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과제는 2009년 서독 경찰 쿠라스가 동독 첩자로 오래도록 활동해왔음이 밝혀지며 불붙은 ‘독일 68운동의 역사 다시 쓰기’ 논쟁을 다룬다. 연구목표는 68운동 당시 서베를린 경찰이던 쿠라스가 67년 6월 2일 시위 도중 한 대학생을 권총으로 쏘아 사망에 이르게 한 ...
본 연구과제는 2009년 서독 경찰 쿠라스가 동독 첩자로 오래도록 활동해왔음이 밝혀지며 불붙은 ‘독일 68운동의 역사 다시 쓰기’ 논쟁을 다룬다. 연구목표는 68운동 당시 서베를린 경찰이던 쿠라스가 67년 6월 2일 시위 도중 한 대학생을 권총으로 쏘아 사망에 이르게 한 이른바 ‘6월 2일 사건’을 면밀히 재구성하고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쿠라스의 정체 폭로가 불러온 그 논쟁의 진위를 판별하는 것이다. 쿠라스의 시위자 총격은 독일 68운동의 기폭제로 작용하며 운동이 베를린 담장을 넘어 서독 전역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능했다. 따라서 쿠라스의 정체 폭로를 계기로 68운동의 해석을 놓고 첨예한 논쟁이 불 지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운동 당시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국가와 사회의 대리인으로 비쳐진 서독 경찰 쿠라스가 동독 첩자라면 68운동의 역사는 토대부터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이 일각의 주장이었던 반면, 다른 쪽은 쿠라스가 동독의 지령으로 총격을 가했다는 증거도 없을 뿐더러 그 총격이라기보다 당시 경찰 전체의 억압적인 시위 진압 자체가 68운동을 폭발시킨 원인이라고 역설했다. 본 연구는 이런 양쪽 견해 가운데 어느 쪽이 올바른지를 가려내기 위한 중대한 시금석이 ‘6월 2일 사건’ 자체의 엄밀한 재구성과 분석 및 종합적인 진단이라고 보고, 특히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문서고 자료를 기반으로 사건을 우선 미시적으로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독일 68운동을 역동적으로 확산해낸 이 사건의 본질을 파헤침으로써 과연 68운동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지, 아니면 동독이나 슈타지의 영향력이 과대평가된 것으로 파악해야 할지를 최종 판단할 것이다.
기대효과
본 연구의 기대효과는 우선, 그간 독일 역사학계에서도 본격적인 연구 대상으로 자리 잡지 못한 ‘6월 2일 사건’을 근본적으로 정치하게 재구성함으로써 독일 68운동의 핵심 쟁점에 대한 기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또한 6월 2일 사건 자체에 맹아적으 ...
본 연구의 기대효과는 우선, 그간 독일 역사학계에서도 본격적인 연구 대상으로 자리 잡지 못한 ‘6월 2일 사건’을 근본적으로 정치하게 재구성함으로써 독일 68운동의 핵심 쟁점에 대한 기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또한 6월 2일 사건 자체에 맹아적으로 담겨 있는 독일 68운동의 폭발력과 쇠퇴 원인의 징후까지 숙고함으로써 운동 전체의 상과 딜레마를 함께 보여주는 효과도 기대한다. 이는 독일이라는 일국적 상황에 대한 사례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영미 68운동의 공통점에 속하는 국가 공권력과의 대결과 그로 인한 운동 폭발과 쇠퇴라는 야누스적인 측면을 같이 조명해봄으로써 국제적 차원에서의 68운동의 공통점에 대한 일정한 시사점도 마련해줄 것이다. 더불어, 전 세계적 차원의 68운동이 놓여 있던 냉전이라는 상황적 조건을 대표적 전선 도시인 서베를린의 그 사건을 통해 짚어봄으로써 냉전적 조건이 운동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에 대한 고민의 장도 열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여타 국가에서도 공히 70년대에 등장하는 극좌 테러주의의 발호와 국가공권력의 탄압 문제를 연결해서 사고함으로써 국제적인 시각을 위해서도 일정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을 기대한다.
연구요약
본 연구는 일차적으로 독일 68운동의 결정적 사건인 ‘6월 2일 사건’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분석함으로써 2009년 쿠라스 폭로 사건으로 인해 불거진 ‘68운동의 역사 다시 쓰기’ 논란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행될 연구 내용은 6월 2일 사건을 둘러 ...
