사 인식 및 소양을 증대시킬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그들에게 근대 서양사에 대한 여성의 역할을 이해시킴으로써 여성의 시각으로 서양근대사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공할 수 있고 나아가 현실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순종적으로 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 및 능력을 드러냄으로써 주체로서 살고자 한 여성들이 존재했음을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컨대 2016학년도 2학기 학부 사학과 4학년 <서양사세미나> 시간을 통해 본 연구자는 ‘서양사속의 여성주체’ - 서양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사회문화적, 성적 남성 지배구조에 함몰되지 않고 주체로서 살고자 한 여성들의 모습 - 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학생들과 한 학기동안 수업을 하는 가운데 본 연구주제를 여러 소주제들 중 하나로 제시하였다. 특히 서양근대라는 시대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과 꿈을 펼쳐보였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주인공인 맹트농 부인은 학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2016년도 여러 차례에 걸쳐, 교도소 내 사회복귀를 앞두고 있었던 재소자들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도 본 연구의 주인공인 맹트농 부인의 사례는 ‘교도소 담장위에 인문학의 꽃’을 피우기에 충분한 주제였다. 넷째, 여성의 역할이 증가하고, 심지어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앞으로의 시대는 여성들이 개인, 가정, 사회와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가와 관련해서 여성의 역할 및 인식에 대한 훈육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학부수준에서 그동안 간과되었던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에 접근하는 훈련이 필요하며 이는 역사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의 형성이라는 점에서도 적합한 주제일 수 있다. 다섯째,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학이 상대적 위화감과 갈등을 빚고 있는 현실에서 역사가 갖는 진부하고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어감을 상쇄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학문과 재력, 물리력, 그리고 의지를 갖춘 청년 남성의 거침없는 성공담처럼 보이는 서양 근대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굴곡진 삶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재능과 의지로 삶을 개척해 나가고자 한 맹트농 부인의 삶은 ‘개인적 가능성’이 강조되는 21세기 현대사회에 적용가능한 실천적 논리이며, 이로부터 서양의 역사가 학계와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