본 연구는 일차적으로 독일 68운동의 결정적 사건인 ‘6월 2일 사건’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분석함으로써 2009년 쿠라스 폭로 사건으로 인해 불거진 ‘68운동의 역사 다시 쓰기’ 논란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행될 연구 내용은 6월 2일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세력들의 대응과 분쟁 속에서 어떻게 운동이 진행하고 확산되는가를 살피는 동시에, 6월 2일 사건이 과연 어떤 측면에서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나를 진단해내는 것이다. 즉 쿠라스의 총격 자체가 운동의 기폭제였는지, 아니면 이 사건과 더불어 적나라하게 드러난 당시 공권력의 폭력성, 특히 경찰의 과도한 진압 전체가 운동의 촉발제로 작용하였는지를 사건의 면밀한 재구성을 통해 밝혀낼 것이다. 이를 위한 연구 내용은 다양한데, 우선 6월 2일 당일 시위 내용과 경찰의 대응 및 진압에 대한 상세한 재구성이 선행되어야 하고, 총격 사건과 대학생 사망을 놓고 차후 정부와 언론, 지식인 등이 어떻게 반응하며, 나아가 운동 진영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 대응하고 동원이 확산되는지를 재구성 및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편으로 이론적 방법론은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결정적 사건’ 개념의 틀을 빌려오고, 다른 한편으로 문서고 사료에 입각한 실증적이며 구제적인 역사적 입증방식이 병행 도입될 것이다.
결과보고시 연구요약문
국문
본고의 주제는 서독 68운동에 대한 ‘동독의 영향력 문제’와 결부되는 ‘68운동 역사 다시 쓰기 논쟁’이다. 즉, 시위 도중 경찰의 총에 대학생이 사망하는 ‘6월 2일 사건’의 유발자인 서독 경찰 쿠라스가 수십 년 뒤 동독 비밀경찰의 끄나풀이었음이 밝혀지며 벌어지는 논쟁 ...
본고의 주제는 서독 68운동에 대한 ‘동독의 영향력 문제’와 결부되는 ‘68운동 역사 다시 쓰기 논쟁’이다. 즉, 시위 도중 경찰의 총에 대학생이 사망하는 ‘6월 2일 사건’의 유발자인 서독 경찰 쿠라스가 수십 년 뒤 동독 비밀경찰의 끄나풀이었음이 밝혀지며 벌어지는 논쟁의 경과를 추적했다. 한쪽은 동독 첩자가 68운동의 핵심사건을 유발했으니 운동 자체가 동독산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경찰 한 명이 아닌 전체 경찰의 집단적 폭력과 당국의 동조 및 쿠라스의 무죄 석방이 운동과 분노를 더 불질렀다고 반박한다. 68운동의 ‘동독 조종설’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68운동 다시 쓰기’가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반대 측은 동독이 운동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고 당시 쿠라스의 정체가 밝혀졌다 해도 역사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되받는다. 필자의 검토 결과, 동독의 발포 지령을 말하는 핵심 증거는 어디에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쿠라스가 단독으로 총격을 가한 정황이 드러난다. 게다가 ‘6월 2일 사건’의 본질은 서베를린 경찰의 과도한 폭력과 그에 대한 은폐작업 및 ‘살인자’ 쿠라스의 무죄 석방에 있었음도 드러났다. 결국 ‘68운동 다시 쓰기’의 깃발은 정치적 진영 논리가 앞세워진 설득력 낮은 주장으로 비친다.
영문
This paper examines a debate on the historical rewriting of the German ‘68 movement, which is related to the East German influence on the West German ‘68 movement. It traces a course of the debate, which has begun when it was revealed decades later th ...
This paper examines a debate on the historical rewriting of the German ‘68 movement, which is related to the East German influence on the West German ‘68 movement. It traces a course of the debate, which has begun when it was revealed decades later that a West German police Kurras, who had triggered the ‘incident of 2 June’ in which a college student had died in his gun during a protest in west Berlin, was a spy of the East German secret police. Some argued that the movement itself was an East German product because the East German spy had caused the core events of the ‘68 movement in West Germany. Others refuted it, claiming that a collective violence by the police and its approval by the authorities and the release of Kurras had exploded the movement. People who was supporting the ‘theory of East Germany’s control’ over the ‘68 movement, said that the rewriting of its history was necessary. People who was refuting that theory, argued that East Germany did not exercise much influence on the movement and even if the identity of Kurras was revealed at the time, history would not have changed much. The results of my review are as follows. First, there was no key evidence of the firing order of East Germany, but rather the situation in which Kurras shot himself alone. In addition, it was revealed that the essence of the ‘incident of 2 June’ was an excessive violence of the West Berlin police, a concealment of it and the release of the ‘murderer’ Kurras. In the end, the strong claim of the historical rewriting of the German ‘68 movement appears to be a less convincing argument led by political faction logic.
연구결과보고서
초록
이 논문은 서독 68운동에 대한 ‘동독의 영향력 문제’와 연결되는 ‘68운동 역사 다시 쓰기 논쟁’을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시위 도중에 대학생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이른바 ‘6월 2일 사건’을 일으킨 서독 베를린 경찰 쿠라스가 수십 년 뒤 동독 비밀경찰의 끄나 ...
이 논문은 서독 68운동에 대한 ‘동독의 영향력 문제’와 연결되는 ‘68운동 역사 다시 쓰기 논쟁’을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시위 도중에 대학생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이른바 ‘6월 2일 사건’을 일으킨 서독 베를린 경찰 쿠라스가 수십 년 뒤 동독 비밀경찰의 끄나풀이었음이 밝혀지며 벌어지는 논쟁의 경과를 추적한다. 논쟁은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어져 진행된다. 한쪽에서는 동독 첩자가 68운동의 핵심사건을 유발했으니 운동 자체가 동독산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경찰 한 명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 경찰의 집단적 폭력과 당국의 동조 및 쿠라스의 무죄 석방이 운동과 분노를 더 불질렀다고 반박한다. 68운동의 ‘동독 조종설’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68운동 다시 쓰기’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하지만, 반대 측은 동독이 운동에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고 당시 쿠라스의 정체가 밝혀졌다고 해도 역사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되받아 친다. 필자가 면밀히 검토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동독의 발포 지령을 말하는 핵심 증거는 어디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쿠라스가 단독으로 총격을 가한 정황이 드러난다. 게다가 ‘6월 2일 사건’의 본질은 서베를린 경찰의 과도한 폭력과 그에 대한 은폐작업 및 ‘살인자’ 쿠라스의 무죄 석방에 있었음도 밝혀진다. 결국 ‘68운동 다시 쓰기’의 깃발은 정치적 진영 논리가 앞세워진 설득력 낮은 주장으로 보인다.
연구결과 및 활용방안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동독 끄나풀이던 쿠라스가 지시를 받고 오네조르크를 쏘았다는 증거는 한 자락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역사학의 일이기에, 슈타지 내부 문서와 쿠라스의 이력 및 행적을 통해 살펴보았지만 결국 지시가 없었을 ...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동독 끄나풀이던 쿠라스가 지시를 받고 오네조르크를 쏘았다는 증거는 한 자락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 역사학의 일이기에, 슈타지 내부 문서와 쿠라스의 이력 및 행적을 통해 살펴보았지만 결국 지시가 없었을 공산이 더 높아 보인다. 즉 군인에 준하는 서베를린 경찰 신분과 사격 취미를 제대로 연결해낸 총기광 쿠라스가 권위적인 체제인 조국 동독의 대척점을 지향하는 반권위주의 운동을 향한 반감 속에서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을 가능성이 훨씬 컸다. 게다가 운동의 폭발과 운동 진영의 분노에 제대로 불길을 당긴 핵심 요소는 한 대학생의 죽음 그 이상으로, 다름 아닌 쿠라스에게 주어진 면죄부였다. 그의 무죄 석방은 그 죽음을 낳은 광포한 경찰 폭력에 대한 정치권과 경찰의 승인 및 정당화와 함께, 그 죽음의 진실을 둘러싼 경찰의 체계적인 은폐와 공모가 복합적으로 더해진 상징적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본 연구의 활용방안으로 들어가보자. 이 연구는 한편으로 독일 68운동의 결정적 사건과 ‘역사 다시 쓰기 논쟁’을 재구성하며 운동 폭발과 운동 쇠퇴의 원인을 위한 단초와의 유기성을 밝히는 것은 독일 68운동 자체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럽과 미국에서도 각국 68운동은 폭력문제와의 대결에서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는 공통점을 가지기에, 이는 거시적 차원, 즉 국제적인 68운동의 등장과 진행 및 쇠퇴를 폭력문제와의 대결에서 읽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차후 국제적인 68 이해를 위한 유의미한 일국적 사례연구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기실, 68운동은 국제적인 운동으로 2차대전 이후 세계의 정치·경제·사회적 지형도를 일거에 바꾸어놓은 대사건이다. 이를 감안한 큰 틀에서 68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국 단위를 넘어선 비교사연구가 필요하기에, 이런 국제적인 68운동의 공통점을 일국적 사례에서 읽어낼 수 있는 지점을 찾아 해명하는 것은 전체 68운동의 지형을 그려내기 위한 중요한 정지작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